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데트의 얼굴에서 보티첼리를 보는 순간, 스완의 사랑이 시작되었을까, 카틀레야 난초로 둘 만의 비밀 암호를 정하고 피아노 소나타에 전율하는 순간일까. 그걸 사랑이라고 그 말고 누가 부를까. 친구 amie도 연인amie도 바로 그녀 '상스럽고 저속하며 무식한' 오데트만을 가리킨다면. 하지만 세력 관계는 뒤집어져서 '무조건' 달려오겠다던 오데트는 이런 저런 사유로 공공 장소에서 동행을 피하고 베르뒤랭 부부의 연회에서 스완이 미움을 받아 더이상 초대되지 않는다. 돈과 보석을 그녀에게 보내면서도 주인은 오데트라고 여기는 스완은 바로 그녀의 물주. 그의 돈으로 가지는 '쾌락'과 이 속물성이 그는 편안하다.


스완이 없는 장소, 모르는 시간에 오데트가 누구와 무얼 하는지 스완은 불안하도록 궁금하고 계속 자신의 부재를 지우려 애쓰지만 성공하지는 못한다. 갑자기 애인 집에 찾아가거나,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쓴 편지를 훔쳐 읽거나, 그녀의 과거사를 주변 사람들에게 묻거나, 아, 차라리 그녀가 사고라도 당해서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란다. 침략 전쟁에서 소피아 성당을 지켰던 마호메트 2세가 자신의 총애는 사랑에 겨워 죽여버렸다지요? 그의 비틀린 심장이 스완 가까이에 있었다. 그렇다. 변태의 사랑과 집착은 범죄가 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소설과 현실에서 그 공식을 확인했다. 바로 다음 줄에 프루스트는, 아니 스완은 반성하고 취소하지만 그가 겪는 사랑은 시작 만큼이나 그 전개도 유별나다. 그런데 읽으면서 뭔가 알 것만 같은데, 이 느낌, 뭘까. 여느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른 느낌. 


그가 불안한 마음에 꾸는 꿈마다 이별의 (부산) 정거장이거나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섬인데 그 곳에서 그녀는 멀어져간다. 그런데 그 꿈 안에는 울고 있는 자기 자신, 젊은 스완이 비틀거리고 있어서 꿈꾸는 주체 스완은 위로의 손을 내밀기도 한다. 스완은 오데트에게 밀당을 시도해 보지만 그 역시 통하지 않는데, 계산을 특별히 하지 않는 오데트에게 남자들이란 한결 같이 욕망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라서. 몇번이나 이별을 하겠노라, 사랑의 끝은 내가 맺겠노라, 스완은 결심하지만 쉽지 않다. 그는 사랑에서 칼 자루 대신 칼날을 쥐고 있었다.


오데트의 추문, 과거, 그중의 최고는 졸라의 '나나'에서도 있었던 다른 여인들과의 관계다.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매달리고 윽박지르고 따지다가 들은 답에 심장은 칼로 서억 베인 것만 같다. 하지만 사랑은 불치의 병이라 완치를 바라고 사랑을 떼어내려다가는 스완이 죽고말지. 계속 징징 울다 희망에 차다, 조울의 시소를 탄다. 독자는 흩뿌려진 참깨알 같은 단어들을 줍다보면 눈이 아프다. 스완은 병자 비유와 외과의 수술 비교를 반복한다. 나도 이 책을 놓을 수가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져도 아주 조그만 부분, 상류층 사교계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는 수의처럼 마지막 자존심으로 그의 시체를 (그는 이제 툭하면 죽는 상상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이 낭만적 비통함을 하는 인물이 사십대, 이마가 좀 벗겨지고 아주 잘생기지는 않은 돈많은 아저씨다) 감쌀 것이다. 이전의 자신을 알고 아껴주는 사람들, 콩브레의 이웃 - 1부의 그 변태 소년의 나름 이상하지만 따뜻한 가족 - 이 그래서 더욱 소중할 수 밖에 없다. 콩브레가 소설의 화자에게 기억의 향기와 그 두근거리는 '첫 글쓰기'의 감동을 함께 했다면 스완에겐 사랑이라는 병에 걸리기 이전, 그 정상이었던 건강체임을 증명했던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사랑의 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난봉꾼이었다) 그래, 가자! 그곳 콩브레로! 


하지만 만약, 사랑이 치유된다면? 사랑이 끝나는 걸 스완은 용기있게 맞서서 쳐다볼 준비가 아직은 (몇백 쪽에 걸쳐서) 되지 않았다. 아직. 아직도. 


어쩌면 허무가 진실이며, 우리 모든 꿈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면, 우리 꿈에 비해 존재하는 이런 악절이나 개념 들도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죽어 갈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우리 운명을 뒤따를 이 성스러운 포로들이 볼모로 있다. 그래서 이포로들과 함께라면 죽음도 덜 비참하고, 덜 치욕스럽고, 어쩌면 덜 가능해지리라. (민음2, 277)


가슴은 썩어 문드러져서 오데트는 친구 샤를뤼스 ('약간 정신 나간 사람'같고 '신경증 환자' 같고 '최악의 인간' 이라고 묘사한 프루스트의 친구 몽테스큐 백작의 소설 속 인물, 그래서 그 시대의 '댄디' 몽테스큐 백작이 소설화 사실을 알고 프루스트와 절교 했다고)와 그녀의 재단사가 산다는 허름한 동네 서민 주거층 6층의 냄새나는 복도를 걸을 동안 스완은 공작부인의 파아뤼에 간다. 그곳에서 만나는 정복 입은 하인들, 외알 안경 쓴 상류층 남자들과 음악에 맞추어 자신의 감동 혹은 속물 근성을 시스루로 드러내는 여인들을 돌아본다. 생생한 묘사에 한 번 가보지 못한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아 지금 다시 들리는 자신의 러브테마곡 소나타. 과거 사랑의 기억과 아픔에 전율하는 스완. 그녀가 주었던 하얀 국화꽃 (이 꽃이 한국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스완은 몰랐지)과 편지들을 넣어둔 마음 속 서랍을 괴롭게 다시 열어버리는 그 음악. 그래, 나쁜건 오데트야! 더 나쁜건 나의 "기억력"이야. 이 망할 생명력으로 생생하게 과거를 불러오다니! 


“Il admirait la terrible puissance recréatrice de sa mémoire.” 

 기억의 무서운 재창조력(민음) 자기 기억의 무시무시한 재생능력(펭귄)


아, 그러니까 오데트, 당신은 나와 사귀면서 다른 남자, 특히 다른 여자랑 쾌락을 맛보았소? 솔직하게 말해주시오. 그래야 내가 살겠...다지만 그가 원하는 진실은 포주의 진실이라고 프루스트는 잔인하게 적어두었다. 그리고 쓸쓸하게 찾아가는 사창가에서 스완이 아주 어린 창녀에게 듣는 말은 "이렇게 당신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아요" 어쩐지 오데트를 떠올리게 한다. 이제 알겠나요, 신사 양반? 그래, 당신의 사랑은? 


퉤, 하고 침 뱉는듯 내던지는 스완의 마지막 대사는 프루스트의 펜 아래 농락 당하는 인물이 19세기 벨에포크의 변태 부르주아 중년남 스완 뿐 아니라 '속물'이 쓴 속물 이야기라서 진지한 소설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원고를 거절하려 했던 담당자 앙드레지드, 더해서 21세기 침침한 노안의 중년 아줌마도 포함된다. 두 번역본을 불어 GF판 1권과 번갈아 읽으면서 그 소소하고 잔잔하게 깔려있는 많은 오역을 만났고, 19세기에 이미 노동소득보다 자본소득이 우월했는데 무슨 깡으로 없는 살림에 부르주아 이야기나 읽으면서 사는지 나 자신이 한심했다가, 이 백인 변태남의 성매수 이야기를 공들여 읽게 하는 프루스트의 원령이 불현듯 무서워졌다. 여느 소설 처럼 인물들의 이야기로 건너가는 대신, 단어들과 문장들이 펼쳐지는 세세하고 촘촘한 조직의 얼개를 찬찬히 뜯어보는 재미를 알아버렸다. (뽁뽁이를 터뜨리는 것처럼 멈출 수가 없다)


그의 묘사는, 그러니까, 독자를 넘어뜨린다. 


변태는 변태를 알아보는가. 아니면 변태를 연성하는가. 남편이 나보고 '너 많이 이상해' 라고 말했다. 스완의 사랑, 1984년 영화 dvd를 주문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주연은 그말고는 없지, 제레미 아이언스, 불사출의 변태 험버트 험버트, 그가 돌아왔다. (친구 샤를뤼스는 불사출의 불란서 미남자 알랭 들롱) 예고편이 바로 그 마차 장면, 바로 그 카틀레야 음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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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21-02-13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파아뤼에 독자 나도 서 있는 것만 같은 건 역시, 나 혼자만의 오해였던가요 ㅋㅋㅋㅋㅋㅋ 생생한 묘사로 나를.. 바보로 만들었소. 오늘도 중간중간 섞인 만두님 유우머에 깔깔대다 갑니다 ㅋㅋㅋㅋㅋ 만두님 남편님 큰일나셨네요. 많이 이상한데, 아는데, 근데도 좋으면 끝인데... 😇

유부만두 2021-02-14 07:33   좋아요 1 | URL
하하하 이 동네 변태 아줌마는 저입니다. 무서우시지요? 하지만 이미 친구라지요? ^^

scott 2021-02-14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구석 몽상1人~마르셀 프루스트 ㅋㅋㅋ

유부만두 2021-02-14 22:14   좋아요 0 | URL
꼼꼼한 몽상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