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말하지 않겠다
캐리어 가방을 놔두고 한 여자가
갑자기 뛰어갔다는 얘기가 아니다
내가 어쩌다 그 가방을 감시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아니다
주인 없는 가방은 그냥 주인이 없어도
되는 가방인지 나도 기차시간이 있기에
가방 주인을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이제 아무나 들고 가도 되는 건지
이 가방은 분실물로 소속을 바꾸게 되는 건지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는 말인가
그러자 사라진 가방
그게 주인이 다시 찾아간 것인지
그냥 누군가 밀고 간 것인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말하려는
기적은 기척도 하지 않은 순간에
한갓 가방이 나타났다 사라졌다는 얘기다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은
평범한 기적이다 평범하기에 기적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얻을 수 있는 기적
가방만 하더라도 그렇다
기적은 언제든 얼마든지 적들을 만난다
무슨 일이건 일어나는 게 세상이다
얼마나 많은 걸 포기해야 기적은 달성되는지
기차가 제 시간에 도착하는 기적을 보라
기차라고 욕심이 없겠는가
여차하면 뛰어가는 건 일도 아니다
이 순간이 오기까지의 기적
그런 것 빼고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대전역을 떠났다
분명 대전역에서 일어난 기적에 대해서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