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혼
배명훈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청혼>은 우주 출신 장교가 지구인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연애편지이자, 진실고백이고, 청혼이자 유언장이다. 한편으로 장시(長詩)를 읽는 듯한 느낌도 받았다. 예쁜 일러스트와 어울려 마치 '한편의 예쁜 시집'을 손에 뒤고 있는 듯한 느낌까지.

 

하지만, 다음 두 가지 점에서 충격이었다. 첫째, <청혼>은 기대했던 우주인과 지구인의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둘째, 배명훈 작가의 작품임에도 따분하고, 지루하다.

 

두번째부터 보자. 외형상 연애편지이다 보니, 어투는 '~했어, ~놓여있지 뭐야'같은 구어체다. 시종일관 구어체가 이어지는데, 하나의 호흡으로, 하나의 어투로 끝까지 이어지다 보니, 따분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내용은 '버글러의 모순'같은 개념조차 난해한 것. 배명훈이란 이름만으로도 열광할 준비가 된, 자칭 SF매니아에게 이런 지루함은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구어체의 호흡을 끝까지 따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데, 여성시점을 추가해 핑퐁식으로 '남자-여자-남자-여자' 구성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한다.)

 

첫번째를 보자. 처음 책소개를 보고, 우주인과 지구인의 시공을 초월한 사랑이야기를 상상했다. '우주선에서 지구와 별을 바라보며 키스를 하겠지? 무중력상태에서 우주 유영을 하면서 두 손을 꼬옥 맞잡는거야. 아 두근두근. 이런 건, 배명훈 아니면 못하지ㅋㅋㅋ'. 하지만, <청혼>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아쉬운 것은 청혼의 상대방인 여성이 일방적 서술속에서만 존재하기에, 존재감 제로! 모호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감동적이어야만 하는 마지막 장면은 붕 떠버리고, 감동도 반감된다. 사랑이란 건, 혼자 하는게 아니다. <청혼>의 마지막 장면은, 혼자 울고, 고뇌하다 마지막에 시선을 제3자에게 돌리더니 "어때 감동적이지 않아?" 이러는 느낌? 손발이 오그라 들었을 뿐, 전혀 감동적이지 않다. (p.21같은 데이트 에피소드를 추가하거나, p.130같은 만남에 살을 붙여서 '청혼'의 대상인 지구인 여성을 생기있는 존재로 부각시켰다면, 좋았을 것이다.)

 

내용은 적군과 아군의 우주전쟁이다. 여기서는 2가지가 핵심인데, 하나는 '적 함대의 정체가 무엇인가?'라는 의혹. 다른 하나는 [데 나다 총사령관 VS 리델 감찰군 사령관]간 군내갈등이다. 리델 원수가 음흉하게 그려지는데 반해, 데 나다 장군은 참군인 그 자체다. 데 나다 장군의 마지막 행동은 인상적.

 

허나, <청혼>의 전쟁장면은 지루하다. 신무기나 함선에 대한 전제서술이 부족해, 전쟁묘사에 몰입할 수 없으며, 전쟁장면에 긴장감이 전혀 없다. 작가는 전쟁장면을 보충해 중편으로 개작하고, 그 후 장편으로 만들었다는데, 그냥 단편인 게 나았다. 정말 장편으로 쓰고 싶었다면, 남자주인공에 대한 상세서술(군내에서 현재위치에 이르기까지 과정, 지구인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 계기 등), 남자와 여자가 연인이 된 과정 및 연애감정, 신무기나 함선, UES(궤도연합사령부) 대한 상세설정등이 필요하다. 경장편 정도인 지금 분량으로는 설명은 설명대로 안되고, 단편같은 임팩트도 없다.

 

<청혼>을 읽으며, 'SF가 가미된 사랑이야기란, 정말 쓰기 힘든 것이구나.'란 사실을 알았다. 한국 SF의 희망인 배명훈 작가의 작품을 찬양하지 못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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