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듯
한 눈을 감고 쓴다
이 정도는 써준다는 식으로
시를 쓰느라 눈이 시리다는 핑계로
핑계 아닌 핑계로
설마 시를 쓰다 실명하겠느냐만은
실없는 시라면 또 모르는 일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쓴다고 쓰는 시라면
누구를 위한 시인가
그럼 쓰지 않는다고 쓰는가
그렇다, 이건 시가 아닌 시
시가 아니라고 쓰는 시를
나는 눈이 시려 한 눈을 감고서
시라고 쓴다
어차피 그대가 읽지 않는다면
누가 읽어도 상관없는 일
누가 읽지 않아도 상관없는 일
시만 그렇지도 않다
시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 것
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한 손가락으로 시를 쓰거나
시를 쓰지 않거나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예정이니
나는 두 눈을 모두 감았다 뜰 예정이니
한 눈으로 시를 쓰는 건
한눈파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도 쓴다면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것
어느 날 두 눈을 감고도 쓰리라
누가 읽어도 상관없는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