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차 지방에 내려가는데 기차가 출발한 지 30분이 넘어서야 역방향 좌석에 앉아 있다는 걸 알았다. 딴데 정신이 팔려서였거나 피곤해서였겠다. 봄학기가 지나가고 있는데 세 차례 휴강을 하며 겨우 버텼다(쓰러지지 않은 걸 버텼다고 표현한다면). 특이사항이라면 지난 한달 남짓 시를 쓰고 있다는 건데 내달중에 100편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또한 새로운 딴짓이면서 오랜만의 뻘짓인지도(그래도 몇분은 응원한다고).
책은 언제나처럼 많이 밀려 있다. 많을 때는 하루에도 십수권씩 주문하니 밀리지 않을 수가 없다. 눈의 피로와 심신의 피로 때문에 생각만큼 많은 책을 보지 못한다. 독서기계도 노후화에는 어쩔 수 없다. 억지로라도 읽기 위해서 서평 청탁을 받았다가 후회하는 일이 다반사다. 번역 일거리와 단행본도 잔뜩 밀려 있는데 모두 여름에 해야 할 일이 되었다.
역방향으로 가는 김에 잠시 지난 몇달을 회고해본다. 시를 쓴 것 외에 성과라면 미국문학 이해의 기본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워싱턴 어빙부터 포와 호손, 멜빌, 그리고 소로와 휘트먼을 읽었고 트웨인을 읽고 있으며 헨리 제임스를 읽을 예정이다. 가을학기는 20세기 미국문학으로 꾸릴 예정이어서 올해는 미국문학의 해가 될 전망. 독일문학과 러시아문학은 고정 레퍼토리가 되었다. 내년에는 다시 영문학으로 돌아갈지 새로운 주제로 넘어갈지 아직 미정이다.
강의를 하면서 격려차원에서 스스로에게 책선물을 하곤 하는데 이주에 나온 로렌스의 <D. H. 로렌스의 미국 고전문학 강의>(자음과모음)가 딱 그에 맞춤한 책이다. 러시아문학 강의와 관련해서는 제임스 빌링턴의 <러시아 정체성>(그린비)이 내게 선물에 해당하는 책이다. 슬라비카 시리즈 가운데 <러시아문화사 강의>와 읽어볼 만하다. 경험상 이렇듯 자주 입막음을 해야 구시렁거리지 않는다. 이번 휴일에는 잠도 보충하도록 해야겠다. 눈의 경우는 입막음으로 안 되고 따로 눈감아주어야 한다. 몸관리도 인사관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