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 시간표는 특이하다. 전공인 행정학과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타과 전공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인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행정학과 학생이 잘 신청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이 바로 회화과 전공 수업인 '서양미술사'다. 교양 수업이 아니다. 실제 3학점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인문학에 가까운 수업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서양미술 과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실현된 것이다. 사실 회화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양미술을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이것저것 책을 읽어가면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조의 범위가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초에 흥미가 없었던 경영학과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별천지나 다름없는 회화과 전공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기에 강의 듣는데 별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회화과 특성상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다보니 오히려 이런 강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공부 의욕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서양미술사 과제도 마음에 든다. 특정 서양 미술 사조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면 되는 건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서 독창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중세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종교미술에 가장 많이 다루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중세미술 양식의 각 특징을 정리해봤다.
수태고지(受胎告知) 도상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1472~1475년경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리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신약성서』「누가복음」 1장 26~38절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임신을 알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처녀수태'라고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써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외경(外經)으로 전해지는 실 잣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고딕 미술에서는 독창적인 형식이 나타났다.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 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한다.
수태고지 도상으로 살펴보는 중세미술의 특징
(1)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작자 미상, 이콘화「수태고지」1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330년부터 시작되어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까지 동방 기독교 사회에서 전개된 미술 양식이다. 비잔틴 회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름다움을 배제한 종교적 색채이다. 봉건 영주들을 위한 세속적인 그림 등 비종교적인 미술도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 미술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자유보다는 정통 교리와 교회의 강령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화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그리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과 종교적 가르침을 미술의 언어로써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Rpmanesque art)
(左) 『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중 수태고지, 1020년경
(右) 프레스코화 「수태고지」 (물렛가락을 든 마리아), 12세기 중엽
4세기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동로마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나 서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세력권은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예술이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으나,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인 그림을 통한 교의 해설, 즉 '그림으로 보는 성서'로서의 성격이 확립하게 된다. 비잔틴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반적으로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강한 색채와 힘 있는 묘선을 구사하여 형태에 있어서 강렬한 표현력을 주고 있다.『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에 실린 수태고지 삽화는 유려한 선 묘사와 활기 있는 채색에 특색이 있다. 12세기 중엽, 카탈루냐 지방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속 인물들은 전체와의 조화를 꾀하여 신장, 왜곡 등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3) 고딕 미술 (Gorhic art)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1333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수태고지」 12세기 중엽
고딕 미술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서유럽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미술의 발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면서도 많은 점에서 로마네스크 미술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회화, 건축에 로마네스크 성격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과도기적 성향을 나타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는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이 표현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 양식과 새로운 표현방법이 어떻게 절충되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고딕 미술은 12세기 말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와 마찬가지로 고딕 미술도 신학적 상징의 해석을 중요시했지만 거기에 화려한 색채를 통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성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하다. 색채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어두운 성당 안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세미술의 재발견
중세미술은 성경 속 이야기와 같은 상징을 담은 작품만 제작된 기독교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성화만 기독교 미술로 선을 그으면 표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끼리 교감하자는 것이다. 성화는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화가들이 성서 속 장면을 재현해 신의 섭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줘 감동을 줬다. 당시 성화는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래서 다른 회화사조에 비해 중세미술의 가치는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세미술도 다른 회화 양식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기독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상징성을 중시하면서도 외래양식을 혼합하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구상, 입체, 미적 가치 등 형식과 내용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은 이해로 중세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