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 집>에 대한 리뷰(http://blog.aladin.co.kr/mramor/1309219)를 옮겨놓고 보니까 문득 <삐딱하게 보기>(시각과언어, 1995)의 어느 대목에서 지젝이 하이스미스의 동명의 작품을 다루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음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로 읽는구만. 나는 나대로 읽겠다. <삐딱하게 보기>에서는 '패트리시아 하이스미스'라고 읽는다)의 책들이 나온 게 어느덧 재작년 겨울이었다. 책은 두 권쯤 사둔 것 같은데 아직 열어보진 못했다. 그럼에도 물론 지젝의 얘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지만(예전에 읽어둔 책의 서두는 http://blog.aladin.co.kr/mramor/803797 참조).

 

 

 

 

하이스미스의 <검은 집>은 <삐딱하게 보기>의 1장 중 '현실 속의 블랙 홀' 절에서 언급된다. "파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검은 집>은 환상 공간이 텅빈 표면, 즉 욕망의 투사를 위한 일종의 스크린으로 기능하는 방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환상 공간이 갖는 생생한 내용들의 매혹적인 현존은 단지 이 텅빈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27쪽)

작품의 줄거리는 이렇다: "사건은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일어나는데, 그곳 사람들은 해질 무렵이면 마을의 선술집에 모여서 마을 근처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폐가와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어 있는 향수어린 추억과 마을의 전설들을 되새기곤 한다. 이 신비로운 '검은 집'은 어떤 저주에 걸려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누구도 그곳에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것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라고(그 집에 유령이 나타난다든지, 침입자는 모두 죽이는 정신병자가 혼자 살고 있다든지 하는 소문이 퍼져 있다) 여겨졌지만, 동시에 이 '검은 집'은 그들 모두를 젊은 시절의 추억과 연결해주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곳은 그들이 최초로 저지른 범죄, 그 중에서도 성적 경험과 관련된 장소였던 것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 마을에 이사온 지 얼마되지 않는 젊은 엔지니어다. '검은 집'에 대한 전설을 모두 듣고난 그는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 내일 저녁 이 수수께끼에 싸인 집을 탐험해보겠다고 공표한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의 발언에 대해서 아무 말도 않했지만 암묵적으로 강한 반대의사를 표명한다. 다음날 저녁 젊은 엔지니어는 뭔가 끔찍한 사건이, 최소한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질 것은 기대하면서 그 집을 찾아간다. 잔뜩 긴장한 채 어둡고 낡은 폐가에 접근한 그는 삐거덕거리는 계단을 올라가서 방마다 모두 조사해보지만 마루 위에 있는 몇 개의 썩은 매트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다."

"곧바로 선술집으로 돌아온 그는 의기양양하게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들의 '검은 집'은 단지 낡고 더러운 폐가에 불과하며 신비스럽거나 매력적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노라고. 그의 말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고, 그 엔지니어가 떠나려고 하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사납게 그를 공격한다. 불행하게도 젊은 엔지니어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죽고 만다."(28쪽)

그렇다면, 어째서 이 마을 신참자의 행동이 사람들을 그토록 경악하게 만들었을까? 지젝에 따르면 그들의 적개감은 "현실과 환상 공간의 '다른 장면(other scene)' 간의 차이"에 주목함으로써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에게 '검은 집'이 금지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향수어린 욕망과 왜곡된 추억들을 투사할 수 있는 하나의 빈 공간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검은 집'을 그저 낡은 폐가에 불과하다고 폭로함으로써 그 젊은 침입자는 "그들의 환상 공간을 일상적이고 흔해빠진 현실로 환원시켜버렸다. 결국 그는 현실환상 공간 사이의 차이를 제거함으로써 그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접합할 수 있었던 장소를 그들에게서 박탈했던 것이다."('접합하다'는 'articulate'의 번역이다. 여기서는 '표현하다' 정도로 충분하다.)

마지막 문장에 붙은 각주에서 지젝은 이렇게 부연한다: "이러한 점에서 필 로빈슨의 <꿈의 구장>(1989)에서 야구장으로 변형된, 수확을 끝내 깨끗해진 옥수수밭의 역할은 '검은 집'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즉 그것은 환상의 형상이 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여는 청소라는 점이다."(47쪽)

 

"<꿈의 구장>에 관해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돌 것은 그 순수하게 형식적인 측면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 밭을 네모나게 잘라내고 그것을 담장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벌써 유령들이 그 안에서 나타나기 시작하며 그 뒤의 보통 옥수수는 기적과도 같이 유령들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의 비밀을 보호하는 신비로운 덤불로 변형된다. 요컨대 평범함 마당이 '꿈의 구장'이 되는 것이다."(48쪽)

지젝은 이 각주에서만도 세 가지 이상의 사례를 더 드는데, 이 정도만으로도 '현실 속의 블랙홀'로서의 '환상 공간'이 곧 '꿈의 구장'이기도 하다는 점은 접수가능하다(어려운 이야기도 아니잖은가?). 여기까지 무리가 없다면 이제 중급 단계인 '환상의 윤리학'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다루도록 하겠다...

07. 06. 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