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400. 제인 에어와 여우, 그리고 나 (패니 브리트 글, 이사벨 아르세노 그림)
막내를 위한 그림책이라고 말하면서 실은 나를 위해서 읽었다. 그림도 내용도, 주인공도 모두 사랑스럽다. 헬레네, 초등 고학년쯤 되었을까. 화장실 낙서로 돼지라고, 백 킬로그램도 넘는다고 놀림을 당하고 친구도 없이 외로운 이 아이는 실은 몸무게가 사십 킬로그램 밖에 안나가는 정상 체격으로 "자라나는 중"인 아이다. 이 아이가 괴로워 하는 장면과 제인 에어 책을 오가며 상상하는 장면은 뭐라 말할 수 없도록 아프고, 아름답다. 이유없이 남에게 상처주는 그 역시 '자라는 중인' 아이들. 다행스럽게 다정한 붉은 여우, 그리고 제랄딘이 헬레네 곁으로 온다. 조금씩 색을 입기 시작한 헬레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여우가 달아나 버리지 않기를,
여우가 여기에 영원토록 머물기를.
여우가 우리 텐트를 지켜 주기를.
스핑크스처럼, 보디가드처럼, 한 마리 용처럼.
이제 한두 발자국이면 내 손에 닿는다.
두 귀를 쫑긋 세우고
마치 내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75)

차츰 깨닫는 중이다.
내가 생각을 덜 할수록,
그 말들은 나에게서 멀어진다는 걸.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