한 댓글에서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란 시구를 인용한 김에 출처도 밝혀놓는다. 러시아 시인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1933- )의 시집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열린책들, 1989)를 염두에 둔 것이다(소장시집이지만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는 알지 못하며 아래 인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것이다). 보즈네센스키는 옙투센코와 함께 1960년대 가장 인기있었던 대중 시인의 한 사람이었다. 생각난 김에 박정대 시인의 패러디시("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도 같이 옮겨놓는다. 한 영화에 삽입된 시낭송("옛애인에게 돌아가지 마세요")은 http://www.youtube.com/watch?v=WhaW4MRwrwg 참조.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옛 애인에게 돌아가지 마세요.
이 세상에 옛애인은 없어요.
그들이 수년 동안 살아온
잘 정돈된 작은 집처럼,
사본이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짖어대는 하얀개를 만나고
언덕위에 늘어 선
양쪽의 숲은 - 왼쪽, 오른쪽에-
어둠속에서 서로를 향해 짖어댄다.

숲속의 두 메아리는 따로 살아간다.
마치 두개의 스테레오 스피커처럼,
당신이 해온 내가 해야 할 모든 것을
그들은 큰소리로 세상에 퍼뜨린다.

집안에서 메아리가 찻잔을 떨어뜨리고,
거짓 메아리가 차를 권하고,
울어야만 할 밤을 위해,
거짓 메아리는 당신을 남겨둔다:

<사랑하는 사람아, 나에게 돌아오지 마오.
이세상에 옛 애인은 없어요.
두개의 멋진 건포도는
당신 생각에 부풀어 오르네...>

내일 저녁, 떠나가는 기차를 따라가며,
당신은 개울가에 열쇠를 던질거요.
오른쪽 숲과 왼쪽의 숲.
당신의 목소리로 외칠거요:

<당신의 애인을 떠나지 마세요.
이세상에 옛 애인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은 충고를 듣지 않을 것이오.

Не возвращайтесь к былым возлюбленным,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Есть дубликаты —
                как домик убранный,
где они жили немного лет.

Вас лаем встретит собачка белая,
и расположенные на холме
две рощи — правая, а позже левая —
повторят лай про себя, во мгле.

Два эха в рощах живут раздельные,
как будто в стереоколонках двух,
все, что ты сделала и что я сделаю,
они разносят по свету вслух.

А в доме эхо уронит чашку,
ложное эхо предложит чай,
ложное эхо оставит на ночь,
когда ей надо бы закричать:

«Не возвращайся ко мне, возлюбленный,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две изумительные изюминки,
хоть и расправятся тебе в ответ...»

А завтра вечером, на поезд следуя,
вы в речку выбросите ключи,
и роща правая, и роща левая
вам вашим голосом прокричит:

«Не покидайте своих возлюбленных.
Былых возлюбленных на свете нет...»

Но вы не выслушаете совет.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 박정대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나의 가슴에 성호를 긋던 바람도
스치고 지나가면 그뿐
하늘의 구름을 나의 애인이라 부를 순 없어요
맥주를 마시며 고백한 사랑은
텅 빈 맥주잔 속에 갇혀 뒹굴고
깃발 속에 써놓은 사랑은
펄럭이는 깃발 속에서만 유효할 뿐이지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복잡한 거리가 행인을 비우듯
그대는 내 가슴의 한복판을
스치고 지나간 무례한 길손이었을 뿐
기억의 통로에 버려진 이름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는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맥주를 마시고 잔디밭을 더럽히며
빨리 혹은 좀더 늦게 떠나갈 뿐이지요
이 세상에 영원한 애인이란 없어요
이 세상의 애인은 모두가 옛애인이지요

07. 08. 11.

P.S. 보즈네센스키의 이미지를 찾다보니 레이건 대통령과의 면담 사진까지 뜬다. 그의 활발한 대외 할동을 짐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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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드레이 보즈네센스키의 죽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6-04 01:22 
    몇 시간 전 일이지만 어제는 한겨레교육문화센터에서의 현대철학강의 종강일이었다.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과 비평에 관해 다루고 강의 뒤에는 몇 분과 간단한 뒷풀이를 가졌다. 어제 아침에서야 서울에서 선거 '패배' 소식을 접하고 수도권의 경우 고작 0:3(예상)에서 1:2(결과)란 말인가 싶었지만, 밤에 귀가하면서 한겨레를 보다가 2% 부족한 승리를 '관대한 승리'로 간주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비로그인 2007-08-11 1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로쟈님 로맨티스트(싱긋) ^^

좋은 페이퍼예요 :)

로쟈 2007-08-12 01:11   좋아요 0 | URL
'로맨티스트'란 말은 한 십 몇 년 전에 들어본 것 같네요.--;

philocinema 2007-08-1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글에 대한 댓글의 출처를 이리 따로 페이퍼로 정리해 주시는 로쟈님의 센스! 감사합니다. 댓글 보면서 의미가 궁금했었는데... 이리 따로 출처를 밝혀주셔서 감상하게 되는군요! 제 기억의 사본으로 고이 간직된 첫사랑의 이미지가 떠오르며 조금은 감상적 낭만에 빠졌다가는 아내의 얼굴이 떠오르며(!) 얼른 정신 차리고(ㅎㅎㅎ) 이렇게 감사의 글 남깁니다.

로쟈 2007-08-12 01:11   좋아요 0 | URL
센스라기보다는 그냥 '의무'죠.^^; 말을 꺼냈으니까요...

수유 2007-08-12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라공의 시에 프라소아즈 아르디 언니의 노래, 아주 좋죠. 물론 제 블록에 있지요마는...
시들은 그러하고^^ 노래들은 좋습니다..

로쟈 2007-08-12 14:12   좋아요 0 | URL
아르디 언니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요.^^

2007-08-12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2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8-12 22:44   좋아요 0 | URL
아, 오종의 영화를 보지 못해서 귀에 덜 익을 수도 있겠네요...

필라멘트 2007-08-12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회되시면 <티무르 키비로프>의 시도 한번 소개해주시죠. <시인세계>에 로쟈님이 번역하신 그의 시들이 다 마음에 들더군요.^^

로쟈 2007-08-12 22:44   좋아요 0 | URL
제가 얼떨결에 맡은 글이고 키비로프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짐작엔 2년쯤 뒤에 번역본이 나올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