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다. 미국의 50-60년대 성차별의 여러 사례를 모으고 나열해서 톡톡 튀는 문장으로 엮어놓았으니까. 현재의 피씨함과 논리로 무장해서 옛잘못을 까부수자. 인용되는 여러 소설 제목들도 반갑고 (개나 유아에게 보바리 부인과 프루스트를 읽어준다는 설정은 과하지만) 개의 심정까지 묘사하는 톨스토이 스타일도 괜찮다. 인생의 비극도 출생의 비밀도 버무리며 테레비 문화도 보여준다. 무엇보다 강한 여성이 나온다.
하지만 여러 장면들, 사건들이 인물과 큰 서사 흐름과 따로 논다. 1권 초반과 중반, 2권에서 만나는 엘리자베스는 각각 다른 인물같다. 주장이 강한 인물인 건 알겠지만 이런식으로 생방송을 말아먹는 무개념의 이십대 여성이라니 그야말로 전형적 아닌가. 재미있게 모인 에피소드들도 반복되고 쌓여서 길어지니 지루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럴까봐 우연과 운명도 나오지만, 아 그러지 말지 그랬어요. 이렇게 길게 쓰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뭐입니까. 결국 모든 여성들의 이야기도 남자가 중심이었다? 천재도 사랑도 갈등도 재벌 할머니가 완성해준다? 인간도 탄소 산소 수소의 화학 원소들의 합이다? 하지만 그 배열과 결합 방식에 따라서 어떤 것은 사람이 되고 또 어떤 것은 한여름에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인 소설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야심찬 포부는 노골적으로 반복해서 드러나서 모를 수가 없는데 난 덜 웃겨도 되니까 제대로 쓰인 소설, 고민과 성장 혹은 자멸을 보여주는 개연성 있는 인물과 서사를 읽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