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한겨레의 '18.0도'를 들고 갔다. 설렁탕을 먹으면서 두 꼭지를 읽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설가 유재현의 세설 '캄보디아의 평양냉면집 꽃처녀'이다 . 작가의 소설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의 동남아기행이나 쿠바 기행에 대해서는 전해들은 바 있고, <느린 희망>(그린비, 2006)은 대충 훑어본 적이 있다.

 

 

 

 

굳이 분류하자면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그래도 계속 유지하고자 하는 작가군에 속하는데, 이 세설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단호한 태도를 읽을 수 있어서 인상적이다. 내용을 발췌하면 이렇다(기사의 원문은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83616.html).

2003년 처음 시엠립에 등장했던 ‘평양냉면’은 개점초기에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이 여러분들을 친절하게 봉사해 드리겠습니다.”란 간판의 문구로 보는 이의 심정을 착잡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열심히 봉사한 때문인지 또는 남한 관광객이 급증한 때문인지 평양냉면은 본점보다 두 배쯤 큰 분점을 하나 더 열고 있었다. 귀띔받은 평양냉면의 작년 순익규모는 깜짝 놀랄 액수였다. 또 평양냉면과는 다른 계통이지만 또 하나의 냉면집이 들어서 모두 3개의 북한냉면집이 성업 중으로 모두 남한관광객들을 고객으로 하고 있다.

캄보디아의 남한과 북한 그리고 냉면. 그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단어들이 모여 연출해내는 분위기는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무슨 까닭에 아름다운 평양처녀들은 이역만리 낯선 도시의 어느 한 구석에 갇힌 새(그네들은 한 달에 한 번 집단으로만 외출이 가능했다)가 되어 노래와 춤과 웃음을 팔고 있을까. 불현듯 오래전에 만났던 평양냉면의 실력자인 기름지고 도도한 뽄새의 중년 북한여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또 그 얼굴은 이내 고급 모피를 걸치고 단둥의 쇼핑가를 무시로 출입하며 달러 현찰로 사치품들을 사재끼는 북한의 붉은 귀족들과 겹쳐졌다. 한때의 소련과 동구를 몰락의 구렁으로 몰아넣었던 노멘클라투라의 북한판이다. 결국 남한 관광객들이 급증하며 뿌려대는 시엠립의 달러를 긁어모으고 있는 자들도 그들 중 하나이며 달러의 향방도 그들의 호주머니다.

노멘클라투라가 탄생하는 순간 평등은 쓰레기통에 처박히고 사회주의는 이미 사회주의가 아니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에 사회주의의 배신과 오욕을 상징하는 그런 오물덩어리가 되어버렸다. 아마도 그 시점은 개인숭배가 고착되고 한명의 노멘클라투라가 만명의 노멘클라투라에게 면죄부를 하사한 그 시점부터일 것이며,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때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당과 인민을 통치할 권력을 물려받은 그 때부터일 것이다. 북한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볼모로 인민에게 굶주림과 민주주의의 박탈을 야만적으로 강제하는 기괴한 동토의 국가가 되어 있다. 그 체제는 마치 구소련의 음유시인이자 배우이며 가수인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뒷걸음 치는 말(Koni Priviredlivie)>에서 고통스럽게 노래한 야만의 말(馬)과 같다.

(*)인터넷판에는 '브이쵸스키'라고 오기돼 있다 노래 제목도 'Koni Priveredlivie'로 잘못 병기돼 있다. 맞는 표기는 'Koni Priviredlivye'이다. 필자는 이 노래에서 뒷걸음치는 말, 혹은 길들여지지 않는 말을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은유, 그래서 북한 체제에 대한 은유로 전이될 수 있는 은유로 이해했는데, 나로선 생소하다(그렇게도 읽을 수 있나?). 여하튼 영화 <백야>의 주제가이기도 했던 이 노래의 동영상을 참조해 보시길. 1970년대 전설적인 시인/가수이자 배우였던 비소츠키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다. http://www.youtube.com/watch?v=hWEOaosGDi0. 노래 가사와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은 바람구두님의 문화망명지 사이트가 자세하다(http://windshoes.new21.org/music-vysotsky.htm)  

나는 죽어간다. 한 포기 이삭처럼 폭풍우 나를 쓰러뜨린다.
새벽, 썰매는 나를 눈 속으로 끌고 간다.



북한의 체제는 그렇게 인민을 동토의 눈 속으로 끌어가고 있으며 그토록 오랜 시간을 꾸준히 뒷걸음쳐 왔다. 이제 그 체제가 도달한 곳은 핵을 앞세운 협박과 막무가내의 구걸이고 한줌 붉은 귀족들의 기득권 사수이며, 고작해야 아름다운 여성들을 음식점 봉사원으로, 노동자들을 러시아와 중국의 벌목장과 동유럽의 공장으로 헐값에 수출하고 그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는 막장일뿐이다. 이건 사필귀정의 종장이며 사회주의, 인민과 민주주의에 대해 최소한의 가치도 부여하지 않는 북한이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호를 지금이라도 떼어내야 하는 이유이다.



시엠립에 머무는 동안 몇 번인가 평양냉면에 들렀다. 여성봉사원들이 부르는 이미 희화화된 ‘휘파람’ 노래는 끝임 없이 비소츠키의 절규로 뒤바뀌어 들렸다. 비소츠키는 “마지막 피난처에 도달할 때까지는 최후의 날을 늦추어다오”라고 애절하게 노래한다. 그러나 북한 인민에게 마지막 피난처는 어디이고 얼마의 날을 늦추어야 하는가. 앞으로 달리는 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시엠립을 떠나던 날의 내 우울한 상념은 해답을 얻지 못했지만 그 가슴 저린 물음은 지금도 줄곧 내 머리와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유재현/소설가)

07. 01. 12.

P.S. '휘파람' 노래와 가사는 http://www.tongiledu.or.kr/zboard/zboard.php?id=edu_music&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it&desc=desc&no=3

휘파람 ♬♪♭ (작사 조기천, 작곡 리종오)

1. 어제밤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벌써 몇 달째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복순이네 짚앞을 지날 땐 이 가슴 설레여/ 나도 모르게 안타까이 휘파람 불었네

2. 한번 보면은 어쩐지 다시 못볼 듯/ 보고 또 봐도 그 모습 또 보고싶네
오늘 계획 300을 했다고 생긋이 웃을 때/ 이 가슴에 불이 인다오 이 일을 어찌하랴

(후렴) 휘휘휘 호호호 휘휘 호호호/ 휘휘휘 호호호 휘휘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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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onta 2007-01-12 22:23   좋아요 0 | URL
아....비소츠키 노래...정말 좋네요..최곱니다..^^ 그런데 가사가 무슨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위에 조금 있긴한데..

로쟈 2007-01-12 23:15   좋아요 0 | URL
자세한 건 바람구두님의 사이트를 참조하시길. http://windshoes.new21.org/music-vysotsky.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