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모르고 즐기지도 못하는 내가 에밀리 디킨슨을 읽는다. 그녀의 이름 Dickinson을 처음 들었을 때 찰스 디킨스 Dickens를 생각했다. 성별도 국적도 스펠링도 다른 사람. 디킨스는 좋아했으니 어쩌면, 이라고 생각한 나는 바보.
그러고도 몇 년이나 (십 년을 몇 번이나) 지났고, 책에서 자꾸 보이는 초상화가 무서워져서 이번에 읽었다. 표지에 혹했는데 새로 한 번역은 아니고 70년대 초판 번역이다. 고풍스럽달까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부분은 함께 실린 영어 원시를 살펴 볼 수 있다. 원시를 함께 읽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편 씩 읽으면 마음은 차분해 진다. 고독. 홀로 견뎌내는 아니면 즐기는 것.
영화로 나온 에밀리 디킨슨의 생애를 함께 봤다. 고독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그만 작은 아씨들을 떠올리고 말았고 잘못이었다. 그 낙차란.
그녀의 고독과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그리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우울 보다 더 절실하고 깊은 우울을 만났다. 에밀리 디킨슨이 가진 자신만의 '기준'과 그에 대한 집착은 그녀를 지탱해주면서 파먹어 들어갔다. 영화 초반의 아름다운 화면은 그림 같지만 그만큼 우울을 강조한다. 조카가 태어나는 장면은 나오지만 그 조카와 사이 좋은 관계를 더 보주지는 않는다. 조카와의 일화는 그림책으로도 나와있다.
영화는 매우 우울했다. 그래서 어젯밤에 폭주하듯 떡볶이 사진을 올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