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펠슈틸츠헨
제목도 살벌한 이 책은 조이스 캐럴 오츠, 셜리 잭슨, 닐 게이먼 등 기라성 같은 작가들이 다시 쓴 옛 이야기 후속편 모음집이며 앤절라 카터에게 헌정되어 있다. 41편의 단편 중 두 편이 롬펠슈틸츠헨 이야기다.
"로라 시티"의 작가 케빈 브록마이어가 쓴 "반쪽 룸펠슈틸츠헨의 어느 하루"는 옛 이야기 결말에서 반으로 쪼개진 한 쪽 룸펠슈틸츠헨의 그 이후 이야기다.
아침에 그는 꿈을 꾸다 깬다. 자신의 지푸라기 몸 오장 육부가 물레를 통과해 금실이 된다. 곧 금실 뭉치만 남고 지푸라기는 없다. 그리고 그 자신 룸펠슈틸츠헨도 없다. 놀라서 깬 그는 그야말로 반쪽, 별을 반 접은 꼴이다. 몸을 굴리거나 한쪽 발로 깡깡이를 하며 움직인다. 어려운 몸 동작으로 세수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고 직장에 가서 창고 정리를 하거나 마네킹 옆에 서있다가 그의 반쪽 몸을 만지는 껄렁한 십대 청소년을 놀라게 만든다. 직장 상사에게 핀잔을 듣고 퇴근 후 먼 곳에 따로 떨어져 사는 다른 반쪽의 롬펠슈틸츠헨이 보낸 편지를 읽는다. 그곳 삶도 녹녹치는 않다. 지역의 여성개발센터에서 강연을 한다. 여성 청중들은 동화의 결말과 그 디테일에 관심이 많지만 정작 그와 숲속의 늑대를 구별하지 못한다. 그들은 왜 그가 개명하지 않는지 묻는다. 그는 자신이 룸펠슈틸츠헨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반쪽일 지언정.
그는 반쪽이다. 지금 여기 오른쪽 몸만 있으니 다른 곳에 있는 왼쪽 뇌와 연결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그가 가진 오른쪽 뇌가 느끼는 건 저 먼 곳의 왼쪽 몸일테고 그것이야 말로 진짜 그의 정체성인가. 그는 소외되고 길을 잃은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묘기하듯 큰 솥 주변을 구르고 뛰며 음식을 하고 먹고 노래를 부르고 TV를 보고 "영원히 파편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는 존재에 대해 생각하다 잠에 든다.
우습고도 슬프게 쓸쓸한 이 반쪽이가 익숙하게 느껴지는 순간, 이야기의 그 왕비는 잘 살고 있냐?!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 약간의 분노를 "너스 베티"를 감독한 닐 라뷰트는 조금, 아니 아주 많이 키워서 그 여인과 대면시킨다.
"금실로 자은 머리카락"은 롬펠슈틸츠헨 옛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왔다. 옛이야기의 롬펠슈틸츠헨, 금을 만들어주고도 배신당한 '작은' 남자가 왕비를 찾아왔다. 화자는 바로 그 과거의 남자다. 어때? 놀랐어?라며 희미한 미소를 짓는다. 그는 Instant karma라는 존 레논의 노래를 인용한다. 열여섯의 청소년은 고등학교 상담 여교사에게 성적으로 유린당하고 (혹은 눈을 뜨게 되며 사랑에 빠지고) 함께 하는 미래를 믿고 여자가 간절히 원한 '그것'을 주었지만 여자는 떠나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남자는 여자를 찾아냈고 여자의 남편과 아이가 모르는 비밀을 들이민다.
"인터넷, 거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공간이에요. 당신과 나 같은 사람, 이 세상의 거짓말쟁이, 허풍쟁이, 유령 같은 존재들을 위한 공간이죠. 몸을 숨기고 자신을 가장하기에 참 좋은 장소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나도 그렇게 했지요. 나는 금실로 자은 듯한 머리카락이 돋보이는 서맨사라는 이름의 귀여운 10대 소녀로 가장했어요."
이제 여자가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할 일은 단 하나, 자신의 과거와 거짓말이 탄로나 지금의 행복을 흔들지라도, 이 작은 남자의 이름 롬펠슈틸츠헨을 소리 높여 외쳐야 한다. 그의 정체를 알려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있을까? 존 레논의 노래처럼 업보인데? 그러면 이야기처럼 이 남자도 분에 못이겨 둘로 쪼개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