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의 민족서사시 <샤나메>에 따르면, 보르주야는 호스로 왕에게 인도 여행을 허가해 달라고 청한다. 시체 위에 뿌리면 죽은 자를 살릴 수도 있다는 마법의 산에서 나는 약초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인도에 도착한 그가 만난 현인은 그 이야기 속의 시체가 '무지'를 가리키고, 그 약초는 '낱말 words'이며, 마법의 산은 '지식'이라고 말해주었다. 무지를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책에 담긴 낱말뿐이므로, 보르주야는 <판차탄트라>를 갖고 돌아왔다. (82)

 

 

어쨌든 이 마약 은유가 어디서나 쓰이는 언어적 상황은 이런 정크푸드와 디저트를 중독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이 우리 문화에 얼마나 깊이 각인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식품을 탓함으로써 튀긴 음식이나 설탕 범벅의 스낵을 먹는 자신들의 죄와 자신들을 분리한다. "그건 내 잘못이 아냐. 컵케이크가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의 연구 또한 여성이 남성들보다 리뷰에 마약 은유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알아냈는데, 이는 건강식품이나 저칼로리 식사에 적응하라는 압박이 여자들에게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197)

 

 

아이스크림, 젤라토, 소르베, 셔벗, 레모네이드, 소다수, 민트 줄렙 (마멀레이드는 말할 것도 없고)은 모두 중세의 여름 시럽과 무슬림 세계의 샤르바트의 후손들이다. 내가 어릴 때 캘리포니아 교외에서 여름날 그 가루를 한 숟갈 듬뿍 떠서 물에 타 마시던 현대 인스턴트 음료의 연원도 5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초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노점상을 거쳐 16세기 터키와 페르시아의 노점상에게 닿는다.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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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5-05-03 0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약 은유에 대한 분석 공감 돼요. 특히 여성이 남성들보다 리뷰에 마약 은유를 더 많이 쓰는 경향이, 저칼로리 식사에 대한 압박이 여자들에게 더 심하다는 걸 암시한다는 내용이요. ^^

유부만두 2015-05-03 09:15   좋아요 1 | URL
그쵸? 책의 비유에 대한 분석이 재미있어요. 가격이 싼 음식은 마약에, 비싼 음식은 섹스에 비유한다더군요.
 

 

벌써 오월, 잔인한 死월은 다행히 저쪽으로 갔다. 갔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그런데 汚월이 되지 않아야 할텐데. 빅뱅의 컴백이 이리 위안이 될줄이야.

 

168/400.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한창훈)

한창훈 작가가 계속 쓰는 이상, 나는 읽을 이유가 있다. 눈물과 웃음을 이렇게 가슴 뻐근하게 버무려 놓은 작가는 흔치 않을 것이다. 읽었던 부분의 글도 예전의 <향연>을 읽을 때와 분위기가 다르다. 동료 시인과 가족들의 이야기가 특히 좋았다. 그리고 그의 다른 책들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69/400. 음식의 언어 (댄 주래프스키)

음식 이름의 유래를 따라가다 보면 인류의 문화사가 보이고, 동서양의 교류와 지배 피지배층의 욕망이 드러난다. 그리고 음식을 둘러싼 언어 (메뉴와 리뷰) 역시 음식과 먹는 행위 자체 보다는 인간 본성을 더 솔직하게 보여준다. 또한 음식 이름에 나타나는 경/중의 어감은 모든 문화에 공통되는 어떤 인간성을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불어로 참치가 "똥"으로 발음되는 걸 떠올리면 자꾸 웃음만 나왔다) 신문에서 본 이책의 리뷰는 주로 책의 1장, 메뉴에 나타난 경제적 차이에 집중하는데 사실 이 부분이 제일 재미 없는 부분이다. 메뉴의 예가 너무 길게 나와서 지루하다. 살짝 건너 뛰고 2장 부터 읽는다면 여러 재치있는 부분을 만나게 된다. 단지, 샌프란시스코가 중심인 책에서 중국이 동양의 한계이자 전부가 되어버리고 (저자의 부인이 중국출신이다) 페르시아/유럽-옛문화/근대문화-역사/문명 식으로 푸는 서술이 편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음식의 언어에 나타나는 공공의 법칙, ~가 아니다 라고 고집할 수록 그것을 의식한다는 것은 여기, 한국의 음식 언어에도 적용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즉, 값싼 식당에는 "잔반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라는 표어가 버젓이 벽에 붙어 있다. 잔반은 버리는 게 당연한데도. 게다가 "유기농 쌀을 이용한 한우 프리미엄 김밥"은 아무리 비싸도 어딘가 속고 속이는 느낌이 들고, 비싼 마카롱과 롤크림 케익의 인기, 값싼 음식이 맛있을 때는 '마약'에 비유한다는 점 등. 하지만 책 말미에 갑자기 공유된 인간성에 대한 존중, 운운은 성급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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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5-05-02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생강/진저 는 정말 다른 느낌.

수이 2015-05-02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덮자마자 다시 또 읽고 싶어지는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

유부만두 2015-05-03 09:16   좋아요 0 | URL
저도요. 그런데 아주 좋아서 독후감 쓰기는 어려운 책이에요.

수이 2015-05-03 10:46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 심정 ㅠㅠ 써야 하는데 어찌 써야할지 ㅠㅠ
 

마음이 복잡해서 책을 잡을 수가 없었는데 그래도 주섬주섬 몇 권 챙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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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1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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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9 11: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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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400.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옮겨 적어두고 싶은, 포토카피를 다시 카피해 두고 싶은 문장이 너무 많았다. 순간이 이야기를 품고 사진으로, 문장으로 선명하게 남는다. 한 번만 읽을 수는 없어 다시 꼭 읽어야하는 책.

166/400. 도련님의 시대2, 무희 편 (세키카와 나쓰오 글/ 다니구치 지로 그림)
1권에서 소세키의 이야기가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으로 어떻게 표현될까 궁금했는데 어쩌다 2권부터 읽게되었다. 다니구치 지로의 무심한듯 우직한 그림은 여전히 멋지다. 2권의 배경이 되는 1880~1920년대 일본의 개화기는 제국주의와 함께이고 우리나라의 비극이 벌어지는 시기이다. 일본, 일본인의 근본에 대한 탐구가 이 시리즈의 주제라는 세키카와 나쓰오의 글을 읽으니 등이 서늘하다.


167/400. 올 라인 네코 (한창훈)
한창훈 작가의 신간이 아직 배송전이라 대신 그의 단편을 읽었다. 모든 속박을 벗어 던지는 섬오빠의 사랑. 한작가의 소설은 언제나 음성 서비스가 되는 착각이 들지경. 읽는 동안 만큼은 주말 내내 내 마음을 짓누르는 고민을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황석영 작가의 해설이 1권보다 많이 심심해져서 실망이다. 단편을 또 요약까지 하시기까지. 그나저나 나으 올 라인은 당췌 네코가 안된당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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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2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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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21: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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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6 22:0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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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09: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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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17: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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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27 17: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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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400. 목사의 기쁨 (로알드 달)

164/400. 손님 (로알드 달)

 

로알드 달은 사악하다. 그의 어린이 소설에서 어른은 아이에게 잔인하게 굴고, 아이는 힘을 내서 어른에게 처참하게 복수한다. 악한 어른은 벌을 받고 아이는 대신 귀인 어른과 손을 잡는 식이다. 그러니 어딘가 찜찜한데 (왜냐, 나는 귀인보다는 악인 쪽의 어른이니....) 어린이는 안전하니 다행이란 식으로 급한 마무리. 어린이 독자인 막내는 깔깔대고 웃는 장면이 어른인 나에겐 불편했던 적이 많다. 그래서 로알드 달의 성인소설이 궁금했다. 역시, 어른들의 이야기에서도 그는 쉽고 재미있게 사악하다. 아직 두 편밖에 못 읽었지만 이솝이야기 같기도, 아라비안 나이트 같기도 한 이야기의 끝은 ... 좋은 게 좋을 리가 없잖아요. 그쵸? 어른이들은 다 살면서 봤잖아요. 그런데 이 성인소설에 등장하는 나쁜 주인공이 내뱉는 거짓말, 자화자찬, 인종차별, 금전주의....들이 역시나 찜찜하다. 그 모든 것에서 깨끗한 어른 독자가 있을리가. 그러니 그들이 당하는 상황이 우스꽝스럽더라도 이야기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면 혼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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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4-22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실 로알드 달의 이 책을 먼저 읽고서 그의 다른 책도 찾아 읽기 시작했어요. 어찌나 흥미진진하던지요. 사악한 달 아저씨!!ㅎㅎ

유부만두 2015-04-26 19: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어요. 주인공이 꼭 선인이지는 않아서 더 흥미로운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