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영원서와 우리말 번역서가 있어서 원서로 시작했지만 글자가 작다. 노안이라서 안경을 (그것도 돋...) 썼다 벗다 하다가 번역서로 갔는데, 첫 몇 쪽에서 영 걸리적 거리며 속도를 내기 어렵다.
Fireman 방화수라고요? 이 주인공 방화범 아니었나?
아니었다. 이거 미래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그런데 건물이나 지하철 묘사가 요즘이랑 별로 다르지가 않아서 몰랐네. 나는 왜 소방수 방화범이라고 생각하고 읽었습니까? 그러게?
1986년 LA도서관 화재 사건을 중심으로 한 책을 읽고 그 전부터 제목만 알았던 '화씨451'을 챙겨두었는데, 책의 장르도 몰랐던 거다. 난 이렇게 무지하고 준비가 덜 된 독자인 걸 고백해야만 한다. 사실 그전엔 화씨451, 너무 뜨거운 연애소설인줄 알았지. 모든 걸 불태우는 사랑! (그런 거 아님)
이 책엔 실제로 소방수로 일하면서 방화를 저질렀던 인물 John L Orr 같은 사람도 언급이 되어있어서 '화씨451'의 주인공 몬태그를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아니라고.) 몬태그는 책을 태워야 하는, 책 태우는 일이 업인 사람이다. 책이 금지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몬태그의 세상은 책 대신 '오락'만 있다. 생각이나 고민이 필요없는 곳이다. 1990년 이후 몇 차례의 핵전쟁에 승리한 이 나라는 평화롭다. 귀엔 라디오를 종일 꽂고 벽에선 영상이 종일 흐르며 편안하게 살면된다. 1920년생 작가의 1953년 소설이 그리는 미래가 에어팟과 유툽의 현재와 겹쳐져서 섬찟했는데 이야기 흐름은 생각보단 투박하다. 책이 금지된 세상!!! 이 커다란 충격을 던져주고 주인공의 고민을 펼치는데만 집중해서 디스토피아 세상의 묘사는 그리 세심하지 않다. 하지만 난 2020년에 살고있어서 디테일이 궁금해지는 걸 어쩔 수 없다. 시작부터 몬태그가 이웃 17세 소녀를 만나 갑자기 속내를 털어놓는게 별로다. 그래도 계속 읽겠다.
초반 Firefighter가 아니라 Fireman이라고 하는데 (이 두 단어가 구별이 안되기도 하고) 불 끄는 구원투수 김용수가 생각난 것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