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스타킹(약칭 ‘레스’) 독서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한 지 한 달하고도 19일 정도 지났습니다. 레스를 회사라고 한다면 현재 저의 위치는 신입사원과 같습니다. 페미니즘을 다시 배운다는 심정으로 독서모임에 참석하고 있어요. 제가 멤버들 앞에 농담으로 ‘신입사원’ 비유를 언급한 적이 있는데, 멤버들이 저보고 ‘인턴’이라고 하더군요. 레스 멤버 각자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영어 대화는 기본이고, 정당 활동 경험이 있는 멤버가 두 분이나 있고, 대학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는 분도 있어요. 이 분이 제게 레스를 처음 소개해줬어요. 페미니즘 영화를 잘 아는 영화 마니아도 있어요. 요즘 이 ‘능력자들’ 덕분에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됩니다.

 

 

 

 

 

 

 

 

 

 

 

 

 

 

 

 

 

*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 [읽을 예정인 책] 주디스 오어 《마르크스주의와 여성해방》(책갈피, 2016)

 

 

 

레스 독서모임 참석 이후로 읽어야 할 책들이 자꾸만 늘어납니다. 지금까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3장까지 읽었는데요, 마르크스(Marx)엥겔스(Engels)의 책을 같이 읽었어요. 본의 아니게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게 됐네요. 제가 리버럴리스트(liberalist)라서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공부해보니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exandra Kollantai), 레닌(Lenin), 트로츠키(Trotsky) 등이 공유했던 여성해방론의 장점이 보이더군요. 물론,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 역시 현실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가 스탈린주의로 변질되는 바람에 퇴색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저자 마리아 미즈(Maria Mies)도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의 한계를 지적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은 한물간 사회과학 이론으로 취급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스탈린주의로 오해받은 고전적 마르크시즘 페미니즘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각설하고 지난주 월요일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첫 번째 모임 공식 후기를 공개하겠습니다. 지난주는 바쁜 한 주였어요. 하필이면 지난 주 모임에 불참했던 터라 공식 후기를 공개하는 것을 깜빡 잊을 뻔했어요. 후기 내용 중에 ‘각자의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연대’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요. 저도 후기를 쓴 분과 마찬가지로 이 말에 공감했어요.

 

 

이번에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서문과 1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자는 서문과 1장에서는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왜 이러한 책을 쓰게 되었는지?’를 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서문과 1장에 걸쳐서 너무나 상세히 페미니즘을 설명하던 것이 이 책에 대한 태도로 규정되었던 것 같다고 느끼게 된 토론이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고 얻고자 했던 부분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어떤 관계가 있고 어떤 방식으로의 대안을 요구한다.> 문장이었지만 그 부분보다 다른 분이 더 많이 서술되어 있고 제가 잘 모르는 개념(ex. 쇼비니즘, 맑스주의 페미니스트)을 그냥 단어로만 쓰고 설명이 없어서 읽어도 어렵다. 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느낌입니다.

 

p.s : 지금 2장을 좀 읽었는데 여기서 저의 의문을 해소해 주고 있네요-! 이번 토론에서 느낀 것은 페미니즘 안에서도 서로 성찰(?)하면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운동방식에 대해서도요. 페미니즘을 기울어진 운동장 내지는 이미 공고히 만들어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흐름 정도로만 생각했던 저에게 이정도로 다채로운 방향에서 분석하고 서로의 한계점을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토론 초반에 나왔던 ‘마지막 섬’ 과 관련한 논쟁에서 나오는 이야기에서 결국 우리는 누군가에게 착취와 억압을 하고 살아가고 있음을 인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고, 그런 것들을 인지하고 살아가며 마지막 섬을 파괴하기 위한 작업을 하며 고민하고 살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숙명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의 삶 그자체가 폭력적이라면 ‘최소한의 폭력’을 행하며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론 중간 중간에 나왔던 논의들을 사실 제 개인적으로도, 토론에 참여하는 모든 분이 대체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을 다시 재확인하여 나가는 과정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덕분에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에코 페미니즘, 남성 쇼비니즘에 대한 관심이 약간 생겼고, 그에 관한 것들을 접할 일이 있다면 접하고 싶네요.토론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제3세계 여성(여기서는 ‘저개발’)과 백인여성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층위에 있는 사람들을 ‘자매애’ 하나로 통합하여 이야기 하는 방식이 너무 낡았다. 라는 지점이었습니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방식에서 ‘우월주의’적 접근을 최대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중간에 레드스타킹 멤버 한분이 ‘우리 그렇게 너무 성찰할 필요 없어요’ 하면서 이야기 했던 각자의 방법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연대하면서 외치면 된다는 요지의 이야기가 굉장히 와 닿았습니다. 아직은 내부적인 논의보다 현실에서 같이 외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신약이 성인남성으로 디폴트 값이 잡혀있고, 과학기술이 남성위주로 재편되어있다는 이야기는 저에게 또 다른 무지를 일깨워줘서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진짜 전혀 인지조차 못하는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에 논의된 독립성은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이제 과거와 같이 하나의 ‘사상’ 아래 뭉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발성’ , ‘필요’ ,‘재미’ 같은 기치 아래에서 모이는 것이 제가 가장 만들고 싶은 형태의 ‘무언가’에 가장 가깝기 때문입니다.

 

 

p.s : 조금은 두서없고 개인적인 감상이 많지만 지루하고 선명한 세계 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레스가 특별하고도 중요한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3월 31일 토요일 오후 3시 카페 스몰토크에서 ‘본격 월경 토크’를 진행합니다. 이 날 행사는 대구여성광장 성교육센터가 주관했으며 성교육센터 소속 전문가를 초청했습니다. 행사 주요 내용과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토크1. 월경, 신성과 혐오 사이

토크2. 월경컵 리얼 후기

토크3. 대안생리대, 대안팬티 등 소개

전시 : 생리컵 3종, 면 생리대, thinx 팬티2종, 페미니즘 도서.

 

 

 

참가비는 없습니다. 단, 카페에서 주문하는 음료 값은 개인 부담입니다. 평소 생리에 대해 말 못 한 고민이 있는 여성, 요즘 주목받고 있는 생리컵 및 대안 생리대를 자세히 알고 싶은 여성은 ‘본격 월경 토크’에 참석하면 좋습니다. 여성 누구나 참석할 수 있습니다. 참석을 희망하는 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 들어가셔서 ‘DM 신청’을 하면 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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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3-19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이 모임에 대한 글 잘 읽고 있습니다, cyrus 님.
후기만 읽는 것도 제게는 도움이 되네요.
계속 함께 책읽고 공부하고 후기 올려주시길 바랄게요.


cyrus 2018-03-19 16:06   좋아요 0 | URL
관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제 글을 읽다가 이해가 안 되는 내용이 있거나 페미니즘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소중한 의견이 반영되도록 하겠습니다.

:Dora 2018-03-19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훈훈한 후기 기대할게요:- 마리아미즈 좋아요

cyrus 2018-03-19 16:08   좋아요 0 | URL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2, 3장에 아주 좋은 내용들이 많습니다. 왜 국외 유슈 언론들이 이 책을 찬사하는지 알겠습니다. ^^

오후즈음 2018-03-19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의미 있는 모임이네요. 가깝다면 참석하고 싶을만큼요...
우선 올려 주시는 텍스트로 만족하며 읽겠습니다. ^^

cyrus 2018-03-20 15:27   좋아요 1 | URL
오후즈음이 살고 계신 곳에서도 페미니즘 관련 모임이 있을 것입니다. 트위터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자신들의 활동을 홍보하는 페미니즘 모임이 많아요. ^^
 

 

 

 

 

 

 

어제 <대구, 미투에 응답하라!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오후 7대구시민공익지원활동센터 상상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분이 오셨는데요, 30명이 넘은 인원들이 토론회에 참석했습니다. 일찍 토론회 장소에 도착한 레드스타킹 멤버 덕분에 저는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레드스타킹 멤버는 저를 포함한 다섯 명입니다.

 

 

 

 

 

 

 

여성 운동과 관련된 전문가 토론회에 참석하는 것은 어제가 처음입니다. 전문가들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까 봐 조금 걱정했는데 기우였어요. 다섯 명의 발표자들이 준비한 자료들을 모은 책자를 받았거든요. 자료집, 넘나 소중한 것! 이 자료집이 없었으면 저는 후기를 못 썼을 거예요.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토론회를 진행했고요, 신미영 대구여성회 고용평등상담실장, 김정순 대구여성의전화 대표, 최현진 대구이주여성상담소 소장, 이정미 대구여성장애인연대 대표, 남은주 대구여성회 상임대표 순으로 발표가 진행되었습니다. 다섯 분이 발표한 내용은 자료집을 참고하면서 정리했습니다. 중요한 내용이 아주 많아서 후기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제가 어제 토론회의 주요 내용을 잘 선별했는지 모르겠군요. 여기에 정리한 내용 일부는 여러분들이 아는 내용일 수 있습니다.

 

 

 

 

 

 

 

신미영 님의 발표 주제는 직장 내 성희롱과 법과 제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직장 내 지위를 이용하거나 업무와 관련하여 성적 언동으로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폭력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보통 직장 내 성폭력직장 내 성희롱과 같은 의미로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직장 내 성폭력’, ‘직장 내 성희롱의 의미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직장 내 성폭력은 위계, 위력에 의해 상대방의 의사를 침해하여 이루어진 성 접촉(간음 행위 필수) 행위입니다.

 

직장 내 성희롱과 직장 내 성폭력 모두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입니다. 권력형 성희롱 · 성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사회 집단 내에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위계질서가 강한 한국 사회 특성상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남성이 부하 여성에게 성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은 권력형 성폭력의 민낯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품절] 로빈 스턴 가스등 이펙트(RHK, 2008)

 

 

 

그렇다면 왜 성폭력 피해자들은 끔찍한 경험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일까요? 혹자는 따지듯이 말합니다. 왜 지금에서야 피해 사실을 호소하느냐고. 이건 생각 없는 발언이고, 성폭력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심정을 잘 모르고 하는 개소리입니다. 성폭력 피해자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에 의해 성폭력 상황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합니다. 가스라이팅은 알프레드 히치콕(Alfred Hitchcock)의 영화 <가스등>(1944)에 유래한 심리학 용어입니다. 이 영화에서 남편은 아내를 미치게 하려고 계략을 꾸밉니다. 남편은 일부러 가스등을 어둡게 한 뒤 아내가 지적할 때마다 그렇지 않아!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반응을 드러냅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신을 계속해서 의심하며 결국 자신의 판단을 믿지 않게 됩니다.

 

가스라이팅의 가해자, 즉 성폭력 가해자는 물리적 강압을 동원하지 않고도 피해자의 심리를 조종해 자신의 범죄 행위를 무마하는 시도를 합니다.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고 종국에는 성폭력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가스라이팅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정신적 폭력입니다.

 

김정순 님은 성폭력 피해와 관련법 개정을 주제로 성폭력의 정의성폭력 역고소에 대한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김정순 님은 강간또는 성폭력으로 쓰는 용어의 정의에 대해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의 경우 대체로 증거나 증인이 없기 때문에 피해 여성들의 진실은 쉽게 거짓말이 되고, 가해 남성들의 성폭력 역고소전략은 대체로 성공합니다. 역고소로 법정에 서게 되는 피해자는 성폭력 사건을 다시 입증해야 하는 부담 속에 최소한의 자구노력마저 제약받게 됩니다.

 

최현진 님은 한국에 온 이주여성이 미투 운동에 소외되는 사회 현실을 지적했습니다. 이주여성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호소할 곳들에 대한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주여성은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면서도 법이나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최현진 님의 발표가 끝나고 다음 발표를 진행한 이정미 님은 여성 장애인도 미투 운동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성장애인을 지적으로 취약한 존재 또는 무성적(無性的) 존재로 보는 편견은 장애인을 인간으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비장애인으로부터 인격이 짓밟힌 여성 장애인은 성폭력 피해에 쉽게 노출됩니다.

 

남은주 님은 미투 운동이 지속적으로 확산되기 위해선 대중이 미투 운동에 적극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은주 님이 제시한 대안 중 하나가 붉은 편지입니다. 붉은 편지 쓰기 운동은 최근 대구에서 주목받고 있는 미투 운동의 일종입니다. 방식은 간단합니다. 편지지에 익명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 또는 성폭력을 목격한 사실을 쓰는 것입니다. 다 쓴 편지는 붉은색 편지 봉투에 넣어 가해자에게 보낼 수 있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성폭력, 성희롱을 목격한 사람들도 붉은 편지를 쓸 수 있어요. 토론회가 끝난 후에 레드스타밍 멤버가 "우리도 붉은 편지를 써보자!"라고 제안했습니다. 독서 모임이 있는 다음 주 월요일에 레드스타킹 멤버들과 함께 붉은 편지를 써볼 예정입니다. 저는 후배 여학생 앞에 성적 농담을 하고, 후배 여학생에게 치근대던 대학교 선배에게 붉은 편지를 보내고 싶군요.

 

다섯 분의 발표가 끝난 후에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는 성소수자, 특히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폭력 실태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부족했고, 제가 질문을 위해 너무나 많이 생각하는 바람에 질문할 기회를 놓쳤어요. 어제 토론회에 나온 내용들을 전체적으로 좋게 봤지만,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성소수자에 대한 비성소수자의 편견이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불감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은 성소수자는 문란하다’, ‘야한 옷을 즐겨 입는다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모든 성소수자는 문란하지 않습니다. 또 그들이 매일 야한 옷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에요. 트랜스젠더 여성 성폭력 사건이 언론에 알려지게 되면,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비성소수자들은 야한 옷을 입었으니 성폭행당할 만 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성소수자도 인간이고, 인간으로서 존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성소수자 성폭력 문제도 미투 운동 확산과 함께 생각해 볼 어젠다입니다.

 

 

 

 

 

 

 

 

포스터, 첫 번째 사진을 제외한 나머지 사진은 레드스타킹 공식 인스타그램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feminism_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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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8-03-1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스등 이펙트가 품절됐구나.
한 10년쯤 전에 읽은 것 같은데...
그런 줄도 모르고 작년인가? 중고샵에 팔았다는.
이게 오늘 날 이렇게 쓰일 줄 알았으면 다시 읽어보는 건데.ㅠ

cyrus 2018-03-17 08:11   좋아요 0 | URL
대학생 시절에 학교에서 히치콕 영화를 틀어준 적이 있어서 그때 《가스등 이펙트》을 읽었어요. 저도 이 책이 품절될거라 생각 못했어요.. ^^;;

2018-03-17 12: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7 19:42   좋아요 0 | URL
레드스타킹 인스타그램 링크 주소 타고 들어가면 제 얼굴을 볼 수 있어요. 제가 잘 생긴 얼굴은 아니에요.. ㅎㅎㅎ

2018-03-18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희곡 《인형의 집》의 주인공인 로라가 인형처럼 길드는 삶을 거부한 지 1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내년이면 《인형의 집》 초연 140주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로라의 딸들은 태어난 가정에서, 결혼한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넓게는 사회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크게 확대되고 있지만, 남성 중심적인 문화가 견고한 분야에선 여전히 여성을 차별하는 인습이 남아 있다. 여성은 동등한 존재로서가 아닌, ‘남성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 역시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적인 측면에서 여성의 권리가 많이 신장하였지만, 여전히 남성보다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인식 구조는 남성 작가들의 문학 작품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문학 작품 속 여성은 남성 중심적인 사회의 희생양이 되어 온갖 수난과 역경을 그대로 감내하는 순종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결국,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이 끝내 도달하게 되는 최종 목적지는 가정이다. 남성 작가들이 작품에서 그려낸 여성은 엄연히 존재하는 차별에 눈을 감고 있거나 남성 중심적 사고가 반영된 남성 작가의 분신으로 묘사된다. 남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여성이 어떻게 그려지고 있는지 비평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는다면 문단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남성 작가들의 견고한 가부장적 인식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현남 오빠에게》(다산책방, 2017)에 수록된 7편의 단편 소설은 모두 ‘페미니즘’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러나 소설 속 페미니즘은 한 가지 색이 아닌 각각 다른 빛깔을 띠고 있다. 소설집의 표제작인 조남주『현남 오빠에게』‘오빠가 여자의 삶을 알아?’라는 물음이 담겨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여주인공이 남자친구인 ‘강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주인공은 현남의 청혼을 거절한다. 현남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그녀가 청혼을 거절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나와 있다. 편지에 남긴 여주인공의 구구절절한 사연은 여성 독자의 가슴을 먹먹해지게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면 한 번쯤 겪어본 익숙한 경험들이기 때문이다. 현남은 보호자 위치에 서서 여주인공을 대했고, 그러한 상황이 익숙해질수록 여주인공이 자기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좁아진다. 그런 와중에 현남은 그녀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청혼한다. 조남주는 일상 속에 뿌리 깊은 여성 문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만든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 공감하지 않는 일부 남성 독자는 소설 속 남자 인물의 이름에 딴죽을 건다. 그들은 ‘현남’이 우리나라 남성을 비난하는 은어인 ‘한남’의 다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공식 석상에서 그런 의도로 제목을 정하지 않았다고 분명하게 밝혔다. 하지만 이 소설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작가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한다. 우리는 종종 믿고 싶은 것만 믿는 ‘확정 편향’에 빠지기 쉽다. 그래서 어떤 현상이나 단어를 바라볼 때 논리적 · 분석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신념과 편견으로 판단해버린다.

 

최은영『당신의 평화』는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만 살기를 강요하는 사회적 굴레가 얼마나 강력하게 여성들의 자아를 옥죄는가를 포착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여자로서의 삶’을 억누르면서 살아가는 엄마 정순의 순종적인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란다. 유진은 가부장제에 순종하는 여성을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로 미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난 너희 어머니, 현명한 분이라고 생각해.” 그가 말했다.

“평생 시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갈등도 없었고, 아버지 내조도 잘하셨고, 자식들 똑바르게 잘 키워냈고.”

“현명하다는 게 뭐지.” 유진이 물었다.

“가족을 위해서 자기를 앞세우지 않고, 희생하는 거. 나 좋게 봐.”

“엄만 행복하지 않았어.”

[중략]

 

그가 말했던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란 무슨 의미였을까. 참고 참고 또 참는 사람, 남자가 하는 일에 토를 달지 않는 사람, 남자와 아이들에게 궁극의 편안함을 제공하는 사람. 자기 욕구를 헐어 남의 욕구를 채워주는 사람. 자기주장이 없거나 약하므로 갈등을 일으킬 일도 없는 사람…‥ 그가 ‘현명함’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때마다 유진은 거부감을 느꼈다.  (『당신의 평화』 50~51쪽)

 

 

‘현명한 아내’, ‘현명한 어머니’는 가족의 공동체적 평화를 유지하게 만드는 존재이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자기희생을 도덕적 이상으로 간주했다. 가부장제 속 여성의 정체성에는 자아 개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남편, 자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상황에서 여성의 자아는 희미해진다. 따라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진정으로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게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는 것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김이설『경년(更年)』은 문학 작품에서 좀처럼 다루지 않은 ‘자식을 둔 중년 여성의 고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은 자기 아들이 또래 여학생들과 문란한 성관계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의 행동에 고민한 주인공은 남편과 상의해보지만, 남편은 ‘아들에 먼저 접근한 여자아이들이 문제’라고 말하면서 아들을 두둔한다. 우리 사회에는 남편의 시선으로 청소년 연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청소년의 성관계를 ‘일탈’로 보고, 그 일탈을 부추기는 원인 제공자로 여학생을 지목한다.

 

최정화『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앞서 소개된 단편들과 달리 상당히 난해하다. 이 작품에 나오는 여주인공 ‘율’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맞춰 강박적인 자기 검열을 하는 여성의 모습을 상징한다. 도덕적 엄숙주의를 강조하는 사회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여성의 행동을 평가한다. 남성이 인정하는 도덕적 잣대는 여성 차별, 여성 혐오를 변호하는 배경이 된다. 손보미『이방인』여성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누아르 분위기의 소설이다. 작가의 변에 따르면 소설 설정과 관련된 여러 가지 제한을 두는 바람에 소설을 어렵게 썼다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이야기의 개연성이 매끄럽지 않다. 나는 구병모『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이 『현남 오빠에게』 못지않은 문제작이라고 생각한다. 표제작에 대한 독자들의 지대한 관심이 높아서 그런 것일까. 구병모의 소설이 크게 주목받지 않은 듯하다. 인류가 만들어 낸 축제가 늘 즐겁고 유쾌한 건 아니다. 전쟁 승리에 도취한 전근대적 국가의 남성들은 여성을 '전리품'으로 취급했고, 향략적인 축제를 즐기기 위해 자신들을이 약탈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했다. 심지어 약탈한 여성을 잔혹하게 죽이는 비인륜적인 축제도 있었다. 작가는 그런 '남성들만 누리는 축제'의 의미를 전복시켜 독자들, 특히 남성 독자를 불편하게 만든다. 김성중『화성의 아이』‘SF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 작품에 출산은 고귀한 생명의 탄생을 이끌어내는 가장 아름다운 행위로 묘사된다. 그러나 ‘출산의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소설의 결론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출산이 ‘아내 또는 엄마가 되기 위한 여성성’을 수행하기 위한 과정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곱 명의 작가들은 단편소설을 통해 페미니즘과 소원한 일상 속의 다양한 여성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여성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고, 작품 속 여성들과 같은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앞으로 이런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리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작품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비평도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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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15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7편 모두 스펙트럼이 달라서 읽을 만했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스타일의 작품이 또 나왔으면 좋겠네요.

cyrus 2018-03-16 16:10   좋아요 0 | URL
네, 페미니즘 소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고 말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페미니즘 정착을 위해서라면 저는 기꺼이 돈을 지불할 수 있습니다.

아다모 2018-03-15 1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해주신 글들을 읽어보니 이 작품 꼭 읽어보고 싶네요!^^

cyrus 2018-03-16 16:12   좋아요 0 | URL
읽으면 금방 이해할 수 있는 단편이 있고, 여러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되는 단편도 있어요. 소설을 제대로 이해했는지 저 스스로 의심했을 정도였어요. 그래서 이 책을 두 번 이상 읽었어요. ^^;;

2018-03-15 2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3-16 16:16   좋아요 1 | URL
저는 어렸을 때 드라마에 여직원이 커피 타는 모습을 보고 저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대중매체에 묘사된 성차별을 접하게 되면 그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해요. 오히려 편견으로 남게 되죠. 편견을 제거하려면 일상 속 성차별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야 합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그동안 너무나 쉽게 당연하게 여긴 일상 속 성차별, 성희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어요.

2018-04-22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드스타킹이 읽을 다섯 번째 책은 마리아 미즈(Maria Mies)《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갈무리, 2014)입니다. 이틀 전인 월요일(3월 12일)에 첫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 날에 새로운 두 분이 스몰토크에 찾아오셨어요. 저는 이 날 사정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책 1장까지 다 읽고, 토의 내용들을 정리했어요. 그런데 모임 당일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모임에 불참하게 됐어요. 그동안 준비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냥 묻히기가 너무 아까워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단상 형식으로 정리하려고 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첫 번째 모임 공식 후기는 내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는 1986년에 출간되었고, 1999년에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한국어판에는 1986년 초판본 서문, 1999년 개정판 서문, 그리고 한국어판 서문이 실려 있습니다. 레드스타킹 멤버가 개정판 서문을 읽어보니 좋은 내용이 많았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그 분이 하신 말이 맞았습니다. 개정판 서문에 마리아 미즈가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집필하게 된 이유가 나옵니다. 먼저 한국어판 서문부터 살펴보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는 세계적 차원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고약하게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이런 폭력의 결과로는 기후 변화를 개선할 수 없고, 지구의 자원 고갈과 원자력으로 인한 오염을 회복시킬 수가 없음을 오늘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패러다임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이 패러다임은 끝없는 자본축적을 추구하는데, 이는 진보와 “좋은 삶”의 전제조건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한국어판 서문, 5쪽)

 

 

 대다수 여성은 남성과의 평등을 우리의 주요 목표로 생각했다.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는 자본주의를 그렇게 비판하지 않았고, 가부장제만 주로 다루었다. 그들은 이 체제 내에서 남성과 평등해지기를 원했다. 그들은 남성이 우리 사회에서 갖고 있는 정치경제적 기회와 권력과 권위를 똑같이 갖기를 원했다.

그러나 오늘날 현실을 보면, 가난한 국가나 부자 국가나 상관없이 여성은 남성과 평등하지 않다.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전혀 평등하지 않다. 왜 그런가? 몇몇 여성이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국가나 정부의 수장이 되기도 한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들이 이런 목표에 닿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지배적인 자본주의-가부장제 체제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이다. 권력구조에 여성이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여성이 많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이 체제에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된 여성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나 성차별적 · 가부장적 문화를 거의 바꾸지 못했다. (한국어판 서문, 6쪽)

 

 

  맑스는 가사노동을 “재생산” 노동이라고 불렀다. 그에게 이 노동은 임금노동자의 “생산노동”과는 대조적으로 “잉여가치”를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었다. 일부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남성의 임금노동과 동등한 수준에 놓기 위해 “가사노동에 임금을” 요구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이들은 이보다 한 걸음 더 나가서, 자본주의의 계속적인 자본축척과정을 위해서는 왜 이런 무급노동이 필수적인지를 연구했다.

 동시에 나는 식민지민과 자연이 같은 방식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본은 그들의 “생산”을 아주 적은 비용으로 전용했다.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나 멕시코 같은 국가에서 젊은 여성은 서구 시장에 공급할 의류 등을 세계에서 가장 싼 임금을 받고 생산했다. 이는 자본주의 초기부터 여성 노동이 남성의 노동보다 가치가 낮은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방글라데시처럼 가난한 국가에서도 여성 노동은 더 저렴하다. 이곳에서 여성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임금을 받는다. 오늘날 이런 심한 착취는 폭력 및 가장 잔혹한 노동환경과 결합되어 있다. 이런 노동환경은 그들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한국어판 서문, 7쪽)

 

 

남성 중심 사회는 뿌리 깊은 가부장제 사회구조였습니다. 이 때문에 각종 차별이 생기고 여기에서 뿌리 깊은 여성 억압이 생기게 된 겁니다. 자본주의는 가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와 일치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자본주의 발달 이후 공 · 사 영역 분리의 성별화가 가속화되면서 남성의 삶은 더욱 공적인 것이 되었고 여성의 삶은 더욱 사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정’과 ‘일’이 분리되는 성별 노동 분업 현상이 생겼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해석입니다. 가정은 자본주의 사회의 안식처가 됩니다. 여성은 집 안에 머물면서 가사노동을 하게 되고, 남성에게 예속됩니다. 가부장제는 여성의 가사노동에 대한 비용을 줄이는 데서 시작됐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 또는 마르크스 페미니스트들은 자본주의에 의해 태동된 가부장제가 남녀 성차별을 심화시킨다고 보고 생산과 노동, 가족 등 각 영역에서의 여성억압을 폭로했습니다. 반면에 남녀평등을 주장한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가부장제를 비판했지만, 자본주의 비판에 소극적이었습니다.

 

식민지 통치를 경험한 아시아 대륙의 여성들의 삶은 여러 차원에서 고단합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환경에서 집안 살림을 챙기고, 직장생활에도 충실해야 하며 일부 빈곤층 여성은 생계를 위해 타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지내면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기도 합니다.

 

미즈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사노동에 임금이 지불되지 않는 현실을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가 자유주의 경제학과 마르크시즘 경제학 모두 넘어서는 도전이라고 밝혔습니다. 여성 억압을 ‘부차적 문제’로 보는 마르크시즘 역시 한계가 있었던 거죠.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정치경제학에 대해 이론적으로 처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자본주의 아래서 가사노동의 역할을 분석하면서였다. 이 운동은 1980년 무렵에 시작되었다. 가정에서 여성이 무급으로 하는 돌봄 노동과 양육이 남성 임금을 보조할 뿐만 아니라, 자본의 축적에도 기여한다는 점이 명백해졌다. 게다가 여성을 가정주부로 규정함으로서, 내 방식으로 말하면 ‘가정주부화’함으로써 가정에서 여성이 하는 무급 노동은 보이지 않는 것이 되었고, 국민총생산에도 기록하지 않으며, 자연스러운 것, 즉 ‘공짜’로 여겨졌다. 여성의 ‘가정주부화’가 가져온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여성이 임금노동은 남성, 이른바 부양책임자를 보충하는 것으로 여겨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개정판 서문, 20쪽)

 

 

미즈는 무급 가사노동에 임하는 여성들을 가리켜 ‘가정주부화’라고 표현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무급 가사노동 담당자는 ‘주부’가 된 여성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현실을 분해하여 연관성 없는 사건들, 시간들, 사회적 요소들의 조립으로 이해하려 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리가 주변에서 인지하게 되는 물질적이고 비물질적인 모든 것들이 인식을 ‘구성’하는 것임을 강조함으로써 현실의식의 기반을 흔들어 놓으려고 했다. 세계의 물질성이 해체되면서 새로운 이상주의가 탄생했다. 이 이상주의는 모든 현실은 결국 가상일 뿐이라고 선언한다.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은 자본주의적 가부장제의 체제를 극복한다는 여성운동의 오랜 목표를 포기했다. 이제 유일한 목표는 젠더 평등이었다. 이는 여성이 갈망하는 것은 남성과 동등한 몫을 차지하는 것일 뿐이지, 체제에 도전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체제’라는 용어도 현실성이 없는 것이라는 이유에서 폐기되었다. ‘주류’ 혹은 ‘주류화’에 참여하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이런 포스트모던 이데올로기는 1980년대와 1990년대의 신자유주의의 정치경제와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를 추종했던 페미니스트는 ‘주변부에서 벗어나’ ‘주류’의 어딘가에 둥지를 틀 수 있기를 기대했다. (개정판 서문, 29~30쪽)

 

 

저는 이 내용에 언급된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는 들어봤어요. ‘포스트 페미니즘’과 ‘포스트모던 페미니즘’이 같은 의미로 봐야 할까요? 일단은 저는 이 두 가지 용어를 같은 의미로 보려고 합니다.

 

 

 

 

 

 

 

 

 

 

 

 

 

 

 

 

 

* 소피아 포카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

 

 

 

《포스트 페미니즘》(김영사, 2001)에 따르면 포스트 페미니즘의 시작점은 1968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로 보고 있습니다. 이 날 프랑스의 ‘정신분석과 정치’ 그룹 회원들은 주류 페미니즘을 거부하는 행진 시위를 벌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 페미니즘은 남녀평등만 주장하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을 의미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주목받기 시작한 1960년대 말부터 기존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형성되었습니다. 포스트 페미니스트들은 남녀 이분법을 강화시키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이 여성의 지위를 축소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미즈와 같은 학자들은 ‘포스트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1980년대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미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종속된 포스트 페미니즘도 비판합니다.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

* 브누아트 그루 《올랭프 드 구주가 있었다》(마음산책, 2014)

 

 

 

1장(‘페미니즘이란?)은 페미니즘의 전반적인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는 여권신장의 당위성을 프랑스 혁명의 민주주의 이념에서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를 발표하여 여성해방 운동의 기치를 내걸었습니다. 프랑스의 올랭프 드 구주(Olympe de Gouges)는 혁명으로 일궈낸 자유와 평등이 남성에게만 해당되자 ‘여성인권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 정진희 엮음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여성해방론》(책갈피, 2015)

 

 

 

계몽주의 · 자유주의적 이념에 기반한 자유주의 페미니즘 외에도 마르크시즘 및 사회주의 페미니즘도 여성주의 운동에 무시하지 못할 파급을 가져왔습니다.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즘은 여성의 불평등이 지배계급인 남성, 종속계급인 여성을 층위로 하는 계급적 착취구조에 있다고 파악했으며 여성의 경제적 독립을 강조했습니다.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언급된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는 클라라 체트킨(Clara Zetkin)입니다.

 

1장은 페미니즘의 발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는 성폭력상담소,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보호소, 페미니스트의료센터 등의 자조 활동을 통해 도움을 주고자 했다. 여성이 남성의 물리적 심리적 폭력에 대한 두려움 속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새로운 의식을 발전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점차 분명해 졌다. 또한 이 차원에서는 법률 개혁이나 국가적 지원도 소용없다는 점도 분명해 졌다. 여성이 남성의 폭력을 피해 국가나 경찰의 보호를 요청하려고 해도, 남성이 가족이라는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에게 가혹행위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간여하지 않음을 곧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1장 86쪽)

 

 

공공영역에 여성이 참여하고, 참정권을 얻고, 임금노동에 참여하는 것으로는 폭력에 기초한 것으로 보이는 가부장적 남녀관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성차별적 폭력 문제를 둘러싸고 운동이 진행되면서 개별 남성의 명백한 ‘사적’ 침해와 가족, 경제, 교육, 법, 국가, 대중매체, 정치 등 ‘문명사회’의 중심 제도와 ‘기둥들’ 사이의 조직적인 관련에 대한 여성의 인식도 높아졌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양상의 남성 폭력을 경험하면서 여성은 강간, 아내 구타, 희롱, 여성에 대한 성희롱, 성적 언어폭력 등이 일부 남성의 빗나간 언행이라기보다는 남성 체제, 혹은 가부장적인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의 일부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체제에서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과 간접적 혹은 구조적 폭력 모두 ‘여성이 제자리를 지키게 하는’ 수단으로 여전히 흔하게 사용되었다. (1장 87~88쪽)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흐리게 한다고요. 과연 그럴까요? ‘미투 운동’에 동참하는 페미니스트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장 86, 87~88쪽을 읽어보라고 말해주고 싶군요. 그동안 남성 중심 사회는 여성의 (성)폭력 문제를 외면했습니다. 미투 운동은 여성의 삶을 능멸하는 가부장적 남성의 지배 논리에 대한 분노와 저항입니다. 당신이 미투 운동을 ‘남성’을 공격하기 위한 여성의 집단적 감정 표출로 본다면 미투 운동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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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 과학과 인문학의 논쟁 그리고 미래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2월
평점 :
절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다재다능한 과학자이다. 스물네 살에 그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을 양자 전기 역학적으로 통합한 ‘슈뢰딩거-다이슨 방정식’을 발표했다. 물리학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긴 다이슨은 우주까지 손을 뻗친다. 그는 인간이 거주하는 우주 문명을 상상했다. 다이슨은 ‘이름값’을 하는 과학자이다. 이름(Freeman)대로 다이슨은 자유로운 사고와 상상력으로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이 ‘자유로운 사람’의 지적 영역을 살펴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것이 프리먼 다이슨이라면 더 무엇을 말하랴?

 

오늘날의 사회를 과거와 가장 크게 구별 짓는 요소는 정보화, 그리고 과학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이다. 이것들은 첨단으로 달려가는 우리의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며 여러 분야에서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인식의 틀을 요구한다.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메디치미디어, 2018)는 과학, 역사, 사회학 등 여러 가지 분야의 책을 통해 살펴봄으로써 학문의 주류를 재고하고, 미래의 흐름을 보는 새로운 통찰을 제시한다. 이 책은 서평지에 발표된 서평들을 모은 것이다. 유전공학, 환경보호론, 독일 V2 로켓 개발자 베르너 폰 브라운(Wernher von Braun), 리처드 파인먼(Richard Feynman),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오펜하이머(Oppenheimer) 등을 주제 삼아 관련 서적들에 대한 풍성한 서평들을 담았다. 다이슨은 책을 평론하는 데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책을 쓴 저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거나 책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누적된 경험과 직관이라는 이름 아래에 진리를 사실로 믿으면서 살아간다. 어떤 의심이나 질문도 하지 않고 말이다. 《의도된 실수》는 인문학과 담을 쌓은 과학이 독보적 위치를 점한 상태에서 인류의 지혜를 제공하려는 상황을 비판한다. 인문학과 과학, 둘은 원래 하나였다. 다이슨은 과학, 역사, 철학이 별개의 분야가 나뉜 현실을 지적한다. 그의 지적은 과학과 인문학을 별개의 분야로 대하는 우리 사회에 그대로 통용된다. 전공자를 제외하고는 자연과학 전 분야에 대해 국내 지식인 사회는 대부분 무지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부는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을 알아서 뭐하느냐며 되레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우리는 전문가가 말하는 진실을 막연하게 믿는다. 다이슨은 그러한 착각과 오판이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치밀하다고 믿는 전문가들도 빠질 수 있는 인식의 함정에 관해 이야기한다. 먼저 그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환경보호주의가 교조적 사고로 변질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구환경이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식을 뒤엎는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의 반론이 만만치 않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전 세계 주요 기관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환경위기가 과장돼 있으며, 경제발전에 따라 오히려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환경 위기론을 믿는 사람들은 회의적 환경주의자를 ‘위험한 견해를 가진 환경의 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들이 ‘열정적인 환경운동가’라고 말한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들은 지구온난화 문제에만 편중된 대중의 인식이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현실적 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염려한다.

 

핵무기라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에 대응하는 미사일방어체계의 존재 자체를 회의하는 다이슨의 주장이 눈길을 끈다. 그는 핵무기와 미사일방어체계가 ‘군사적 환상’이라고 말한다. ‘군사적 환상’이란 전쟁의 승리를 유도하는 군사 기술 및 무기를 찬양하는 경향을 의미한다. 군사적 환상에 빠진 군인들은 군사 기술이 초래하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인지하지 못한다. 군인뿐만 아니라 투철한 안보 정신을 가진 시민들도 군사적 환상에 빠지기 쉽다. 흔히 자신을 ‘애국 보수’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미사일방어체계가 북한의 핵무기에 맞설 수 있는 최선의 전략 무기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의 주장은 비현실적으로 낙관적이다. 북한처럼 핵무기를 사랑하는 국가들은 방어 전략을 뛰어넘을 수 있는 핵무기를 만드는 데 전념할 것이다.

 

다이슨은 과학과 인문학 간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동시에 그동안 ‘정설’이라고 믿어왔던 것들도 무너뜨린다. 그는 나치 독일에 협력한 전범으로 알려진 베르너 폰 브라운을 옹호하기도 하며 <충돌하는 우주>라는 제목의 책을 써서 창조론과 흡사한 지구 탄생설을 주장한 임마누엘 벨리코프스키(Immanuel Velikovsky)의 상상력을 높이 평가한다. 벨리코프스키는 각종 신화 속 내용을 근거로 우주와 지구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으나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와 같은 회의주의자들은 그의 주장을 ‘사이비 학문’이라고 비판했다.

 

거침없이 나오는 그의 독창적인 주장은 비판을 부르기도 한다. 다이슨의 절친한 동료 과학자인 스티브 와인버그(Steven Weinberg), 행동경제학의 창시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등이 다이슨의 서평에 대해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이슨의 서평을 읽은 일반 독자들도 그의 주장을 반박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다이슨은 이 책에서 자신에게 보낸 전문가와 일반 독자들의 반박 편지 전부를 공개했다.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도 검증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언젠가는 자신의 확신이 ‘실수’로 분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전문가들도 인간이므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문제점이 많은 학설을 끝까지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전문가를 추종하는 대중은 그들의 착각조차 ‘진리’로 인정한다. 다이슨은 전문가와 대중이 공통으로 저지르는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선 상반된 학설과 관점을 공평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과정이 이루어지는 과학이야말로 ‘건강한 과학’이다. 따라서 다이슨은 자신의 주장을 ‘의도된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이 ‘틀린 생각’으로 판명된다면 인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것이고, 그러한 과정이 인류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학문을 발전시키는 길이 될 거로 확신한다. 인생 막바지(현재 그의 나이는 94세이다)에 동료와 독자들의 비판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대담한 주장을 내세우는 노학자의 의도적인 글쓰기가 존경스럽다. 그런 점에서 《의도된 실수》는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조언을 주고 있다. 과학이든 철학이든 학문을 이해하는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

 

이 책에는 교양 과학에 관심 많은 독자에게 익숙한 인물과 책들이 나온다. 파인만의 일대기를 다룬 로렌스 크라우스《퀀텀맨》(승산, 2012)과 그래픽 노블 《파인만》(서해문집, 2011), 제임스 글릭《인포메이션》(동아시아, 2017) 등이 있다. 《의도된 실수》 말미에 다이슨이 서평에서 언급한 도서들을 정리한 목록(제목은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이 있다. 이 도서목록이 독자 스스로 다이슨이 언급한 책들을 읽으려는 동기를 촉발한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하지만 독서 동기 촉발의 측면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프리먼 다이슨이 경의를 표한 책들’에서 국내 번역본 제목을 소개하지 않았다. 그리고 ‘역자 후기’와 색인이 없다.

 

책 130쪽에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 발표 연도를 ‘1817년’이라고 잘못 적혀 있는데, 정확한 발표 연도는 1818년이다. 이걸 다이슨의 실수로 봐야 하나, 아니면 책을 만든 출판사 편집자의 실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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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3-15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위키피디아를 검색해 보니 <프랑켄슈타인>의 출판 연도
는 1818년 1월 1일이라고 되어 있네요.

하지만 다 쓴 건 1817년 4/5월이라고 하니 아마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

그나저나 19살 때, 이런 책을 썼다니 대단하네요 정말.

cyrus 2018-03-16 16:18   좋아요 0 | URL
소설이 최종적으로 다 마무리된 상태에서 정식으로 발표한 연도가 1818년일 것입니다. 메리 셸리의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도 그렇고, 아버지인 윌리엄 고드윈도 대단한 사람들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