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저자의 표현대로 일부 어린이들이 공룡에 빠지는 '공룡기' 처럼 셜록 홈즈 책을 탐독하는 '셜록 홈스기'가 있다. 맞다. 나도 잘난척하는 홈스의 활약상을 어색한 번역투 문장과 펜선 삽화로 접했고 영어공부를 핑계로 아는 이야기를 다시 읽었고 십대 후반이 되면서 다른 탐정들로 다른 스릴러로 건너갔다. 어린아이의 몸에 갇힌 애니메이션 코난과는 다르게 나는 어른 독자로 조금씩 변했다. 


이번 책은 코넌 도일의 인생과 (의외로 20세기에도 오래 살았던 도일) 홈스의 탄생과 인기, 그리고 작가 사후에 지금까지 하나의 문화로 유적지로 어쩌면 신화와 언어로까지 변주되어 자꾸 살아나는 작중 인물과 이야기를 잘 정리해 주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의 홈스 유산 답사기'를 차분하게 너무 흥분하지 않으며 쓰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너무 부럽잖습니까, 코던 도일의 고향 에딘버러에서 코난 도일 이라는 이름의 펍에서 맥주를 (왓슨 라거 입니까? 다른 거였나요?) 곁들인 런치 스페셜이라니. (뭐, 나도 다른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었지만 말입니다) 이거슨 여행기인가 인물평인가 홈스 이별기인가. (아르테에서 시리즈로 내고 있는 클래식 클라우드의 고퀄리티를 이제야 알았고요) 이젠 이다혜 저자도 독자인 나도 홈스기는 예전에 졸업하고 영드 셜록으로 홈스기 리턴즈도 잘 지내왔으니 흥분 좀 가라앉히고 정리해 보는 거지요. 자, 우리의 홈스 사랑이 깔고 있었던 믿음이랄까 정의는 무엇이었고 지금 2020년에도 의리!를 외치며 도일 만세!를 외쳐야 하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나의 홈스기는 부정해야하고 배신자가 되는 건지. 갖다 버린 그 아이돌들의 씨디 처럼. 갖다 버린 그 소설가와 시인의 책들 처럼.


소설, 그것도 작가보다 더 유명해져서 실존 인물 이상의 유적과 기념물을 가지는 홈스 정도라면 그냥 내버리는 대신 문화와 역사를 다시 따져 보는 대접은 해주어야 한다고 봅니다. 코로나 때문에 에딘버러와 런던에는 못 가도 이다혜 저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도 잘 되어 있고 내용도 풍부한데 멋진 사진도 (특히 동시대 '당시 신인 작가' 사진이 등장하는 편집은 환상!) 많고 문장도 (말해 뭐해요, 이다혜 기자 글인데요. 음성지원 가능) 야무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마음이 무거워진다. 특히 자료 사진 중 하나, 20세기 초 보어전쟁 (남아프리카에서 네덜란드 출신 이주민에 대항해서 벌인 전쟁)에 젊은이들의 입대를 독려하는 붉은 표지의 팜플렛이 섬뜩했다. 마치 미국 대통령의 MAGA 슬로건이나 욱일기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그는 과학적이며 정의감 넘치는 완벽한 작가가 아니었다. 그의 중년 이후의 또다른 신념은 기이하기까지하다. 하지만 이미 내 손에 들어온 이야기의 홈스는, 내 아이가 읽는 빅토리안 시대의 홈스는 제1세계 백인 남성 (더하기 신경증 환자에 안하무인)에 머물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독자가 두 눈 부릅뜨고 따져가며 더 생각해가며 읽으면 되니까. 하지만 꼭 머 그렇게 까지 애써야할까, 재미있는 책이 이토록 많은 2020년에? 그 고민은 이다혜 저자의 이 책을 다 읽고 하도록 하자. 맥주도 마시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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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night 2020-06-21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뤼팽이 더 멋있다는 애들과 다투기도 많이 했었네요. 어릴 적엔ㅎㅎ^^; 이다혜 작가가 쓴 홈스(도일)이야기라니. 바로 보관함에 넣습니다^^

유부만두 2020-06-21 11:44   좋아요 0 | URL
강력 추천합니다!

psyche 2020-06-23 01: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딘버러에서 코난 도일이라는 이름의 펍에서 맥주를! 언제가 되면 그럴 수 있는 날이 올까... 아니 당장 내년에 한국 갈 수 있으려나 ㅜㅜ

유부만두 2020-06-24 08:45   좋아요 0 | URL
아아아 ㅜ ㅜ 언니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막내네 학교는 2학기 때도 온/오프라인 등교 수업을 한대요.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진즉에 취소고요.
이렇게 디스토피아 월드가 열린 건가 싶어서 우울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