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제목을 붙이긴 했지만, 지젝의 <혁명이 다가온다>(길, 2006)의 몇 문단을 읽었던 '패리스 힐튼과 카트린 밀레'란 페이퍼의 자투리이다. 거기서 내가 인용한 마지막 문단은 "거의 100년 전 버지니아 울프는 1912년경에 인간의 본성이 변했다고 썼다. 아마 이 모토는 오늘날 공과 사의 구분이 사라진 것을 신호로 '빅 브러더' 현실 드라마 같은 현상에서 파악되는, 주관성을 가진 지위이 급격한 이동을 지적하는 게 훨씬 더 적절하다."(106쪽)였다. 이 자투리는 그 마지막 문장에 붙은 각주5)에 관한 것이다. 이 각주가 거창하게 요악하자면, '디지털화와 형이상학의 정점'에 대한 것이다. 먼저 그 내용을 옮겨본다.

 

 

 

 

"그렇지만 이러한 급격한 단절 대신 오늘날의 디지털화는 정확히 형이상학 전통의 최고 지점을 형성하다. 아도르노는 어디에선가 위대한 철학은 신의 존재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즉 사유에서 존재로 직접 이동하려는 시도, 파르메니데스가 사유와 존재가 동일하다고 주장하며 이를 처음으로 정식화했다)의 변형이라고 언급했다(심지어 마르크스조차 이 선상에 있다. 그의 '계급의식'에 대한 생각은, 루카치가 <역사와 계급의식>에서 모범적으로 전개한 것처럼 정확하게 사회적 존재에 직접 개입하는 사고에 대한 게 아닌가?). 그리고 결론적으로 사이버공간에서의 디지털 이데올로기란, '비트에서 그것으로(from the bit to it)' 넘어가려는, 즉 디지털한 형식적 구조 질서에서 존재의 두려움을 형성하려는 점에서 이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아닐까."(106쪽)

먼저, 첫문장은 부정확하다. 영어본과 대조해볼 때, '이러한 급격한 단절 대신'이 아니라 '이러한 급격한 단절에도 불구하고'라고 옮겨져야 한다('Despite this radical rupture...'). 다시 옮기면, "하지만, 이러한 급격한 단절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디지털화는 정확히 형이상학적 전통의 정점(the culminating point)을 지시한다." 어떤 전통 말인가? '사유와 존재를 동일시하려는 전통'이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모든 위대한 철학은 신의 존재에 대한 존재론적 증명의 변주이다. 즉, '사유에서 존재로' 직접 이행해가려는 시도이다(신에 대한 사유 -> 신의 존재 입증).

 

 

 

 

그리고 이것은  '존재와 사유의 동일성'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에 의해서 최초로 정식화되었다(가령, "Thinking and the thought that it is are the same; for you will not find thought apart from what is, in relation to which it is uttered." "For thought and being are the same." 등과 같은 파르메니데스의 언명들.) 그리고, 마르크스-루카치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서 '계급의식'이란 '사회적 존재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사유'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결론: "Consequently, is not cyberspace digital ideology  - in its attempt to pass 'from the bit to the It', to generate the very density of being from the digital formal-structural order - the last stage of this development?" 번역문의 마지막 문장에 대응하는 영어본의 문장인데, '비트에서 그것으로'가 'from the bit to the It'이란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발전'이 가리키는 것은 서구 형이상학의 발전사이다. 그러니까 소위 '디지털 이데올로기'가 서구 형이상학의 마지막 발전단계가 아닌가?, 라는 게 지젝의 주장이다.

 

 

 

 

그 '디지털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형이상학이 '사유에서 존재로' 이행해가려고 했던 것처럼 디지털화는 '비트에서 존재로' 넘어가려고 한다('being Digital'에서 'digital Being'으로?). 즉, 디지털적인 형식적-구조적 질서로부터 '존재의 두터움'(=존재감)을 창출해내고자 한다. 이에 대한 가장 탁월한 사례 중의 하나는 <매트릭스>의 원조격인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1995)가 아닐까?..

06. 11. 19.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6-11-20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지털화의 궁극은 디지털임이 간파되지 않을 정도의 아날로그화..
저의 생각입니다. 로쟈님.

로쟈 2006-11-20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동일성' 테제 정도가 되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