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젠더 수업 창비청소년문고 27
김고연주 지음 / 창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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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에서 하와(Hawwah)가 탄생하기 전까지 아담(Adam)은 남성이 아니라 그저 사람이었다. 하와가 탄생하고 나서야 ‘남성’, ‘여성’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진 것이다. 인간은 탄생과 동시에 생물학적 성별에 따라 남성은 남성적 가치관에 따라, 여성은 여성적 가치관에 따라 획일적으로 양육되며 한 쌍의 남녀가 결혼하고 자녀들을 낳아 사는 것이 삶의 유일한 방법이자 가치라고 교육받는다. 또한, 이성애만이 인간이 나눌 수 있는 유일무이한 사랑이자 덕목이라고 배운다.

 

성(sex)은 ‘남성과 여성’을 의미하는 생물학적, 의학적 개념이다. 젠더(gender)는 사람들이 특정한 사회 · 문화 ·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여 만들어내는 종합적인 현상을 포괄한 개념이다. 페미니즘(feminism)은 가부장적 질서에 반대하면서 젠더에 기초한 다양성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이다. 근대사회가 일원론적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회였다면 오늘날 현대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회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폭력 불감증에 걸려 있다. 특정 대상에게 향하는 혐오 발언에는 언제나 폭력이 있다. 일상생활에 침투한 혐오 발언은 가히 치명적이다. 주장이 다르면 공격하고 공격당한다. 다양성의 사회에 살면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론이 설 자리를 잃고 설득이나 이해는 통하지 않는다.

 

‘젠더’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남녀차별 · 여성혐오가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알게 모르게 남녀차별이 존재한다. 김고연주《나의 첫 젠더 수업》은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이 어떤 식으로 성 역할을 부여받고 수행했는지 청소년들에게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먼저 가족 안에서 ‘고정된 성 역할’이 어떻게 주입되고 고착되는지 설명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여성은 가정 내에서 소극적 · 수동적인 여성성을 받아들이면서 성장한다. 흔히 분홍색은 여성을 대변하는 색깔로 여겨진다. 그러나 여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강조하는 것이나 남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금기시하는 것 모두 비교육적이다. 성 정체성이 생기지 않은 시기에서부터 특정한 색을 접하는 아이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게 돼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다. 하지만 외모가 아름다워야만 취업이나 결혼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풍토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인간의 가치를 외모로만 따지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경시하는 속물주의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얼굴이나 몸매를 가장 먼저 쓰는 학생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소년 시기부터 벌써 루키즘(lookism, 외모 지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학생들은 무리한 다이어트와 성형으로 건강을 해치기도 한다. 저자는 청소년 독자들이 외모지상주의의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현실적인 사례(비현실적인 바비 인형의 몸, 미스코리아 대회의 문제점 등)를 들어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근대 초기의 여성상은 가족의 생계 부양자이자 가장으로서의 남성상을 보완하는 모습이었다. 모성, 감정, 사랑스러움 등이 그 여성상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모성은 본능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모성을 신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남아 있어서 스스로 또는 타인에게 모성을 강요하기도 한다.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는 모성 본능은 본래부터 여성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바댕테르의 입장을 인용하여 육아 노동을 전담하는 여성을 위해 사회가 만들어낸 ‘모성 본능’의 불편한 진실을 알려준다. 모성은 출산을 경험한 어머니에게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아이를 키우면서 생기는 ‘인간적 감정’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이분법적 성 역할, 혐오 문제는 자신 또는 타인의 생각과 신체에 대한 생각과 행동 범위를 축소한다. 그리고 자신의 약점을 꼭꼭 숨기기 위해 타인의 약점을 손가락질하고 혐오한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난다. 저자는 자신과 타인을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한다면 남녀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고정된 성 역할에 맞서는 남녀에게 당부하는 그녀의 말이 깊고도 넓은 혐오 사회의 뿌리를 제거할 수 있는 실천적 방안으로 이어질 것인지 의문이다. 하지만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타인도 사랑할 수 있다. 타인에 향한 사랑을 아끼지 않는 성숙한 사람은 타인과 정서적 연결을 맺고 타인을 공감한다.

 

이 책을 자녀와 함께 재미있게 읽는 방법이 있다. 주제별로 읽는 것이다. 그때그때 관심에 따라, 이런 조합, 또 저런 묶음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접근을 통해 어른, 청소년 독자들은 젠더라는 새로운 시각이 사회를 달리 해석하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리타분하고 잘못된 성교육을 받고 자란 어른들은 왜곡된 성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 아이들이 올바른 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제대로 이끌어주려면 어른들도 성을 공부해야 한다. 어른도 잘 모르고 틀릴 수 있다.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인정한다면 성을 다시 공부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든다. 《나의 첫 젠더 수업》은 여성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여성, 남성을 넘어선 성숙한 인간이라는 목표에 좀 더 접근하도록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용기와 자극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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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8-01-23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강조하는 것이나 남자아이에게 분홍색을 금기시하는 것 모두 비교육적이다. ; 여자 아이가 스스로 분홍색을 좋아할 때, 그것을 금기시하는 것은 교육적일까요. 비교육적일까요?

우리 딸아이를 예로 든다면 유치원 입학하면서 분홍색을 좋아하다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습니다. 저는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cyrus 2018-01-24 15:19   좋아요 0 | URL
딸이 스스로 분홍색을 좋아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니 말릴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분홍색은 ‘여자의 색’, 파랑색은 ‘남자의 색’이라는 편견을 가진 부모는 자녀에게 편견을 가르칠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뿐만 아니라 또래 친구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 배우게 됩니다. 남자 친구들 대부분이 분홍색보다 파랑색을 선호하면, 그들과 어울리는 남자 아이는 파랑색을 선호하게 됩니다. 여자 아이도 마찬가지에요. 분홍색을 선호하는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면 분홍색을 좋아하게 되죠. 다가 후토시의 <남자문제의 시대>에 이런 사례가 나옵니다. 마립간님처럼 자녀가 무슨 색을 좋아하든 내버려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마립간 2018-01-24 19:09   좋아요 0 | URL
아래 비밀댓글에 대한 답변과 함께 생각해 보면

어른의 개입 없이, 유치원생들 사이에서 색깔에 관한 남녀 편향이 생긴다면 어른이 아이들의 사고에 직접 개입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때의 직접 개입은 설명이나 설득이 아닌 물리적 개입을 말합니다.


cyrus 2018-01-25 12:31   좋아요 1 | URL
<남자문제의 시대>의 저자는 남녀평등교육을 도입한 학교의 사례를 분석해서 남녀평등교육 도입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합니다. 저자의 의견에 저도 동의하고요, ‘물리적 개입’으로 아이들의 색깔 편향을 바로잡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편견이 잘못된 내용임을 알려주는 것이 ‘개입’일까요? 저는 편견과 오해를 바로 잡을 수 있기 위해선 부모의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마립간 2018-01-25 14:27   좋아요 0 | URL
cyrus 님이 전에 언급했던, 양성 평등을 위한 폭력을 반대한다는 일관된 가치관의 댓글로 보입니다.

편견을 바로 잡는 교육, 훈계 그 무엇이든 개입은 개입이죠. 긍정적인 개입일 뿐이죠.

남녀불평등에 관해, 물리적 개입이 아닌 ‘잘못된 내용임을 알려주는 개입‘으로 충분한가. 성인의 경우에는 아이와 무엇이 다른가가 생각해 볼 점이겠군요.

(그리고 사람을 악어에 비유하는 것은 언어 폭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01-23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24 15:23   좋아요 1 | URL
학교도 고정된 성 역할과 관련된 편견을 습득하기 좋은 장소입니다. 남자 아이가 분홍색을 좋아하는데, 동성 친구들이 ‘너 분홍색 좋아하니 여자구나’하고 놀리면, 남자 아이는 혼란스러워 합니다. ‘여자의 색인 분홍색’이라는 편견을 스스로 극복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떳떳이 밝히면 좋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죠. 아이들은 동성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동성 친구들의 취향을 따라하게 됩니다.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은 질문들 - 우리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성교육
페기 오렌스타인 지음, 구계원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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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밖에서 놀다가 다쳤으면 병원에 가면 된다. 자녀가 큰 잘못을 저질렀으면 부모는 자녀에게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 무엇인지 가르치면 된다. 이것이 자녀를 위한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데 자녀가 인터넷을 하다 음란물이나 성인 화상채팅앱을 본다면? 불법 유해정보에 노출된 청소년들의 피해가 늘어나도 대부분 부모는 ‘내 아이는 안 그러겠지.’라는 생각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다. 십대 딸을 둔 저널리스트 페기 오렌스타인은 다르다. 그녀는 내 아이뿐만 아니라 모든 평범한 아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성범죄를 저지른 청소년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한 것인 줄 모른다. 청소년 집단 성폭행 사건의 장본인 중 A군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학생이다. 가해 학생 A군의 부모는 아들이 잘 자랄 거라 믿었다. A군은 부모님이 집에 없는 시간에 거의 음란물을 보면서 지냈다. 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친구들은 음란물에서 본 장면을 따라 하고 싶었다. 그들은 여학생을 조용한 장소로 불러내 집단으로 성폭행했다. 경찰에 끌려간 뒤에도 A군은 죄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다. 부모는 A군에게 성폭행이 세상에서 나쁜 일이라고 꾸짖어보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청소년들의 인터넷 음란물 접촉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스마트폰 채팅앱이다. 성인 인증 없이 청소년들도 접속하는 채팅앱은 불법 성매매의 온상이 되고 있다. 시대가 변할수록 인터넷 보급률과 소셜 미디어 이용자 수는 급증하고 있다. 십 년 전 청소년들은 컴퓨터로 음란물을 접하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아주 손쉽게 음란물을 접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시대 변화에 맞는 새로운 성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미국인이 처음 성생활을 시작하는 연령대는 15세에서 20세 사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십 대부터 이십 대 여성 70명을 심층 인터뷰하면서 청소년이 경험하는 성문화의 심각성을 확인한다. 미국 십 대 청소년들은 가벼운 만남을 추구하는 ‘훅업(hook-up) 문화’에 빠져 있고, 스마트폰으로 외설적인 메시지나 음란 사진을 주고 받는 ‘섹스팅(sexting)’을 통해 이성을 만난다. 외모 가꾸기에 관심이 많은 십 대 소녀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하여 자신의 ‘핫(Hot) 한’ 면모를 보여주려고 한다. 또래 이성 친구들 앞에서 자신의 ‘섹시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소녀들은 자신의 외모, 몸무게 등에 지나치게 신경 쓴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외모를 보여주고 확인할 수 있는 소셜 미디어와 섹스 코드로 청소년을 사로잡는 대중문화를 십 대 소녀들의 몸을 성적 대상화로 전락하게 만드는 사회적 원인으로 지적한다.

 

미국 청소년들은 임신 위험성이 낮은 오럴 섹스를 선호한다. 그런데 성에 잘못 눈뜬 남학생들은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여학생에게 오럴 섹스를 하자고 제안한다. 여학생은 상대 이성의 기분을 맞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찝찝한 첫 경험’을 하게 된다. 삽입이 없는 오럴 섹스가 어째서 ‘첫 경험’이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럴 섹스도 ‘성생활’의 일부이며 남녀 모두 만족스러운 성 생활을 하려면 서로 마음이 일치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청소년의 오럴 섹스는 남녀 간의 애정이나 화합과 무관하며 남학생이 주도하는 반강제적 성행위다. 그리고 ‘찝찝한 첫 경험’을 겪은 여학생은 남성이 주도하는 성행위에 수동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섹스’와 ‘성생활’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 특히 아버지들은 아들이 이성 교제를 막 시작했거나 음란물을 본 사실을 알아차리면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우리 아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있구나. 대견해!”, “너도 야동을 보다니 요 녀석 다 컸구먼.” 이러한 아버지들의 반응에는 ‘남성이 이성을 만나고, 성에 눈을 떠야 어른이 된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과 쾌락을 자연스럽게 여긴다. 반면 딸이 이성 교제를 잘못해서 본의 아니게 임신을 하면 부모는 딸을 꾸짖는다. 여학생을 임신시킨 아들을 둔 부모들은 사건의 책임을 여학생에게 전가한다. 성폭행 피해자가 된 여학생은 주변으로부터 배척당한다. 사람들은 야한 옷을 입거나 남성을 유혹하게끔 대화를 하는 여성의 행동이 성폭행을 자초하는 일이라고 착각한다. 이러한 잘못된 통념 때문에 성폭행 가해 남학생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미해지고, 성폭행 피해 여학생은 ‘걸레’, ‘창녀’ 소리를 듣는다.

 

페기 오렌스타인은 부모야말로 바람직한 성행위가 무엇인지 가르칠 수 있는 최고의 선생님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부모는 자녀의 성적 욕구를 이해하고 확인하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부끄러워하면 지는 거다. 부모는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나타나게 될 몸의 변화와 남녀 모두 만족하는 첫 경험이 건강한 성생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녀에게 알려줘야 한다. 부모는 자녀가 올바른 방향으로 성에 눈뜰 수 있도록 늘 지켜보고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방비한 상태의 자녀는 편견과 위험이 도사리는 성문화에 빠져든다.

 

아이가 이성 친구를 만나 첫 경험을 했는지, ‘원 나잇 스탠드’와 ‘데이트 강간’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이에게 물어보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 부끄럽게 만드는, 민망한 질문이 절대로 아니다. 어떤 독자는 이 책을 ‘자극적인 언어만 난무한 섹스 보고서’라고 했다. 이 책을 읽고도 저자의 성교육 방식이 낯 뜨겁다고 생각한 독자들이 꽤 있다면 심각한 일이다. 그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에 익숙해져 있다. 여전히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구시대적 성교육을 배우고 있으며 그걸 배우면서 자란 부모는 성에 관련된 현실적 문제를 만나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섹스와 피임만 가르쳐주는 성교육이 전부가 아니다. 성 평등, 동성애, 데이트 강간 등 현실적이고 다양한 정보를 가르쳐야 한다. 성교육은 아이만 배우는 과목이 아니다. 죽을 때까지 어른들도 배워야 한다. 성교육도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성교육 지도 방식에 주도적으로 피드백해줄 수 있는 학문이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 성교육’은 아이, 어른 모두를 위한 교양 과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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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09 1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8-01-10 11:4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섹스에 따른 책임 의식을 자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이 정도 말은 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하라 2018-01-09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위터에서 어느 뉴스기사로 봤는데 서울 어느지역 고교에서 청소년 피임문제로 콘돔을 나눠 주기로 했다더라구요. 이젠 청소년 성문제도 동서양의 차가 없어진 것 같아요. 야동도 하나의 사회문제가 된지 오래이고 그와 동시에 성문화의 동서양의 차가 사라지고 문명 간의 차이가 점점 더 사라져가는 것 같네요.

cyrus 2018-01-10 11:44   좋아요 0 | URL
청소년들이 스스로 섹스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콘돔을 착용하는 방법에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전 세계가 소셜미디어에 익숙해지니까 청소년 성문화와 성 문제의 동서양 차이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이 책에 나온 ‘훅업 문화’와 ‘섹스팅’은 우리나라 ‘원 나잇 스탠드’와 ‘성인 채팅’과 비슷했습니다.

stella.K 2018-01-0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이책 읽었구나.
뭐 나름 좋긴 했는데 사례가 너무 많아서
나중엔 어질어질하더군.
그런데 정말 필요한 말도 많이했어. 그지?^^

cyrus 2018-01-10 11:46   좋아요 0 | URL
네. 부모로서 자녀에게 해주고 싶은 저자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
 
똑똑함의 숭배 - 엘리트주의는 어떻게 사회를 실패로 이끄는가
크리스토퍼 헤이즈 지음, 한진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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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한 개인을 평가할 때 학력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근대화 이전, 양반 계층이 교육을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었다. 교육이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 신분제도가 사라지고 대중에게 고등교육을 받을 기회가 제공됐다. 하지만 그것도 형식적이었고, 해방되자 비로소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출세 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보기 어려워졌다.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오늘날의 교육은 권력 창출과 신분 상승의 수단이다. 인력 채용 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벌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에 따라 아이들은 명문대학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일찌감치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공부 외에 과외 공부를 하게 되고, 사교육비는 부모들이 부담하게 됐다. 부모의 경제 수준에 따라 자식의 가방끈길이가 결정되는 세태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기적을 아직도 대중은 실제 현실로 믿고 싶어 한다. ‘개천의 기적을 보고 듣고 자란 부모 세대는 여전히 과거에 갇혀 있다. 과거와 많이 달라진 현실은 심각하다. 우리는 부모 잘 만나면 용 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그를 따르는 국민들에게 신뢰의 징검다리여야 한다. 국민은 지도자가 새로운 정책을 통해 비전을 제시하고 변화와 혁신에 앞장설 것을 기대한다. 지도자가 이런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할 때 그 추종자들은 실망과 함께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자칫 사회가 무질서하고 생활이 고통스러워지면 국민은 개인의 불행을 지도자의 무능 탓으로 돌리기까지 한다. 우리 사회는 꽤 긴 시간 동안 무능한 권위에 제대로 속았고, 국민들은 짜증이 날 정도로 손해를 감수했다. 왜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반복되는 것일까. 과연 국민들의 촛불로 탄생한 현 정부는 과거를 답습할 것인가. 국민들이 정치에 대한 냉소에 빠지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감시하는 참여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능력주의의 허상에 벗어나야 한다.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는 리더십 부재, 불평등 문제, 사익을 추구하는 엘리트 계층 양산 등 온갖 문제들을 낳는다. ‘능력 좋아서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식의 능력주의의 병폐는 결과적으로 사회 통합을 어렵게 만든다.

 

똑똑함의 숭배는 지금 시점에서 읽어 봐야 하는 것은 여전히 손에 특권을 꽉 쥔 엘리트 계층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우리의 현실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주위의 비판적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엘리트 계층의 비리와 위선 행각은 그칠 줄 모른다. 똑똑함의 숭배믿는 능력주의에 발등 찍히는 미국인들의 사례를 보여준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었을 때, 위기를 초래한 원인 제공자 는 미국 명문대 출신 금융인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이 자랑하는 명문 대학이 배출한 월 스트리트의 핵심 인재들이었다. 사익에 눈이 쏠린 금융인들은 자신의 능력을 쓰다가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었다. 능력 좋은 인재들의 오만은 나비의 조용한 날갯짓이었다. 월 스트리트에서 시작된 날갯짓은 미국 전체뿐만 아니라 전 세계 경제를 집어삼킨 태풍이 되었다.

 

2000년대 메이저리그는 약물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암묵적으로 약물을 복용해왔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거의 20년간 금지약물 사용을 묵인해왔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부정을 은폐하려고 약물에 의존하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실태를 고발한 미첼 리포트를 깎아내렸다. 야구팬들은 미첼 리포트에 기록된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팬들은 팀 리그 우승에 보탬이 되고 선수 개인의 역대 최고 성적을 내는 야구선수들의 실력을 높이 인정했기 때문이다. 소위 인기 스타이며 은퇴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실력에 따라 높은 금액의 연봉을 받는다. ‘약물의 시대거포로 활약했던 새미 소사(Sammy Sosa), 마크 맥과이어(Mark McGwire)는 약물 스캔들에 휘말렸고, 두 사람 모두 엄청난 개인 기록을 세웠음에도 명예의 전당에 입성될 가능성이 희박해졌다.

 

이 두 가지 사례는 책에 나온 내용의 일부일 뿐이다. 모두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최악의 결과들이다. 대중이 엘리트의 실력을 우러러볼수록 엘리트들은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서 지낸다. 그렇게 대중은 엘리트로부터 , 돼지소리를 듣게 된다. 순진한 개, 돼지들이 빛 좋은 개살구인 능력주의 앞에 자꾸 머리를 숙이면, ‘수준 이하 개, 돼지들은 사회 발전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착각한다. 똑똑함의 숭배에 소개된 사례들은 남의 나라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왜곡된 능력주의 때문에 악순환에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사회악순환을 심화시키는 이들은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똑똑함의 숭배의 저자 크리스토퍼 헤이즈(Christopher Hayes)는 엘리트에게만 부가 쏠리는 불평등, 점점 심각해지는 엘리트의 도덕적 해이 등의 근본적 원인을 능력주의 숭배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라고 지적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저자가 내세운 해결책은 너무나도 간단하게도 평등이다. 그는 기회의 평등뿐만 아니라 결과의 평등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회가 균등하더라도, 즉 경기규칙이 공정하더라도 승자와 패자에 대한 대우가 너무 불합리하다면, 즉 승자가 지나치게 많은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않으며 결과의 불평등을 초래한다. 물론, 결과의 불평등에 문제점을 제기하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을 뚜렷하게 구분하지 못한다. 이 점은 저자도 인정한 사실이다. 그래서 저자의 해결책은 왠지 찝찝하기만 하다.

 

이 책을 보면서 찝찝하게 느낀 내용이 한 가지 더 있다. 저자는 브라질의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데 성공한 루이스 이나시우 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우리나라에선 룰라로 잘 알려져 있다)의 사례를 언급했다. 똑똑함의 숭배2013년에 발표되었다. 이 책이 나온 지 2년 뒤에 시우바 대통령의 부패 스캔들이 터졌다. 저자가 이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까. 우리나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볼 수 있듯이 소수의 정치 엘리트가 권력을 잡으면 사익에 집착하게 되고, 보통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친다. 더 놀라운 사실은 시우바는 국민들이 원하면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브라질 국민들이 그의 복귀를 환영한다면 똑똑함의 숭배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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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1 1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2 12:47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구직자들이 공무원을 희망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지나친 능력주의 숭배가 낳은 기이한 현상으로 생각해요.

표맥(漂麥) 2017-12-11 2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능력주의의 허상... 이 말 와 닿습니다. 똑똑한 사람의 한계는 자신의 생각을 일반화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표준화하려고 하는 점이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걸맞지 않으면 순간적으로 개.돼지로 치부해 버리구요... 정작 자신들도 또다른 의미의 개,돼지임을 몰라요.

cyrus 2017-12-12 12:50   좋아요 0 | URL
책의 핵심 내용에 근접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엘리트는 자신들의 생각을 기준으로 삼아 일을 결정합니다. 그런데 이게 독단적으로 처리하면 문제가 됩니다.

sprenown 2017-12-1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헛똑똑이의 신화는 깨져야 합니다.

cyrus 2017-12-12 13:11   좋아요 0 | URL
네, 맞습니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 똑똑한데 이기적인 사람,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저지른 실수에 책임지지 않습니다.

수이 2017-12-12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친구는 이제 막 애기 낳았는데 내년에 제주도로 이사한대, 국제학교 보낸다고, 다섯 살부터 입학 가능이래, 그래서 제주도에 집 사고 이사할 준비 한다는데 뭔가 멍하다. 출발선이 다르네 하고 너털웃음만 지었어. 나도 똑똑한 거 좋아하긴 하는데 뭔가 기묘해. 귀신 홀린 기분. 남편도 뭐 이래저래 안 좋은 이야기 잔뜩 갖고 들어오고. 아아아;;;;

cyrus 2017-12-12 13:15   좋아요 0 | URL
주변 사람들 신경 안 쓰면서 살고 싶어도, 타인과 비교하게큼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피할 수 없어요. 저도 연락 뜸한 친구가 잘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면 기분이 이상해요.. ^^;;

transient-guest 2017-12-12 0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치인이나 공인의 경우엔 실체를 똑바로 볼 수 있어야 하고, 그 사람이 그간 살아온 삶을 잘 짚어보면 실수가 좀 적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을 데리고 일해보면 어느 정도는 배경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은 교육열과 경쟁이 너무 높아서 그야말로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고 있으니 학력/학벌과 실제능력의 상관관계가 맞이 않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생각하는 것일수도 있지만, 측정가능한 자료로 무엇인가를 평가하는 건 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cyrus 2017-12-12 13:19   좋아요 2 | URL
학벌이 좋아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엘리트들도 있을 거예요. 그러면 학벌과 실제 능력의 상관관계를 무시할 수 없어요. 그런데 정유라처럼 학력을 속이면서까지 엘리트 코스를 밟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예요. 애초에 그들은 정당한 경쟁을 하지 않고, 비상식적인 특권을 누려요. 엘리트층들은 그런 상황을 문제 삼지 않아요.
 

 

 

미국의 여성 운동가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여성의 신비에서 이렇게 썼다.

 

 

 

 

 

 

 

 

 

 

 

 

 

 

* 베티 프리단 여성의 신비(이매진, 2005)

 

 

이름도 붙일 수 없는 이 문제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 여성들이 이것을 표현하려고 애쓸 때 사용하는 단어들은 대체 어떤 것이었던가? 때때로 어떤 여성은 무언가 공허하고…‥불완전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했다. 또는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어떤 여성은 가끔씩 진정제를 사용해 그런 느낌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중략] 어느 여성은 때때로 감정이 너무도 격해져서 집을 뛰쳐나가 길거리를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아니면 집안에 처박혀 울기도 한다.[1]

 

 

 

1960년대 미국의 전업주부들은 집 안을 청소하고, 장을 보고, 자녀들을 돌보고, 남편의 곁에 누우면서도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와 싸워야 했다. 세 아이를 둔 프리단은 당시 전업주부들이 우울증에 시달리고 자살을 하는 사례가 빈번해지자, 우선 동창들을 인터뷰하면서 문제점을 밝혀냈다. 5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조사한 끝에 그녀는 여성의 신비를 펴냈다. 이 책은 어머니또는 아내역할에 만족하는 여성들을 흔들어 깨운다. 이 책의 제목에 있는 신비는 미국 여성들을 괴롭히는 강박적 관념이다. 프리단은 여성을 남편과 자녀를 뒷바라지해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이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제한한다고 주장한다. 여성의 신비에서 프리단은 여성들에게 여성을 신비화하는 사회적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주체성을 확립할 것을 호소한다.

 

 

 

 

 

 

 

 

 

 

 

 

 

 

 

 

 

 

 

 

 

 

 

 

 

 

 

* [구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1995)

* [개정판] 로즈마리 푸트남 통 페미니즘 사상 : 종합적 접근(한신문화사, 2000)

* 카트린 칼바이트 20세기 여인들 : 성상, 우상, 신화(여성신문사, 2001)

* 김호기 세상을 뒤흔든 사상 : 현대의 고전을 읽는다(메디치미디어, 2017)

 

 

 

프리단은 보부아르(Beauvoir)2의 성을 읽고 여성 운동에 헌신하기로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페미니즘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보부아르는 글을 쓰기 위해 결혼과 출산을 거부했다. 그녀는 전업주부의 일을 여성 노예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2] 반면 프리단은 페미니즘과 결혼 및 가정이 공존하길 원했다. 여성의 경제적 · 사회적 자립이 가능한 가정이 그녀가 추구하는 이상향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자 프리단은 중도적인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그녀는 자신이 창설한 전국여성조직(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 회장직에 물러났고, 남성을 적대적으로 대하는 페미니스트들을 비판했다. 프리단은 1981년에 펴낸 <2의 단계(The Second Stage)>를 통해 페미니즘 운동이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것을 촉구했다. 그녀는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사회를 원했으며 남성에 대한 투쟁적 여성 운동 노선을 포기하는 입장을 취했다.

 

 

 

 

 

 

 

 

 

 

 

 

 

 

 

 

 

* 스테퍼니 스탈 《빨래하는 페미니즘(민음사, 2014)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엄마는 페미니스트(민음사, 2017)

 

 

 

프리단은 직장과 집안일을 동시에 수행하는 슈퍼우먼(superwoman), 슈퍼맘(supermom)의 등장을 바랐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일과 가정 모두 다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여성을 부담스럽게 한다. 그리고 프리단이 지향한 슈퍼우먼은 중산층 백인 여성을 위한 대안적 역할에 불과했다. 프리단은 인종차별 · 성소수자 · 계급 문제 등 백인 여성과 직접 관계가 없는 사안에 소극적인 모습으로 나왔다. 특히 그녀는 페미니즘이 동성애 문제에 관심을 가지는 노선(레즈비언 페미니즘, Lesbian Feminism)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였다.

 

여성의 신비는 약점이 있음에도 페미니즘 운동을 빛나게 해준 교과서로 추앙받는다. 이 책이 세상에 끼친 영향력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 책이 성전(聖典)으로 취급하는 것에 불편하다. 시대에 맞지 않는 그녀의 입장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여성의 신비한 권으로 변화가 많은 프리단의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데는 부족하다.

 

 

 

 

 

 

 

 

 

 

* 나왈 엘 사다위 스핑크스의 여인들(한마당, 1995)

 

 

 

여성의 신비보다 훨씬 늦게 나왔지만, 스핑크스의 여인들(원제: Femmes Egyptiennes)은 프리단의 책에 비견될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다. 이 책은 이집트의 여성 운동가 나왈 엘 사다위(Nawal El Saadawi)가 가부장제 사회로부터 억압받는 이집트 여성들과 상담했던 기록들을 정리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정신의학을 전공했으며 1969년에 <여성과 성(Women and Sex)>이라는 책을 발표하여 가부장제에 억압당한 여성의 성적 권리와 성생활을 공론화했다. 이 책이 엄청난 반응을 얻게 되자 이집트 정부는 그녀를 위험인물로 경계했다. 엘 사다위는 정부 권력층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성 운동을 펼쳤다. 여성 할례 금지 운동에 앞장섰으며 여성을 억압하는 종교를 거부했다. 결국 1981년에 그녀는 감옥에 수감되었고, 정부는 그녀의 집필활동을 전면 금지했다. 자국의 탄압으로 엘 사다위의 글은 이집트보다 유럽에 더 많이 알려졌다.

 

엘 사다위의 여성운동은 보부아르가 지향하는 여성운동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엘 사다위는 여성의 희생을 부추기는 결혼 제도에 반대했으며 여성의 글쓰기 행위를 예찬했다. 여성의 글쓰기 행위는 여성의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활동이다. 남성이 차지하고 만들어낸 권력은 여성의 창조행위를 막는다. 여성의 창조행위는 사회적 제도에 질식하여 죽어가는 여성을 진정한 인간으로 부활하게 만드는 힘이다.

 

 

 

 

 

엘 사다위가 스핑크스의 여인들을 집필하는 데 걸린 시간은 17. 엘 사다위는 열여섯 명의 이집트 여성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그녀들의 우울증과 불안한 감정 등을 분석했다. 스핑크스의 여인들여성의 신비의 공통점은 모두 남성 위주 사회에 억압받는 여성들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는 데 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여성의 정신 상태를 정신병광기로 규정하는 정신과 의사들의 섣부른 진단을 비판했다. 그리고 남성 중심의 프로이트 정신분석법의 한계를 지적했다.

 

프리단과 엘 사다위는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두 사람은 1985년 케냐 나이로비에 열린 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는데, 이 자리를 통해 엘 사다위는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어려움에 처한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문제를 공론화하려고 했다. 그런데 프리단은 엘 사다위가 발언을 하지 못하게 말렸다.

 

 

그녀는 내가 팔레스타인 여성들에 관해 연설을 하려고 하자 말렸습니다. 그건 정치적 문제이므로 페미니즘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했지요.” [3]

 

 

유대계 미국인이었던 프리단은 유대인 정통국가인 이스라엘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프리단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프리단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차별에 대한 주제로 연설을 했다. 본인은 페미니스트로서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을 해놓고선 엘 사다위의 발언을 제지한 것이다. 엘 사다위는 프리단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태도에 실망했고 소신 있게 발언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의 일화는 1세계 페미니즘(유럽 백인 중심 페미니즘)이 제3세계 페미니즘을 대하는 시대착오적 반응을 잘 보여준다.

 

 

 

 

 

 

Trivia

 

 

 

 

 

 

 

 

 

 

 

 

 

 

 

알라딘에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검색하면 1996평민사 출판사에서 나온 판본과 2005년에 재출간된 이매진 출판사 판본, 두 권이 나온다. 검색 결과만 보면 1996년 평민사 판본이 국내 첫 번역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996년 번역본은 중판이며 초판은 1978년에 나왔다. 초판과 중판의 역자는 동일 인물. 그리고 이 책의 번역본 일부는 우리나라 여성운동의 대모이효재 이화여대 전 교수가 엮은 여성해방과 이론과 현실(창비, 1989)에 수록되었다. 1978년 평민사 판본의 4장을 발췌한 내용의 소제목은 여성 자아의 위기이다.

 

 

 

 

 

최근에 문 대통령 부부가 청와대를 방문한 이효재 씨를 만났다. 이효재 씨는 엘 사다위보다 3년 늦게 태어났고, 현재 나이는 93세이다. 세 분이 함께 모여 찍은 사진, 정말 보기 좋다.

 

 

 

 

[1] 여성의 신비62~63

[2] 20세기 여인들78

[3] 20세기 여인들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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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7-11-13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크 제 얕음인가요....페미니즘과 디자이너 동명이인을 떠올리다가 마지막에...

이처럼 좋은 글을 기꺼이 모두에게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cyrus 2017-11-14 13:13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여성운동가 이효재님을 몰랐어요. 헌책방에 이분이 쓴 책을 발견하면서 알게 됐어요. 7, 80년대 국내 여성운동 저작물을 수집하는 중입니다. 인터넷 서점에 등록되지 않은 페미니즘 책들이 많습니다. ^^

표맥(漂麥) 2017-11-14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 비 저 책을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놨다간 웬지 성희롱 행위로 문책 당할 듯한... 실제로 그럴거란 생각이 순간 들었습니다... 극보수와 페미 속에서 생활하다보니 이런 생각이... 제가 살짝 도외시하는 영역이라 항상 배움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7-11-14 13:15   좋아요 1 | URL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는데, 좀 난감했어요. 그래서 《여성의 신비》 혼자 빌리기가 뭐해서 《여성의 권리 옹호》와 같이 빌렸어요.. ^^;;

sprenown 2017-11-14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미니즘 역시 매우 정치적이군요.. 하긴 모든 주의와 이즘은 정치영역에서 벗어날수 없는 숙명이긴 하겠지만..^^

cyrus 2017-11-14 13:19   좋아요 1 | URL
페미니즘 운동이 정치에 영향을 준 사실은 무시할 수 없어요. 시기가 많이 늦었지만, 여성의 투표권 확보를 위해 노력한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은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stella.K 2017-11-14 12: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성의 신비는 2005년도 판도 절판됐네.
요즘 같이 페미니즘이 활성화된 때에
이 책이 절판이란 건 좀 아이러니 해.
그런데 표지는 좀 거시기 해.
할게 없어서 저런 표지를 썼나?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난 별로라고 생각한다.
<스핑크스의 여인>도 다시 나와줘야 할 것 같은데...

그런데 이효재 교수 정말 많이 연로해 보인다.
모르면 위안부 할머니 중 한 사람인 줄 알겠어.
언제 청와대 간 걸까?

cyrus 2017-11-14 13:22   좋아요 0 | URL
《여성의 신비》 표지 저도 별로예요. 엘 사다위의 대표작이 소설 《영점의 여인》이에요. 저는 그녀의 소설이 번역됐으면 좋겠어요. ^^

10월 말에 만났어요. 저는 대통령 부부와 이효재님의 만남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혐오사회 -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카롤린 엠케 지음, 정지인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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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Procrustes)는 특이한 수법으로 사람을 죽인다. 그 이름은 ‘잡아 늘이는 자’라는 뜻을 가졌다. 프로크루스테스는 나그네를 집으로 초대하여 침대에 눕히고는 키가 침대 길이보다 길면 다리를 잘라 죽이고,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여 죽였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침대는 ‘자신의 주관적 기준’, ‘아집’을 비유하는 관용어가 된다. 이 악당은 ‘폴리페몬(Polypemon)’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이 이름의 뜻은 ‘해로운 자’이다. 아마도 프로크루스테스는 폴리페몬이라는 이름을 철저히 숨긴 채 나그네에 접근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폴리페몬과 그의 침대에 눕혀진 사람들이 많다. 오늘날의 폴리페몬은 ‘편견’을 가진 일반인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다. 폴리페몬들은 무고한 사람들을 강제로 끌고 와 침대에 눕힌다. 정신질환자 혹은 성범죄자로 차별받는 성소수자, 떠날 수도 없고 머무를 수도 없는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김치녀’, ‘한남충’으로 부르면서 서로 비하하고 경멸하는 여성과 남성들…‥. 누구나 폴리페몬의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침대의 주인인 폴리페몬도 희생자가 될 수 있다. 폴리페몬은 영웅 테세우스(Theseus)는 에게 자신이 저지르던 악행과 똑같은 수법으로 죽임을 당했다. 폴리페몬의 아집은 독선으로 변질된다. 무수히 많은 독선은 혐오를 낳는 주범 중 하나이다. 결국 그 사회에 공감은 사라지고 혐오만 자라난다.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혐오의 형태는 다양해질 것이다.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혐오가 있는가 하면, 권력이 없어서 생긴 혐오도 있다. 특정 대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혐오가 발생하는 한편, 그저 경멸 때문에 혐오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처럼 혐오의 심각성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차별주의, 인종차별주의 같은 낱말들만으로는 혐오의 진짜 원인을 담아내지 못한다. 혐오는 편견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암울하다. 카롤린 엠케는 사회 곳곳에 널려있을 뿐만 아니라 숨어 있는 ‘혐오 문화’의 실체를 규명한다. 성소수자에 속한 엠케는 동성애 혐오뿐만 아니라 난민 혐오, 여성 혐오 등의 현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분석한 언론인이다. 《혐오 사회》는 폭력과 사회적 갈등을 양산하는 혐오 문화의 형성 과정을 헤집는다.

     

이 책에는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예화가 펼쳐진다. ‘반(反)난민’을 외치는 독일 극우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들의 과잉 진압, 성소수자들에게 자행하는 폭력. 저자의 시선은 여기서 머물지 않는다. 저자는 혐오는 개인의 정서적 형태가 아닌 적대심과 방관적 태도로 설계된 집단적 감정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주장을 ‘폴리페몬의 침대’ 이야기로 비유해서 설명하면 이렇다. 폴리페몬은 자기가 믿는 일방적 기준(곧 언급할 ‘동질성’, ‘본원성’, ‘순수성’과 같은 의미)에 따라 상대방을 혐오한다. 그리하여 폴리페몬은 ‘가해자’가 되고, 혐오 받는 대상은 폴리페몬의 침대에 누워 옴짝달싹 못 하는 ‘피해자’, ‘희생양’이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방관자’가 있다. 방관자는 피해자의 고통을 구경할 뿐 그들의 감정과 상처에 공감하지 못한다. 저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타자를 혐오하는 일이 가능한 ‘혐오 사회’를 지금까지의 모든 혐오범죄보다 한층 더 무서운 경종의 대상으로 여긴다. ‘혐오 사회’의 방관자는 잔혹한 사건의 중심에서 비켜 있는 비겁한 위치에 있다. 사실 방관자도 혐오범죄의 공모자이다. 따라서 저자가 정의하는 혐오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사회 구성원이 공유하는 ‘관습과 신념의 결과물’[1]이다.

     

혐오를 부추기는 세력은 자신의 정체성 또는 신념을 ‘표준’으로 내세우고, 이 ‘표준’에 맞지 않는 타인을 ‘비정상적’인 대상으로 규정한다. 예컨대 ‘찬란하고 순수한 민족’이 사는 땅에 외래문화 또는 종교가 밀려 들어와 사회 불안정을 일으킨다는 단순한 논리가 의외로 꽤 완강한 힘을 보여준다. 동성애를 ‘비정상’으로 보는 가치관도 마찬가지다. 인간에게 사회란 하나의 집단이고, 소속감에서 오는 안도와 심리적 평정을 유지케 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인간은 집단적 동질성과 본원성을 굳건히 하기 위해 구성원들끼리의 공감과 응집력을 강화한다. 소속감과 비뚤어진 편견이 뭉쳐 나오는 것이 바로 ‘혐오’이다. 사회 문제의 원인은 사회 내부에도 있는데 자신과 다른 타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든 이질성을 배제하고 동질성을 찾아 무리 지으려는 문화에 익숙하다. ‘우리끼리’ 뭉치는 ‘우리’ 의식은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순혈주의에 매몰되기 일쑤였다. 지역, 피부색, 직업, 성별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차별하는 태도,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무기로 활용되는 혐오 언어는 타인과의 인격적 관계를 해치는 증오와 분노를 만든다. 분명한 것은 ‘혐오를 혐오로 대응하는 방식’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혐오로 가려진 눈을 여는 것만이 또 다른 갈등과 상처를 피하는 길이다. 혐오가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1] 《혐오 사회》 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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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13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감입니다. ‘끼리끼리‘ 패거리 문화가 이러한 혐오사회를 만든 원흉이지요..이런 문화와 의식은 아마,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와 관련있지 않을까요? 일단은 나부터 살고보자는...

cyrus 2017-11-13 18:52   좋아요 2 | URL
패거리 문화가 형성된 이유는 많을 거예요. 그 중 하나가 바로 생존 본능일 것입니다. 나와 다른 타자에 두려움을 느끼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하는 거예요.

2017-11-13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1-13 18:57   좋아요 1 | URL
개인의 이익을 얻기 위해 모임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산악회에 가입해서 열심히 활동하다가 자녀 결혼식 이후에 탈퇴하는 사람이 있어요. 축의금을 많이 받기 위해 사람들과 어울려 다녔던 거죠. 아버지가 그 산악회 회원으로 활동 중인데 탈퇴한 회원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저런 사람, 많이 있을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