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 1 - 영웅의 탄생
김성한 지음 / 나남출판 / 201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소설 외적인 부분

1) 이북 사투리

<요하>를 이야기하는데, 이북사투리를 빼놓을 순 없다. 놀랍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인물들은 이북사투리로 이야기한다. 배경이 고구려기에 어찌보면 당연한 거지만, 초반부 상당히 당황했다. "아슴채이타"(p.23,44,247), "그렇재이탕이까"(p.36) 같이 어리둥절한 말도 있고, 타이핑조차 불가한 'ㅁ과 ㄱ의 쌍받침 글자'(p.47)도 있다. 편집자는 독자를 배려해서 상당부분 괄호로 뜻을 풀이해 주었고, (아슴채이타는 "고맙습니다", 그렇재이탕이까는 "그렇지 않다니까"는 뜻) 괄호가 없는 부분은 문맥상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젊은 독자들이 이북사투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당히 걱정된다. 인물의 대화를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괄호속 설명과 추측을 거쳐 이해해야 하기에, 독자로선 상당한 부담이다.

2) 독특한 목차

목차에 줄거리가 실려있는게 독특하다. [목숨을 건 임무]라는 큰 타이틀 밑에 [수양제가 고구려 정벌을 선포했다는 소식이 무여라 성에 전해진다. 능소는 적군의 정황을 정탐하기 위해 중국어에 능통한 돌쇠 등의 부하들을 이끌고 적지에 침투한다.]라고 줄거리가 있다. 이는 마치, 대하사극에서 전편을 간략하게 나레이션 해주는 것이나, 무성영화의 변사가 도입부에 이야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3) 상세한 지도

앞부분에 고구려의 강역이 컬러로 실려있고, 뒤에는 '고구려 주요도', '수대의 중국 주요도', '북방 민가구조의 일례'가 있다. 이는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평곽으로 끌려가서 야장질을 하고(p.51), 돌아온 지루가 평양에서 돌아왔다고 거짓말 하는 장면(p.68)을 보자. 만약 지도가 없었다면, 평곽의 위치를 알 수 없기에 대충 넘어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평양과 평곽이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한체 말이다. 또한 상세한 지도덕에 주요 무대인 옥저마을과 무여라성의 위치, 수나라의 침입 경로등도 명쾌하게 확인할 수 있다. 

(삼국지 이야기 잠깐. 어릴 때 삼국지를 읽으며, 촉과 오가 형주를 두고 빌리네 마네 하는 걸 이해 못했다. 지도가 실려있지 않아서 형주의 위치가 어디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형주의 위치와 크기를 확인하고야, "아, 둘이 싸울만 했구나" 했다.)


2. 소설 내적인 부분

1) 능소와 상아의 사랑, 그리고 지루의 악행

초반부 시선을 집중시키는 인물은 지루이다. 지루는 상아를 짝사랑하며, 상아의 연인인 능소를 증오한다. 야장(대장장이)인 덕에 홀로 마을에 남아, 상아를 차지하려 애쓴다. 능소가 10인장이 되어 한동안 소식이 없자, "평양성 친구한테서 편지가 왔단 말이야. 옥저마을에서 온 능소라는 10인장이 평양 미인하구 결혼했단 이 말이야"(p.89)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상아의 마음이 변치않자, 어머니 약을 구해 오는 상아를 강제로 덮치기까지(p.95) 한다.

지루의 악행은 끝이 없다. 전쟁이 피해 마을사람들 모두가 요동성으로 들어간 뒤(p.170), 노역을 하게 되는데, 이를 담당하던 지루는 (지루는 야장에서 군인으로 편입됨p.143) 유독 상아와 상아모친, 능소모친에게만 모질게 군다. "낮일이 불실한 사람은 밤일루 벌충하기루 돼 있지요." "오늘 보신대로 다른 사람덜은 다 잘했는데 아즈망이너어(오타아님) 한 일이 좀 부족해서 벌충을 받아야겠소다."(p.217) 결국, 하루종일 노역에 시달리는 상아와 모친.

이후, 전쟁이 벌어지고 능소와 지루는 같은 부대에서 잠깐 머물게 된다. 능소는 이미 승진(?)하여 20인장이 되어 있었고, 지루는 비록 계급은 낮으나 을지문덕의 직속궁병이었다. 그런데 지루는 상급자인 능소에게 충격적인 도발을 한다. "조심하시오. 20인장님 쥑이는 연습을 하구 있었소다." "어떻게 하면 한칼에 목을 쌍둥 잘라베릴 것인가, 돌아앉은 목덜미를 더듬어 보던 질이오다."(p.407,408) 능소는 "이눔아, 당장 쥑에 봐라"하고 치를 떨지만, 지루는 뻔뻔하기만 하다. 이 정도면 거의 사이코패스 수준 아닌가?

2) 상아의 고뇌, 상아네와 능소네의 갈등.

모든 남자들이 부역이다 군대다 끌려가고, 옥저마을엔 여자들과 노인만이 남게 된다. 상아는 능소만을 기다리지만 소식은 도통 없고, 기나긴 기다림에 상아는 지쳐간다. '언젠가 능소는 결혼하면 한번 바다에도 가고 국내성을 거쳐 평양성까지 함께 구경가자고 했었다. 그러나 겨울이 가고 봄도 가고 여름이 와도 편지 한 장 없었다. (중략) 얼굴에는 수심이 가실 날이 없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생겼다. 언제나 돌아올까. 돌아오기는 오는 것일까.'(p.120.121)

상아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능소모친의 냉대다. 지루가 상아를 덮쳤을 때(p.95) 상아는 가까스로 위험을 모면하지만, 능소모친은 상아가 이미 몸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능소를 만나서는 "상아 갈라…말이다. 성한 줄 아니? … 다 틀렜다."(p.258) 라고 까지 해버림) 그러니 상아가 뭘하든 트집이고 매몰차게 대한다. 상아가 잠깐 늦자, "늦게 댕기는 갈라 치구 행실이 좋은 거 보지 못했다"(p.125) 이러고, 마주 보기 싫어서 같이 방아찟는 것조차 거부한다.

3) 능소의 대활약상

능소는 고구려 황제의 '즉위 20주년 기념 사냥대회'에서 2등을 하고, 10인장으로 발탁(p.64)된다. 약광장군에게 첫 임무를 받은 능소는 수나라 영주장사를 사로잡는(p.111) 전과를 올리며 승승장구한다. 20인장으로 승진(p.186)하는 능소.

능소의 활약상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수나라 최홍승을 혼쭐내는 장면(p.398)이다. 을지문덕이 수나라 군영을 찾아가 담판을 하고 돌아오자, 최홍승은 을지문덕을 다시 유인해 내려한다. 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 도리어 억류되고 만다. 연개소문은 능소에게 최홍승은 "부아가 터지도록 놀려 주다가 적당히 돌려 보내라"(p.397)고 명령한다. 이에 능소는 최홍승을 혼구멍을 낸다. "야아, 너 여기가 어디멘 줄 아니? 이 간나새끼 죽구 싶어?" "이 똥뙤눔아, 넌 우리 아버지의 원쉬다." "나뿐 눔의 새끼. 우리 가족이 성안에 있다. 이판저판 우리 가족은 죽은 게구 대신 널 쥑에 베레야겠다."(p.398) 거기다 최홍승의 무릎까지 꿇리는 능소. 20인장이 수나라 장수를 농락한 통쾌한 장면.

4) 성(요동성)안에서의 생활

수나라의 침략이 임박하자, 옥저마을 주민들은 요동성 안으로 이주(p.170)한다. 고구려의 청야전술인데, 그간 청야전술만 알았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민들을 이주시키는지, 성안에서 주거를 어떻게 배분하는지, 어떠한 노역을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요하>를 통해서 상당부분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또한 일반백성들 관점에서 청야전술을 바라보게 된것도 큰 수확이었다.

전쟁에 임한 처절함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 있다. 수나라 수십만 대군이 결국 성을 부수고 침입(p.330)하자, 성안의 노인과 여성들도 도끼를 들고 결사항전을 다짐한다.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불에 비친 여자들의 모습은 사람이 아니었다. 빗물과 흙탕물에 젖은 몰골에 살기를 품은 두 눈,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행여 어둠 속에서 뙤놈들이 덤벼들면 대갈통을 내리치라고 했다. 무서운 그들의 눈, 장막을 나서 박달나무 더미로 뛰어가면서 능히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눈들이라고 생각했다.'(p.331)


3. 마무리

1) 살수대첩은 알지만, 을지문덕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싸웠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하>에는 수백만대군 물리친 고구려의 기상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을지문덕의 놀라운 지략과 기개, 정말 대단하다. (살수대첩은 2권 p.22부터 시작됨)

2) [고구려 vs 수나라]라는 국가적 차원 대립에, [능소, 상아 vs 지루]라는 개인적 갈등을 병치함으로써 이야기가 깊이있고 생생하다. 능소를 기다리는 상아의 마음, 상아를 노리는 지루의 집요함, 능소와 지루의 갈등, 인물간 갈등이 굉장히 치밀해서 읽는내내 "드라마로 만든다면, 능소역은 누가 어울릴까? 상아는 XXX가 딱인데ㅋ" 이랬다. 엄청난 몰입도.

3) 정겨운 옛 풍속과 사투리를 접할 수 있다. 옥저마을에는 정신적 지주, 우만노인이 있다. (사실, 우만노인의 리더쉽은 본문에서 자세하게 논의하려 했었다.) 우만노인은 헛소문에 흔들리던 상아를 안심(p.92)시키고, 상아를 든든하게 지켜준다. 마을 사람들 모두 우만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예신제(p.23)와 같은 옛풍속, 식생활, 주거구조 등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 <요하>를 다 읽고 나니, 이북사투리가 아주 친근하다. 초반 사투리에 대한 우려를 늘어놓았지만, 진정한 독자라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 장담한다. 본인은 1권 p.100 무렵부터 이북사투리에 대한 거부감이 완전히 사그라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