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다 읽고 덮었는데 아침에 눈이 내리고 있다. 차가운 눈. 작고 야무진 눈송이들은 빠르게 내린다. 어젯밤 내가 읽은 사연들과는 또다른 2018년의 눈.
단편집을 순서없이 읽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작품을 제일 나중에 읽어서 다행이다. 인물들이 연결되고 결혼식이나 회갑연 대신 장례식으로 사람들이 모인다. 드라마 마지막회 처럼 출생의 비밀과 인연의 끈들이 드러난다. 책소개글에서 말했듯 '뜨개질하는 것처럼 인물들이 연결'되는데 꾸민티가 나도 마음에 들었다. 작은 눈송이들, 작은 별들의 사연들. 완의 엄마와 안나가 만나지도, 장지에 나타나지도 않아서 좋다. 어디선가 흔들리며 내려가는 두 눈송이로 상상해보고 싶다.
세번째 만나는 은희경 작가의 책이다. '태연한 인생'은 힘빼고 너무 편하게 쓴 소설이 아닌가 싶었고 '러시아 룰렛'은 세련되고 똑똑한 이야기였다. 역주행으로 만난 이번 책 '눈송이'는 더 촘촘하고 더 이야기 뜨개질 코가 보이도록 따뜻하게 인물들을 엮어놓았다. 매 단편 조마조마 어떤 일이 터질까, 긴장했고 답답할 만큼 소극적인, 혹은 멍충한 인물이 나오지만 그들이 나름의 속도로 그 사건을 견뎌내서 마음에 든다. 여자들이 험하게 죽거나 다치는 장면이 없어서 좋았다. 그 뻔하고 쉬운 폭력 말고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를 떠나간 작가에게 고맙다. '가장 추운 날들이 이어'지는 올 겨울, 이 한 권의 눈송이 같은 책을 만나서 위로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