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들과 겹치게 됐지만 6월의 마지막 일정 중 하나는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창비, 2000)과 임상수의 <오래된 정원>(2007)에 대해 강의하는 것이다. 사실 '강의'라는 건 핑계이고 나 자신이 지난 20년을 잠시 돌이켜보기 위한 '뒷북'으로 지난 겨울에 기획해서 한 독서모임의 프로그램으로 제안한 거였다(나는 뒤늦게 5월의 사회적 독서 목록을 6월까지 연장하면서 <오래된 정원> 등을 추가했다. http://blog.aladin.co.kr/mramor/1108684).
소설은 이번에야 읽게 됐는데, 지난 2000년에 처음 출간됐을 때 내가 받은 첫인상은 '정원'이란 말이 너무 튄다는 것이었다('뜰'이나 '밭'이나 '마당'에 비해서 얼마나 이국적인 말인지!). 작가의 후기를 읽고서야 의문이 풀렸는데 그는 이렇게 적었다. "1993년 귀국하자마자 구치소에 있을 무렵 운동시간에 나가 하염없이 시멘트 담벽 안의 비좁은 공간을 맴돌면서 문득 무릉도원 이야기와 샹그릴라 전설이며 하는 것들을 생각하던 중 '오래된 정원'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오래된 정원'은 '무릉도원'과 '샹그릴라'의 은유인 셈이고, 이국적 뉘앙스가 배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다.
영화의 관련 영상을 포함하여 몇 가지 강의자료들을 챙기다가 작가와 감독의 대담이 눈에 띄어 스크랩해놓는다(사실 눈에 띈 건 오래됐지만).말미에 주연배우로 이병헌이 언급되기도 하는 걸 보면 아직 영화의 캐스팅도 공식적으론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대담이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라는 작가의 제안이 눈길을 끄는데, 사실 이 1인칭 소설을 읽어가면서 내가 느낀 건 작가가 지난 시대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적절한 연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일감으로 떠올린 작품은 신경숙의 <깊은 슬픔>이었다. 황석영은 왜 3인칭으로 쓰지 않았을까? '연애감정'을 다루기 때문에? 그게 그렇게 중요했던가?).
"잊어서는 안될 한 시대의 진실"(백낙청)이 "헌신적인 활동가들의 정서적 심층에 잠재된 연애감정의 음영을 절묘하게 포착한 작품"(염무웅)으로 귀결되는 것인지, 그렇게 봉합되고 봉인되는 것인지 의구심도 갖게 된다.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구호는 작가의 독백적 구호가 아니었을까란 생각도 들면서. 영화 <오래된 정원>은 소설이 흘려버린 서사를 챙겨주고 있는지? 아직 남겨놓은 소설과 영화를 마저 읽고/보고 좀더 생각해봐야겠다(나는 강의준비를 미리 하지 않는다).
씨네21(05. 07. 27)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황구라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정원>의 원작자인 황석영 작가와 각색자이자 연출가인 임상수 감독과의 대화는 일대일의 공정한 대담이 되기 어려웠다. 오후 4시에 만나 다음날 새벽 3시까지 황석영 작가는 쉬지 않고 말했다. 본인 레퍼토리만 200가지라고 한다. 임상수 감독은 황석영 작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3대 구라에 대해 얘기했다. “누군가 황 선생님한테 선생님이 망명 기간 동안 그리고 감옥을 다녀 오는 동안 새로운 구라들이 떴습니다, 했더니 황 선생이 이랬대요. ‘걔네들은 교육방송 수준이야. 내가 라디오지.’” 황석영 작가의 라디오는 쉬지 않고 연애, 감옥생활, 신자유주의, 노동의 이동, 비정규직, 한국 문학의 위기, 한국영화의 위기, <한겨레>의 발전 프로젝트 등 주제를 옮겨다니며 능청스럽고 활달하게 유쾌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오래된 정원>은 군부독재 반대 운동으로 18년간 장기복역하고 출옥한 오현우가 그동안 만날 수 없었던 사랑하는 연인 한윤희의 자취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랑하지만 만날 수 없는 연인의 가슴 아픈 사연를 뼈대로 고난의 한국 현대사를 담아냈다.
황석영 | 내가 임상수 영화를 씹으려고 나왔는데.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이랑 <바람난 가족>을 봤는데, <바람난 가족>이 훨씬 좋더라고. 저 양반이 자기 특유의 화법이 있는데 조금씩 비약이 있더구먼. 앞으로 혼내서 조금만 다듬으면 좋겠어. (웃음) 저 사람이 참 고급이야. 우리는 딱 알겠더라고. 내용이 남반부의 천민자본주의 재생산이구나. 아주 재미있게 봤어. 일반 대중은 어렵지. 느닷없이 죽는 실향민이 김일성 장군 노래를 부른다던가. 일반 사람은 저 실향민이 미쳤나 싶은 거지. 그 사람은 여기 와서 삶이 성공한 사람도 아니고, 회한도 있을 거고. 옛날 사회에 대한 그리움이 아니라 자기 회한인데, 남한 전체가 갖고 있는 회한이기도 하고. 누가 인권변호사를 저 따위로 그리냐 비난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는 게 스테레오타입이지 뭐. 인권변호사는 교접 안 하나. (웃음)
임상수 | 실향민 장면 같은 경우 황석영 선생의 <손님>을 언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전에 읽었다면 제가 영향받은 것이고 뒤에 읽었다면 아, 선생님과 내가 비슷하구나 하는 걸 느꼈죠. 그리고 <오래된 정원>에서 윤희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실토하겠습니다.
황석영 | 그래도 내가 꼬마 때부터 영화 오래 봤잖수. 카메라 돌아다니는데 군더더기 없이 탁 넘어가는 게 의젓하더라고.
임상수 | 저는 황석영 선생의 의젓하다는 말씀이 최고의 찬사라고 알아듣고 있습니다.
황석영 | 임상수는 서사가 있는 홍상수야. 그게 근데 어려워. 임 감독의 대중적이지 않은 화법이 장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런데 <바람난 가족>은 교접장면이 있어서 흥행이 됐겠지. (웃음) <그때 그 사람들>은 캐릭터가 분명하지를 않아. 감독이 좀 쫄은 거 같아. 뒤처리가 애매모호하고 두루뭉술하게 끝나더만. 김재규 캐릭터가 중요한데, 가령 서사도 서사 중심이 있을 텐데,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Z>를 보면 이브 몽탕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사람이 갖고 있는 생각을 줄거리로 쫓아서 반대쪽 견해라든가 폭력, 허위를 밝히는데 <그때 그 사람들>은 김재규의 캐릭터가 너무 애매모호하지 않았나 싶어. 난 그게 압력받아서 그런 거 같아. 이 영화가 정치권을 뒤집어놓고 시끄럽게 하지 않을까 걱정도 있었을 테고. 런던에 있었지만 영화 시사회를 한 뒤에 시끄런 잡음이 있었던 건 다 알죠. 영화 중간 부분까지는 잘 넘어가더라고. 세련된 스릴러를 보는 느낌인데. 근데 보니까 역시 권력 언저리엔 다 깡패새끼들이야.
임상수 | 핵심이 그거죠.
황석영 | 드라마 <제5공화국>도 보면 이게 웬 조폭영화인가 싶어.
임상수 | 그럼요. 군사독재를 보면 원조조폭이죠. 실제 조폭이 흉내내는 원형이 있는데 그게 3공화국 당시의 청와대죠.
황석영 | 지금 청와대는 안 먹혀.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해 황지우가 싹싹 비는데도 모금을 안 해줘. 누가 높은 사람이 전화했대. 돈 좀 주라고. 그런데 더 돈을 안 주더래. 청와대까지 전화할 거 있습니까, 그러면서 더 안 주더래. 더 말 안 듣는 거지. 그런데다 (노무현 정권은) 권력이양까지 한다네. 저리 순진한지 몰라.
임상수 | 소설 좀 읽은 사람 치고 황석영의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은 없죠. 제가 황석영을 읽은 때는 <객지>가 처음 단행본으로 나왔을 때죠. <객지>를 읽으며 여자 서너명쯤 꼬신 거 같은데. 이거 좀 읽어봐 하고 말이죠.
황석영 | 그러면서 술마시고 토론해보자고 꼬시는 거겠지.
임상수 | 제가 술자리에서 황석영이 되는 거죠.
황석영 | 임 감독이 공부도 잘했지. 제일 다사다난할 때 학교 다녔을 거 아냐. <바람난 가족>을 보면서 그런 시선을 봤어. 옆다리니 남의 다리 긁는 거 같은데 그게 사실 우리의 자화상이거든. 차승재 대표가 원래 의리의 사나이거든. 어디 가서든 자기 사람 칭찬하는 데는 침이 마를 지경이야. 난 임상수가 누구인지 잘 몰랐는데, 영국에서 차승재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어. 임상수가 한다며 그랬더니 임상수가 힘이 있습니다, 실력이 있습니다 그래. 다른 누구에게 물어봤더니 임상수는 자기가 좋아하는 거만 합니다, 그래. 상반된 얘기가 있더라고. 임 감독 또래에서는 씹히는 거야. 한국에 와서 보니 소문이 그렇게 나 있더라고. 그래서 <그때 그 사람들>을 봤지. 그 이유를 알겠더라고. 부분부분 비약을 하는 자기만의 화술 때문에 잘 전달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 난 보면 알겠는데. 우리도 그래. 문장 쓸 때 보면, 아 그리워서 미치겠다 발악해서 쓰지 않아. 그걸 이미지네이션으로 하거든. 비오는 텅 빈 플랫폼에 서 있는데 어떤 꼬마가 비닐우산 쓰고 저 구석에 서 있다라든가, 이렇게 바꿔서 표현하지. 요즘 젊은 작가들 문장을 보면 감수성이 있다고 그러는데, 옛날 일기장에 오늘의 명언 한 구절씩 들어가는 게 있다고. 보이스 비 앰비셔스. 뭐 문장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거야. 처먹여주지 않으면 모르나봐. 우리는 서로 ‘공중전’이 되는데 말이야.
임상수 | 공중전이라는 말은 선생님만이 쓰시는 어휘 가운데 하나죠? 소설 쓰시는 선생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대중을 상대하는 작업인데, 우리 작가들의 영원한 딜레마란 그거죠. 선수끼리 통하는 대중과의 접점을 잃지 않으면서도 고도의 공중전을 벌여야 한다는 것.
황석영 | 한국영화는 관객이 조금 들었다고 자족하면 그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거야. 요즘 젊은, 이른바 뜬다는 배우들 봐. 영혼이 어디 있어. 걔네들 눈동자를 보라고. 관객도 좀 교육시켜야 한다고. 장사되는 영화 나오면 비슷한 게 10개가 한꺼번에 터져나오고. 한 영화에 1천만명씩 드는 거 보면 정신병이야.
임상수 | 저는 전후세대 전전세대라는 개념으로 한국의 상황을 얘기해보고 싶어요. 전전세대들은 한국전쟁 등을 겪으며 정신적 외상을 입었고 그걸 가슴속에 묻어두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가령 김형욱의 자서전은 미국식으로 보면 당연한 거든요. 사실 고백해야지 상처를 잊을 수 있는데 전전세대는, ‘가슴속에 묻어두고 가는 거야 그게 사나이야’ 그런 태도가 있어요. <바람난 가족>에서 피를 아들에게 토하는 장면이 상징적인 게 <오래된 정원>과 <손님>에 나오는 문제의식과도 통해요. 영원히 그 외상을 가슴속에 담아두려니까 피가 썩을 수밖에 없는 거죠.
황석영 | <제5공화국> 보면서 이제야 광주에서 그런 일이 있다는 거 아는 사람들이 있어. 사람들이 드라마나 보고 마는 거지. 그게 한국 사람들의 교양의 척도야. <바람난 가족>은 특유의 고상한 은유가 있는데. 한국 천민자본주의의 자화상인 거지. 첫 장면 해골파는 게 무슨 소리인지 사람들은 모를 거야. 그렇게 형성된 거거든, 이 바닥이. 어느 구석을 가도 말야, 강남의 한 집안 얘기도 그렇고 말이야. 그 사람이 만주에서 밀정노릇하다 커서 양놈 밀정노릇하다가 중공군 포로심문관으로 컸거든. 각 지역의 사학설립자다, 토호다 하는 이들의 배경이 다 그래. 일제 때 순사를 해먹든 면장을 해먹든.
임상수 | 잔인하게 얘기하자면 한국 근대사의 역사가 비적질의 역사이고 그게 여기까지 온 거고.
황석영 | 정말 그래. 동학 이래 100년이 넘었어.
임상수 | 새 정권이 비적질은 안 한다고 그런 거 같은데.
황석영 | 그러니까 이빨이 다 빠진 거잖아.
임상수 | 그 기개는 훌륭한데 그 비적질의 역사를 단칼에 잘라낼 수가 있을지.
황석영 | 그래도 설거지는 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저렇게 힘이 없어 어떻게 설거지를 하나 걱정스러워.
임상수 | 잘못되면 다시 비적질 역사로 회귀할 수 있는 거 아니냐 하시는 거죠.
황석영 | 그렇지. 난 제대로 영화화 기회를 만난 적이 없어. 팔자가 그래. <삼포 가는 길>도 이만희 감독이 말년에 간암이었고 그러니 영화할 정신이 아닌 거야. 다 못 만들고 죽었어. 나머진 제작자가 만든 거야. <오래된 정원>은 러브스토리로 당연히 가는 거지만 임 감독이 자기 방식대로 꾸려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이 소설의 주제는 시간이야. 개인의 삶과 역사는 시제가 원래 안 맞게 되어 있는 거야. 기대와 리얼리티는 다르게 전개되게 되어 있다고. 그게 우리의 운명이야. 돌이켜 다시 살 수 없는 거잖아. 중심은 일주일이야. 18년 만에 풀려난 오현우가 갈뫼(존재하지 않는 전라도의 산골마을. 오현우와 한윤희가 짧게 함께 살던 곳이다)로 갔다가 돌아오는 거. 그리고 갈뫼에 윤희가 남긴 편지에서 18년 동안 윤희의 또 다른 삶이 있는 거지. 둘은 연결이 안 돼 끝까지. 따로 간다고. 한 일본 평론가는 이 소설이 독자가 텍스트를 읽는 행위를 통해서 둘을 접촉시키고, 완성시킨다고 했지. 중심줄거리는 러브스토리지만 20세기를 돌아보는 거야.
임상수 | 선생님 소설 중 가장 좋아하는 단편이 <이웃사람>이에요. 선생님이 내면화된 폭력이 순간적으로 나오는 작품이라고 했는데 <바람난 가족>에서 애를 던지는 거, <눈물>에서 누군가가 성지루를 칼로 푹 찌르는 거, 그게 <이웃사람>한테 알게 모르게 영향받은 것이구나 싶어요. 전 황석영의 소설에 굶주려 있었으니까 <오래된 정원>을 나오자마자 봤죠. 왜 인간이 이렇게 숭고한 거냐,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조광희 변호사에게 전화했더니 세상에 너 같은 양아치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숭고한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처음부터 영화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황석영 | 오현우가 내 캐릭터는 아니에요. 내 친구들 모자이크 한 거야. 서준식을 좋아하는데, 지금 현재 우리 동시대 지식인에 그만큼 도덕적인 사람이 없어. 걔네 체험도 있을 거고. 주변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든가. 김남주도 있고(그런 사람들이 소설 안에 녹아들어 있지).
임상수 | <그때 그 사람들>을 만들고 나서 보수신문에 융단폭격을 받아서, 이번에는 어머니 부탁도 있고 해서 적을 만들지 않는,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를 만들려고 합니다.
황석영 | 그럼. 인간의 얘기를 하면 돼. 난 임상수의 간접화법이 좋다고 생각해요. 카메라 워킹이 참 좋아요, 의젓하고. 모르는 쪽에서나 씹는 거야, 비약이 심하다 이거지.
임상수 | 다음 작품이 러브스토리라니까 칸에 온 외신기자들이 다 안 믿더라고요. 차승재 대표가 이 얘기를 하니까 그러대요. 웃기지마, <조선일보>랑 한나라당이랑 이 새끼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그럴 거라고.
황석영 | 정치적 격변 같은 거는 저 먼 곳에서 우레 울리듯 우르릉 배경으로 깔리게 하고 그 다음 그들의 회한과 아름다운 일상을 그리면 돼. 그렇게 만들면 눈물 빠질 거야.
임상수 | 80년대 운동했던 사람들이 이 책을 임상수가 영화화한다니까 다 읽은 거예요. 다 너무 울었다는 거야. 그러면서도 그들에겐 불편한 감정이 있어요. 왜 그런가 했더니, 한국인의 삶이라는 게 되돌아보지 못하고 계속 뛰어가는 성향이 있어요. 80년대가 소설로 다뤄지긴 했지만 <오래된 정원>이 비로소 집대성한 거죠. 왜 우리가 정리도 안 하고 뛰어온 건가, 정리했어야 할 일인데, 그런 점에서 <오래된 정원>이, 소설로 정리된 거지만 영화가 사람들이 더 많이 보니까, 영화라는 장르 통해서 분명하게 짚고 가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이 영화하게 돼 영광이에요.
황석영 | 전부 다 회한으로, 저 가슴 밑에 꺼내고 싶지 않은 것들이니까.
임상수 | 선생님 작품 연보에서 드물지 않습니까, 러브스토리가.
황석영 | 내가 감옥에서 나와서 이제 드디어 자유의 공간이야. 옛날엔 복장도 서로 단속했어. 이 새끼 왜 이렇게 야하게 입어. 문인이 입는 옷과 자태가 따로 있어. 행복할 자유와 러브스토리 쓸 자유. 예전엔 사랑을 할 자유도 억압됐어.
임상수 | 망명생활 5년 하고, 감옥 5년이 선생님께 인간적인 그리움을… 선생님은 그리움보다는 더 강력한 사나이 같은 작품을 썼죠.
황석영 | 서정적 내면, 속살이 조금씩 들어 있어. 그게 강한 서사에 묻혀서 안 보이거든. 그게 처음으로 <오래된 정원>에서 속살이 드러나는 거야. 그러니 깜짝 놀란 거야.
임상수 | 강남에 사는 싱글 여성들에게 시나리오를 읽혔더니 얘기가 너무 올드하다, 왜 안 슬프냐, 왜 여자 한윤희가 팔자도 안 고치고 그렇게 사느냐고 하던데 이들을 모두 납득시키겠다는 게 제 원대한 꿈입니다.
황석영 | 납득보다는 구성이 중요해. 구성을 가지고 그 사람들 울릴 생각을 하면 돼.
임상수 | 원작에 충실하면 다 울게 돼요.
황석영 | 에피소드들 다 무시하고 새로운 버전으로 만들라고. 구도는 잡혔으니까. 사람의 얘기지, 뭐. 임상수로서도 새로운 전기가 될 영화야.
찻집에서 두 사람은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신자유주의, 제3세계 노동자의 서구 유입, 비정규직 노동자의 증가부터 제3공화국의 비화가 화제에 올랐다. 식당에서 ‘오십세주’를 반주로 곁들이면서 두 사람은 촬영감독, 차기작 등 구체적인 얘기로 들어갔다. 황석영 작가는 스스럼 없이 말을 놓으며 애정을 표했다.
황석영 |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워털루>(1970)를 보라고. 그 사람이 워털루 싸움의 앞뒤 사흘로 나폴레옹의 정점과 몰락을 카메라로 어떻게 담아내나 보라고. 윌리엄 프레이커 감독의 <몬티 월쉬>(1970)를 또 봐. 그렇게 촬영감독이 중요한 거야. <오래된 정원> 촬영감독은 <바람난 가족> 때 같이 한 사람이랑 해.
임상수 | 김우형 촬영감독이 <그때 그 사람들>도 같이 했고 이번 작품도 김우형 촬영감독과 해요. 저는 양아치고 김우형이야말로 예술가죠.
황석영 | 그래 잘했다. 너 같은 양아치, 그러니까 아방가르드들은 예술가의 지도를 받아야 해.
임상수 | 제가 존경하는 작가로 이문구 작가가 있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황석영 | 당신이 한국전쟁이 문학사에서 비어 있다고 했지만 이문구의 <관촌수필>이야말로 깊이와 연민이 있어. 내가 못하는 걸 이문구가 하고 이문구가 못하는 걸 내가 하지.
임상수 | 제가 <바람난 가족>의 서두에서 경찰이 유가족 대표의 멱살 잡는 장면을 가져온 게 어디냐 하면(“제가 민 게 아니고 대한민국 법이 민 겁니다”라고 경찰이 하니까 유가족 대표가 “이 멱살은 내가 잡은 게 아니라 대한민국이 잡았다”고 하는 부분) 바로 이문구 작가의 <우리 동네>였습니다. 아무도 모르더군요.
황석영 | 그래, 맞아.
임상수 | 훌륭한 작가의 에피소드를 훔쳐서 미안하기도 합니다만 엔딩 크레딧에 넣기도 그렇고.
황석영 | 그건 훔친 게 아니지. 영상언어로 다시 발견한 거지. 영화라는 게 고전이고 명작이고 한달이면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모두 볼 수 있어. 하지만 소설은 수백년간 엄청나게 쌓아진 게 있지. 요즘 한국 문학의 위기니 하는데 그거 다 자가발전한 거야.
임상수 | 그렇죠. 평론가들과 신문들이 합작해서 만든 작가들은 수명을 다 했죠. 자기들이 불러온 위기죠.
황석영 | 그래, 그런 의미에서 우리 둘이 잃어버린 서사를 회복하고 담지하자는 선언이라도 하자. 사실 나 같으면 <바람난 가족> 그렇게 안 만들어. <대부>처럼 누아르로 만들지. 그게 천민자본주의 형성사 아냐.
임상수 | 선생님과 같이 하고 싶은 게 강남 형성사입니다. 변방이 어떻게 중심으로 바뀌는가. 천민자본주의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사실, 선생님이 영화감독을 하셔야 되는데.
황석영 | 에이, 무슨. 내가 지금 태어나면 나도 영화감독 하지, 뭐 하러 읽지도 않는 소설 써. 그래 나도 하고 싶다. 내가 구술로 다 불러줄게. 내가 시놉시스도 다 써오고. 삼부작으로 만들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한잔 더를 외쳤다. 황석영 작가의 단골 술집에서 일산의 전망이 다 보였다. 통유리 바깥으로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말솜씨 좋은 감독 가운데 손꼽히는 임상수 감독은 작가에 대한 애정 때문인지, 기가 밀려서인지 ‘라디오’를 다소곳이 듣기만 했다. 3차에 와서야 그는 술기운을 빌려 라디오와 공정한 대담을 하기 시작했다. 황석영 작가와 임상수 감독은 서로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며 한국영화의 서사를 회복하자는 다짐을 하며 헤어졌다.
임상수 | 제 각색의 원칙은 이겁니다. 한윤희의 베를린 생활, 오현우의 감옥 생활을 뺀다. 그리고 윤희를 만나기 전까지의 오현우의 운동권 생활, 위장취업도 다 뺀다는 겁니다.
황석영 | 어, 그래 마음대로 해.
임상수 | 실제 배우 나이는 중요하지 않을 거 같아요. 20년 세월 뛰어넘는 연기이기는 하지만.
황석영 | 이병헌이 오현우를 하면 어떨까. <올인> 보니까 얘 눈이 촉촉한 게 있어.
한겨레(07. 01. 03) 서정시가 불가능한 시대의 연가(戀歌)
그런 시절이 있었다. 누워서 침 뱉거나 재갈 물고 침 흘리거나. 눈 질끈 감고 제 몸 불사르지 않는 한 누구나 그래야 했다. 그게 살아남은 자들의 ‘예의’였다. 정말이냐고. 1980년대, 한국이 그랬다. 그때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또 하나의 시대였다. “처녀들의 젖가슴은 예나 이제나 따스한데”, “왜 나는 자꾸 40대의 소작인 처가 허리를 꾸부리고 걸어가는 것만 이야기하는가”라는 물음조차 죄악이었다. 임상수 감독의 <오래된 정원>은 묻는다. 한 세대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죄의식 아니면 무용담으로 남아 있는 이분법의 80년대를 향해. 정말 사랑조차 그 시대엔 몹쓸 짓이었냐고.
황석영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래된 정원>은 장기수였던 한 남자가 출소한 뒤 사랑했던 한 여자의 흔적을 되짚어가는 과정을 따른다. 군부독재에 반대하던 20대 사회주의자 현우(지진희)는 16년8개월 만에 세상을 활보할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머리카락처럼 그를 둘러싼 세상 또한 현기증이 날 정도로 변해 있다. 한때 목숨을 걸었던 동지들은 “인생은 길고 혁명은 짧다”고 탄식하며 주먹다짐을 하고, “누가 뭐래도 난 아들 편”이라던 어머니는 떵떵거리는 억대 복부인이 되어 늙은 아들에게 고기쌈을 내민다.
변해버린 세상,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일까. 가슴에 품고 있던 단 한장의 증명사진을 들고 현우가 윤희(염정아)를 찾아 떠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윤희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만, 현우는 그녀와 나눴던 짧은 사랑의 파편들이 흩어져 있는 갈뫼로 향한다. 도피 생활 중에 자신을 “숨겨주고, 재워주고, 먹여주고, 몸도 줬던” 윤희를 떠올리는 동안 그는 자신이 수형 생활을 했던 16년8개월이 그녀에게 더한 포박의 세월이었음을 깨닫는다. 감옥에서의 시간을 인내하게 했던 것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신념이 아니라 아직도 끓고 있는 사랑이었음을 또 감지한다.
그렇다고 임상수 감독이 지고지순한 사랑 예찬론을 펼치진 않는다. 대신 영화는 ‘오만’을 부려서라도 시대의 악몽을 제발 좀 떨치라고 말한다. 과거를 들먹이며 현재를 방기하지 말라고 나직하게 충고한다. 이러한 처방전은 감독의 전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현우는 존재를 알지 못했던 자신의 딸을 만난다. 그리고 딸로부터 어떤 화해보다 ‘쿨’한 제안을 받는다. “이젠 헛게 다 보이네”라는 현우의 독백은 역사든, 사회든, 가족이든, 거대한 권위의 감염된 상처들은 개인만이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만의 윤리처럼 보인다(덧붙여 김우형 촬영감독이 든 카메라 움직임을 눈여겨보시라).(이영진기자)
07. 06.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