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가장 재밌는 점은 그 작품 세계에 들어간다는 것, 그게 전부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번 책의 세계에 빠져들어가는 흥분을 느끼고 만 인간은 평생 책을 읽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가장 원시적인 기쁨을 어린이집 시절 이미 알았다. (14)
어른이 되지 않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을 수 없다. (26)
우리들은 늘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여 분류하면 안심할 수 있다. (37)
“올챙이에 대한 시를 쓰려고 할 때 실물인 올챙이를 보면 시 따윈
쓸 수 없게 돼 버립니다.” 언어 이전의 세계에 언어를 적용해 이해하려고 하면 그 순간 세계는 얄팍한, 매끈매끈한 벽처럼 되어 버리는 것이다. (39)
한 작품을 다 읽고 강의실이나 내 방에 돌아오면 현실은 아주 조금 모습을 바꾸고 있다. (41)
무라카미 씨가 번역한 <캐쳐 인 더 라이>를 읽고 있는 중에 나는 문득 무언가 매우 깊은 구멍을 들여다보는 듯한 공포를 느꼈는데, 그건 아마 홀든이 계속 살아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은 않은 이 세상에서. (69)
나에게 좋은 단편소설이란 실제 페이지 수의 몇 배로 세계가 부풀어 오르는 소설이다. 한창 읽고 있는 동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소설도 있고, 다 읽자마자
왈칵하고 세계가 넓게 퍼지는 소설도 있다. 라히리의 소설 <그저
좋은 사람>에 수록된 단편은 그 넓이를 맛보게 해준다.
(247)
사랑이라는 것이 일상에 개입하면 풍경이 바뀐다. 잘 알고 있던 세계가
색도 감촉도 변하고 만다. 그것은 마냥 즐겁지만은 않아 슬픔과 괴로움,
깊은 어둠을 품고 있을 때도 있다. (27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