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거창한데,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김수영을 어디에서부터 읽을 것인가‘가 된다. 김수영 시의 범위를 정하는 문제다. 통상 전집이 기본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대개의 통념이 그렇듯이 이 또한 함정이 있다. 시에 대한 분별력을 갖지 못한 독자가 다짜고짜 전집으로 뛰어드는 경우는 지도 한 장 없이 대도시에서 길찾기에 나서는 일에 견줄 수 있다. 김수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나로선 선집으로 그의 시를 눈에 익힌 다음에 전집으로 나아가는 게 방도라고 여겨진다.

권장할 만한 선집으로는 전집 이전에 가장 많이 읽혀온 <거대한 뿌리>(민음사)와 <사랑의 변주곡>(창비)이 있다. 원래 생전에 출간한 시집으로 <달나라의 장난>(1959)이 있었지만 그의 사후에는 선집으로 대체되고 절판된 듯싶다. 지난해에야 50주기 리뉴얼판이 출간되었는데 동네서점판이어서 알라딘에는 뜨지 않는다(한정판이어서 이미 절판됐을 것 같다). 당연한 말이지만 <달나라의 장난>이 출간된 시점인 1959년까지의 김수영 시는 이 시집이 기준이 된다. 후기에서 김수영은 잡지에 실렸던 ‘거리‘와 ‘꽃‘ 두 편만 게재된 잡지를 구할 길이 없어서 싣지 못했다고 적고 있으므로 정확하게는 이 두 편을 포함한 <달나라의 장난>이라고 해야겠다.

주목할 만한 것은 김수영의 데뷔작으로 많이 거명되는 ‘묘정의 노래‘나 ‘공자의 생활난‘ 등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비록 지면에 발표되기는 했어도 이 습작들이 그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시인의 의사에 반하여 특이하게 과대평가된 시가 ‘공자의 생활난‘이다). <달나라의 장난>에 수록된 시들 가운데 세 편만이 40년대에 쓰인 시이고 전후 첫번째 발표작이 표제시인 ‘달나라의 장난‘이다. 그리고 이 시야말로 김수영 시의 진정한 출발점으로서 값한다. 대개의 김수영론이 ‘공자의 생활난‘을 의미심장한 첫시로 간주하면서 거창한 김수영론의 실마리로 삼는데 나로선 잘못 찍힌 방점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집 <거대한 뿌리>는 ‘달나라의 장난‘ 이전의 시로 ‘공자의 생활난‘과 ‘아버지의 사진‘, 두 편을 수록하고 있고 김현의 해설은 ‘공자의 생활난‘의 마지막 연을 음미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반면에 <사랑의 변주곡>은 40년대에 쓰인 시를 배제하고 바로 ‘달나라의 장난‘을 첫번째 시로 배치했다. 나로선 후자의 선택이 더 타당하게 생각된다. 하지만 ‘달나라의 장난‘의 성취는 ‘공자의 생활난‘과의 대비 속에서 잘 파악될 수 있다. 김수영 시는 ‘공자의 생활난‘과 같은 초기 습작시와 함께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극복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한 사실의 확인을 위해서만 초기 시에 대한 참조는 의미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김상환 교수의 김수영 연구서 <공자의 생활난>(북코리아)에 대해서도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다(김수영 시에 대한 이해를 돕기보다는 저자의 논어 공부 공력을 확인하게 해준다).

요약하자면 ‘공자의 생활난‘과 ‘달나라의 장난‘을 비교하고 그 차이를 음미하는 데서, 그리고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에, 혹은 그 놀라운 도약에 경탄하는 일에서 김수영 시에 대한 이해는 시작된다. 시작에 불과하지만 아직 입구도 찾지 못한 김수영론이 너무 많아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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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2019-02-07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김수영 읽기 중입니다. 김수영을 공부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로쟈 2019-02-07 14:03   좋아요 0 | URL
네 도움이 되셨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