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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성 1
이치조 유카리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초등학생때 이 만화를 처음 봤었다. 아마도 해적판이었을듯~
그땐 이 작품의 내용을 이해하기엔 참 벅찼었던가 보다. 내 뇌리에 남아있는건, 어떻게 열일곱이나 어린 남자랑.. 그것도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의 아들이랑 사랑에 빠질수 있을까 하는 충격이었다.
얼마전, 난 어렴풋이 남아있던 이 만화의 추억을 더듬으며 정식출간된 책을 찾아 들었다. 어쩌면 그때와는 다른 눈으로 이 작품을 대할 수 있을것 같은 생각에서..
이 작품의 작가인 유카리 이치조의 사랑에 대한 관념은 어찌보면 성 문란이라고 비춰질 정도의 파격을 추구하기도 한다. <사랑의 흔들림, 사랑의 상처>에서는 형제를 오고가며 사랑을 하는 여자를 그려내고 있고, <킹카연애론>은 호스트 일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동안 이 작가에게 단련이 되었던지.. 다시 본 <모래성>은 예전과는 달리 그리 충격적이지 않았다. 어쩌면 나이를 먹은만큼 무뎌져서인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요즘은 연상연하커플이 많은 추세이기도 하니....^^;;
여주인공 나탈리는 부유한 집안에서 귀하게 자란 외동딸이다. 4살때 나탈리의 집앞에 버려져 있던 프란시스는 너그러운 나탈리 부모의 도움 아래 나탈리와 함께 자라게 되고, 필연적으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나탈리에게 어울리는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던 프란시스는 결국 나탈리의 부모님께 인정 받게 되지만 ,불의의 사고로 나탈리의 부모가 죽자 고모의 반대때문에 나탈리와 도망을 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도망은 길지 못했고 두 사람은 절벽에서 자살을 선택한다.
그들의 운명이 엇갈린것은 여기서부터였다. 절벽에서 떨어진 두 사람중에 나탈리만 구조되었던 것..
괴로움의 나날을 보내던 나탈리는 5년이 지난 어느 날, 기억을 잃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아이까지 낳은 프란시스를 만나게 된다. 나탈리를 만난 프란시스는 곧 잃었던 기억을 되찾지만,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시 사고로 프란시스가 목숨을 잃고,프란시스의 아내는 슬픔을 못이겨 자살해버린다. 4살이던 프란시스의 아들인 마르코는 결국 혼자 남겨진다.
그것이 그들 사랑의 시작이었다.
어린 프란시스의 아들에게 프란시스란 이름을 붙이고, 그를 키우게 된 나탈리..
그를 보는 것이 기쁨이자 고통이기도 한 그녀는 끊임없는 번민에 휩싸인다.
자신의 아름다운 후견인을 숭배하고 동경하다가 끝내는 사랑하게 되어버린 프란시스와 잃어버린 연인의 아들을 보며 미워하기도 좋아하기도 하다가 결국은 자신의 사랑을 깨달아버린 나탈리..
열일곱이라는 나이차, 대등하지 못한 관계는 그들 두 사람의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다.
서로의 사랑을 확인했다고 해서, 둘의 차이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사실 난 나탈리가 좀 더 강했으면 싶었다. 그녀가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을 이뤄나갔으면 싶었다. 사랑한다면 좀 더 믿고, 나이가 든 만큼 좀 더 이해를 해줬으면 했다.
물론, 프란시스에게도 불만이다. 어려서이겠지만, 그가 좀 더 냉정했으면 좋았을걸 싶다. 나탈리가 불안해하는걸 알아채고, 그녀를 안심시켜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아~ 정말로 끝까지 평탄치 않은 사랑이다.
그래.. 어떻게 보면 사랑앞에서는 나이고 뭐고 없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야 답답하지만, 막상 그 일이 자기 일이 된다면 어찌될지는 누구도 장담 못하지 않을까...
사실 예전에는 나탈리와 프란시스 외에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번에 읽다보니 조연들의 얘기도 제법 재미나다..
나탈리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엘렌은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로맨스 그레이를 사랑했지만 실연하고, 오래전부터 주변에서 그녀를 지켜보던 미셀과 사랑을 이루게 된다. 가장 행복해진 케이스~
동화작가인 나탈리의 편집장인 로베르는 오랫동안 그녀를 짝사랑하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음을 깨닫고 마치 부모가 된 심정으로 그녀를 지켜본다.
나탈리를 후원하던 미국의 갑부 제프는 나탈리를 사랑하고 싶어했으나,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건 별거중인 아내라는 걸 깨닫고 아내에게 되돌아간다.
정말 다양한 인생들이다...
재미있네.
(모래성이) 안전한 장소에서는 안만들어지고, 만들 수 있는 장소에는 파도가 밀려오다니.
꼭 인생을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인생이야말로 모래성같은걸지도 몰라.
만들고 또 만들어도 언젠가 파도에 휩쓸려 버리지. 항상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
누구나가 그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걸까?
인생이란 모래성 같을지도 모른다. 만들어도 부서지고 부서지고 또 부서지는.....
하지만, 계속해서 쌓다보면 그 흔적은 점점 더 크게 생겨나는게 아닐까.
옛날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옛날티가 그다지 나지 않아서 놀라왔다.
어려서와는 다른 의미로 가슴에 쿡 와닿더라는...
꽤 재미나게 읽었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