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삐삐처럼 살고 싶다.... 하고 말해봤자 나한텐 돈가방과 닐슨씨나 말 대신 빨래만 쌓여있다. 난 주근깨는 없지만 뚠뚠한 다리가 있고 옆집엔 토미와 아니카 대신 왈왈 거리는 강아지 두마리가 있지.

 

한파가 지속되니 절대 세탁기를 사용하지 말라고 매일 방송이 나온다. 하지 말라니 안해야지. 난 삐삐가 아니거든. 그래도 급한 양말 빨래만 했다. 꼭 손으로 하란법이 있을까? 양말은 원래 발에 신잖아? 누가 양말을 손에 혹은 귀에 쓰고 다녀? 어쩌면 중국에 사는 그 큰 귀의 하이 상은 그럴지도 몰라, 아니야, 그 사람 귀는 굉장히 커서 우산 만 하다는데? 잠시 (늙은) 삐삐가 되어 양말 스무 켤레를 세탁 비누 푼 물에 담가 두었다가 손으로 빨래판에 몇번 비비고 통에 넣어 발로 밟아 빨았다. 노래도 부르면서. '다이노소어~~' 여러 번 헹구고 꼭꼭 짜서 널었다. 이거 말고 아이 히트텍도 빨았는데 그건 헹궈 널고 지쳐서 사진을 못 찍었다. 집안일 하고 사진 찍어두는 주부라니... 얼마나 평소에 집안일을 안하면 이럴까요. 그러니까 서재친구 분들이 칭찬을 해주시면 암말 못하지만 사실 저는 삐삐랍니다.

 

 

빨래를 했으니 책을 좀 읽어야지, 책장 앞에 선다. 냉장고 문을 열고 뭣좀 먹어야지, 하는 심정. 급한 마음에 사두었지만 실천하지 않는 책들이 보인다. 가령....

 

표지의 다리와 복부 사진이 사람 기를 죽이기에 후루룩 훑어보고 따라하지도 않았다. 제목부터 사람 상처를 주고, 혹하게 만들어서 사게 만들다니.

 

요리책도 비슷하다.

 

김치는 사먹거나 선물 받는 주제에 김치 만드는 법 책은 여러 권 갖고 있고, 일본 가정식, 미국 가정식, 프랑스 요리 책 등등은 그저 열심히 사서 읽고 맛을 상상하거나 음식점으로 갑니다. 아, 저는 칼질만 하는 칼잡이입니다. 요리에 넣는 소스는 CJ나 청*원 도움을 받아요. 남편이 어째 내 음식이 자기 사무실 구내식당 맛이 난다며...이러면서 왜 한살* 회원 가입해서 유기농 장보기도 하는지 몰라...

 

직접 사서 실천하는 것들이라면... 잡지 (아니고 쇼핑 카탈로그)에 달려 온 펜과 만년필. 둘다 무거워서 최대 열 문장 쓰면 오른 팔이 뻐근하고요. 만년필은 다음날이 되면 촉이 말라 있어서 수돗물로 적셔줘야 다시 쓸 수 있어 19세기 느낌도 들어요. 작은 잉크가 두 개 들어있는데 헤퍼서 금방 닳아버리니까 뭔가 중요한 작업을 많이한 뿌듯함. 구몬 같은 거. 손에도 마구 남는 잉크 자국.

 

 

삐삐의 금화 주머니가 내게 있다면 난 계속 이런 책들을 사겠지. 연필이랑 펜이랑 과자랑 커피랑 여러 가지 '쓸데 없지만 기분 좋게하는' 물건들을 사서 쌓아두고 친구들과 나누고 깔깔깔 웃겠지. 하지만 절대 아니카 엄마 친구들 처럼 하녀를 두거나, 모여서 하녀 험담을 하거나, 아까워서 들지도 못할 가방은 안 살거같아. (아니, 어쩌면 하나쯤은 사서 들고싶어)

 

 

무엇보다 여행을 많이 많이 다니고 싶어. 삐삐네 동네, 8월이 '따뜻하'고 생강맛이 나는 과자 페파카코르가 맛있다는 스웨덴에는 가보고 싶어. 오늘도 세탁기가 얼어버린 서울에 살면서 스웨덴 날씨 적응은 준비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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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만 메모수첩 2018-02-0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양말 빨래 정말 예쁘게 너셨어요. 저는 너는 것도 잘 못해서 삐뚤삐뚤한데. 글 잘 읽었습니다~

유부만두 2018-02-09 07:08   좋아요 1 | URL
빨래 예쁘게 널어서 칭찬 받으니 기분이 좋아요! ^^ 고맙습니다.

psyche 2018-02-09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양말을 저렇게 가지런하게 널다니.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유부만두는 살림도 깔끔하게 잘 합니다! 음식도 잘하고.
하체부터, 뱃살부터 이런거 안해도 날씬한 유부만두. 종아리 절대 안 뚠뚠하던데 무슨 말씀을.
나도 삐삐처럼 돈가방 있다면. 힘도 세다면 진짜 좋겠다

유부만두 2018-02-09 07:1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리가 이래서 오래 친구하나봐요. 언니님, 칭찬해 주시니 제가 더 ‘사기‘를 잘 치게 되었습니다.

삐삐는 정신 없고 힘든 아이인데 읽다보니 재미있고 정도 가요. 아줌마라 이래저래 잔소리가 나오려다가 웃어버리게 되고, 은근 속이 깊은 아이인게 보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