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면 생각나는 건 부침개였는데. 막걸리는 안 좋아해서 대신 부침개를 곱절로 좋아했는데. 어제 밤 카페에서 달리기 책을 읽고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나는 빗속의 마라토너 하루키를 생각했다.

현실의 나는 민트티를 마시면서 축축하게 젖은 바지와 맨발을 말리며 앉아있었지만 상상에선 험한 산악을 타라우마라 족 (라라무리 족 - 달리는 사람들)과 함께 뛰어다녔다. 올라! 상상 속에선 나도 뭐든지 할 수 있지. 내 고관절에 박힌 철심 세 개나 수술 후 남은 스태플러 흉터 따위, 출산 후 남은 튼살 자국 쯤 잊을 수 있다. 현실에선 겨우 2킬로 아령을 양손에 들고 오만상을 지을지라도 상상 속에선 크로스 핏 경기에 뛰어들 .... (그만 하자)

현실에선, 그래도 탄수화물이 그립다. 아이에게 떡볶이를 만들어 주면서 고추장과 설탕 수저를 들고 주저주저 하다가 그래, 즐길 수 있을 때 즐겨라, 넌 충분히 이 탄수화물을 먹고 소화 시키고 태울 수 있는 나이고 그럴 활동량이 있는 나이, 스웩 있는 열세 살. 네 나이 때 난 동네 고무줄 챔피언이었어. 믿어지니? 아파트 단지가 어둑해 질 때 까지 신발 벗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하늘 끝 까지 닿은 고무줄을 도움 닫기로 넘고 깡총 거리느라 양말에 구멍이 날 지경이었어. (야, 그래도 책도 엄청 읽었다. 그건 잊지마라) 그러다 중학교 때 이차 성징과 함께 학교 매점을 만나면서 두둥.... 아, 추억을 떠올리니까 마음이 이상해진다.
그랜드 캐년에 버금가는 멕시코의 오지 계곡에 살며 설렁설렁 동네 마실 가듯 마라톤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바윗길 산길을 사뿐사뿐 뛰어 다닌다는 타라우마라 족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아주 재미있다. '와일드' 생각도 나는데 훨씬 신비로운 사람들 이야기라 신화를 대하는 기분마저 든다. 그런데 마음과 몸이 절로 가뿐해지는 기분은, 그저 착각이겠지요? 마라톤은 너무 짧아서 채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신비의 사람들, 너무 순하고 숨어있길 원하는 사람들, 울트라 마라톤 대회에 샌들을 신고 나와서 1등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 등수에도 집착하지 않는 평화로운 '달리는 사람들'. 아, 나도 달리고 싶다. 일단 커피를 좀 마시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