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한나 아렌트의 삶과 사상을 그래픽노블로 만나다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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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악의 평범성과 싸이코패스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켄 크림슈타인, 더숲, 2019.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생애를 주요한 세 번의 탈출로 정리한다. 한나 아렌트는 베를린에서 파리 그리고 뉴욕으로 국경을 넘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다. 나치의 억압을 피하기 위한 치열한 생존이었다. 1906년생 한나 아렌트는 유대계 독일인으로 어머니로부터 ‘유대인이라고 공격 받으면 유대인이라는 사실로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고 배웠으며 14살 무렵 칸트를 모두 섭렵한 아이였다. 칸트의 저서만이 아니라 칸트가 읽은 책까지 모두 읽고 고대 그리스어를 공부하고서는 그리스 비극 연극단을 결성하는 매우 열정적인 아이.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매우 똑똑한. 이런 한나 아렌트가 일찌감치 다른 대학생들, 훗날 유명한 사상가들로 알려진 이들에 비해서 두각을 나타냈음은 당연하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전범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쓴『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하다. 세상 모두가 나치는 악마라고 생각하고 있던 때에 그들은 누구와도 다를 리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얘기함으로써 동료 학자들로부터 질타와 외면을 받았다.


아이히만을 사악한 괴물이라고 한다면 어떤 면에서 그의 범죄를 용서해주는 거야. 그리고 우리 모두 잠재적인 죄를 짓게 되지. 철저하게 사유하지 못한 죄.

슬픈 진실은 선과 악에서 마음을 정하지 않은 사람들이 제일 사악한 일을 저지른다는 거야.

  

  결이 다를지 모르지만 최근 엄청난 충격을 가져다 준 고유정 사건의 프로파일러들이 고유정은 ‘싸이코패스’가 아니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관해 프로파일러를 비난하는 글들이 넘쳤다. 고유정은 싸이코패스가 되어야만 고유정의 행위가 설명되는 것처럼 댓글들은 성토했다. 드러나는 단편적인 것만으로 이해하고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싸이코패스’라는 말 한마디는 모든 사건의 이유를 쉽고 간단하게 치부해버리는 말처럼 느껴진다. 이해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이 사건의 이유가 단지 ‘싸이코패스’라고 한다면 이해가, 되는 건가. 그렇게 되면 법적 처벌의 강도가 달라지는 건가. 이런 물음이 떠오르지만 어쩌면 그래서, 프로파일러를 비난하는 이들의 심리가 어쩌면 나치 전범자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을 때와 같지 않을까 싶다.

  어쨌든 한나 아렌트의 이 통찰은 인간과 인간의 행동에 대해 더욱 경악과 경각심을 갖게 함은 분명하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전에는『전체주의의 기원』을 통해 ‘악이 어떻게 발생하느냐’를 다루었다. 이 모든 한나 아렌트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 있다. 한나 아렌트는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첫 번째 인물인 스승 마르틴 하이데거를 만난다. 하이데거는 한나 아렌트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친 사람이자 연인이었다. 평생의 연인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하이데거는 유부남이고 한나 아렌트는 두 번의 결혼을 한다. 첫 번째 남편 권터 슈테른, 두 번째 남편은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 하인리히 블뤼허다. 한나 아렌트는 권터 슈테른의 사촌 발터 벤야민과 사상적으로 교류가 깊었는데 이 책에서 한나 아렌트의 이야기만큼이나 발터 벤야민에 매혹된다. 아케이드를 보면 자동적으로 벤야민이 떠오르는데 벤야민의 자살은 생각할 때마다 매우 안타깝다.

  지성인이라는 말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을까 싶은 한나 아렌트는 생애 수많은 학자와 사상가, 예술가, 정치가들과 교류했다. 그 시대가 그러하였기도 하지만 수많은 사상가들이 세상의 폭압 속에서 인간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은 참으로 애틋하고 벅차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책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사상의 나눔, 그 사유와 철학자들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어쩌면 이 책이 그것을 지나치게 극화한 측면이 있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심오하다는 생각, 어렵다는 생각 외에도 조금은 낯간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무슨 말장난인가 싶기도… 삶은 던져짐이라… 학창시절 하이데거의 생애에 관해서는 배우지 않고 그저 시험에 나올 정도의 하이데거의 이론에 대해서만 배우기에 하이데거의 삶을 보고서 놀랐다. 이 책을 통해서도 하이데거의 사상적 깊이, 사람 자체에 대한 끌림을 얻지는 못했다. 하이데거의 책을 통해서는 느낄 수 있을까. 엉뚱하게도 한나 아렌트가 왜 하이데거에게 끌렸는지 이해하지 못함은 외적인 부분에서가 아니라 한나 아렌트의 생애 한나 아렌트가 발전시켜온 사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건 꼭 이해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니까. 사상가들의 사상과 행동의 일치는 항상 같지 않다.

  이 책은 한나 아렌트가 제시하는 대표적인 사상적 이념을 쉽게 이해하게 해준다. 사유의 중요성,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존재적 고민을 왜 이토록 어려운 길로 헤매며 이해해야 싶은 생각들을 할 때가 많은데 그 핵심을 잘 포착할 수 있다. 만화형태의 이 책은 무겁고 딱딱하지 않은 문체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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