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주의!!! 스포일러 있음!!!

 

1. 김영하를 읽는 이유!!

 

근래 한국소설을 멀리한 이유는 소재가 빈곤하고 재미없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등장인물이 전부 비슷비슷하고, 소재도 항상 보아왔던 것이다. 그래도 꼭 찾아읽는 작가들이 있는데, 김영하 작가도 그 중 한명이다. 김영하 작가하면, 일단 떠오르는 건, <오빠가 돌아왔다>의 '경선이'다. 처음 작가를 접하고, 웃고, 좋아하게 된 작품의 주인공인데다, 힘든 군생활때 여러번 읽어서 친여동생 같은 느낌도 들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 중 빼어난 작품이 많지만, 이상하게도 김영하!하면 "경선이!"하고 튀어 나오고, 저도 모르게 배시시 웃게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역시" "역시 김영하!!"를 연발했다. 한국소설에 대한 불만 1순위, 소재의 빈곤함은 이 작품 앞에선 딴나라 얘기고 등장인물은 거의 충격 그 자체다. 한문장 한문장, 만족스럽게, 즐겁게 때론 심각하게 읽고서 마지막에 또 배시시 웃어 버렸다. 이런 말이 되내이면서. "오~ 김영하를 모국어로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서만 읽다 지쳐버린 나.)

 

 

2. <살인자의 기억법>의 혁신적 구성

 

일단, 가장 주목되는 건, 짧게 짧게 끊어지는 문단이다. 어떤 문단은 달랑 한 문장인데, 초반엔 약간 어색했다. 이런 의심까지 했다. "어라, 분량 확보를 위한거 아냐? 왜 이렇게 끊으셨을까-_-" 하지만, 읽다보면 알게 된다. 이런 구성이, 알츠하이머 환자의 파편적 기억을 상징하는 것이란 걸. 더욱 놀라운 건, 문단이 짧게 짧게 이어지더라도 이야기의 흐름이 전혀 끊기지 않고, 도리어 살아 넘실댄다는 점. 가히 [김영하 매직]이라고 불러도 될법한 이것은, 김영하가 아니면 불가능한 것이다.

 

 

3. <살인자의 기억법>은 SF ??

 

이야기 중반부터 SF로 읽혔는데, 이 또한 엄청난 충격이었다. 자세히 보자. <살인자의 기억법>은 병수가 보고 느낀 것이, 병수의 관점에서 이야기 되기에, 서술된 내용이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 한마디로, 쓰여져 있지만 그대로 믿을 수 없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쓰여있는 사실이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

 

[개]를 통해 이야기 해보자. [개]는 초반부터 결말을 암시하는 핵심소재이다. 병수는 [옆집 개]가 마당에 똥을 싸고 짖는다며 욕설을 하는데, 은희는 그 개가 [우리집 개](p.43)라고 한다. 병수는 은희에게 집에 도둑이 들었고 개까지 없어졌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은희는 원래 [집에 개가 없다.](p.85)고 한다. p.125에서는 은희에 의해 부정되었던 개가 다시 등장한다. 이처럼 [개]는 존재하면서 존재하지 않고, 우리집 개인 동시에 옆집 개이다. 이런 개방성은 SF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예컨데, 필립 K.딕의 <유빅>에는 '반프리콕'인 패트(패트리샤 콘리)란 인물이 등장한다. 패트는 시간을 역행할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과거로 돌아가서 현재를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미래 통제능력)을 갖고 있다. 현재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서술된 사실일지라도, 패트에 의해 곧바로 부정되어 존재하지 않는 사실이 될수도 있다. 따라서, 독자는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대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이는 <살인자의 기억법> 역시 마찬가지다.

 

 

4. 알츠하이머가 아닌, 다중인격의 발현 가능성

 

병수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는 장면(p.13)에 은희가 등장하기에, 1) 알츠하이머 자체를 공(空)으로 보아, 알츠하이머가 아닌 다중인격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2) 은희는 XXXXX로 실제로 함께 병원에 갔고, 병수가 착각했을 뿐이라고 보면, 알츠하이머는 공(空)이 아니고, 알츠하이머에 의한 다중인격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 (2번 해석론이 주류일 것) (하단 보충설명 참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병수에 의해 그려지는 은희의 모습이다. 왜 병수는 은희를 창조했을까? 1) 은희를 병수의 또다른 모습 즉 병수의 유년시절 자아로 볼 수도 있고, 2) 먼저 죽은 누이에 대한 기억이 은희로 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3) 아버지와 함께 살해한 어린아이(p.143)에게 병수는 무의식적 죄책감을 갖고 있었고, 이것이 은희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 살해당한 아이의 이름이 '은희'(p.143)임을 감안하면 3)해석이 유력하다. (물론, 1) 2) 3)이 종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5.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과의 연관성

 

영화 [장화, 홍련]과 <살인자의 기억법>은 상당한 연관성을 갖는다. 영화 속 수미(임수정)와 수연(문근영), 두 자매는 새엄마 은주(염정아)와 갈등하고 중후반까지 격렬하게 대립각을 세운다. 3인의 존재는 너무나 생생해 의심의 여지가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수연과 은주는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 인물들의 갈등은 수미가 수연과 은주의 인격을 창조하여 벌인 1인3역의 1인극이었던 것이다. (하단 보충설명 참조)

 

<살인자의 기억법>의 병수는 1) 지켜내야 하는 은희 2) 은희를 노리는 살인마 박주태 3) 끈질기게 추격하는 안형사란 인물에 둘러쌓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병수의 머리속에서 재창조된 인물이다. 즉, 존재하지 않는 인격을 (재)창조하고, 원맨쇼를 벌인다는 점에서 병수와 수미는 완벽히 일치한다.

 

 

6.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어야 하는 이유!!!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고 나서, 뭔가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자기전에 '이런 내용을 쓰면 어떨까?'라며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의외로 SF적인 내용을 해석하려고 필립 K.딕의 여러 작품을 다시 읽었다. 영화 [장화, 홍련]도 다시 한번 봤다. 읽어서 즐겁고, 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소설처럼 훌륭한 소설은 없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으며 작가의 숨소리를 느꼈다. 이는 모국어로 읽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작가 김영하의 존재는 한국어를 쓰는 이들의 영광이자, 축복이다. 번역서가 아닌, 우리 작가의 소설에서 실로 오랜만에 큰나큰 만족감을 느꼈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고전 반열에 오르는데 걸림돌은, 오로지 시간의 흐름뿐이다.

 

 

 

 

 

 

 

 

* 보다 쉽게, <살인자의 기억법>의 장점 중 몇 가지만 열거해 보겠습니다. 1) '재미'라는 소설의 기본에 충실하다. (한마디로 무지 재밌다^_^) 2) 혁신적 구성과 충격적 반전. (일본소설의 왠만한 반전은 명함도 못내밈) 3) SF적 향취 (김영하 작가에게서 SF의 향기를 느끼다니, 황홀함ㅋㅋㅋ) 4)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열린 단초들. (예를 들어, [개], [박주태] 등)

 

 

* 4번 항목에 대한 보충설명.

 

뭐낙 직접적인 스포일러라, 말미에서 추가설명 합니다.

 

필자는 '다중인격의 발현'이란 점은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 들입니다. 물론, 은희는 사회복지사를 딸로 착각한 것이지만, 그려지는 은희의 모든 모습이 사회복지사의 그것은 아닙니다. 즉, 현재 존재하는 사회복지사에 병수가 만들어 낸, 자아가 겹쳐졌다는 것이죠. 결국, 병수는 1) 사회복지사를 바탕으로 은희라는 인격을, 2) 형사 박주태에서 살인마 박주태 인격을 만들고, 3) 자신의 쫒는 추격자의 인격으로 안형사를 탄생시킵니다.

 

* 5번 항목에 대한 보충설명

 

[수연과 은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서술은 배경이 되는 시골집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수연과 관련, 수연이 수미가 창조한 인격인지, 실제 시골집에 머무르는 유령인지 견해가 분분함을 밝힙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