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대학교 국문과 시간강사인 지섭은 논술강사와 번역 아르바이트를 한다. 철학책 읽기를 좋아하는 철학과 대학생 민우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한다. 심상대의 중편소설 ≪단추≫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시대 젊은 비정규직 인문학도의 초상화다. 소설가 심상대는 젊은이들, 특히 '문사철' 공부를 하면서 보이지 않는 앞날을 향해 살아가는 그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올해 부산 BEXCO에서 11월 1일부터 3일, 사흘동안 제2회 세계인문학포럼이 진행되었다. 올해는 유독 '힐링'(Healing)이라는 단어를 책, TV 심지어 대선판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단어가 되었다. 몇 년 전에 유행했던 '웰빙'(Well-being) 열풍의 데자부가 느껴진다.  그 때는 '잘 먹고 잘 사자'는 것이었는데 올해는 잘 살기 위해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것도 중요해진 것이다. 세계인문학포럼도 올해 주제를 '치유의 인문학'으로 정했다. 이 행사에는 세계적인 석학들이 참여, 강연을 펼쳤다. 이들은 무한경쟁 사회에 지치고 상처 입은 현대들을 위해 인문학이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시키고 참된 자아를 찾자고 입을 모았다.

 

나는 이번 세계인문학포럼에 대학생 자격으로 자원 참가했다. 석학들의 강연이 대학생 이상의 지식 수준을 요구하는 내용이라서 대학생들의 많은 참여를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대학생들이 포럼에 참석했다. 참여한 학생 일부는 이력서 한 줄을 채우기 위해서 온 것도 있었지만 나처럼 순수하게 인문학에 관심 있어서 온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포럼의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는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을 위한 '차세대 리더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포럼 주제인 '치유의 인문학'과 관련하여 100여 명쯤 되는 학생들 앞에서 학생 대표로 발표를 했다. 발표가 끝나면 학생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는데 '토크 콘서트'과 비슷한 형태로 진행했다. 몇 몇 학생들 중에는 내가 대답을 못 할 정도로 수준 높은 질문을 하기도 했으며 인문학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인문학을 기피하는 사회에 아쉬워하는 공대생도 만날 수 있다.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곳에서 인문학에 관심 많은 학생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석학 단 한 명도 이 자리에 없었지만(<나의 서양미술순례>의 저자인 서중식 선생님만이 이 행사에 유일하게 참석하여 강연을 했다) 대학생들만 참여할 수 있는, 특히 인문학도 대학생들을 위한 인문학 포럼이 너무나도 좋았다.

 

포럼의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난 뒤, BEXCO 건물을 빠져 나오는 인문학도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했다. 과연 그들도 나처럼 같은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모습은 마치 밤 12시가 지나면 마법이 풀려 재투성이로 돌아가는 신데렐라와 같았다.  사흘간의 인문학의 향연이 끝나면 전국의 인문학도들은 다시 도서관으로 돌아가 토익, 자격증을 공부하거나 학비를 모으기 위해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한다.  미래 준비를 위해서 치열한 삶의 시간에 파묻힐수록 좋아했던 인문학 공부는 점점 잊혀져만 간다.  

 

 

 

 

 

 

 

 

 

 

 

 

 

 

 

 

 

 

최근 불어오는 인문학 열풍은 ‘풍요 속의 빈곤’이다. 미래의 인문학을 책임질 젊은 인문학도들은 ‘휴머니타리아트’(Humanitariat)로 전락했다. ‘인문학’(Humanities)을 공부하면서도 취업의 벽에 막혀 계약직, 아르바이트 등의 비정규직 노동을 하는 ‘노동 계급’(Proletariat)이다.

이들은 인문학의 필요성을 자각하지만, 사회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저조한 취업률을 기록한 인문학과는 대학 내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했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학생 중 과반수는 전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기업이 인문학을 사랑한다고해도 모든 인문학도를 사랑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이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될수록 기업은 인문학을 많이 찾기 때문이다. 기업 환경이 기존 정보산업을 넘어 창조산업 중심으로 바뀌며 효율성 중심의 경영이 가지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인문학에서 찾고 있다. 대학교에서 찬밥 신세가 된 교수들은 기업으로 옮겨 최고경영자와 직원들 앞에서 인문학을 강연한다. 기업이 인문학을 지원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올해 우리나라에 열린 슬라보예 지젝의 '인문학 콘서트'다. 인문학 강연을 지속적으로 진행해온 아트앤스터디와 모 의류 브랜드 기업과의 공동 개최로 이루어졌는데 지젝이 우리나라에 오기 전부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인문학이 취업 전선에 죽 쑤고, 사회 내 인지도가 떨어진다고해서 기업에게 동냥하듯이 의지한다고해서 인문학도들이 회생할 수 있는 돌파구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의 옷을 입은 인문학은 '실용적 학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 '삶 그리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진짜 인문학이 살아남아야 한다.  

 

인문학자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인문학을 통해 치유하자고 주장하지만 정작 치유 받아야 할 사람은 휴머니타리아트다. 인문학을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성과주의 사회로부터 외면받고 상처받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휴머니타리아트의 상처를 치유해줄 수 있을까?  과거, 교양의 성전이었던 대학교가 이 가엾은 학문의 영혼들을 구제하기에는 이미 시대는 과거로의 회귀가 불가능해졌다. 그렇다면 휴머니타리아트들은 정부, 기업의 관심과 지원을 기다린 채 불안과 자조감에 시달려야만 하는가. 아니면 휴머니타리아트가 살아남는 법을 이들의 손에 쥐고 있을 철학책에 찾아야하는 것인가.

 

그들로부터 위로받기를 기대하는 인문학도의 자세는 인문학의 위기를 지속하게 만들 뿐이다. 현실과 괴리된 철학에 심취하는 것만이 휴머니타리아트가 추구해야 하는 인문학이 아니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노래에 나오는 아웃사이더처럼 하이데거의 책을 손에 쥔다고 해서 위안이 될 수 없다. 그 모습은 인문학도의 자존심이 아니라 혼자만의 고독의 몸부림이다.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여 다 함께 미래를 고민하고 소통하는 인문학이 있어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망치는 파괴의 도구가 아니라 창조의 도구”라고 말했다. 낡고 추상적인 우상(偶像)의 철학을 망치로 깨뜨려 인간적 품성을 회복할 것을 역설했다. 휴머니타리아트는 철학책이라는 근사한 소품을 잠시 내려놓고 공감과 소통을 위한 망치질을 해보자. 인문학을 하면 먹고살기 어렵다는 편견의 벽을 휴머니타리아트가 허물어야 한다. 벽 너머에는 수많은 휴머니타리아트가 있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진솔한 대화와 토론을 통해 무한경쟁 사회 속에서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함께 찾아보자. 그리고 이제 대학과 기업 속에 갇힌 인문학을 구출하여 되돌려받자. '차세대 리더 워크숍'처럼 휴머니타리아트를 위한, 휴머니타리아트가 만드는 인문학 행사가 필요하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목적은 유용한 인문적 지식을 갖추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인문학의 가장 큰 힘은 폭넓은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사유하는 데 있다. 인문학을 주체적으로 공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먹고살기 어려워도, 미래가 보장되지 않아도 인문학 공부를 다 함께 해보자.

한국의 휴머니타리아트여, 단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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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2-11-12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취업 안 되는 대학생도 괴롭지만 얼마 전 기사를 보니 취업 안 되는 학과 교수들도 고생이더군요.기업체 찾아다니며 '우리 학생들 좀 뽑아주세요' 하면서 아쉬운 인사하러 발이 부르트게 돌아다니는 이들도 있더라고요.

cyrus 2012-11-21 18:53   좋아요 0 | URL
학과 학생들 취업률 높여야 자신들 업무성과에 반영되고, 심지어 학생들은 교수를 취업 알선하는 사람으로 취급하니.. 과거의 교양인들을 양성하는 대학의 모습을 되찾기가 어려워보입니다..

맥거핀 2012-11-12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보니 기업중에 인문학을 취업에 반영하겠다는 기업도 있기는 하더군요. 어떤 식으로 반영하는지도 궁금하고, 그게 과연 좋은걸까...하는 생각도 들지만요.(인문학마저 '스펙'이 되면 안될텐데요.) 그건 그렇고 휴머니타리아트라는 말이 누가 만든 말이에요? 혹시 cyrus님?

cyrus 2012-11-21 18:54   좋아요 0 | URL
네, 휴머니타리아트는 제가 한 번 만들어봤어요. ^^

루쉰P 2012-11-20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루스님 여전히 인문학도로 열심히 공부를 하고 계시네요. ^^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인문학 공부의 열성적인 팬 역시 저입니다.
후후 저 오랜만에 글 하나 올렸어요. ㅋ 살아 돌아 왔습니다. ㅋ

cyrus 2012-11-21 18:55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루쉰님. 잘 지내고 계시죠? 이제 또 추운 겨울이 찾아왔는데 여전히 경비일을 하시는지요? 저는 요즘 대학생활하느라 예전처럼 알라딘에 놀 시간이 없네요, 책 읽고 글 쓰는 시간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래도 조용한 제 서재에 찾아오셔서 반가운 댓글 인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_^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가을색이 완연합니다. 갑작스레 불어오는 찬바람에 계절의 변화를 다시 느끼게 됩니다. 낭만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계절을 추억하는 것까지 각박할 정도로 세상은 참 바쁘게 돌아갑니다. 하지만 10월의 마지막 밤이 다가오는 지금, 가을의 끝자락이 될 수 있는 이 날만큼은 모든 분들이 따뜻한 커피나 차 한 잔과 함께 각자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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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리오 영감의 비극

 

 

 

 

 

 

 

 

 

 

 

 

 

 

 

 

 

 

 

고리오 영감은 백만장자였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잃었다. 그는 두 딸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베푼다. 아내의 죽음 이후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성장과 교육에 무서운 집착을 보이고 결혼 적령기가 되자 좋은 곳에 시집을 보낸다. 큰딸은 귀족, 둘째 딸은 부유한 은행가와 결혼한다. 이후 일을 그만 두고 고리오는 두 딸의 결혼 지참금을 대주느라 자신은 빈털터리가 되어 병들어 죽는다. 돈에 의한 비정상적인 부성애는 딸들을 불효녀로 만들고 아버지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다. 두 딸의 삶 역시 고리오 영감의 부성매만큼이나 비정상적이다.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은 '돈'이 인간을 지배하고 가족 관계마저도 왜곡시킨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위기의 베이비부머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을 견인한 지금의 50대들, 이른바 베이비부머로 이름 붙여진 부모 세대들이 본격적인 은퇴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조부모와 자식을 부양하며 세대 간의 버팀목 역할을 했지만 정작 본인을 위한 노후준비는 소홀했다. 한국판 ‘고리오 영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에 의하면 대한민국 평균 결혼비용이 1999년에 비해 2.7배 증가한 2억 808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결혼 관련 국민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경기 불황 속에서도 호화결혼식과 자녀 집 장만 유습은 중산층과 서민 가계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결혼을 앞두는 자식들보다 더 부담을 느끼는 사람이 부모들이다. 자식들의 눈에는 부모들 입장은 안중에도 없고 남들은 다 그렇게 하는데, 나만 왜 그렇게 해 주지 않느냐며 대든다. 자식 전세자금이라도 마련해주고 나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늙고 병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걱정을 할 여유마저 없다.

 

이들은 노후 자금을 교육비에 사용할 정도로 재테크 목적의 최우선 순위로 자녀 교육을 꼽는다. 이렇다보니 우리 사회 경제활동의 중추를 담당하는 베이비부머 절반은 은퇴 준비를 시작조차 못하게 된 것이다. 은퇴준비가 되지 못해 홀가분한 퇴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회 잔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들은 고령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진전되고, 외환위기 이후 사회구조가 급변하는 가운데 미처 대비할 틈도 없이 심각한 노후소득보장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소비 수준이 잔뜩 높아진 베이비붐 세대들은 그동안 부동산을 제외한 금융자산의 축적에 소홀했으며, 이 상태로는 자신의 긴 노후생활을 대비하기에 절대 역부족이다. 주로 자신의 주택 형태로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마저도 최근 주택에 대한 수요 감소와 이에 따른 가격 하락 현상에 직면하여 앞으로 재무적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이나 현행 퇴직연금 및 개인연금 등 사적연금 시스템에 의한 노후소득보장 기능 또한 절대적으로 미흡하다.

 

대부분의 40대는 부모로부터 풍요로운 자산을 물려받지도 못했고, 민주적 토양에서 20~30대를 보내지도 못했다. 나라에서든 기업에서든 가정에서든 중심역할을 해야 하는 연령대지만 수년째 계속되는 경제침체로 스스로도 보전하지 못하는 처지다. 그럼에도 정부나 정치권, 기업의 정책에서 40대는 열외대상인 듯하다. 무상보육, 청년실업, 퇴직자, 장애인, 여성에 대한 대책은 있어도 40대를 위한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시대 부모님들의 슬픈 자화상, 베이비부머

 

우리 부모들의 자식 사랑은 유별나다. 맹목적인 사랑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자식들을 위해서라면 먼지까지도 털어내 보태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젊은 시절, 살림은 어려워도 자식만큼은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살았지만 지금도 멋대로 자란 우리들을 위해 늙어서도 막일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가진 게 넉넉지 않은 것이 부모 가슴에 한으로 남는다.

 

산업화 역군으로 앞만 보고 달렸던 베이비부머들이 가정에서 왕따나 다름없는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직장에서 물러나면 따뜻한 가정이 자신을 맞아주리라 기대하지만 막상 가정으로 돌아오니 자신을 대하는 자녀들의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하다. 자녀에게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했건만 이들은 위로와 사랑은커녕 외면하기 일쑤다. 딸이나 아들은 오히려 사랑을 언제 베풀었느냐는 듯 아버지를 퉁명하게 대하곤 한다. 실제로 60대 남성의 자살률이 가장 높다. 요즘 막 은퇴하고 있는 베이비부머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린 자식 더러운 똥오줌도 / 그대 마음 하나도 거리낌 없는데 / 늙으신 부모님 눈물과 침 떨어지면 / 그대는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네 / 그대의 몸뚱어리 어디에서 나왔는가 / 아버님의 정기와 어머님의 피라네 / 그대여 늙어가는 부모님을 공경하오 / 젊으실 때 그대 위해 살과 뼈가 닳으셨소.”

 

 

《명심보감》에 수록된 ‘팔반가팔수’(八反歌八首) 중 제3절의 내용이다. 이것이 바로 자식을 향한 모든 부모들의 마음이다. 사랑스러운 자식을 위해 늙어서도 고생하지만 자식을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희생하는 부모의 모습을 우리 자식들은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먹고 살기도 힘든 한 세상을 살아왔는데 이젠 자식들 기반까지 닦아줘야 하는 지금의 현실이 너무 가혹하다. 그나마 믿었던 자식들마저 부모의 심정을 외면하고 있다. 자기 밖에 모르는 다 큰 자식에 의해서 지금도 대한민국 부모들의 살과 뼈는 닳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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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10.8  대구대학교 안철수 강연회 단상

 

 

 

 

 

 

 

 

 

 

 

 

 

 

 

 

 

 

 

 

 

 

 

 

과거 대선 후보자들은 국민들을 위한 ‘착한’ 정치를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 ‘착한’ 공약들을 내세웠다. 대선의 새 얼굴인 안철수 후보의 정치 비전은 그동안 출마해 온 대선 후보들이 내세웠던 ‘착한’ 공약들과 비슷하다. 그래서 구체적 방안이 없는 원론적인 내용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안 후보의 정치 비전을 아마추어 보듯이 그리 가볍게 볼 내용은 아니다. 안 후보는 국민의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은 채 내세우는 정책 공약을 경계해야 한다며 자신의 정치 비전을 비판하는 입장을 반박했다. 그는 정책 공약은 국민들이 공감하는 것들을 토대로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안 후보는 자신의 정치 비전을 ‘개혁’이라는 단어를 붙여 소개하고 있다. ‘개혁’(Reform)의 의미를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쇄신’과 혼동하기도 한다. 사전적 의미는 같지만 학문상 의미로 보면 차이가 있다. 사회과학에서의 ‘개혁’은 현재보다 더 나은 상태로 만들기 위해 기존의 제도나 기구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력을 말한다. 반면, ‘쇄신’은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제도나 기구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는 ‘정책 변동’을, 후자는 ‘신규 정책 형성’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말하자면 안 후보의 정치 개혁은 문제점 있는 구 정치 제도 및 정책을 사회 발전에 적합하도록 재정비, 점검한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안 후보는 정책 문제와 관련하여 'PDS'을 강조했다. PDS란 'Plan-Do-See'의 약자로 기획의 3단계 절차를 말한다. 정책을 기획하는 데 있어서 먼저 목표를 위한 계획을 수립하고(Plan) 난 뒤, 구체적인 내용을 실행한다(Do). 마지막에는 정책 실행에 대한 평가(See)를 통해 향후보완대책을 수립한다. 우리나라에 도입된 정책들 중에는 평가 단계를 꼼꼼하게 실행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안 후보 역시 정책 실패의 반복이 이어지는 문제점을 평가 단계의 부재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정책이 순조롭게 잘 실행되고 있는지, 아니면 문제점이 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정책을 만드는 정치가가 아니다. 바로 정책 형성의 참여자이자 정책의 수혜자인 우리 국민들이다.

 

“민주주의란 다수가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의 지지로부터 형성된 권력이 견제 받고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스스로 시스템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본질이다"

 

안 후보는 미국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말을 인용하면서 올바른 민주주의의 모습을 강조했다. 이 말을 역으로 표현하자면 지도자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국민의 적극적인 견제와 지지가 필요하며 이것 또한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정치와 정책 형성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참여는 곧 우리가 원하는 정책 탄생으로 귀결된다.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간에 국민은 정치와 정책에 대한 관심의 끈을 절대로 놓아서는 안 된다.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정의가 구현된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온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저절로 우리 곁에 오는 것도 아니다. 투표 참여 의무와 권리를 지니고 있는 우리 국민, 즉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야 할 우리 대학생들의 이성으로 미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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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10-10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요즘 안철수 교수님이 무척 바쁘십니당^^
 

 

 

 

 

 

 

 

 

 

 

 

 

 

 

 

 

 

 

 

이번 학기 시간표는 특이하다. 전공인 행정학과 수업만 듣는게 아니라 타과 전공 수업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복수전공인 경영학과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다. 일반적인 행정학과 학생이 잘 신청하지 않는 수업을 듣고 있다. 그것이 바로 회화과 전공 수업인 '서양미술사'다. 교양 수업이 아니다. 실제 3학점 회화과 2학년 전공필수 과목이다.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 인문학에 가까운 수업 한 번이라도 받아보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그 꿈(?)이 서양미술 과목을 공부하는 것으로 실현된 것이다. 사실 회화과 수업을 신청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번 기회에 제대로 서양미술을 확실하게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대로 된 공부 없이 이것저것 책을 읽어가면서 독학 아닌 독학을 하다보니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미술사조의 범위가 좁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애초에 흥미가 없었던 경영학과 수업을 과감히 포기하고 별천지나 다름없는 회화과 전공수업을 듣게 된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지식을 갖추었기에 강의 듣는데 별 불편함은 없다. 게다가 회화과 특성상 강의실에 여학생이 많다보니 오히려 이런 강의 분위기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여학생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공부 의욕이 더 넘친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서양미술사 과제도 마음에 든다. 특정 서양 미술 사조의 특징에 대해서 논하면 되는 건데, 그냥 단순히 서술하는 게 아니라 특정 주제를 정해서 독창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첫 번째 과제가 중세미술의 특징에 대해서 조사, 작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고심 끝에 종교미술에 가장 많이 다루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중세미술 양식의 각 특징을 정리해봤다.    

 

 

 

 

 수태고지(受胎告知) 도상의 의미

 

 

 

 

 

 

레오나르도 다 빈치 「수태고지」1472~1475년경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까.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리라” (「누가복음」 1장 26~38절)

 

수태고지(受胎告知, Annunciation)는 『신약성서』「누가복음」 1장 26~38절을 바탕으로 한다. 하느님의 사자(使者)인 대천사 가브리엘이 처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임신을 알리는 이야기를 주제로 하고 있다. 그리스도교도들은 이것을 '처녀수태'라고 말한다. 기독교 미술의 오랜 주제 중 하나로써 수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렸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과 비잔틴 미술에서는 우물가의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와 외경(外經)으로 전해지는 실 잣는 마리아에 대한 수태고지의 두 가지 형식이 별도로 다루어졌으나, 그 후 고딕 미술에서는 독창적인 형식이 나타났다. 명상 중인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이 나타나는 장면이다. 이때 마리아는 대개 서 있거나 앉았거나 무릎을 꿇고 있다. 천사는 보통 가브리엘 한 사람만을 그리고 있으나 2∼3명의 천사를 함께 그리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하느님의 사자로서 성령의 비둘기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또 천사는 백합꽃을 들고 있는 때가 많은데, 이 꽃은 하얗고 암수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한다.

 

 

 

 수태고지 도상으로 살펴보는 중세미술의 특징

 

 

 (1) 비잔틴 미술 (Byzantine art)

 

 

 

 

 

 

 

 

 

 

 

 

 

 

 

 

 

 

 

 

 

작자 미상, 이콘화「수태고지」1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건설한 330년부터 시작되어 터키의 오스만 제국에 의해 함락된 1453년까지 동방 기독교 사회에서 전개된 미술 양식이다. 비잔틴 회화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름다움을 배제한 종교적 색채이다. 봉건 영주들을 위한 세속적인 그림 등 비종교적인 미술도 있었지만, 이는 기독교 미술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다.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자유보다는 정통 교리와 교회의 강령을 표현하는 데 충실하였다. 비잔틴 미술의 화가들은 자연을 똑같이 그리거나 아름답게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성서의 내용과 종교적 가르침을 미술의 언어로써 가르치고 전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2) 로마네스크 미술 (Rpmanesque art)

 

 

 

 

 

 

 

 

 

 

 

 

 

 

 

    

 

 

(左) 『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중 수태고지, 1020년경

(右) 프레스코화 「수태고지」 (물렛가락을 든 마리아), 12세기 중엽

 

4세기에 로마가 동로마와 서로마로 분리되면서, 동로마에서는 비잔틴 미술이 독자적으로 발달하였으나 서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인하여 멸망하고 세력권은 분할되었다. 이에 따라 서유럽에서는 예술이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으나, 11세기부터 본격적으로 안정을 찾으면서 로마네스크 양식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도 비잔틴 미술의 전형적인 특징인 그림을 통한 교의 해설, 즉 '그림으로 보는 성서'로서의 성격이 확립하게 된다. 비잔틴 회화의 영향을 받았지만 양식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고 전반적으로는 사실에 구애받지 않고 강한 색채와 힘 있는 묘선을 구사하여 형태에 있어서 강렬한 표현력을 주고 있다.『수녀원장 메셰데의 히타의 성복음집』에 실린 수태고지 삽화는 유려한 선 묘사와 활기 있는 채색에 특색이 있다. 12세기 중엽, 카탈루냐 지방에서 그려진 수태고지 프레스코화 속 인물들은 전체와의 조화를 꾀하여 신장, 왜곡 등의 변형이 가해져 있다. 

 

 

 

 (3) 고딕 미술 (Gorhic art)

 

 

 

 

 

 

 

 

 

 

 

 

 

 

 

 

 

 

 

 

 

 

시모네 마르티니「수태고지」1333년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수태고지」 12세기 중엽

 

 

 

고딕 미술은 12세기 후반부터 15세기 말까지, 서유럽 전반에 걸쳐 나타났다. 로마네스크 미술의 발달의 결과로 형성되었으면서도 많은 점에서 로마네스크 미술과는 대조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12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회화, 건축에 로마네스크 성격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과도기적 성향을 나타냈다. 시모네 마르티니의 「수태고지」에는 흘러내리는 의상의 부드러운 곡선과 가느다란 몸매의 미묘한 우아함이 표현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 양식과 새로운 표현방법이 어떻게 절충되어 효과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본격적인 고딕 미술은 12세기 말부터 약 1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이전의 비잔틴, 로마네스크 회화와 마찬가지로 고딕 미술도 신학적 상징의 해석을 중요시했지만 거기에 화려한 색채를 통한 성스러운 아름다움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성상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특히 고딕 건축을 대표하는 프랑스 샤르트르 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가 가장 유명하다. 색채 대비의 아름다움에, 투과의 영롱함을 결부시켜 어두운 성당 안에 비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과 빛을 통해 화려하면서도 성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중세미술의 재발견

 

중세미술은 성경 속 이야기와 같은 상징을 담은 작품만 제작된 기독교 미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성화만 기독교 미술로 선을 그으면 표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이는 성도들끼리 교감하자는 것이다. 성화는 비잔틴 양식부터 고딕 양식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았다. 화가들이 성서 속 장면을 재현해 신의 섭리를 시각적인 언어로 보여줘 감동을 줬다. 당시 성화는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사용됐다. 그래서 다른 회화사조에 비해 중세미술의 가치는 저평가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중세미술도 다른 회화 양식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시대를 거듭할수록 기독교적 원칙에 바탕을 둔 상징성을 중시하면서도 외래양식을 혼합하여 형식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독창적인 표현으로 발전하였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제 중세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구상, 입체, 미적 가치 등 형식과 내용에 제한을 두지 말고 폭넓은 이해로 중세 미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중세 미술의 특징은 기독교적 윤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움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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