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사각사각'의 추천을 듣고 읽고 시작했다. 작가 오테사 모시페그의 전작 '아일린'이 그닥 내 맘에 들지 않아서 읽기를 미뤘던 책이다. 


부모를 잃고 허무와 무력감에 빠진 이십대 후반 여자 주인공이 향정신성 의약품에 의존해 계속 현실 도피성 수면을 이어가다 ... 극한 경험을 계획한다. 잘나가는 중국계 예술가와 협업으로 석달 집안에 자의로 감금되면서 자신의 수면(약에 취한) 상태일 때를 기록하여 예술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이 마무리 되면 '바라건데' 정상으로, 어쩌면 예전으로, 원래대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살 마음이 들지 않을까, 아니라면 그때 빌딩에서 뛰어내리자. 


소설의 문장은 매우 빠르고 발랄랄라 흐르지만 내용은 끔찍하게 바닥으로, 나락으로 추락한다. 매사에 의욕이 없어 잠으로, 죽음으로 도망치는 주인공은 이미 이 수면을 행하고 있었다. 점점 독한 약을 먹게 되는데 이러다 자신의 엄마처럼 불행한 죽음을 맞이할 것만 같고 약에 취해 몽유병 환자처럼 돌아다니고 일을 저지르는 게 위험천만이다. 약에 취한 그 블랙아웃 동안의 '하이드'씨는 별별 일을 다 벌이고 다닌다. 다만 이번엔 계획적으로 건강하게(?) 끝을 정해놓고 해보자! 결심한다. 다행인건 생계 유지를 위해 일을 따로 할 필요가 없고 그녀를 채근하는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가 없다는 점이다. 친구 리바는 적당히 거리를 둘 수가 있다. (이 둘의 관계는 '폭스파이어'의 렉스와 매디와 매우 다르다) 주변인물들과의 관계도 알약 복용 처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주인공.


책 소개처럼 동면 계획하는 무모한 이십대 뉴요커의 블랙 코메디라고 보기엔 어두운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90년대, 그 시절에도 이미 올드해진 이야기들을 툭툭 시크하게 던지니 (90년대 말에 VCR을 고집하고 상담하는 정신과 의사도 유사과학 신봉자) 주인공이 어딘지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인 게 표가 난다. 시트콤 속의 패션너블한 부잣집 미녀 상속녀로만 보긴 애매.... 하지만 소란스럽고 정신 없는 90년대와는 매우 어울리긴 하다. 여기에 잔가지를 이리저리 뻗어서 연상작용으로 끌고 오는 이야기도 너무 많다. 언급하는 예술 이야기는 겉핥기 식이라 독자를 위한 배려인지 인물이 알맹이가 없다는 걸 말하는지 (둘다겠지) 한심하기도 했는데 비정상적인 관계를 고집하는 나이 많은 애인은 클린턴, (모니카 르윈스키가 성인용 컬러링 북을 냈더라;;;), 따따따 말 장난에 어쩐지 주종 관계인 주인공과 리바는 길모어 걸스와 프랜즈가 생각난다. 아무리 뉴욕, 젊은 독신 이야기에 자유분방한 사생활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이젠 이십 년도 더 먼 옛날 이야기다. 그러니 조금은 울적해진다. 2000년은 나에게도 새 희망과 절망, 불안의 삼박자로 미치고 팔짝 뛰던 해였다고. (난 나이퀼 까지만 갔었지만)  


갱생 동면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이 곤도 마리에 식이라 재미있기도 했고 석달 동면 (정확히는 봄방학?)에 규칙적 수면 (사흘;;;) 비타민과 운동도 챙기고 예전 우울증 시기와는 다르게 개인 위생도 신경쓰는 게 코메디 같다. 하지만 이거 어떤 수면유도 주사인지 ... 뉴스에 종종 나오는 연예인들 맞는다는 그 주사 비슷한 건데. 이렇게 석달, 백일쯤 갇혀서 미국인의 완전식 '피자'만 먹다가 커피도 끊는 새인간이 된다는 설정이 한반도의 곰보다는 나은 조건인 건 분명하다. 이렇게 해서 맞이하는 세상은 2001년 곧 911의 뉴욕이란 게 큰 아이러니. 


그리고 그 날. 그 일. 


Things are alive. She is beautiful. 이라고 되뇌이는 주인공의 마지막 몇 문장을 읽으면서는 여지껏 (그래 이건 과거의 일이고, 소설이고, 이렇게 씁쓸한 코메디로 쓰는게 이 작가의 스타일이야 라지만!) 재미있게 읽었지만! ....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고 말았다. 영어책으로 읽었으니 영어욕.

WTF 


그런데 지금, 거의 20년이 더 흘러서 미국 대통령이 트럼프다? 재선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55년 고1이던 매디는 동네에서 소문난 렉스와 친구가 된다. 특별한 자매. 몇 명이 더해서 피로 맺어진 진정한 자매로 거듭나기로 맹세한다. 우리는 하나다, 서로를 배반하지 않는다, 영원히 함께 한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세상이, 특히 남자 (새끼)들이 일을 망쳐버린다. 이 책은 그들의 '도깨비불' 같은 기록이다. 


나이가 지긋한 (아...오십이 그렇게 지긋한 건 아닌데 말이죠. 지긋지긋할 수는 있겠지만) 매디가 과거를 돌아보며, 그때의 기록을 정리하는 형식이라 매디의 목소리도 여럿이고 과거와 미래/혹은 현재?의 목소리가 겹치고 교차하면서 등장한다. 카리스마가 남다른 불꽃 같은 렉스의 목소리 마저 매디, 문제 학생이기엔 총명하고 책도 읽고 독설을 쏘아대기도 하는 매디 멍키와 겹친다. 매디는 렉스를 너무 사랑하는 나머지 렉스의 눈으로 그 시절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얼결에 독자는 그 둘 사이에 끼어서 그들과 함께, 천인공노할 남자들의 범죄를 (눈을 가릴 수도 없이) 목격한다. 둘은 한 사람 같은데 둘이 분리될 때, 중요한 일이 생긴다. 어른이 된 매디의 기록으로 만나는 옛날의 십대 소녀 (아, 이 단어 말고 다른 말을 찾고 싶지만)들 이야기지만 생생하게 몇십 년을 거꾸로 돌아가서 렉스의 숨결을 맡을 수 있다.낭만주의자 였던 렉스. 그래서 ... 


렉스와 그녀의 폭스파이어는 폭력의 희생자를 위로하고 가해자를 응징한다. 하지만 정의실현이 그들의 최고 가치라기 보다는 '우리끼리 살아남자'가 더 급급했던 불우한 환경의 십대들이었다. 이들은 주로 몰염치한 남성 가해자를 타겟으로 하는데 처음은 만만하고 하찮은 변태 남자 선생, 그 다음엔 친척 아저씨, 그리고 점점 그 상대가 커진다. (어쩐지 이 패턴은 동서고금 차이가 없어보인다) 급기야 가장 상징적인 최강의 상대, 백인 남성 기업인을 대적하게 되면서 (그 시도부터) 폭스파이어는 버거워 무너지기 시작했는지 모른다. 무너진건가? 이 결말은? 


전반부의 챕터별 응징 시리즈는 통쾌하기도 식상하기도 했는데 (이름에서 불꽃단이 떠올랐고) 피해자 상황 묘사가 살벌할수록 소설을 읽기도 힘겹다가 막바지에선 의외로 김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매디, 어디 말해봐. 폭스파이어는 그래서 있긴 했던 거야? 남자를 그토록 증오하고 적대시하면서 은근 '아버지'를 그렸던 건 아니야? 너희들이 자매들 끼리의 연대의식으로 뭉친 건 경우에 따라서, 기분이나 필요에 따라서 였잖아. 왜 여성 어른들을 영입해서 더 안전한 조직을 만들지 않았어? 너흴 조금이라도 이해해줄 여자 어른이 없었다는 게 제일 화가나. 너희 사정이 딱했고 속상하기는 한데, 글쎄 처음부터 너흰 무덤을 파고 들었다는 기분이 들어. 어른이 된 너희들 모습을 봐봐. 


행동하는 주인공과 기록하는 베스트 프랜드, 60년대 이탈리아에 릴라와 레누가 있었고 50년대 미국엔 렉스와 매디. 이토록 자학적으로 세상의 악(을 내뿜는 남자 으른들)에 덤비는 십대 소녀들. 어째 주인공은 폭스파이어 멤버들이 아니라 일련의 사건들, 50년대 미국이었는지도 모른다. 결말은 다행스럽기도 아니기도 한데, 폭스파이어에 찬물을 뿌려 꺼버린 것 같다. 





2013년 영화보다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1996년 영화 '폭스파이어'가 더 궁금하다. (하지만 렉스가 남자랑 저렇게 벗고 포옹하진 않는다고!!!!) 예고편만 봐도 2013년 영화가 책과 더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두 영화에서의 두 렉스는 외모로 보면 소설 속 매디로 보인다. 둘다 다운로드 하는 데가 없어서 품절된 dvd를 검색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험담보다 칭찬 하기가 더 어렵다. 내 성격이 비뚤어진 탓인지도 모르고, 글 재주가 없어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좋은 책은 "아 좋아요" 말고 더 세세하고 꼼꼼하게 말하기가 어렵다. 그래도 해보련다. 


이 책 정말 재미있고 매혹적인데 표지 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층층이 쌓아 두고 있어서 각 장을 짚어가는 맛과 멋이 꽤 좋다. 


먹는 음식, 주말 음식을 준비하는 태도와 그 재료 (를 구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사회 경제적 위치와 취향을 분석하고, 음식을 통제하고 혹은 통제 당하는 방식과 그에 대항하는 인물의 심리를 읽는다. 


이국적인 식재료, 낯선 향과 맛이 어떻게 삶과 죽음을, 단조로웠던 한 노인의 인생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또한 미식계에서는 맛 보다 우위에서 점령했던 말이 허세를 벗고 순순히 맛에게 자리를 내 줄 때 비로소 표현되고 드러나는 진짜가 무엇인지 .... 책에서 글과 상상으로 함께 맛보게 해준다. 하지만 비싼 식재료, 상류층을 덮어놓고 따라하는 스노브들이 진정한 문화인이 아니다. 때론 소박하고 값싼 제철 음식이 진짜 맛과 멋, 풍류랄까, 그런 걸 드러내는 법이다. (런던의 고급 주택에 사는 신경외과의가 마신다면 그것이 일이 만원 대 와인이라도 무시할 순 없겠지, 라는 꼬인 생각도 든다. 문화의 대상은 그 향유자의 경제 사회적 위치에 따라서 품평되니까) 


컴포트 푸드, 소울 푸드도 생각하고 함께 읽는다. 엄마 잃은 아이가, 커서도 그 가슴 허전한 청년이 맛있게 먹었던 음식. 때론 우유를 담뿍 머금고 녹아버리는 카스테라, 실은 그 카스테라로 변해버리는 사람들 이야기도 나온다. 몰랐네, 이런 이야기인줄. 푸드 포르노가 넘치는 요즘, 먹고 만들고 상상으로 과식과 괴식을 포식하는 시절을 연 것은 헤밍웨이였다고. 하긴 '노인과 바다'는 청새치와 노인의 밀땅 (생과 사를 건) 연애이기도 하지만 선상의 라임을 짜 뿌리고 먹는 스시 먹방으로도 읽힌다. 음식에 사랑을, 그 고백을 담는데 그게 너무나 보편적인 '가츠동'일 때도 있단다. 이걸 너와 함께 먹고 싶다! 이 맛을 너의 혀에도 얹어 주고 싶다, 는 그 마음. 


몸과 살, 그리고 피. 세계 각국의 육회 이름을 짚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함께 읽고 허삼관 매혈기를 읽으며 간볶음의 철분을 따지다가 중국의 매혈에서 프롤레타리아의 피를 뽑아먹는 자본가, 또 2000년대 중국의 의료산업이 붐을 일으키며 성행했던 매혈, 또 비위생적 관리로 많은 인구가 AIDS에 감염되었고 그 사실을 폭로한 의사는 나라를 떠나야 했던 일도 이야기한다. .... 입가심으로 커피. 


아마 시리즈로 세 권쯤 나왔을 수도 있을 이야기를 이 한 권에 야무지게 담았다. 저자는 문학 박사까지 공부하며 읽고 사유하던 그 오랜 시간 동안 쌓아왔을터다. 이렇게 요약하 쓰는 이유는..... 여러 서재 친구들도 읽어보시라고요. 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이버 2020-09-16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께서 추천글을 두 번이나 쓰셨으니 보관함에 살며시 담아 봅니다ㅎㅎ

유부만두 2020-09-17 06:19   좋아요 1 | URL
네! 그리고 살며시 읽어보세요. 파이버 님 입맛에도 맞기를 바랍니다. ^^

2020-09-16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06: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9-17 14: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필립 K. 딕 단편선 표제작의 이 짧은 이야기는 영화 <토탈 리콜>로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 졌다. 잠재의식인지 욕망인지 계속 꿈 속에 나타나는 그 여인, 그리고 그 곳, 화성! 나는 화성에 가야만 한다네, 라고 평범한 회사원이 결심하고 목돈을 들여 기억을 생생하게 뇌에 담아주고 '진짜' 기념품도 준다는 '토탈 리콜'로 간다. 그리고 알아낸다. 꿈이 진짜고 지금의 자신은 만들어진 설정의 인물이라는 것을.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만나는 그 척박하지만 왠지 정감 넘치는 화성 풍경들이 생각난다. 그 모래폭풍, 미세먼지의 대기. 뮤턴트들의 의리. 그리고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를 되뇌이던 머리 큰 영웅. 


책에선 영화의 그 대단한 화성 '연대기'는 건너뛰고 이 문제의 남자를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고심하는 '회사'에 집중한다. 실은 주인공에겐 화성의 '기억' 말고도 더 중요한 진짜 '판타지' 혹은 레종 데트르가 있었다. 이 근원적인 판타지, 어쩌면 맨 인 블랙! 


<토탈리콜 2012>는 지구/화성 대신 영연방? 영공화국?이 나오고 그 반대쪽 (문자 그대로 지구의 핵을 지나 반대쪽)의 콜로니, 식민지가 있다. 서양-동양의 대칭 요소는 다 보여주면서 위-아래로 설정했다. 콜로니엔 동양 문자와 언어, 문양과 건축적 특징을 다 섞어서 담아놨다. 한글과 우리말도 들리고 한자와 용 문신은 흔한 배경이다. 야매 분위기가 풍기는 토털리콜 서비스의 사장은 존조가 연기한다. 동양 얼굴이 많은 이 곳을 노동력 시장, 하층민, 그리고 기계로 대신 쓸어버릴 곳으로 설정한 것이다. 이토록 개념 없는 영화;;;; 


소설에서 나오는 상체 탈의 (FEMEN 아님!) 토탈리콜 안내 여직원 대신 영화버전에서 두 번 모두 기형 가슴을 가진 여성이 나온다. 가슴에의 집착에 불쾌한 기분이 든다. 또한 두 명의 중요 여자 캐릭터가 서로 구별이 되지 않는 헤어스타일과 얼굴 모양으로 싸우는데 그들의 싸움은 진영 싸움이라기보다는 남자 하나를 사이에 둔 캣파이트 정도로 축소되어 지루해졌다. 과거를 찾으러 주인공이 옛 집으로 (콜로니의 집과 대비되는 색과 습기) 찾아갈 땐 본 아이덴티티과 겹쳐 보일 정도로 영화 전체가 별 특징이 없다. 


필요할 때 단 시간에 비용과 노력을 줄이면서 생생한 경험(의 기억)을 산다, 는 설정이 흥미롭고 꽤 솔깃하다.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갑자기 무술 실력을 다운로드 하는 장면도 생각났고. 집안에서 VR로 세계여행을 하는 상상도 해봤....지만 진짜는 아니잖아. 그럼 뭐하겠어, 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18년 10월 5일, 리디아는 만 열한 살이 되었다. 가족과 함께 '처음으로'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꿈에 부풀었지만 도시를 휩쓰는 전염병 "스페인 독감"을 피해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 대신 생일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이제 열한 살, 성숙한 사람이 된 기분으로 매일을 기록하기로 한다. 하지만 그 일주일이 지나기전 리디아의 인생, 가족 모두의 인생이 흔들리고 무너진다. 


"기억전달자"의 작가 로이스 로리가 미국역사 프로젝트로 쓴 이 이야기에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해서 실존과 가상의 인물이 함께 등장한다. 갑작스럽게 가족을 잃은 리디아는 고아원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여느 고아원이 아니라 특별한 종교 단체 the Shakers 셰이커 교단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17세기 프랑스에 그 기원을 두고 18세기 영국에서 퀘이커 교단과 연대했으며 1774년 미국으로 건너와 미국 동부에 정착한 종교단체다.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가구나 농장 과일, 허브 등을 생산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그들의 신은 '어머니'라 성평등의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고. 엄격한 규율과 남녀 분리로 (종교의 창시자 앤 리가 결혼 제도를 장려하지 않는다.) 노동과 신앙 생활로 지상에 완벽한 낙원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했다. 예배 중 부르는 찬송가 제목이 바로 "Like the Willow Tree", 버드나무 처럼 겸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노래한다. 


이 책은 1918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리디아가 겪는 새로운 생활을 따라간다. 가족과 이별하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는 과정. 리디아가 읽으며 위안을 받은 책은 역시나 전염병으로 가족을 잃고 낯선 곳에 맡겨지는 메리의 이야기 <비밀의 화원>이다. 제2차 대전 당시 가족을 잃고 수녀원에 맡겨진 어린이의 이야기, 서보 머그더의 <아비가엘>이 연상되기도 했다. 리디아의 상실감과 불안은 상상 이상이지만 이 얇은 책 속의 짧은 기간 동안 아이는 다행스럽게도 금세 안정을 되찾는 듯 보인다. 로이스 로리의 다른 이야기들 보다는 '실제 역사'에 더 치중해서 보여주고 설명하려는 의도가 많다. 아쉽게도 리디아는 덜 주체적으로 행동하고 대신 차분하게 말, 기록 한다. 게다가 그 기록은 점점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셰이커 공식 기록이 된다. (그래서 개인 소지품이 금지되는 곳이지만 일기장은 허락 받는다) 이 이야기는 11세 어린이가 겪은 힘든 시간의 성장담이라기 보다는 아이가 들어있는 옛 기록 사진을 보여주는 셈이다. 덜 생생한 로이스 로리. 


낯선 종교단체와 전염병 이야기라니 이런 저런 연상되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어려운 시절, 가족 잃은 어린이들을 거두어 먹이고 가르치는 걸 나라와 사회가 하지 못하던 그 시절에 종교단체가 나서서 (아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고 일방적으로 가치관을 주입하면서) 이들을 보호했다니 뭐라 평가하기 전에 다행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또한 이 소설의 시기에는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고아들을 기차에 태워 보내는 '고아열차'도 있었다. 서부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교육과 보살핌이 없던 곳으로 (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의) 아이들을 보냈다. 전쟁과 전염병, 가난과 기근에 제일 먼저 내몰리는 것은 어린이들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 아이들은 살아갈 힘, 친구, 도움의 손길을 만난다. (적어도 청소년 소설에서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지 않는 셰이커 교단의 특성과 세상의 변화 때문에 셰이커 교인은 책출간 2011년엔 3명이라고 나와있지만 2017년 기록에는 2명만 남아있다고 한다. 그들은 또한 세탁기를 발명한 고마운 사람들이기도 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0-09-15 0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로이스 로리 책 읽었는데 이 책 완전 신간이군요! 아주 따끈한 신간입니다!

유부만두 2020-09-15 09:47   좋아요 0 | URL
이 책은 2011년에 나왔는데 새 표지 에디션은 올해 나왔어요. ^^

단발머리 2020-09-15 09:51   좋아요 1 | URL
어머나! 오래된 신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