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의 소녀시대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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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훌륭한 엣세이스트... 라고 어느 블로거가 소개글을 올렸다. 그래서 구입했는데, 친구는 너무 가벼웠다고해서 열지않고 한참을 묵혔던 책이다.  

초등 5학년부터 중학 2학년까지 말도 통하지 않는 프라하, 그것도 소비에트 (1960년대 초반이었다) 국제 학교에서 소녀시대를 보낸 일본인 요네하라 마리의 추억담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그후 일본에 돌아갔고, 러시아어 통역관으로 열심히 일하며 지냈다. 삼십년이 지난 1995년, 저자는 추억을 안고 세 친구를 찾아 나선다. 체코에 살던 그리스인 리차는 서독에서 살고 있었고, 엉뚱한 거짓말로 친구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던 아냐는 루마니아의 역사를 뒤로하고 런더너가 되었다. 제일 가슴아픈 기억을 남겨주었던 친구 야스나는 하얀도시 베오그라드를 지켰다.  

파란 하늘의 그리스, 빨간 거짓말의 루마니아, 그리고 하얀 유고슬라비아. 

일본의 공산당원 아버지를 둔 저자의 어린 시절은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녀의 소녀시대 친구들이 격동의 세월을 지난 이야기는 (미안하지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있었다. 그러면서 자꾸 드는 생각은, 한반도에서도 그 못지않은 눈물과 피가 흘렀다는 것이다.  

순수하게 열다섯 시절의 친구를 찾아나서고 눈물의 재회를 하는 것, 그리고 지난 세월을 함께 추억한다면 시시한 수필이었겠지만, 삼십년 동안 벌어진 동유럽 격동의 세월이 친구들의 인생과 함께 펼쳐지기에 - 그리고 저자의 침착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쓰여져 있기에 - 읽을 맛이 났다. 그런데... 저자의 특권자 의식이랄까, 그녀의 고상한 목소리가 종종 거슬리기는 했다. 먼 동유럽말고도 일본 내에서, 그리고 아시아의 생생한 역사에대해서는 별 고민을 (충분히 연결이 될만도 하건만) 안 하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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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개정판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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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홉살의 이야기이라지만 스물아홉 작가의 눈과 손이 빚어낸 이야기다. 막연한 추억담도 아니고, 간간이 웃음도 버무려져 있지만, 아홉살이라기보다 그냥 우리들 모든 세대들의 인생이야기다. 인생.  

바로 전에 읽은 열다섯 소년, 소녀 들의 이야기는 흡사 그들의 성마른 눈으로 쓴것같은 짧은 호흡의 사춘기 단편집이었는데, 아홉살 꼬마의 장편은 그 흐름이 훨씬 여유롭다. 중학생 필독 도서에 올라있는 이 책은 하지만 뭐라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꼬마 니콜라 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덮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몽실언니 처럼 가슴을 찢어 놓지는 않는데, 라임오렌지 나무의 제제가 자꾸만 연상되면서, 우리들의 신부님의 시리즈물의 어른들 세계의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그래도, 뭔가가 다르다......그게 뭘까. 

중간중간 여러 못난 어른들 이야기에서 선을 넘지 않으려는 작가의 노력이 고마웠다. 아무리 힘든 인생이라지만 꼬마네 식구들은 서로 사랑하고 있다. (작위적일지 몰라도 이런 안전장치가 그리웠다) 그리고 때때로 발칙해지는 주인공 꼬마도 이쁘다. 아홉살, 열아홉, 스물아홉, 서른아홉.... 아직 인생에 대해 배울 것이 많이 남았다. "야아도!" 도, 골방과 자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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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04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9 1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창조적 책읽기, 다독술이 답이다
마쓰오카 세이고 지음, 김경균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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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는 저자 (정확하게는 대담의 형식을 빌어서)의 자리에서 독자를 만나지만 마쓰오카 세이고는 독자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야기 한다. 그에게 붙은 '독서의 신'이라는 호칭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그는 '천일천책' 프로젝트를 세워서 이미 목표를 초과 달성했고 그가 읽어내온 다방면의 책들은 일곱 권의 전집으로 출판되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에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또 읽는 과정 중에 즐거움을 찾는다. 저자가 주는 내용을 독자의 취향과 입장에 따라서 재구성 하면서 (편집하면서) 읽는 능동적, 그리고 책제목이 말하는 대로 '창조적'인 독서 태도가 중요하단다. 절대 중심내용이나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음식이나 옷을 대하면서 자기 취향에 맞도록 선택한 것처럼 자유롭게 즐겨야 한다는 것.   

특정한 분야나 장르의 책을 대할 때 갖는 그의 습관들은, 어째 낯설지 않았다. 나는 미야베 미유키는 꼭 맥주를 마시면서 읽고, 하루키는 홍차를 마시면서 읽는다. 이렇게 책읽기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반갑고 즐겁다. 다른 독서록 책들과는 달리 그의 대단한 독서 이력이 나를 주눅들게 하지는 않았다. 그저 경이로울 뿐. 

세이고의 '천일천책' 프로젝트에선 매일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되, 연달아 같은 장르, 같은 출판사, 같은 작가의 책은 피하는 원칙을 세웠단다. 그가 끙끙거리면서 양자역학이나 물리학 책을 읽는 장면을, 독서 에너지를 재충전 하기 위해 중간 중간 시집을 여는 장면을 생각해 본다. 요즘 너무 안이하게 익숙하고 문학만을 읽는 내 독서 패턴을 반성했다. 그리고 아직 열리지 않고 있는 저 많은 책들을 쳐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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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천염천 - 거센 비 내리고, 뜨거운 해 뜨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서영 옮김 / 명상 / 200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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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소피아 성당을 꼭 찾아 가리라, 고 생각만 하고 있다. 하지만 터키는 그저 먼곳이니, 아테네의 박물관을 꿈의 여행지 목록에서 지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언젠간 가보고 싶지만, 쉽게 가지 못할 곳. 

하루키는 그런 먼 두 곳 (그 두 나라에서도 관광객들이 찾을듯 싶지 않은 곳들만을) 의 힘든 일정을 덤덤하게 적어내려갔다. 전에 <먼 북소리>와는 사뭇 다른 느낌인건 왜일까. 세상을 등지고 척박한 산 등성이에 자리잡은 수도원들을 찾아가서 갑작스런 비에 젖은 몸으로 (하루키 표현에 따르자면, 종교에 귀의하기 일보 직전인 상태에서) 찡한 우조를 마시고, 곰팡이가 핀 마른 빵을 물에 불려서 씹고, 흙바람이는 뜨거운 터키의 길 가에서는 뜨거운 차이를 들이켰다.  

역자의 후기에도 언급되는 것처럼 하루키는 많은이들에게 젊은날의 책이다. 하지만 이번 '고행기'는 그저 젊은 날의 쿨함으로 지나기엔 아까운 무언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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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톱이 자라날 때 문학동네 청소년 4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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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난 밉살스러운 아이였어요. 중학교 입학 후, 구 교복 시대의 마지막 세대에  검정색 교복, 나팔 치마, 커다랗고 어깨를 덮는 하얀 칼라를 달고 네모난 가방을 들고 다녔지요. 양갈래로 땋아내린 머리에 앙 다문 입술. 그게 나였어요. 아, 그래도 사진은 칼라였답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가면서 내 몸에 닿는 사람들, 눈에 거치는 사람들, 내 주위에 숨쉬는 것들이 다 싫고, 밉고, ... 그러면서 혼자있기는 무서웠어요.  

점심시간이면 후다닥 점심을 먼저 먹고 고등학교 언니들이 공부하는 학교 도서관으로 뛰어가서 앉았더랬지요. 그 틈에 고고하게 앉아서 앙드레 지드를 읽는거예요. 등 뒤에 꽂히는 언니들의 눈총이 따갑지요. 쟤, 뭐냐?  

어느덧 나도 그 언니들 처럼 자라서 고등학생, 또 대학생, 어른이 되었어요. 그리고 내 큰 아이의 입술 위로 거뭇 거뭇한 그림자가 생겼어요. 아직은 어벙한 교복을 입고 등교길에 나서는 내 아이의 모습 위로 그 옛날 고집불통 제 모습이 떠올라요.  그 땐, 나도 그랬다, 고 아이와 말을 하려고 보면 그 아이의 눈동자에 언뜻 언뜻 분노가, 아니 비웃음 같은 게 비치는 것 같아요. 그땐 입을 다물고 문을 닫아야지요.  

여기 이 책 속에서 만난 아이들도 다르지 않아요. 내 속을 들킨 것 같아서 흠칫 놀랐을 뿐이에요. 여고괴담이 묻어나는 하얀 벽, 그저 벽처럼 남의 말을 들어주고, 선생님이나 아이들의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던 아이들이 사라졌다가 뒤늦게 그 존재를 느끼는 민희를 그 속으로 초대하지요. "너도 이제 혼자구나." 등을 돌려 눈을 맞추기가 이리 힘들었을까요. 왜 우리는 계속 견주고 미워하고 무서워했을까요. 다 똑같은 마음이었을텐데.
 
쌍둥이로 자라면서 언니에게 한없는 질투를 느꼈던 지영이는, 주영이가 되면 행복할거라고 믿었어요. 엄마와 아빠를 다 보내놓고 삼촌과 선생님들도 속이면서, "난 네가 되고" 만 이루어 진다면, 주영이는 없어지겠지만 지영이도 사라지는 걸 그 아이는 알까요?  

경제적으로 무능한 부모와 함께 반지하 연립주택으로 이사하면서 만나는 곰팡이는 눅눅한 벽 뿐이 아니라 소녀의 아빠의 팍팍한 목, 동생의 여린 살, 엄마의 얼굴에도 번지고 있지요. 어디로 도망쳐도 할 수 없어요. 그저 내가 붉은 곰팡이 처럼 악착스레 살아낼 수 밖에요. 아마 주인공 아이도 어른이 된 다음에, 엄마처럼 곰팡이 기미를 얼굴에 쓰고 목소리를 높일지도 몰라요. 너무한가요? 하지만  도망갈 수가 없어요. 영화 '링'의 복수처럼 저주는 계속되는 기분이에요.  

얄미운 동급생의 얼굴을 손톱으로 내리 쳐서 생채기를 내고, 두 손을 쫘악 펴서 내 힘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아, 저에게도 있었다구요! 다만 나는 얄궂은 책상만 볼펜으로 콩콩 찍어서 곰보를 만들었지요. 아이들이 내 뱉는 욕설들은 둥둥 떠다니면서 전염이 되나봐요. 욕을 안 쓰면 욕을 먹는거야. 그게 싫으면 욕을 뱉고 괴물이 되어야해. 손톱이 자라날 때 괴물로 변하는 유지를 보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어요.  

괴물이 아니라면 아주 독살스러운 가짜가 되는 방법도 있어요. 나 혼자라도 나에게 둘! 하면서 손가락을 고누(다) 고 그 일을 해 내는 거예요. 그럼 난 새롭게 될거예요. 지금의 나는 다 필요없으니 아무리 아프더라도 잡아 먹히고 새롭게 태어나는는 거예요. 이런게 사춘기인가요? 진짜의 흐릿하고 멍한 상태 따위는 다 없어지고, 남들처럼 뻔뻔해지고 싶어요.  

진짜? 진짜 그럴까요? 어른이라고 다 아는것 처럼 말하지 말라고요?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다시 열 다섯 소녀로 돌아가서 읽었어요. 단순한 이야기 속에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생생하게 겪는 공포와 환상이 펼쳐졌어요. 아이들에게는 학교, 선생님, 집, 친구, 부모, 공부, 언니나 동생, 모두 다 공포였어요. 슬프게도 이야기들 속에 믿을만한 어른은 단 한명도 없었어요. 그래서 더 진짜 열 다섯에 겪었던 내 이야기 같았어요. 아이들이 좀 편한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는데, 해 줄 말이 없어요. 내가 어떻게 견뎌왔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요. 나도 이미 진짜를 잡아 먹어버렸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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