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겨우, 1권의 1부를 다 읽었다. 전 7권 중 1권 '스완 댁 쪽으로' 에서 1부 콩브레는 300쪽이었다. 하루면 다 읽을줄 알았지. 하지만 문장이 지지리도 긴데다 넘치는 비유가 원 대상 주어를 집어 삼켜서 몇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지금 내가 읽은 것은 뭐여? 콩브레 마을 풍경과 사람들 일상이 아니라 그 너머,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펼쳐져 있다. 그게 프루스트의 맴이었을거야. 욕심도 많지.

 

1부의 시작, 한밤중에 잠이 깨서 자신이 있는 방이 어디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헤맨다. 시대와 장소가 겹치고 흩어지다가 그 옛날 어린시절 (이라고 해도 초등 고학년 나이일듯)의 콩브레의 방, 엄마가 굿나잇 뽀뽀를 안해줘서 서글펐던 기억이 아련히 피어오른다. 아, 무서운 아버지, 애닲은 엄마의 포옹.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시던 조르주 상드의 책. 할머니의 약간 튀는 행동과 말. 할머니의 시누이인 대고모님과 할머니의 자매들의 (자신들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예의로 포장을 했건만) 눈에 보이는 오만도 기억난다.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던 숙모님, 그리고 마들렌느. 아닌척 그런척 손짓과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서열이 드러났다. 귀족과 부르주아, 그리고 서민들. 그들의 휴가 기간의 나른한 행태, 하지만 덮여있던 과거와 파리 혹은 다른 도시의 인연들이 그리는 오묘한 빛깔의 인간관계. 무엇보다 이웃 므슈 스완. 그의 '격에 맞지 않는' 결혼 덕에 그의 고급 사교 생활은 의도적으로 만만해 보이지만 소년 프루스트는 애써 그의 문화력을 닮고만 싶다.

 

밥먹고 하는 일은 독서와 휴식, 하녀 놀리기, 그리고 산책. 길가와 울타리에 피고 지는 꽃, 그 사이에 숨어있다 튀어오르는 아이, 그리고 작은 새. 소년의 맘 속에서 꿈틀대는 갈망. 갈증. 그리움. ...'그녀'를 향한 이 마음은 뜨겁기만 한데 차마 내놓질 못했다네. 넓적다리에서 나온다는 그녀는 어디, 누구인가? 대작가와 친하다는 스완씨 딸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 게르망뜨 부인인겁니까. 콩브레의 주인, 성의 주인, 이 마을의 역사를 깔고 앉은 높으신 부인. 그 부인의 '현실적' 외모에도 상상의 메이크업을 얹어놓아 자신의 꿈과 이상을,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할거야) 망상을 키우는 프루스트. 그녀 만큼 나도 높아지고 싶은거야? 응 그런거야. 그런데 그 고매한 사랑은 어떤걸까.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던 소년은 청년기에도 콩브레의 음악선생 집 창문 밖에서 '의도치 않고' 다시 한 번, 그 집안을 훔쳐본다. 불쌍한 음악선생의 사후, 그 딸의 동성연인과의 '패륜적 언사'를 청년 프루스트가, 그리고 장년 프루스트가 이래저래 묘사하고 평하고 있다. 진정한 쾌락을 모르니 저러는 것이다. 나는 다 알고 있지. 하지만 훔쳐보고 따라다니는 행위는 별별 묘사와 비유, 변명을 갖다 대도 부끄러운 짓이다. 프루스트도 민망해서 서둘러 '쾌락'과 '패륜'에대해 평하는 문단을 줄인다. 어쩌면 그가 들여다 본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근근히 살던 음악선생, 잊혀질 만만한 작곡 소품들, 예쁘지 않은 딸, 그녀에게 아버지 험담을 거리낌 없이 해대며 웃는 연인. 다부지게 펜을 쥐고 적어내려갔겠지. 나는 달라, 이 모든 추억과 마음과 '아름다움'은 남아야해. 게르망뜨 부인은 전설로 남을거야. 나른한 서술들 중에 그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대한 집착은 단단하게 뭉쳐서 자꾸 눈과 목에 걸린다. 그래봤자 이젠 누가 프루스트를 읽겠어.

 

프루스트는 한밤중의 침실에서 사랑과 꽃, 콩브레와 마들렌느와 종탑의 아름다움까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갔으나, 결국 동네길로 접어들고 어린시절의 침실로 돌아와 엄마의 포옹을 바라며 불안에 떠는 소년이 된다. 콩브레를 휘젓고 다닌 그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지나 침실 벽에 흰 줄을 그어대면... 맑은 정신의 '어른' 프루스트가 모든 것을 툴툴 털고 일어나 저 멀리 여명과 함께 도망가는 콩브레의 인상들을 쳐다본다. 이제 하룻밤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다. 계속 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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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2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계속 읽어야 합니다!!!
고작 하룻밤 이야기만 읽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ㅋㅋㅋ

유부만두 2018-05-25 08:46   좋아요 0 | URL
계속 읽겠습니다! 그런데 1권의 1부가 의외로 오래 기운을 뺐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