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무 재미있다고 극찬을 들으면서 시작했는데 처음 150쪽 정도까지 사람들이 우루루 나와서 저마다의 삶을 던져놓는 통에 정신 사납다. 첫 사람이 킬러인게 으잉? 뽀인트.
3월 파리발 뉴욕행 에어 프랑스. 비행중 난기류를 만나 고생을 했지만 비행기에 탄 사람들 모두 그럭저럭 땅위에 도착해 살아가고, 죽고, 앓고, 싸우고, 죽이고, 숨기고, 만나고, 헤어진다. 시간은 흘러 6월 초여름이 되었다. 그런데 3개월 전의 똑같은 그 비행기가 똑같은 승객 승무원을 태우고 나타난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1/3.
당황한 공항측은 미국방부에 연락하고 급히 이들을 공군 비행장에 따로 며칠간 수용, 검사한다. 과연 이들은 복제인간들인가? 프로그램인가? 아니면 악마의 농간인가? 중반부는 이를 둘러싼 종교 철학 과학 정치계의 논쟁...이라기엔 짧게 훑고 지나간다. (테드 창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가 얼핏 떠오른다.) 어렵더라도 더 막 파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어렵지도 않고 사람만 많아 어수선하고 가늠할 만한 해법(도 아닌 것들)만 나열된다. (아, 매트릭스 영화나 다시 볼까)
고민 끝에 이들을 3개월 앞서 도착한 다른 버전들과 만나게 한다. Bizzaro World. 모든 생체기록과 기억은 3개월 차이만 두고 동일한 사람들. 이들은 과연 어떻게 이 분리, 혹은 기적을 수용할 것인가. 이 시간차에 생기는 엇갈리는 인간 관계는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이게 소설의 후반부다.
기대보다는 재미가 덜했다. 딱 예상 만큼의 일이 벌어진다. 미국 대통령은 에어 프랑스 기체의 변이를 둘러싼 국제적 위기에 중국 주석에게 먼저 연락하고, 중국은 역시나 말하지 않는 꿍꿍이가 있고, 킬러는 죽이고, 병은 피할 수 없으며, 미친놈은 어린이를 학대하며, 아저씨 작가는 자기 세대와 지식을 감추려 하지 않는다. 술 이야기 많이 나오고 야한 장면도 있고 뭐 작가가 팔아보겠다고 결심한 티가 났다. 더해서 아포리즘이 많고 여러 책과 작가들이 언급된다 (존 쿳시, 말라르메, 알프레드 자리 등) 그런데 사람들의 고민, 이별, 화해의 계기는 임신, 아이, 사랑이다. 아저씨 작가의 고집인지 로망인지. 그나마 프랑스 작가라 결혼식이나 환갑잔치가 없어서 K드라마와는 구별이 된다.
공쿠르상 대상이라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만큼 적당히 현학적이며 꽤 시시하다. 그나마 킬러가 여러 번 출연해서 썰고 찌르고, 더해서 미친 개독교도 나와 테러하는 장면 말고는 소설 속에 등장한 작가(자신의 아노말리 분신?) 만큼이나 밋밋하다. 사건 수습도 얼렁뚱땅이라 빈틈이 많이 보인다. 그냥 다 신분세탁에 이주 시켜줌. 땅 큰 나라 미국 만세입니까. 붕괴되는 사람이 안 보여서 좀 실망이다. 쌈박질을 쌈박하게 해보란 말야. 유럽 미국에서 많이 팔려 읽혔다는데 코로나 시국의 봉쇄 상황 덕이리라. 작가의 운이다.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