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이 리뷰에서 비슷한 말을 쓰기도 했지만,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보면 고통의 순간에 대해 미학적으로 찍은 사진들은 타인의 고통을 우리에게 매우 멀리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니까, 그건, 너무 우리의 것이 아닌 것. 수전 손택이 예로 들었던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사진은 예전에 나 역시 매우 아름답다 생각했던 적이 있는 터라, 저항하고 싶었지만, 그녀의 말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고통을 이야기하는 방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낙들이 빨래를 너는 장면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움을, 위에서 롱샷으로 잡은 판자촌의 질서가 주는 미학적 아름다움을 보며 먼저 감탄부터 나왔던 건 나뿐이었던가.



한 사람의 인생 역전에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그게 희망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 아무 상관없을 그 행운을 보며 삶의 용기를 얻는 사람들의 절망을 이야기하는 편이 맞지 않을까.

실제로 인도에서는 이 영화가 인도를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항의하는 운동이 벌어졌다는 기사도 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삶과, 역사와, 퀴즈라는 요소가 주는 흥미라는 것을 '잘 담아냈'기에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참 똑똑하게 잘 '만든' 영화인 것 같긴 하다. 일단 나도 재미있게 봤으니 말이다.


(이건 여담인데, ㅎㅎ 중학교 때 별밤 퀴즈퀴즈 나가서 얼렁뚱땅 우승한 생각이 났다. 대학생과 붙었었는데, 나는 그걸 운명이 아닌 '운'이라고 부른다. 이건 상품이 세고비아기타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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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30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4-05 2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9-03-31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고비아기타, 우왓 지금도 가지고 있나요?
웬디양님이 똑똑하게 잘 만든 영화,라고 하시는 이 영화
아직 못 보고 있네요.^^

웽스북스 2009-04-05 21:10   좋아요 0 | URL
아. 세고비아기타는 기타꿈나무에게 선물했었어요. ㅎㅎ
결국 보셨는지요? 혜경님의 리뷰도 궁금한걸요. ㅎㅎ

yamoo 2010-03-14 2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근데, 약간 아쉽긴해요~
 



그러고보면 참 재밌는 일이다. 봄방학은 왜 봄방학일까. 아이들의 봄방학이 끝나는 순간 봄이 시작된다. 아니다. 꼭 그렇게 볼 수도 없다. 3월이 온다고 바로 꽃이 피는 것도 아니고 따뜻해지는 것도 아니니까. 왜 방학을 왜 계절과 꼭 연관시키는 건지. 뭐 나의 작은 불만이 그렇거나 말거나 어쨌거나, 아이들은 봄을 맞이하기 전 짧고 아쉬운 방학을 맞고, 이 기간에 많은 교회들은 청소년부(혹은 중고등부라고 부르나?) 수련회를 가곤 한다. 우리 교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2월 마지막 주에 9명의 아이들과 함께 태안으로 청소년부 수련회를 갔고, 청소년부 교사인 나는 금요일 퇴근 후 여행하는 기분으로 혼자 버스를 타고 태안으로 향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가는 시간에 기도회가 끝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기도 했다. '성령기도회'라는 이름으로 준비된 청소년부 기도 시간이 나에게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시간표상으로는 기도회가 끝날 시간 즈음 내가 들어가게 돼 있었는데, 이게 왠일. 일정에 착오가 생겨 내가 가고도 1시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에 기도회가 시작됐다.

꿈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꿈이 이루어지기 원한다면 더 큰 목소리로 기도하십시오. 계속 이렇게 살 건가요? 변화되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성령님을 더 큰 목소리로 부르세요. 성령님, 지금 나에게 와 주세요.

결국 그 강압적이고도 간절한 분위기에 뜨겁지 못한 웬디 선생님은 10분도 안돼 지쳐버렸다. 콘택트렌즈가 빡빡하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핑계삼아 잠시 자리를 빠져나와 생각했다.

꿈이 이루어지려면 더 큰 소리로 기도해야 한다고? 휴.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러니까, 꿈을 이루어주기 위해 존재하는 분인건가? 그런건가? 우리가 하나님께 최고로 구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인건가. 혹시 청소년들은 꿈을 볼모로 잡혀있는 존재는 아닐까. 모 목사님 말처럼, 성령님은 어디 계시다가 우리가 기도회 시간에 뜨겁게 불러야만 오시는 분이신건가.

하지만 나는 선생님이니, 오래 자리를 비울 수는 없는터. 혼란스러운 마음을 안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간다. 이번에는 각 선생님이 아이들 그룹 안으로 들어가 손을 붙잡고 서로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나는 저 뒤쪽에 뻘쭘하고도 뻘쭘하여 도무지 이 분위기에 어찌 적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아이들의 곁으로 웃으며 다가간다.

얘들아, 힘들지.
아,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죽겠다는 얼굴을 해놓고는.
아, 사실, 전 저렇게는 못하겠어요.

괜찮아. 사실 선생님도 저렇게 하는 기도보다는 조용히 하는 기도가 더 좋은걸. 너희가 같이 뜨겁게, 소리내어 기도하는 게 어려워도 괜찮아. 기도 소리의 크기가 신앙의 척도는 아니니까, 그런 것들로 너희들의 신앙에 회의를 품을 필요는 없어.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그런 것들로 인해서 실족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의 중심보다 다른 것들에 더 집착하게 되고, 그런 것들로 네 신앙을 스스로 재고, 제한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거야. 지금 너는 하나님을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을 알고 싶은 만큼, 아직은 하나님이 네 마음 속 작은 방에 있는 것으로 느껴지지만 존재하신다고 여기는 것만큼, 그만큼의 너의 신앙을 존중하고, 앞으로 그 품을 더 넓혀가는 것, 그런 것들이 지금 이순간 여기에서 너의 신앙의 크기라 여겨지는 것을 한 순간에 확장시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야.

아이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10년쯤 전, 어떤 수련회 현장에서의 내가 떠올랐다. 사람들마다 모습과 성격이 다르듯,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과 성격도 다를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하던 그 때, 다른 아이들처럼 뜨겁지 못함이 한탄스러웠고, 나의 믿음은 왜 저 아이만큼 좋지, 아니 좋아보이지 않는 걸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그러면서 나도 괜히 같이 목이 쉬어라, 터져라, 기도도 해봤던 것 같다. 그 때 내게 필요했던 건, 조금만 더 해봐. 그럼 너도 쟤들처럼 될 수 있을 거야, 라는 격려 섞인 강요를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지금 네 모습 그대로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선생님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그렇게 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뜨겁던 수련회의 한 구석에서, 매우, 괴롭고 또 외로웠다. 되지 않는 것들을 갈망하며, 되지 않음에 절망하며.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걸까. 나의 믿음은 그저 허상인 걸까.

그런 나였기에, 아니 아마 그렇지 않았다 해도, 아무튼 나는 아이들의 기도소리의 크기로 수련회의 은혜정도를 측정하려 하고, 몇몇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 오늘 은혜 좀 받았구나, 라고 생각하는 그 때의 분위기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 순간 아이의 진정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성의 척도가 되는 외식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의 마음을 만족시키는 정답들이 몇 가지 있다. 수련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어른들 마음에 매우 흡족한 정답일테지만, 나는 우리 아이들이 진심은 저 너머에 둔 채 정답을 말할 때 좀 속상하다. 아동부 교사를 5년 이상 하면서 느꼈던 건, 아이들에게 정답만을 가르쳐야 한다는 (그만큼 또 아이들이 어리기도 하다는) 답답함이었고, 나는 그렇게 머리로 배웠으나 마음으로 실감하지 못한 정답들을 계속 가지고 자라날 아이들이 안타까웠다. 내가 그러했듯. 그리하여 나는 아이들이 진심을 말하는 법을 좀 배우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청소년부에 지원했다. 나는 진심으로 아이들이 정답을 말하는 일보다 진심을 말하는 일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그게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때로는 좀 되바라지고 거세다는 평가를 들을지는 몰라도. 그 진심을 어른들의 정답이 아닌 나의 정답에 가까운 것으로 만들어나가는 일. 그렇게 끊임 없이 자기 자신을 성숙하게 만들어나가는 일. 이건 아마 내가 올 한 해 내가 맡은 우리반 아이(1명이다)와 함께 해나가고 싶은 작업이다. (하지만 내공이 부족하다. 휴)

기도회 시간이지만, 기도 대신 저 뒷편에서아이들과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하며 올해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해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자라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시 한 번 작정했다. 쑥쑥 멋있게.

거기 뒤쪽. 아이들과 기도를 하세요. 대화를 하지 말고.

앗. 눈초리가 따갑다. 그렇지만 죄송. 지금은 저도 다른 어른 선생님들의, 목사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고, 아이들과 좀 더 대화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되바라진 선생님이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면, 되바라진 선생님 하죠 뭐. ^-^ 




www.naar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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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09-03-28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되바라지지 않았어요. 내공 부족보다는 좀 다른게 원체 삐걱거리는거란 생각이 들어요.
나도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그때의 나도 웬디양님처럼 목이 쉬어라, 탈진할 정도로 나를 압박했었어요. 그래서 얻어진건 내가 이만큼 노력했다는거지, 진심으로 닿았구나라던가, 내 안이나 어느 곳에서든 현현하는 그분의 모습은 아니었어요.
그때 만약에 웬디양님같은 선생님이 있어서 '아치, 어깨에 힘 빼고 네가 원하고 간절하게 바라는 모습대로 기도해보자'란 말을 했다면, 제 신앙이 크고 막강하진 않았겠지만 쭉 이어가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웬디양님!
가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자주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말야. 히... (음흉한 웃음)

Arch 2009-03-28 14:26   좋아요 0 | URL
아아, 마지막 그림이요. 옥찌들 영향인지 모르겠는데(옥찌들이 제가 사진찍을 때 이마를 반 정도 자르면 항의하고 이마 살려내라고 하거든요. 얼굴 예쁘게 나오게 하려는 컨셉인데. 칫) 얼굴이 잘리니까 다른 내용보다, 얼굴이, 얼굴이,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웽스북스 2009-03-30 01:22   좋아요 0 | URL
아. 아치님도 그랬던 적이 있군요. 그 때의 그 답답함.

사진은 저거요, 사실요, 파워포인트 클립아트에서 '선물' 검색하면 나와요. 소심해서 저작권 때문에 아무거나 못쓰고 가끔 애용하는 프리웨어 무더기 클립아트. 흐흐.

2009-03-28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30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라나타 2009-03-29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름과 다름 사이'를 통해서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가름과 다름 사이에 이 글에 대한 댓글을 달았는데, 이 곳에서 웬디양님을 보니 더 친근하게 다가오네요. 가끔 놀러와서 글도 읽어봐야겠네요^^

웽스북스 2009-03-30 01:23   좋아요 0 | URL
하하. 마라나타님. 반갑습니다. 주신 덧글은 이미 확인해 답글 달아놓았고요. ㅎㅎ 여기는 어쩐지 좀 부끄럽습니다.
 



함성소리가 크기에 뭔가 디게 잘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회사 사람들의 반응이 과한 거였다. 일하기 싫어서 슬슬 휴게실로 가보니 볼 하나에도 환호성이 장난이 아닌 거였다. 덕분에 오늘 야구에서 가장 스릴 넘치는 순간이었던 9회말을 감상했다. 그런데 10회초에서 그렇게 2점을 내주고 난 후에는 다들 자리로 돌아온다. 음. 9회말의 역전은 기대하면서 아무도 10회말의 역전은 기대하지 않네. 음. 일본이 10회초에서 그렇게 점수를 냈으면 우리나라도 낼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라는 나의 물음에,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재밌는 현상이다. 그 순간 나는 우리나라가 좀 이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러니까, 이 얘기를 쓰려던 건 아닌데. 맨날 도입부가 길다. 하하. 그러니까, 내가 어제 던졌던 어이없는 질문(어제 회의 시간에 야구에 대한 질문을 던져 모두에게 '너 야구 정말 안보는구나' 라는 소리를 들었던 질문이 있었다 -_-) 보다 오늘 누군가 나에게 더 쉬운 질문, 그러니까 나도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들어서, 어쩐지 나는 최하수가 된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그 질문은.  

 

홈런은 몇점이에요? 
라는 질문이었다. ㅋㅋ 나는 그건 아는데. (자랑이다) 그리고 4볼로 1루 나가는 걸 보며, 
 

저건 왜 나가는 거에요?

흐흐흐. 나는 그것도 아는데. 그래도 나는 중하수 정도인가보다. ㅎㅎ 이쯤되면 내가 던졌던 질문이 좀 궁금하지 않은가? (퀴즈로 내볼까? 참고로 이건 야구를 보다 던진 질문이 아니라 스코어보드를 보다 던진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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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주미힌 2009-03-2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이게 젤 웃겼어요...

'왜 안타를 치면 1루에 있는 사람이 2루로 가느냐.'
그거에 대한 질타....
'이게 윳놀이냐.. 업어가랴...'

(내가 하니깐 안 웃기다..)
(집 나간 유머 좀 찾아주삼;;; 요즘 욕만 늘어서..)

웽스북스 2009-03-26 01:18   좋아요 0 | URL
웃긴데요 ㅋㅋㅋㅋ

바로 2009-03-25 0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들은 야구를 보고 싶은게 아니라 함께 응원하고 싶은건데 말이지요.
이나라 정말 함께 무언가 한다는 걸 느낄 때가 스포츠밖에 없다는건 비극이죠.
오늘 우승했으면 TV에서 한달 내내 야구만 틀어줬을 거 같기도 하고;;
그래도 이겼으면 정말 멋진 경기가 되었을텐데요.

웽스북스 2009-03-26 01:19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슬픈 현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맘놓고 스포츠를 좋아하기가 힘들다...며...
저의 무흥미를 열심히 핑계대주고 있는 중. ㅎㅎ

네꼬 2009-03-25 09: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하 우리 회사 모씨도 안타치면 업고 가는 룰을 만들자고 한 적 있는데. ㅎㅎ

웽스북스 2009-03-26 01:20   좋아요 0 | URL
ㅋㅋㅋ 생각해보니 너무 괜찮잖아요.

Mephistopheles 2009-03-25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구는 왜 13회까지 있나요..했을지도.

웽스북스 2009-03-26 01:20   좋아요 0 | URL
비슷한데, 음. 야구가 9회까지인 건 알고 있었다구요.

Arch 2009-03-25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 B O 이거에 대한 이니셜을 잘못 말한거 아니에요?
우리 엄만 B를 보고, 볼이잖아 그래서 가족들을 놀래키더니 바로,
볼을 치니까 B잖아. 이러셨는데.
저도 야구 잘 몰라요. 그런데 다들 야구에 푸욱 빠진건 곳곳에서 보이더라구요.
어제 지하철 타고 오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총각에게 야구 어떻게 됐냐고 물으시는거에요.
-학생, 이겼어?
-졌어요. 5:3인가로.
-응? 정말 졌어? 내가 볼때까지만해도 동점이었는데.
-졌어요. 저도 인터넷으로 잠깐씩 봐서 잘 모르는데 졌어요.
-왜 졌지?
-저도 잘 모르는데 연장전까지 가서 그랬대나봐요.
-그래? 정말 왜 진지 몰라? 이길줄 알았는데.
그리곤 한참이나 그 둘 대화가 이어졌는데, 전 두분이 귀여서 원.
그런데 저는 왜 댓글로 페이퍼를 쓰고 앉았을까요. 라주미힌님처럼 집에도 없었던 유머 좀 하사하소서, 웬디양님.
제가 정답 맞춘거죠? 선물로 뭘 달랠까.(미친^^)

웽스북스 2009-03-26 01:21   좋아요 0 | URL
도레미! 땡! ㅋㅋ
근데 볼은 왜 볼일까요 갑자기 궁금해졌다는. ㅋ

그 아주머니와 총각은 그러니까,
모르는 사이였던 거죠?

Arch 2009-03-26 19:49   좋아요 0 | URL
그렇죠. 그래야 얘기가 되는거니까.
그러니까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그냥 들어온 볼, 이게 네갠가 되면 1루로 가고 그런거 아닌가? 아, 야구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질 댓글이겠다.

Matt 2009-04-02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니, 이건 ... 어떻게 1 person 3 role을 ?
나름, 싸이, 알라딘, 저같이 자기표현에 둔감하고
문외한인 일에 쪄든 직장인은 어찌 살란 말씀이신지... 흑
요즘엔 음악도 많이 듣고 내공도 기르려 책도 읽는 시간도 많아졌지만
아직 서울-서울 생활이 제겐 익숙하지 않네요. ㅎㅎ

PS 혹시 "9회까지 해서 나중에 점수 많이 낸 팀이 이기는거 아녜요?" 하셨는지...
 
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구판절판


그녀는 자기가 만든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맹목적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너무나 어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갔던 길을 되돌아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독립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독립심을 가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위압적인 하객들이 최초의 증언 때에 모여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는 제단 앞에서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최초의 확신에 더 깊이 몸을 내던져야만 마음속의 의구심을 희석시켜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이싸고 믿는 것을 꽉 부여잡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채 최초의 증언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종결되고 형이 언도되어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서는 그 일을 깨끗이 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과 무자비한 청소년기 특유의 망각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245쪽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 -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449쪽

연인들을 살려두고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그럴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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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03-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속의 밑줄.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꼼꼼한 웬디 씨. (싱긋)

웽스북스 2009-03-25 00:26   좋아요 0 | URL
싱긋. 네꼬님만 할까.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구판절판


이것이 그대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가. 한 때 사람들이 영혼을 가졌다는 것이-평판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혹은 수사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는 진실로서, 그리고 그에 의하여 행동하는 진실로서! 참으로 그 때는 또 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잃었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더 나쁜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181쪽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 있소? 영혼에 대한 관념이 시들어갈 때쯤 프로이트가 에고를 들고 나와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걸? 그 사람의 타이밍이란! 잠시 멈춰서 곰곰이 생각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이런 무책임하고 늙은 멍청이 같으니라고. 내 생각에 사람들이 에고에 대해 잡소리를 쏟아내는 건 자신에게 영혼이 없다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봐!"-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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