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놓은 책들을 한번씩 점검하고 있는데,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알마, 2006)도 그 중 한권이다. 이전에 한번 소개한 바 있지만 이번에 옮겨놓은 건 오마이뉴스의 리뷰이고 필자는 우연찮게도 정민호 기자이다. 며칠전 <금지를 금지하라>에 이어서 연이어 정기자의 글을 옮겨놓는 셈이 된다(그가 밤잠을 줄여가며 책을 읽는다는 게 허언은 아니겠다). 책상맡에 책이 놓여 있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런저런 일들에 치이다 보니 나는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내주쯤에나 관심있는 장들을 좀 훑어볼 참이다. 마음가짐을 다잡는 차원에서 리뷰도 다시 읽어본다.  

오마이뉴스(07. 01. 02) 미국을 향한 미국 역사학자의 냉철한 비판!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가 있다. 바로 자유다.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철저하게 자유의 나라라고 말이다. 동시에 부정하고 있다. 미국이 말하는 자유는, 미국이 지키고자 하는 자유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자유가 아니다. 그 의미는 언제나 변했을 뿐더러, 또 미국을 좋아한다고 해서, 미국에 산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중심에 있는 자들만의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미국이 아무리 자유의 나라임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누구나 그것을 누릴 수는 없다는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로 소개되는 에릭 포너는 우리에게 낯선 학자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 이름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그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인정받은 실력파 역사학자로 입지를 굳히고 있기 때문이다. 어려운 환경이란 매카시즘이 풍미하던 그때, 소위 '빨갱이' 집안의 자식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색안경 낀 사람들은 그를 미국을 망치는 인물이라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주요 역사학 단체의 회장을 지내며 영향력을 키워왔다. 편견을 뛰어넘는 실력이 있다는 말일 게다.

그 실력이란, 사각지대를 볼 줄 아는 다양성에서 비롯된다. 에릭 포너는 자신을 이야기하는 글에서 공산당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흑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 시절 흑인의 인권에 관심을 갖던 이가 누가 있었겠는가. 이것은 성장한 후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는 남들과 달리, 소외된 이들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에릭 포너가 이야기 하는 진정한 '자유'
앞에서 언급된 '자유'로 생각해보자. 미국이 자유롭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미국인들이 스스로 자유롭다는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자유와 반대되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즉 '자유의 땅, 미덕의 현장, 피압박자의 피난처'라는 주장을 펼치게 하려면 상대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은 어떻게 마련하는가? 바깥 세계를 과장해서 부정적으로 그려야 한다. 동시에 스스로 미국을 특별하다고 여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에 따르면 미국의 독립운동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다. 독립 전쟁을 "인류 역사에서 새 시대를 열어젖힌 사건"으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미국과 나머지 인류의 차이를 부각"되는 계기가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옳든 그르든 간에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생각이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과연 자유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에릭 포너의 답이다. 그는 미국이 세계를 상대로 자유가 무엇인지 강의하려고만 들지 말고 바깥 세계에도 뒤를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유를 수호하고자 한다면, 자족적인 독백에 그치지 말고, 바깥세계와 주고받는 대화가 돼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요즘의 미국의 행동을 본다면, 특히 권력의 나팔수가 된 이들의 말이 무성할 때에, 이 말의 의미는 그렇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미국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 외에도 진지하게 탐구할 것들을 던져주고 있다. 남북전쟁이 끝날 때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이뤄졌다고 알려진 '화해'는 사실 백인들끼리만 했다는 것, 또 흑인들을 차별하면서 모순적으로 자유를 주장하는 태도를 탐구하는 것 등이다. 물론 이제껏 흑인 문제를 지적하는 책들은 많았다. 그렇기에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다른 의미가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날카롭다는 것이다.

흑인이 차별받았으며, 또 지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은 우리만 해도 자주 듣고 있다. 그럼에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또한 그들을 이상하게 보기도 하는데 이러한 인식 속에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미국인이라고 믿는 사람'과 동일시하고 있다. 하지만 에릭 포너는 오랜 역사부터 거슬러 오면서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역사는 현존하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이 착각이 어울릴 때, 이 의미가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그들이 자유에서 배제된 문제들은 지나간 역사의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중요한 것은 흑인만 그런 차별을 받는 것이 아니라 미국인이 아닌 모두가 흑인처럼 대우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처럼 말이다. 흑인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인 셈인데 이 책은 그것을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눈길을 끄는 것으로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는가?'하는 주제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가 없을까? 유럽만 하더라도 사회주의가 있다. 그들은 선거에 나서서 꽤나 큰 지지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랬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던가? 생각해보면 미국은 그 단어와 거리가 멀다. 결벽증에 걸린 것처럼 말이다. 에릭 포너는 그 이유를 다양한 측면에서 풀이하고 있는데 그 과정을 보는 것이 흥미롭다. 지금껏 떠올리던 미국과는 다른 모습이 보이는지라 몇 번 놀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요즘 유행하는 역사책들과 달리 흥미진진한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다. 흥미와는 거리가 먼, 오랫동안 생각해야 할 것들을 던져주는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미국하면 떠올리던 이미지들, 특히 맹목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졌던 그것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접근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주목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정민호 기자) 

07. 01. 18.

P.S.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주제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책은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란 부제를 가진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이다. 립셋의 논의들은 포너 자신도 참조하고 있는데, '미국 사회주의의 역사'에 관해서라면 권위자가 아닌가 한다. 예전에 관련 페이퍼를 쓰기도 했지만, 작년에 나온 미국학 관련서들 가운데에서는 루이스 메넌드의 <메타피지컬 클럽>(민음사, 2006)과 함께 나대로는 가장 중요한 책으로 꼽아두고 있다(한데 전자는 아직 구입을 못했다. 목돈이 나올 구멍을 알아봐야겠다).

참고로,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란 질문은 독일의 사회학자 베르너 좀바르트가 처음 던진 것이라고 한다. 우리에겐 <사치와 자본주의>로 소개된 사회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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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viana 2007-01-18 16:28   좋아요 0 | URL
좋은 책 소개 항상 감사합니다..언젠가는 읽어야지요.불끈 !!!
물론 제돈 주고 사서요..ㅎㅎ

드팀전 2007-01-18 17:10   좋아요 0 | URL
왜 없다고 했더라? 읽으면 잊어버리니 ^^ <미국예외주의>에서..대략...이민사회의 특수성이 계급 갈등을 민족갈등 형태로 바꾸었다는거,일찍부터 자리잡은 양당제도가 계급적 불만을 자체적으로 포섭했다는 것,비교적 빠른 시간내에 사회적 부가 형성되어서 중류의식이 높아졌다는 것,자본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해 제국주의적 팽창책을 쓰면서 내적 통일을 이루기 쉬웠다는 점 등등....또 몇가지 있었는데...루이스 매넌드<메타피지컬 클럽>이 관심이 가네요.책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다보니 보관함만 무거워지네요.핑핑..

로쟈 2007-01-18 17:17   좋아요 0 | URL
파비아나님/ 예, 제가 못 보태드립니다.^^
드팀전님/ 올려놓으신 리뷰 읽어봤습니다. 저보다 한참 부지런하신데요,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