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학교에서 공부하던 십대 소년이 어느 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엄청난 소식을 듣는다. 그의 양아버지가 사망했으며 그의 입양 서류가 정리되어 있지 않아 소년은 이제부터 자신의 원래 이름을 써야 한다. 정이 없고 근엄한 목사였던 양아버지였지만 양어머니의 사망 이후 정신줄을 놓았더랬는데, 입양 절차가 정리 된 게 아니었다니. 게다가 소년은 자신이 자란 영국 웨일스 사람이 아니고 저 멀리 체코 출신의 유대인이다니. 


소년은 이렇게 '진짜'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간다. 우선 학교 서류와 시험지에 아우스터리츠라는 이름을 쓴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글을 쓰면 거짓만 늘어놓는 것 같고 시가와 교외지역을 산책하면 어지러움을 느낀다. 옛건물과 자연을 좋아하는 (이제는) 청년은 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두통과 연구 작업의 어려움은 자신의 진짜 과거와 맞서지 않으려는 무의식의 발로였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대인 박해가 심해가던 시기, 부모가 영국행 기차에 네 살이던 자신을 태웠던 그 기억이 청년에게 되살아났다. 아름답던 엄마와 보모와 함께 했던 산책길과 다람쥐까지. 이름과 입양 서류, 얼마 안 되는 정보를 쥐고 청년 아우스터리츠는 체코로 떠나 그곳 사무소에 도움을 청한다. 특이한 이름 덕에 몇 안 되는 동명들 중 한 명이 사는 주소로 간다. 그곳에는 한 노파가 살고 있었는데...


<아우스터리츠>는 이런 순서로 진행되지 않는다. 화자 '나'가 만나는 중년의 남자 아우스터리츠는 대뜸 자신의 연구나 기숙 학교 친구네 여름 별장 이야기를,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역 건물의 역사를, 정원의 아름다움과 나방의 섬세함과 비둘기들, 그리고 무덤 비석들의 쓸쓸함과 햇볕의 조각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인간들의 고집과 잔인함 그리고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다. 아우스터리츠는 자신의 진짜 부모를 찾아 나선 여정과 그들을 '찾고' '만난' 이야기를 한다. 시각자료로 책에는 여러 흑백 사진과 그림들이 나온다. 전쟁의 잔혹한 행태, 특히 유대인 학살에 대한 기록과 전시물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니 아우스터리츠는 '진짜'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그걸 전달하는 화자와 작가 제발트는 믿을 만 해 보인다. (난 정말 쉬운 독자) 하지만 텅빈 마음의 아우스터리츠가 가진 '심연'에 대한 이야기는 해답을 찾지 못한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인간은 계속해서 거대한 건축물과 시설로 옛 기억과 역사를 덮고 입을 닫으며 기억을 왜곡한다. 


복잡하고 어려운 소설이었다. 주인공 인물이 몇살에 어디에 있는지 집중해서 따라가도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만큼이나 힘든 독서였다. 하지만 놓을 수 없는 책이다. '기억'과 '진짜 자신'이라는 주제로 여러 다른 (어려운) 책들과도 연결된다. 생각나는 건 우선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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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0-12 0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책…?

유부만두 2023-10-12 08:14   좋아요 1 | URL
차마 글로 못 쓰는 그 책이요. ㅍㄹ ㅅ ㅌ의 그 시리즈 그 책이요.

건수하 2023-10-12 08:18   좋아요 0 | URL
아! 뭔지 알겠습니다 ㅎ 왜 차마 글로 못쓰는 책인지는 모르겠지만… ^^

유부만두 2023-10-12 08:22   좋아요 2 | URL
제가 그 책을 읽겠다고 2018년 부터 공언 하고 실언 되고 .... 반복이라서요;;;

건수하 2023-10-12 08:48   좋아요 0 | URL
그러셨군요. 그 책은 읽어도 읽었다고 말하기 좀 애매한 그런 책인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