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언론의 북리뷰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진 책은 프랑스 사회학자 이브 드잘레이와 미국의 법학자 브라이언트 가스가 공저한 <궁정전투의 국제화>(그린비, 2007)이다. 며칠전 한 지인으로부터 책을 얻었는데, 제목은 생소하지만 리뷰기사를 하나만 읽어봐도 무슨 내용인지 다 짐작된다. '궁정전투'란 말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지식투쟁의 양상"을 가리키는 것이라면 새로울 것도 없고 남의 나라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의 의의는 그러한 '상식'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는 것(그러니까 이런 건 '머리'로 쓰는 책이 아니다). 경향신문의 리뷰기사를 '조감도' 삼아 읽어두기로 한다. 보다 자세한 리뷰는 한겨레의 기사를 참조할 수 있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192298.html)

한국일보(07. 02. 24) 美유학파들이 재생산하는 '세계의 미국화'

정치학 강사 A씨는 어느 술자리에서 끝내 본심을 들키고 말았다. “내가 박사를, 프랑스가 아니고 미국에서 했어야 했는데…”라는 푸념과 함께.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학자들이 즐비한 강단에서 몇 년째 자리를 못 잡고 강사직을 전전해야 하는 현실에서 ‘소수자’의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다. 대학가라면 어디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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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미국화’를 논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은 요즘이다. 여타 국가의 제도와 인적 구성이 미국적인 것을 표준으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학문 체계와 지식 엘리트 계층도 예외가 아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이브 드잘레이는 미국의 학문을 수용한 유학파 지식인이 자국에서 특권 엘리트 계층으로 자리잡는 과정을 남미 사례를 통해 자세히 보여준다.

2002년 별세한 사회학의 거장 피에르 부르디외를 사사한 드잘레이는 지배 계급 자체보다는 위계가 발생하는 원칙에 주목했던 스승의 지론을 계승, 거시적 논의보다 미시적 관찰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두 공저자는 연구 대상국의 정부 대학 로펌 싱크 탱크에 소속된 주류 지식인을 300명 넘게 인터뷰하는 공을 들였다.

미국 시카고대학 경제학파가 길러낸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를 살펴보자. 1950년대까지 국내에서 열세를 보이던 시카고 학파는 공화당 보수주의자들과 연합해 학문 수출에 나섰다. 이들은 국제 개발처와 거대 재단들을 활용, 칠레 산티아고 가톨릭대학에 투자했다. 자연스레 이 대학 경제학도들은 시카고대학으로 건너가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이 기초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공부하며 세력을 키운 뒤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피노체트 정권과 손을 잡았다. 국가 개입 축소, 민영화 등 정책 아젠다를 생산하며 이들은 옛 엘리트들을 붕괴시키려는 군부 독재 정권에 기여했고 스스로 특권 계층의 공석에 올랐다. 1980년대 외채 위기 이후 브라질에 불어 닥친 탈규제·투자 개방 바람도 칠레 사례와 놀랍도록 유사하다.

경제학과 더불어 가장 잘 팔리는 미국의 학문 체계는 법률이다. 미국 법률의 장이 지닌 특징은 법률가들이 대형 로펌 및 대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도 시민 운동이나 무료 법률상담 같은 공익적 활동을 중시하며 존재의 정당성을 확보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습득한 일군의 남미 법률가들은 1970, 80년대 비민주적 자국 정부에 맞서 국제사면위원회와 손잡고 국제인권법을 무기로 삼는 등 미국식 인권 운동을 전개했다. 하지만 군부 독재가 속속 무너지면서 헤게모니를 쥐게 된 이 엘리트 법률가들은 금세 표변하며 보수화됐다. 여기에 더해 외채 위기를 계기로 남미에 신자유주의 체제가 급속히 도입되자 미국식 경제 관련법에 정통한 법률가들 역시 국가 권력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저자 드랄레이는 한국판 서문을 통해 자신의 논의가 아시아에도 유효하리라 조심스레 예상한다. 일례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과 결탁한 ‘버클리 마피아’의 출세 경로는 칠레의 ‘시카고 보이스’의 경우가 고스란히 겹친다는 것. 저자들은 전문 지식인들이 국가 권력을 놓고 벌이는 투쟁이 옛 궁정 귀족들의 정치 다툼과 닮았다며 제목에 ‘궁정 전투’(palace wars)라는 단어를 넣었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새삼 돌아보게 하는 분석틀이다.(이훈성 기자) 

07. 02. 24.

P.S. 찾아보니 두 공저자가 <궁정전투의 국제화> 이전에 쓴 전작으로 <미덕의 거래(Dealing in Virtue)>(1996)란 책이 있다. '국제 무역 중재와 초국가적 법질서의 구축(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and the Construction of a Transnational Legal Order)'이 부제인데, 얼추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아래는 그 내용소개이다. <궁정전투의 국제화>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마저 번역되면 좋겠다(로펌들은 싫어하려나?).

In recent years, international business disputes have increasingly been resolved through private arbitration. The first book of its kind, Dealing in Virtue details how an elite group of transnational lawyers constructed an autonomous legal field that has given them a central and powerful role in the global marketplace.

Building on Pierre Bourdieu's structural approach, the authors show how an informal, settlement-oriented system became formalized and litigious. Integral to this new legal field is the intense personal competition among arbitrators to gain a reputation for virtue, hoping to be selected for arbitration panels. Since arbitration fees have skyrocketed, this is a high-stakes game.

Using multiple examples, Dezalay and Garth explore how international developments can transform domestic methods for handling disputes and analyze the changing prospects for international business dispute resolution given the growing presence of such international market and regulatory institutions as the EEC, the WTO, and NA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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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24 23:13   좋아요 0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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