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구판절판


그녀는 자기가 만든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맹목적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너무나 어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갔던 길을 되돌아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독립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독립심을 가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위압적인 하객들이 최초의 증언 때에 모여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는 제단 앞에서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최초의 확신에 더 깊이 몸을 내던져야만 마음속의 의구심을 희석시켜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이싸고 믿는 것을 꽉 부여잡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채 최초의 증언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종결되고 형이 언도되어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서는 그 일을 깨끗이 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과 무자비한 청소년기 특유의 망각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245쪽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 -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449쪽

연인들을 살려두고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그럴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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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03-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속의 밑줄.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꼼꼼한 웬디 씨. (싱긋)

웽스북스 2009-03-25 00:26   좋아요 0 | URL
싱긋. 네꼬님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