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꺼운데 그렇게까지 겁 먹을 필요는 없었다. (난 한 권짜리 빨간 띠로 읽었다)
디킨스의 다른 소설보다 이야기 구조나 인물이 어렵지 않아서 악인은 악인답게 주인공은 엄청난 호구로, 혹은 말간 도화지로 등장한다. 핏줄 혹은 가문, 출신의 중요성은 더 강조되기에 진정한 신사 계급은 나쁜 일을 겪어도 결국엔 수습이 된다고 한다. 왜냐하면 비천한 것들이 술수를 부린 것을 바로잡기만 하면 되니까. 다 읽고 난 느낌은 뭘 굳이 이 두꺼운 걸 읽을 필요가 있나 싶다. "위대한 유산"은 훨씬 더 다듬은 버전인 셈이다.
최근의 영화로 만든 것은 이 소설을 조금 더 코믹하게 해석한 듯하다. 그렇다면 변주할 곳이 적잖겠지. 다양한 피부색의 배우들의 조합도 흥미로워 보이고 특히 틸다 스윈튼이 연기하는 고모님도 그렇다. 책의 고모님은 (작은 아씨들의 고모님처럼) 고집스럽고 완고하지만 결단을 내려 베풀줄도 아는 사람이다. 데이비의 엄마가 어버버하다 아들과 재산, 무엇보다 자존감을 다 던져 버리고 '인형'으로만 역할한 도라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결국 집안 (돈 있는) 어르신의 눈과 혀가 옳다, 라고 보여주는 디킨스?
길었다. 너무 길었다. 중간 중간 재미도 있지만 빤히 보이고 복잡하게 얽히지도 긴장감이 길게 가지도 않는다. 데이비가 사랑에 쉽게 빠지고 쉽게 잊는 것도 편리하다. 그런데 재미가 없지도 않아서 계속 읽었다. 궁시렁 궁시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