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고, 교회 모 집사님이 부탁을 하셨다. 실은 부탁받은지 좀 되었는데, 어떻게 추천을 해줘야할지 잘 모르겠더라. 내가 청소년 시절 읽었더라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 싶은 책으로 골라서 담아 보니, 이건 뭐 집사님이 날 빨갱이 취급을 하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ㅎㅎ 하여 오늘 다시 만나 여쭤보니, 애들에게 뭔가 지식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책을 원하시는 것 같더라. 중학생인 재혁이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재현이는 나도 매우 예뻐하는 아이들이다. 그런데, 책 읽는 건, 그러고보니 본 적이 없네. 애들이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도움이 될망한 게 뭘까, 고민을.


재현/재혁이를 위해 고른 다섯권의 책

이 책이야, 뭐 워낙 유명한 책이지. 지식적으로 도움이 되면서 흥미로운 지식들로 가득한 책이니까. 최근 나온 걸 살까 하고 보니, 의외로 예전만 못하다는 평이 있어서, 1권은 내가 읽어서 아니까, 지식은 최신판이라고 꼭 좋은 게 아니고, 구간이니 이게 더 값도 싸니까, 결국은 이 녀석으로 결정. 워낙 유명한 책이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망설일 이유도 없는 책이다.



절판이 되어 매우 아쉬웠는데, 알고보니 개정판을 준비중이었나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재현이를 위해 골랐다. 이 책은 내게도 매우 큰 도움이 되었다. 강만길 선생님이 매우 공들여 작성하신 이 책은 근현대사에 대한 건강하고 탄탄한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바로 어제 읽은 책을 추천도서로 넣는 센스. ㅎㅎ 실은 애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을 살짝 했지만, 김두식 선생님이 본인의 딸 얘기와 지랄 총량의 법칙까지 들어가며, '청소년' 인권 문제로 시작한 책인지라, 청소년인 아이들에게도 흥미롭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들이 예민한 인권 감수성을 가지고 자라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골라보았다.



이 책은, 알라딘 명사추천도서 서재에서 김두식 교수님이 추천한 책. 그의 젊은 시절을 뜨겁게 했고, 의사의 길로 그를 이끌 뻔했던 장기려의 삶을 세세하게 기술한 책. 재혁이는 한 때,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려운 사람들 고쳐주는 한의사가 되고 싶어했다. 그런 재혁이를 생각하며 골랐다. 누구나 꾸는 평범한 꿈이지만, 때로 이런 책 한권이, 평범한 꿈을, 평범하지 않은 현실로 바꿔주는 원동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꿔본다.


최규석의 최근작을 넣을까 하다가, 그 책도 좋았지만, 그래도 나는 최규석의 책 중, 이 책과 습지생태보고서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데, 아무래도 재혁/재현이네 엄마는 이 책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야 좋아하지만 남의 집 애들한테 '지지리 궁상'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원 ;;;;) 요즘 질풍 노도의 시기라는 재혁이는 엄마와의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 엄마의 세대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바람도 담아 보았다.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이 좀 더 따뜻해지는 여름 방학이면 좋겠다는 바람도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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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09 0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09 1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큐리 2010-08-09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리스트는 저도 활용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

후애님 이벤트에 잠깐 나오셨다는 얘길 듣고, 뵙지 못해 좀 아쉬웠답니다..

웽스북스 2010-08-09 12:42   좋아요 0 | URL
아. 이벤트에 나갔다기보다는, 연극을 보러 갔다가 마주쳤어요. :)
오셨었다는 얘기 듣고 저도 아쉽더라고요.

깐따삐야 2010-08-09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추천도서를 다 읽으면 가슴이 뜨거운 아이들이 될 것 같네요.^^

웽스북스 2010-08-09 12:42   좋아요 0 | URL
일단, 다 읽기부터 해줬으면 좋겠다는 원대한 소망. ㅋㅋ

굿바이 2010-08-09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끈따끈한 그리고 참 좋은 책들이예요. 웬디양의 의지도 보이고^^
그렇지만 연애서적이 빠진 건 좀 아쉬워요 ㅋㅋㅋㅋ

웽스북스 2010-08-09 23:03   좋아요 0 | URL
제 의지가 보이나요? 역시 언니. 아슬아슬한 균형의 지점이 엿보이죠? ㅎㅎ 저 정도 나이 남자 애들이 읽을만한 연애 책은 뭐가 있을까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ㅎㅎ (그런 선물은 개인적으루다가 하던가 해야지. 남의 엄마 돈으로 연애책 사주긴 좀 그렇잖아요~)

yamoo 2010-08-09 2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에 막 입학한 학생에게는 금상첨화인 책인데 중학생이 읽기에는 좀 벅차보이는 군요~^^ 그래두, 참 자~알 선택하신 것 같아요! 연애서적이 빠진 건...아마도 지식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추천받아서 그리 되지 않았나 생각이 됩니다..연애추천서면, 그게 무자게 재밌다면 지식을 습득하는 책들은 좀 멀리하지 않을까요..ㅋㅋ

웽스북스 2010-08-09 23:04   좋아요 0 | URL
아이고. 칭찬 받으니 좋습니다. 흐흐.
중학생 녀석은 이제 내년이면 고등학생이 되는데요,
제가 보기엔 굉장히 좋은 떡잎이 엿보이는 아이라서요.

(그렇지만 역시나 걱정은 되네요)

風流男兒 2010-08-1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어릴 때 저런 누나? ㅋㅋ 가 있었더라면
그래도 아마 책은 안읽었을거야.. ㅠ

다 읽기만 해도 정말 엄청나겠는걸요 ㅎ

웽스북스 2010-08-12 01:14   좋아요 0 | URL
피드백이 없어서 떨고있어요. ㅋㅋㅋㅋㅋ

멜라니아 2010-08-10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 댁의 아이들은 부모님이 추천해 주시는 책들을 그래도 읽어 보려고 하는
모범생 아이들인가봐요
우리 집 아들은 내가 이 책 좋다고 하면 더 읽기 싫대요
책 읽으라고 하면 신경질 내고.
그래서 내비리뒀더니 <고래>를 몇 달만에 읽고 겨우 재밌다고는 하던데
하여간 자식은 15살 넘으면 남의 자식이 더 멋져 보여요
울안의 자식은 웬수같은 노미.

웽스북스 2010-08-12 01:15   좋아요 0 | URL
모르죠. ㅎㅎ 제가 엄마가 아니니까,
그냥 자유롭고 쿨하게 추천만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거죠-

훈이는......잘생겼잖아요. 그게 최고죠.
 


지인의 블로그에서 레몬절임을 만든 걸 보고, 꼭!! 해먹어야겠다 결심한 조웬디씨는,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어제 물과함께 배달시킨 레몬으로 레몬 절임을 만들어봐야겠다 결심합니다. 여기저기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가장 간단한 레시피들을 조합해 만든 초간단 레몬절임. 휴대폰 사진 찍는 거 제일 귀찮아하는 제가, 인증샷까지 찍어가며 열심히 만들어보았습니다.

소요시간은 략 1시간 가량.

준비물 :



레몬 5개 / 꼭 다섯개일 필요가 있을까요. 그냥 있는 만큼
설탕 / 지난 번 처참하게 잼을 망치던 날 사놓은 설탕. ㅋㅋ
유리병 / 레몬 절임을 담을 거에요.

이만큼이 다인 줄 알았는데, 추가 준비물이 나중에 또 생겼답니다. ㅋㅋ



소다와 식초.
레몬 절임에서의 포인트는 레몬을 깨끗하게 씻는 거라고 하더군요.
농약을 말끔히 없애주어야. ;;

없어서 대충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다는 예전에 뭔가 사고 받은 게 있더라고요.
식초는 요리초밖에 없어서 대충 그걸로 ;;;



그릇에 뜨거운 물을 붓고



소다와 식초를 넣으면 화학 작용에 의해 물이 부릉부릉 끓어올라요.



레몬을 잠시 담가둡니다. 얼마나 담가야 되는 지 몰라서 대충 적절히 담갔어요.
아무리 찾아도 안나오던 ;;;



레몬이 물에 둥둥 뜨길래 깨끗하게 씻기라고 집게로 막 푹 담가줬어요.



병은 냄비에 넣고 팔팔 끓여서 소독합니다. 이거 꼭 해아되나봐요.
모든 레시피마다 다 나오더라고요.



레몬을 꺼내어 소다로 빡빡 문질러 닦습니다.



다 했다면 이번엔 소금으로 빡빡 문질러 닦아 행궈냅니다.
한꺼풀이 벗겨지는 느낌이 나더라고요.

집안에 레몬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ㅎ



다 닦은 반딱반딱한 레몬들~ 샤방~



레몬을 자르기 위해 위 아래 꼭지를 잘라냅니다.



레몬 자르기 신공... 0.3cm 정도의 두께로 자르라고 하더라고요.
저 상태로 그냥 해도 되는데, 저는 반을 더 자랐어요. (그냥 그게 왠지 더 맛있게 될 것 같아서)

레몬씨도 빼줘야 해요. 손이 신걸 너무 많이 먹어서 쪼글쪼글해지더라고요.



짠~ 레몬썰기 완성!



이제 설탕과 레몬을 담습니다. 설탕을 스푼으로 담아야해서 그릇에 덜었어요.
레몬의 양과 설탕의 양은 1대 1로 준비합니다.
(말은 이렇게 하고 그냥 대충 담았지요)

아래층에 설탕을 깔고, 위에 레몬을 올리고, 다시 한층 설탕, 다시 한층 레몬.



이렇게 레몬 위에 설탕을 올려서 수평 대충 맞추고
다시 레몬 얹고, 수평 맞추고, 설탕 얹고 수평 맞추고



이렇게 레몬 절임을 완성!!!
병 2개면 충분할 줄 알았는데, 저주받은 공간감각 능력으로 -_- 병 1개 급구하여
거의 다먹은 잼통 급수배하고, 급 소독해서 완성.

자꾸만 뒤에 설탕 봉지가 나오는게, 설탕회사 PPL 같구만요.
(저는 큐*설탕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이렇게 5일 정도를 기다리면된대요. 
물에 시럽에 얼음만 넣고 먹어도 맛있고, 탄산수에 넣어 먹어도 맛있다고 하는데,
흠. 일용할 양식을 만들어놓으니 뭔가 뿌듯합니다. :)

그러면서도 맛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잼은 결과라도 바로 나왔지만 ;;; -_-

두근두근 떨고 있는 중입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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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10-08-0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웬디님 살림의 여왕. 나는 이사오고 1개월이랑 지금이랑 같은 생활. 이제 김치찌개도 안 해먹는... ^^

웽스북스 2010-08-08 21:20   좋아요 0 | URL
훗. 그런데 저는 찌개같은 거 안끓인지 백만년.
맨날 면식이에요. ㅋㅋㅋㅋㅋㅋㅋ

밥차려먹는 거는 너무 귀찮아.

이매지 2010-08-08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기본적으로 유자청 만드는 것과 비슷하군요. ㅎㅎ
5일 뒤에 어떤지 알려주세요오오오오~~

웽스북스 2010-08-08 23:09   좋아요 0 | URL
아. 유자청. 저는 그것을 만들어본 적이 없습니다만,
블로그 검색하다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레몬청, 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고요.

5일후에 알려드릴게요. ㅋㅋㅋ

마노아 2010-08-08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악, 너무 맛나 보여요. 이게 곧 레모네이드가 되는 거죠? 살림쟁이 조웬디양, 진정 멋져요!

웽스북스 2010-08-08 23:09   좋아요 0 | URL
네네. 5일이나 기다려야 되는데. 얼른 맛보고 싶어요. 아악. ㅋㅋ

라로 2010-08-0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이걸로 레몬에이드 만들어 마시면 되겠네요~.
5일 뒤에 꼬옥 알려주셈~.
어제 만나뵈서 기뻤어요~. 어떨결에 손도 잡고,,,ㅎㅎㅎㅎ

웽스북스 2010-08-08 23:11   좋아요 0 | URL
아. 그러게요.
저도, 거기서 그렇게 나비님을 뵐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예쁘게 하고 나갔을텐데, 하고 후회를. ㅎㅎ

잠깐이지만, 저도 반가웠답니다.

후애(厚愛) 2010-08-08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5일 뒤에 꼭! 알려 주세요. 궁금해요~ ^^
어제 정말 반가웠어요~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세요.

웽스북스 2010-08-08 23:12   좋아요 0 | URL
아이고. 후애님. 저도 반가웠습니다.
제가 의외로(?) 낯도 좀 가리고, 시간도 많지 않았고,
아쉬움이 남네요.

5일 뒤에 꼭 알려드릴게요.

순오기 2010-08-09 0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레몬 절임이 레몬에이드가 되는 거군요.
그런데~ 레시피에 갈색설탕 넣으라고 나왔던가요?
내 경험상 갈색(황색) 설탕을 넣으면 위에 곰팡이가 생길 수 있어요.
물론 웬디님은 금세 먹을테지만, 설탕절임 하는 것들은 흰설탕을 넣어야 하는데...

웽스북스 2010-08-09 12:44   좋아요 0 | URL
아. 실은 잘 몰라요.
사실 레몬절임의 목적 중 하나가, 설탕 소진이었어요.
별로 쓸 일 없는 설탕을 잼 만든다고 잔뜩(이라봐야 1kg지만) 사버려서. ㅋㅋ

그러니, 전 누가 뭐래도, 가지고 있는 황설탕 넣을 수밖에요 ㅋㅋ
역시 어설프네요. 얼른 먹어야겠어요. ㅎㅎ
(그래도 또 황설탕 넣고 만들겠지만 ㅋㅋ)

깐따삐야 2010-08-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상큼시원하겠당. 저는 요즘 그냥 밥은 국에 말거나 마구 비벼먹어요. 바빠서.ㅠ

웽스북스 2010-08-09 12:44   좋아요 0 | URL
엉엉. 엄마의 이 노고를 우리 영달이도 알아야 할텐데 말이죠. ㅜㅜ

pjy 2010-08-09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말씀대로 황설탕이라 난중에 색상이 우찌될지@@; 매우 기대되는데요~~
아마도 탄산수에 넣으면 아이스티처럼 될지도 몰라요^^
이 더운 여름에 무려 요리까지하는 웬디양~ 홧팅!

웽스북스 2010-08-12 01:15   좋아요 0 | URL
색깔은 의외로 괜찮아요.
내일쯤 탄산수에 넣어서 마셔보려고요. ㅎㅎ

카스피 2010-08-09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레모네이드인가요? 저는 레몬을 사니 레몬에다 쿡 찔러넣으면 레몬즙이 나오는 플라스틱 수도꼭지같은것을 받았는데 이게 더 간편해서 좋더군요.물론 웬디양님 방법이 레몬을 알뜰하게 이용할수 있지만 게으른 사람은 좀...^^;;;;;;;

웽스북스 2010-08-12 01:16   좋아요 0 | URL
아. 그런 것도 있군요. ㅎㅎ
맛있으면 계속 만들어보려고요. ㅎㅎ

멜라니아 2010-08-10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무쪼록 여름 가지 전에 다 마셔 버리면 곰팡이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거에요
그럼 레몬향 나는 설탕물을 많이 먹게 되어서 뭐라 다이어트에는 적이 될런가.

와우 보고 있자니 레몬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입안이 시어지면서 침이 줄줄.

그런데 다음에 칼질 할 때는
반으로 자를 것 같으면

먼저 레몬은 길이로 반으로 잘라서 썰면
나중에 반으로 썰기보다 훨씬 간편
이렇게 해야 레몬즙도 덜 버려요-지나가는 참견.

웽스북스 2010-08-12 01:16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자르면서 후회했어요
귀퉁이 자르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애잔하고, 맑고, 안쓰럽고, 그리하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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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의 그림자 - 2010년 제43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민음 경장편 4
황정은 지음 / 민음사 / 2010년 6월
절판


은교씨는 갈비탕 좋아하나요
좋아해요
나는 냉면을 좋아합니다
그런가요
또 무엇을 좋아하나요
이것저것 좋아하는데요
어떤 것이요
그냥 이것저것을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 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그렇게 되나요-39쪽

요즘도 이따금 일어서곤 하는데, 나는 그림자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 저런 건 아무것도 아니다, 라고 생각하니까 견딜만해서 말이야. 그게 실은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가끔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시간이 좀 지나고 보니 그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맞는 것 같고 말이지. 그림자라는 건 일어서기도 하고 드러눕기도 하고, 그렇잖아? 물론 조금 아슬아슬하기는 하지.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느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게 되어 버리면 그 때는 끝장이랄까, 끝 간 데 없이 끌려가고 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46쪽

은교 씨는 무슨 노래 좋아하나요
나는 칠갑산 좋아해요
나는 그건 부를 수 없어요.
칠갑산을 모르나요?
알지만 부를 수 없어요
왜요
콩밭,에서 목이 메서요
목이 메나요?
콩반 매는 아낙이 베적삼이 젖도록 울고 있는 데다, 포기마다 눈물을 심으며 밭을 매고 있다고 하고, 새만 우는 산마루에 홀어머니를 두고 시집와 버렸다고 하고...-74쪽

할아버지가 죽고 나면 전구는 다 어떻게 되나. 그가 없으면 도대체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까. 오래되엉서 귀한 것들을 오래되었다고 모두 버리지는 않을까. 오무사에 다녀오고 나면 이런 생각들로 나는 막막해지곤 했는데... (후략) -104쪽

은교씨는 슬럼이 무슨 뜻인지 아나요?
.....가난하다는 뜻인가요?
나는 사전을 찾아봤어요
뭐라고 되어 있던가요?
도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구역, 하며 무재씨가 나를 바라보았다.
이 부근이 슬럼이래요.
누가요?
신문이며, 사람들이.
슬럼?
좀 이상하죠.
이상해요.
슬럼.
슬럼.
하며 앉아 있다가 내가 말했다.
나는 슬럼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어도, 여기가 슬럼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나야말로.-112쪽

그런 기억이란 희미해질 법도 한데 도무지 그렇지가 않아서, 나는 이 부근을 그런 심정과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는데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억울해지는 거에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고 무재씨는 말했다.
언젠가 밀어 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113쪽

은교씨, 나는 특별히 사후에 또 다른 세계까 이어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사람이란 어느 조건을 가지고 어느 상황에서 살아가건, 어느 정도로 공허한 것은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인생에도 성질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래 허망하니, 허망하다며 유난해질 것도 없지 않은가 하면서요.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고 나는 물었다.
이를테면 뒷집에 홀로 사는 할머니가 종이 박스를 줍는 일로 먹고 산다는 것은 애초부터 자연스러운 일일까, 하고.
무재 씨가 말했다.
살다가 그런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사정인 걸까, 하고 말이에요. 너무 숱한 것일 뿐, 그게 그다지 자연스럽지는 않은 일이었다고 하면, 본래 허망하다고 하는 것보다 더욱 허망한 일이 아니었을까, 하고요. -144쪽

이번엔 따끈하고, 개운했나요?
네. 맛있었어요. 따끈하고 맑고 개운했어요. 고마워요, 데려와 줘서,-157쪽

여전히 난폭한 이 세계에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아직 몇 있으므로
세계가 그들에게 좀
덜 폭력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왔는데 이 세계는
진작부터
별로 거칠 것도 없다는 듯
이러고 있어
다만
곁에 있는 것으로 위로가 되길
바란다거나 하는 초
자기애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다만
따뜻한 것을 조금 동원하고 싶었다
밤길에
간 두 사람이 누군가 만나기를 소망
한다

모두 건강하고
건강하길

(작가의 말)-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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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i 2010-08-08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지어 작가의 말까지 아름다웠던 책이었지요.

웽스북스 2010-08-08 23:5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랬어요. 김지님. 겨울에 올라오시면, 따뜻하고, 맑고, 개운한, 국물 먹으러 가요.

깐따삐야 2010-08-09 12:03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좋았는데. 근데 두분 데이트 하실 예정? 껴줘용.

웽스북스 2010-08-09 12:40   좋아요 0 | URL
제가 청주로 한번 놀러갈까봐요. :)
 
불편해도 괜찮아 -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느끼지 못하던 불편함에 대한 미안한 마음, 느끼고 있던 불편함에 대한 따뜻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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