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 - 다양한 분야 학자들의 인문학적 소통과 상상
유범상 외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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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생각할까

고독한 나에서 함께하는 우리로-다양한 분야 학자들의 인문학적 소통과 상상 


  ‘함께하는 우리’ ‘공동체’ ‘연대’는 복잡한 사회의 질서가 무너질 때, 상식이 통하지 않고 부조리가 가득한 세상에 대한 대응으로, 구원으로서 이야기되곤 한다. 함께하는 것, 연대는 부조리를 타개하며 실존적 존재로서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된다. 우울한 한국사회에서 ‘함께하는 우리’의 삶을 살아가가 위한 조건들과 방법들을 이 책에선 모색하고 있다. 개인차원에서 고민하고 질문해 봐야 할 주제, 공동체에 관한 성찰, 미래사회를 위한 주제로 나누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견해를 피력한다.

  공동체삶을 중요하고 필요한 가치로 이야기하지만 때로는 어떤 연대의 형태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게 되기도 한다. 지난 촛불집회와 같은 연대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연대방식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사립유치원의 비리근절 토론회에서 보여준 사립유치원연합회의 연대와 같이 특정집단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연대를 위해 올바름에서 비켜선 행동을 보일 때면 함께한다는 가치가 폄하되고 위험해 보일 수가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공동체의 삶, 미래사회를 위한 사회의 연대를 생각하기 전에 ‘나’를 돌아보는 성찰부터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양이다. '나‘는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당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 생각이 무엇인가도 중요한 부분이다. 자칫하다간 악의 평범성의 대명사 아이히만처럼 되어갈 지 모른다는 무서운 경고, 때론 이익 앞에 무너지고 마는.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의료민영화 정책은 국민의 건강증진보다는 시장과 영리를 지향하는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추구에 우선적인 목적을 두고 설계되었으며, 그 정책내용에는 소자본 의료공급자(개원의사), 사회·경제적 소외 지역이나 집단에 대한 이해를 거의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이익’에 관한 집착이 공동체 생활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면 국민의 건강을 두고 벌이는 의료 관련 정책에 대한 의사집단의 이익추구를 위한 연대만큼 빼놓을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해서는 절대 찬성하지 않으며 파업결의를 하며 의사 폭행 문제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의사협회의 집단행동. 물론 의사를 폭행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강력히 처벌해야 할 일이지만 의료사고, 수술 과정에서의 비상식적 행동, 대리 수술 등의 일들이 부지기수로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선 그 어떤 반성도 하지 않는.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가 생활화하고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사회참여에 나서는 것뿐이다.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 중요하다 ‘함께 하는’ 것의 중요성에 ‘무엇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을. 따지고 보면 조폭들은 항상 그들끼리 조직화된 연대를 한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고독한 시시포스들이 무한질주하는 전쟁터”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소위 헬조선이라 불리는 그 모든 상황들은 가혹한 형벌에 처한 시시포스와 다를 리 없는 삶이라고 말이다. 카뮈가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형벌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자살과 종교를 제시했지만 자살은 자신을 살해하는 것이고 종교는 현실도피라는 점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저항’이다. 이 저항은 부조리에 대한 자각에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우리가 자각해야 할 부조리는 많다. 제대로 청산되지 않은 친일 과거사, 끊이지 않고 발생하지만 처벌 수준은 턱없이 낮은 성폭력 문제, 복지사회에 대한 불편한 반응, 갑질 문화, 혐오의 확산과 차별 등 백세 사회가 되는 미래사회에서 수명은 길지만 정서적으로는 편안치 못한 환경에 놓이게 되는 일이 확대된다.


하지만 고독한 개인의 자각과 저항은 자신을 더 비참하게 만들지 모른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각한 개인은 무기력함으로 인하여 더 깊은 좌절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따라서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자신을 더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이런 부조리를 자각하는 것, 중요하지만 혼자라면 오히려 더 고독하고 비참해질 수 있다는 말이 수긍이 된다. 지난 몇 년간 이런 사람들을 얼마나 많았던가. 그리하여 함께 하는 행동을 위해 연대했을 때 사회의 변화 하나는 이루어내었다. 여전히 이뤄가야 할 변화가 많다는 점에서, 보다 행복하게 살기 위하여, 고독한 시시포스가 되지 않기 위하여 나를 성찰하고 ‘민주라는 보편적 가치’의 정의를 정립하면서 연대해야 한다. 이 책은 함께의 가치와 더불어 ‘무엇을’에 대한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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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노라 칼린.콜린 윌슨 지음, 이승민.이진화 옮김 / 책갈피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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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가 떴다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의 전망, 책갈피, 2016.


[다섯 무지개/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8100514351457949]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뒷면 무지개가 뜨곤 했다. 콩레이는 무지개를 보여주진 않았지만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지나가고 난 뒤 미국 뉴저지주에 뜬 다섯 개의 무지개 사진을 보았다. NASA는 ‘과잉 무지개(supernumerary rainbows)’라며 드문 현상이라 했다. 직접 보았다면 얼마나 경이롭게 느껴졌을까.

 최근엔 무지개를 본 기억이 없고 대신 무지개 하면 동성애가 생각난다. 이래서 상징을 만드는 일이 중요한 모양이다. 내게도 레인보우 깃발이 동성애문화상징으로 보다 강하게 각인된 것은 지난 대선전 문재인 후보 국회연설 당시 성소수자 단체의 기습시위 때문이니까 말이다. 레인보우 깃발 제작 당시엔 분홍색이 포함된 여덟색에 ‘섹슈얼리티, 삶, 치유, 태양, 자연, 예술, 조화, 영혼’을 의미하였고 1979년 게이 퍼레이드에 활용할 때부터 남색을 뺀 여섯색이 되었다 한다. 

      최근 지역 곳곳에서 퀴어축제 개최로 보수·기독교 단체와의 충돌이 연잇는다. 기독교인 친구의 동성애 견해에 놀라 이 책을 집어들었지만, 기대했던 바를 충족시켜주진 못했다. 이 책은 동성애 혐오의 원인과 해방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으로 풀어내고 있다. 동성애라는 개념은 19세기 후반에 생겨났고 산업자본주의와 관계가 있고 이전에도 동성애자들은 존재했지만 자본주의에 이르러서야 동성애자 처별과 차별이 확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스에서나 로마에서나 지배계급 부의 주된 원천이 노예제가 성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특히 로마에서는 노예를 부리는 것이 사치스런 소비의 한 형태였다는 게 중요했다. 로마제국 말기에 노예제가 농노제 생산양식으로 완전히 대체된 후에야 비로소 성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등장했다.


동성 관계 문제는 가족의 역사와 관련지어 바라봐야 한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동성애자 억압 문제도 풀 수 없다. 모든 계급사회에서 가족은 성적 순종을 강요하는 핵심 제도였다. 그러나 가족의 형태나 가족이 생산과 맺는 관계는 생산양식이 변할 때마나 매우 근본적으로 바뀌었고 19세기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의 등장은 기존 관념을 완전히 바꿨다. 가정과 일터가 분리됐고, 이 ‘분리된 영역’에서 여성과 남성의 임무가 철저하게 나뉘었고, 개인과 사생활이 새롭게 강조됐다. 그 결과 성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


  사회의 성에 대한 태도는 생산양식과 관계있다는 관점은 기독교의 에이즈의 원인이 동성애라는 주장과 대립된다. 친구는 교회에 강연 온 의사의 “동성애의 결과는 에이즈다”라는 말을 진리라 믿고 있다. 그리하여 그 결과를 생각할 때 동성애에 찬성할 수 없는 일이라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걸 몰랐단 말이야?”

  이 책의 저자들은 ‘동성애자가 에이즈를 퍼뜨린다’는 것은 편견이라고 주장한다. 대다수 에이즈 환자가 에이인 것이 사실이지만 이성애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으며 안전하지 않은 성생활의 문제이다. 그러나 에이즈는 동성애들에 의한 것이라는 거짓말을 언론이 확산하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HIV에 감염된 압도 다수는 가난 때문에 처참한 조건에 놓인 이성애자들이다. 캐냐에서는 인구 18명 중 한 명꼴인 4만 명이 에이즈에 감염됐다. 짐바브웨에서는 성생활이 가능한 5명 가운데 1명이 에이즈에 걸렸다.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는 젊은 여성의 4분의 1이 HIV 보균자다. 이들 중 절대다수가 남녀 사이의 성행위로 감염됐다. 나머지 사람들은 종합병원이나 전문 병원에서 다른 환자에게 사용된 주사 바늘을 통해 HIV에 걸렸다.


  거의 모든 차별의 근원으로 지적되는 기독교에 의하면 동성애든 여성이든 영원히 차별받아야 하는 존재가 된다.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의하면 생산양식이 차별의 요인이기에 그것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자본주의가 보다 싼 값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위해 가족관계와 역할의 억압을 주요 수단으로 삼고 차별을 강행하며 여성과 성에 대한 차별을 부각시켜 왔기에 이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동성애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그러므로 동성애 억압을 철폐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사회변혁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본주의라는 생산양식에서 벗어나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여기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이다.

  고대 사회로부터 동성애가 있었지만 특별한 차별과 처벌이 없던 시대에서 현재에 이르러 혐오와 차별, 처벌이 자행되고 있는 시대에 동성애자들의 차별과 억압에 맞선 투쟁도 지속되었다. 이 책은 동성애 차별 철폐를 위한 투쟁의 역사를 함께 기록하고 있다. 각각의 투쟁에서의 쟁점과 한계와 대안을 제시한다.

  기독교인 친구들의 동성애에 견해는 뚜렷한 혐오에서 시작하며 그들의 확고한 종교적 신념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 의한 의견의 대립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나와 친구도 이럴진대 마르크스주의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의 대치가 오랫동안 이어진 것이 이해가 됨직도 하다. 어떤 무엇에 대한 강력한 반박과 주장은 확고한 이론 정립, 명백한 사실에 기반한 증거, 그리고 어떤 형태가 됐든 강력한 믿음이기에 이 책을 보았지만 속시원하진 않았다. 아마도 이 주장은, 분석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기에 이 유명한 원인 분석을 놓고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현실을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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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사회학 - 당신은 대한민국 몇 %입니까?
정태석 지음 / 책읽는수요일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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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 행복의 지분

행복의 사회학-당신은 대한민국 몇 %입니까?, 정태석, 2014.


  지난달 한창 뉴스를 달군 건 통계청장 교체에 관해서다. 삶의 지표를 가늠하는 통계, 그 중 가계동향조사 표본 선정에 관한 논쟁에서 촉발되어 통계의 신뢰성 문제로 정치권은 대립했다. 이 책에서는 권력이 숨기고자 하는 숫자와 불평등, 자본이 반복해서 말하는 프레임이 삶의 행복을 어떻게 방해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책의 출간이 2014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우리에게 행복은 얼마나 멀어져 있었을지 가늠하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속 유명한 첫 문장처럼 행복한 가정이 모두 비슷한 모습이라면 행복한 사회도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쩌면 행복에 대해 세상은 어느 정도 규격화시켜놓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유엔은 매해 국가별 행복지수를 발표한다. 2018년도에는 행복지수의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기대수명, 사회적 지원, 선택의 자유, 부패에 대한 인식, 사회의 너그러움 등을 기준으로 했다고 한다.


타인 지향형 사회에서 인간은 특정한 가치관을 갖지 않고 타인이나 세상의 흐름에 자기를 맞추며 살아간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타인 지향형 사회인가. 타인을 위한 배려가 넘치는 사회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삶. 언제던가 나라별 중산층 기준에 관한 비교에서 영국, 프랑스, 미국은 다를 줄 악기가 있는지,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는지,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지는지, 부정과 불법에 저항하는가였는데 대한민국은 은행잔고와 월급여가 얼마 이상 되는가, 자동차와 아파트를 일정급 이상을 보유하였는가였다. 지금이라도 달라졌을까,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산다는 건 이런 ‘급’에 선을 맞추어야 행복할까 말까한 삶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준이 아니라 서양의 기준이나 유엔의 기준을 들이댄대도 행복할까 말까하다. 이 나라의 부패는 생각했던 것보다 끈끈해서 도통 깔끔하게 떨어질 줄 모른다. 부정과 불법을 자행하고 그것을 지켜가려는 소위 노블레스의 노력은 2014년을 보내고 2016년을 보내고 행복을 기다리던 수많은 국민들을 위협하고 여전히 분노케 한다. 기대했던 새로운 나날들을 만들어가는 건 그런 이들에 의해 이토록 버겁다.  

  그들이 외치는 경제 민주화의 다른 이름은 재벌가의 지속적인 성장이며 이를 위해 당연 지속적인 착취구조를 공고히 하려고 한다. 이를 위한 무수한 노력들을 위해 그들은 서로 뭉치고 결속하며 단결하고 있다. 한 목소리로 외친다. 복지는 안돼! 분배는 안돼!

  

부유층일수록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더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세금을 낮추고 복지 지출을 줄이고 또 부유층에 대한 증세에 반대하는 보수 정당에 대해 확고한 지지를 보여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만, 보수정당이라 할 때 ‘보수’가 표방하는 것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그 정당이 주장하고 지향하는 바가 많은 국민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인지를 말이다. 상식적이고 논리적이고 사실에 근거한 ‘말’만을 들어도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므로 아직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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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 2009 용산참사 헌정문집 실천과 사람들 2
작가선언 6·9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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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게 세우고


지금 내리실 역은 용산참사역입니다, 작가선언 6·9, 200.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사람의 말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09년 출간된 이 책을 2014년의 어느 날 들춰보다가 첫 페이지 이 단락에 너무 놀랐다. 처음에는 은유로 보았을 그 글귀가 다른 의미로 다가와서 더 아프게 다가왔다. 모든 것이 제대로 해결치 않았고 이제 진도 팽목항 분향소는 철거되고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원회의 용산참사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그때 제기된 여러 문제들을 입닫고 있던 언론은 마치 처음 드러난 일인 양 정부가 한 일을 보도했고 책임자들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곳곳에서 건물이, 담이, 무너지고, 토사가 유실되고 또 곳곳에서는 건물을 세우겠다고 아우성이다. 무너지고 세우고, 무너지게 세우고….  


끊임없이 무엇인가 세워지는 곳에 사는 일은, 폐허에 사는 일보다, 더 고통스럽다.


  이 책은 192명의 문화예술인의 ‘용산참사’를 겪으며 기고한 작품 모음집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철거민들의 어려움과 아픔, 용산참사에 희생된 이들에 대한 애도, 용산참사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과 정의를 모르는 정권에 대한 분노와 비판 등이 시와 산문, 사진과 그림, 판화로 표출되고 있다.

  나희덕 시인의 「신정 6-1지구에서 용산 4지구까지」의 위 문장처럼 아파트공화국, 건물주의 나라에서 사는 일은 고통스럽다. 새소리를 들으려 하면 여지없이 들리는 망치질소리에 하늘을 보려 하면 여지없이 가려버리는 건물을 보며, 그럼에도 살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실감할 때면 말이다. 일년에 3일 자기도 힘든  123채를 가진 전직 검사는 여전히 집이 123채일까, 1234채일까. 가진 거라곤 집 한 채가 전부라는 죄인이 그 한 채의 집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가슴을 무너뜨렸는지, 그 집에 수많은 이들에게서 강탈한 것을 채워놓았는지 모르지 않는데 뻔뻔함을 세우고 있다.

  오랜 동안 이 나라가 정의와 행복을 세우는 일보다는 무너뜨리는데 힘쓰며 오로지 건물 세우기에 혈안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건물을 세우는 일이 가능한 것을 보면, 무너뜨릴 것이 아직 많다는 이야기같다.

  한지혜 작가는 「누가 망루에 불을 붙였는가」라는 글에서 문예창작 전공 시절의 이야기를 적었다. 학기마다 써내는 글의 주제가 ‘철거’였다고. 그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았다고, “다 지나간 시대를 붙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했다. 현실을 외면 혹은 왜곡한 감상주의라는 비판까지 받았다는데, 나도 작가처럼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알면서도 자꾸 눈물이 났다. 나는 하루 종일 강의실 복도에 앉아 울었다. 억울했다. 내가 쓴 글이 다 지나간 시대요, 왜곡된 감상이라니 방학 내내 쿵쿵 울리는 벽에 등을 기대고 있던 내가 다 허상같았다. 그리고 당황스러웠다. 무너지는 집에 앉아서도 무섭지 않았는데. 내가 처한 현실과 전혀 다른 동시대가 존재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내 현실의 고통이나 분노는 가상세계와 마찬가지일 수도 있는 사실을 깨닫자 비로소 두려웠다.


  그런 시대를 살아왔다. 지워지지 않을 시대의 일들이 묻히고 덮일까봐 걱정스럽다. 아직도 철거라는 게 현실에서 보이는 일인데, 그것이 ‘시대를 벗어난 이야기’라는 생각 자체가 현실을 왜곡한 감상주의라는 비판 자체가 얼마나 끔찍한 시대를 살았는지를 더욱 각인하게 한다.    

  비정한 나라에 무정한 세월이 흐른다. 이 세월을 끝내야 한다.

  용산참사의 일을 가해자와 언론이 모르쇠 하는 동안 사건의 진상조사도 처벌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그렇게 비정한 나라가 계속되어 세월이, 되었다. 많은 것이 감춰지는 나라에서 그것을 들추어 소리높이던 이들도 블랙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달라질 세상에 기대와 희망을 가졌지만 모르쇠의 무리들은 그들의 세를 쌓아올리며 승자의 기록이라고 외치고 있다. 백무산 작가의 말처럼 ‘승자의 담론 개발윤리’로 이 세상을 일구고 일궈온 이들이 그동안 ‘무너지게 세운 것‘이 나올 때마다 달라질 세상을 보기 위해선 더 달려야 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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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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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라서 서평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민음사, 2018.


  공채제도가 한국사회에만 있는 제도였나? 아무튼 이 책은 한국사회에 있는 수많은 공채제도 중에서 특히 문학공모전에 관한 르포다. 저자는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 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좌절을 낳게 됐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문학공모전에 중점을 두고 공채제도가 가지는 현실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다루고 있다.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풍부하게 조사하여 다양한 사례를 든 취재 형태로 작가가 전직 기자라는 점이 소설보다 확실히 느끼게 한다.

  장강명은 문학계 공채제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작가다. 많은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과 기자전력 사회현실을 다루는 소재들을 글로 녹여냄으로써 스타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또한 그런 작가가 기본적으로 문학 공채제도에 대하여 부정적인 전제를 두고서 다루는 취재기는 어떤 흥미진진함과 통찰이 있을까, 기대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을 통해 공채라는 시스템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기도 했음을 좀더 느끼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미국의 사회학자 토비 허프는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동양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인재 평가 방식의 차이에서 찾는다. 동양에서는 국가나 스승이 젊은이들의 능력을 평가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세운 기준을 충실히 다르게 된다. 반면 유럽의 대학에서는 일찍부터 논쟁과 토론이 발전했고 이는 체계적인 회의론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식 공개채용 제도가 과연 불합리한 제도일까.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으니 어떤 시스템이라도 문제가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공개채용은 한국에서 가장 비리가 없는 제도라고 인식된다. 문제은행식 시험이든 어쨌든 공평하게 문제를 풀고 맞은 개수에 의해 합격이 가려지는 이 방법에 대해 특별히 불편부당한 제도라고 하지 않고 오랜 세월 흘러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개입되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 문화 자체가 공채제도 이외의 다른 평가방식을 감당할 여건이 미흡한 것도 같다. 미국 사회학자 토비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저자는 공채제도가 사회적 계급을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공채제도의 지나친 경쟁은 합격은 곧 간판을 얻는 것, 권력을 얻는 것과 같게 된다. 합격자간 군대와 같은 기수문화 형성으로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형성됨은 물론이다. 반대로 불합격한 이들은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공채제도가 아닌 다른 형태의 채용 시스템은,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에 관한 진지한 취재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서양에서 주로 이루는 심층면접과 추천에 의한 채용제도의 한국 적용이 공채제도를 뛰어넘는 대안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제도가 더욱 암울해 보인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로 다루는 것이 문학상이니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문학상 출신 저자는 이 문학상제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많은 문학상 지망자들이 문학상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으로, 그러면서도 다른 길이 없기에 문학상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길이 없다는 의미는 자기 책을 낼 기회를 말한다. 가장 쉽고 빠르게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장편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강명처럼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는 기출간 작가들이 늘었고 거대 상금을 내건 공모전 또한 폐지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공모전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다른 형태의 책출간 방식을 이야기한다. 몇 개월 사이 5권의 책을 출간한 인기작가, 김동식 작가의 예를 든다.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 작가가 왜 잘 돼야 하는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소수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 ○○문학상이라는 간판을 달고 작가가 되는 일, 그러한 제도권의 선택이 아닌 독자들이 만들어 낸 작가라는 것‘도’ 가능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분은 거기에 동참했고 그 증거가 지금 여기 앉아 있다고, 했다.”


  ‘왜 잘 돼야 하는지’에 대한 김민섭 작가의 김동식 작가의 사례에 대한 의견은 참고할 만하지만 한편에서 바라보면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간판을 달고 작가가 된 사례에 다름 아니다. 단지 특정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게시판 이용자들과 교감하며 쓴 글들을 책으로 엮은 줄 알았더니, 거기엔 김민섭 작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간판을 단 이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바와 심사위원의 심사를 통한 문학상과 차이는 있지만 또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의문이 든다. 소수라고 하지만 심사위원은 차라리 복수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젊은 한국 신인 소설가 두 사람이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난 과정에 의미시장한 공통점,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공통의 결핍 지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서 공동체다. 김동식, 또는 이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신간 한국 소설이 나왔는데 읽어보니 준수하더라, 또는 보통이더라, 또는 시원찮더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 ‘우리 작가’라며 무조건적으로 열광하지도, 미등단 작가(또는 문단 작가)라며 외면하지도 않는 공간.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면 어떤지, 지난달, 지난해에 나온 다른 신인 작가의 작품에 비하면 어떤지 토론하는 공간. 그러다 적절한 맥락에서 호시 신이치와 프레드릭 브라운과 역대 수림문학상 수상자들의 이름과 작품이 언급되는 공간. 그런 대화와 평판이 계속해서 쌓여 가는 공간. 그래서 예비 독자에게 정보를 주고,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취향없이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공부로 길들여진 독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보며 읽는 책, 누군가 유명한 이가 읽거나 추천하는 책들을 읽는데 적극적인 독서 시장과, 독자들. 길들여진 한국사회의 ‘독서’의 세계인데 저자는 독자의 몫이라 말한다. 어떤 형태로든 서평을 쓰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더 많이 책을 읽고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인 듯한데 몹시도 허무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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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BBP 2018-08-18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었군요. 르포형 작가라는 인식이 강해 그닥 취향이 아니어서 스킵했는데, 읽어봐야겠어요. 이 소설은 특히 작가가 직접 소속되어 있는 분야라 거의 사실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모시빛 2018-08-20 08:10   좋아요 1 | URL
그 분야 관계자의 얘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그 세계가 그렇구나, 나름 정보를 얻기도 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