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울한 봄날, 개학인데 개학 아닌 개학. 개같은 나날들. 개의 심장에 대해서, 더 정확하게는 인간의 뇌하수체와 성기를 이식한 개, 그래도 개의 심장을 지닌 개-인간, 샤릭-샤리코프의 이야기를 읽었다. 


차가운 눈바람이 몰아치고 허리에는 화상을 입은 길거리의 개, 자부심은 고고해서 지나가는 인간들을 하나씩 멸시하며 (어이, 그래도 소시지나 좀 조바라) 품평하다 먹이와 따뜻한 잠자리에 이끌려 의사 필립 필리뽀비치네 집에 들어간다. 하지만 의사는 그를 실험대상으로 여기고 있었고 어느날, (아직은 개) 샤릭의 머리가 나쁜 예감으로 쿡쿡 쑤시던 날 그 실험/수술은 이루어진다. 


의사의 의도와는 다르게 '회춘' 대신 '변신'이 이루어지는 샤릭의 몸. 맥줏집에서 칼싸움에 사망한 망나니의 성질이 옮아가 이제 샤리코프는 말을 하고, 직립 보행을 하고, 폭행을 저지른다. (이제는 인간) 샤리코프는 자신을 꾸짖는 의사에게 묻는다. "아빠, 아빠는 왜 그렇게 나를 심하게 학대하고 그러세요?" 그리고 샤릭코프는 여엿한 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공산당에 들어가고 직함을 갖는데 평소 샤릭이 혐오했던 길고양이들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다. 


더이상 샤리코프의 폭력과 비행, 자신의 영역과 권위를 위협하는 것을 참지 못한 의사는 조수 보르멘딸리와 함께 일을 수습하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의사 직과 명예를 걸고, 또한 의사의 윤리에 대해 고민하면서. 저 놈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어. 결자해지. 결국 그 인간말종의 뇌하수체와 성기가 부린 난동을 지우기 위해선 그 원인을 (사회제도나 인간관계가 아니라 글러먹은 그 육체조직) 제거하고 의사의 발 옆엔 (다시 개) 샤릭이 엎드리게 된다. 아직 혀에 남은 인간의 말, 하지만 온순해진 뇌로는 자신의 복받은 환경에 감사하면서. 계속 샤릭-샤리코프의 몸에는 개의 심장이 펄떡이고 있었다. 


인간들 묘사와 대사가 과장되고 희화되어 블랙 코미디 극을 읽는 기분이 든다. 추운 거리의 샤릭의 시점으로 시작해서 3인칭 시점과 묘사-기록-대화 등 여러 형식으로 구성된 짧은 소설은 투박하지만 흡입력이 강하다. 특히 수술장면의 생생한 묘사는 의사 작가의 특기가 살아있다. 수술 장면만 두 번 읽었는데 이런 피냄새 나는 (응?) 묘사를 '프랑켄슈타인'과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는 만나지 못했기에 더 신선한 기분이 든다. (라고 쓰고 보니 내가 많이 이상한 사람;;;;) 


못 배우고 더러운 것들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의사의 혐오가 큰데 그것을 혁명과 계급에 대한 반동문학으로 보기에는 부족한 느낌이 든다. 그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질문은 던져주었으니 고민은 독자의 몫으로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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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21-03-19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특이한 소설이군요. 유부만두님 오랜만. 여전히 읽고 쓰시는 거 보니 반갑.
개학인데 아이 둘의 학교 가는 날이 달라서 급식의 은혜를 못 입고 있어서 너무 우울합니다. 저도.
그래도 봄이니까 잘 지내시죠?!
저는 자주 안 오면서 늘 있는 분들 보면 너무 좋다. ㅎ

유부만두 2021-03-22 11:13   좋아요 0 | URL
북극곰님, 반갑습니다. 저야 별일 없이 밥밥책책밥 하며 보내고 있습니다. 급식의 은혜는 정말 없을 수록 더 크게 느껴지고요. 봄이네요. 겨울옷 아직 입고 밤에만 동네 슈퍼를 가곤 하는데 꽃이 조금씩 보이는 데 더 우울하고 그래요.

이 소설은 20세기 초 러시아 소설인데 투박하고 강렬한데 은근 매력있습니다. <거장과 마가리타> 읽기 전에 준비운동 삼아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