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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시티 세트 - 전7권
프랭크 밀러 지음, 김지선 옮김 / 세미콜론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일본만화의 화려하고 이쁜 그림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사실 미국만화나 유럽만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성을 얻고 있는 이 책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박스세트의 할인률이 지름질에 한 몫 거들었음은 말할것도 없다.
씬시티를 펼쳐들었을때, 처음 든 생각은 갑갑함이었다.
온통 검은색..
마치 밝음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먹을 쏟아 부은 듯한 느낌..
일순 "이런건 역시 나랑 안맞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덮어버리고 싶었다.
책을 덮어버리면 그 어두움을 몰라도 될거라는 의식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오로지 빛과 그림자만으로 표현된 그림이다.
그림에서 느껴지는 무겁고 짓눌린 듯한 기운은 씬시티라는 도시 전체를 휘감고 있다.
폭력과 섹스와 무법이 난무하는 이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의 주인공들 또한 도시에 걸맞게 무언가 결여되고 낙오된 인간들이다.
썩어빠진 도시.
부패시킬 수 없는 사람은 더럽힌다.
더럽힐 수 없는 사람은 죽인다.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준 여자가 살해당하자 자신의 방식대로 우직하고 무대포적인 복수를 하는 마브의 얘기를 그린 1권 <하드 굿바이>,
사랑하던 옛 연인에게 이용당해 그녀의 남편을 살해하지만, 곧 그녀의 속셈을 알고 처절한 응징을 하는 드와이트의 얘기를 그린 2권 <목숨을 걸만한 여자>.. 마브가 조연으로 잠깐씩 등장하기도 한다.
그들만의 법이 지배하는 매춘부들의 거리인 올드타운에 얽힌 이야기를 그린 3권 <도살의 축제>.. 드와이트와 죽음의 사신 미호가 등장한다.
업소에서 춤추는 여인 낸시의 과거와 그녀를 지켜준 늙은 형사 하티건의 얘기를 그린 4권 <노란녀석>..
죽음의 사신 미호의 솜씨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건 5권 <패밀리를 위하여> 에서 이다. 다만 일곱권 중에 가장 얇다는 것이 흠...
지금까지 한권이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되던 것과는 달리 6권 <알콜, 여자, 그리고 총탄>은 단편모음이다. 마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가장 두꺼운 7권 <지옥에서 돌아오다>에는 새로운 영웅이 나온다. 해군특수부대 출신의 월레스는 자신의 눈앞에서 납치된 여인을 구하기 위해 온갖 위험을 무릅쓴다. 씬시티를 지배하는 권력과 돈과 폭력에 대항하여 결국 그녀를 구해내지만, 아무것도 변한건 없다. 그 도시는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듯 원래의 모습을 찾는다.
어두움의 도시 씬시티..
그 곳에는 한줄기의 빛과 그 빛에 반기를 든 짙은 그림자가 있다.
순정과 의리가 있는가 하면 잔인함과 폭력이 상존한다.
거친 인간들 사이로 보이는건 끝없는 외로움이다.
일곱권을 읽는 동안 나는 그 도시에 푹 빠져 버렸다.
갑갑하게만 보이던 그림은 어느새 익숙해져, 오히려 즐기게까지 되었다.
묘하게 끌리는 여러 캐릭터들 또한 이 책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이다.
아무 생각없이 책 속에 빠져 몇 시간을 보냈다. 중독성이 있는 책이다.
이제 영화가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