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소설. 백년 쯤 이후의 세계는 이미 전지구적 재해(와 멸종)를 극복해 낸 인류의 세상이다. 주인공 아영은 식물 연구자로 기이한 '모스바나'라는 식물이 한국 중부지역에서 창궐하는 원인을 조사하라는 업무를 받는다. 그런데 이 식물을 어릴적에 본 것만 같아... 그 희수 할머니 정원에서. 기억을 더듬고 조사를 해나가는 아영. 학회차 방문한 에디오피아에서 '마녀'로 통하던 식물 이용 치료사 90살의 여성 나오미를 만나 그녀의 세상 종말 살아낸 썰을 듣는다. 그리고 어떻게 그녀가 모스바나를 알게 되고 써왔는지. 모스바나, 옛날 그 할머니 희수, 레이첼, 아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손에 땀은 안 쥐고 읽었다. 실은 처음부터 인물과 사건들 사이가 다 드러나는데 매우 공식적으로 스텝 바이 스텝으로 진행되는데다가 소재나 사건들이 익숙해서 긴장감도 높지 않다. 여러 디스토피아의 소재들, 자연재해, 공기 오염, 돔 구조물, 폭력, 안드로이드 등을 다 늘어 놓아서 '아는 동네' 이야기 같다. 하지만 깔끔하고 성실한 모범생의 소설쓰기 숙제(물론 A+) 같달까. 그냥 착하고 밝아서 디스토피아지만 희망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집 고등 아이 숙제로 나옴. 디테일이 치밀한 소설도 아닌데 생물학 유전은 교과서 같이 꼼꼼해서 귀엽다.
지구 끝의 온실에서 사람보다 식물에게 정성을 다하는 연구자의 이름이 레이첼이라 자연스레 레이첼 카슨이 떠올랐고 주요 인물들 전부가 여성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지금 종말의 시기를 살아가고 있지 않나. 환경 재앙이 너무 흔해서 우리 모두가 눈 감고 있는게 아닐까. 바다 밑의 수조를 상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