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 마나님 테레즈 데케루의 권태와 범죄 사이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그저 그녀는 "본질적인 테레즈"를 원했고, 무심한 남편 베르나르가 견딜 수 없었으며 강요된 모성이 끔찍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녀의 범죄는 뭔가를 흉내낸 기분이 들었고, 김형경의 담배 피우는 여인 처럼, 테레즈는 손가락이 누렇도록 담배를 피워대다 시트에 구멍을 낼 뿐이다. 이 여인은 아무것도 안한다. 책을 좀 읽었다지만 그녀의 독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플래시 백으로 보여지는 회상 장면은 영화 장면처럼 생생하지만 툭툭 끊어지는 그녀의 기억처럼 테레즈는 별 의욕이 없다. 차라리 안나 카레리나 처럼 연애을 확실하게 하던가, 테레즈 라캥 처럼 바닥을 치던가, 보바리 처럼 상류 사회의 로맨스를 꿈꾸던가.... 이도 저도 아닌 마나님의 한숨은 답답하기만 했다. 언뜻 지나가는 열여덟살 여드름 남자의 이름도 장 아제베도. 전혜린이 애닲게 부른 그 이름 처럼 이 책은 그저 현실이 따분한 여인의 푸념인가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 숲을 떠올리면서 혼자 가고싶은 대로 걷는 테레즈는 사실 아무것도, 아무도 필요하지 않은 여인이다. 모리아크가 쓴 나머지 테레즈 연작은 읽지 않으려한다. 파리에서, 아니면 다시 고향에서, 그녀가 살아있는 숲을 생각하며 혼자 잘 살아낼 것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