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 - Late Autu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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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한 그녀의 연기는 시리도록 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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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1-02-26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장면은 그녀의 지난 2년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만듦새와 이음새 이런 건 모르겠고, 장면 장면 빛나던 순간들만이 떠오르네. hao 와 hui로 응답할 때, 훈의 진지한 표정이 좋았고, 범퍼카에 앉아 커플들의 대사를 대신 하던 장면 좋았고, 남자가 여자 따라가다가 춤추던 장면에서는 가족의 탄생 생각났고, 오리버스가 오리배가 될 땐 나도 덩달아 같이 신났고, 버스에 탄 탕웨이 앞을 서성이며 떠나지 못하던 훈의 모습도 좋았고...

탕웨이의 연기는 정말 디테일이 최고였다. 한마디 한마디 내뱉을 때의 입 매무새도 예쁘고, 반짝이는 갈색 눈동자도 예쁘고. 눈빛이 저리 당돌하면서도 처연할 수 있구나, 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예쁜 옷을 사입고 나와 전화를 끊고난 뒤의 표정, 그리고 범퍼카를 운전하다가 운전대에서 손을 슬그머니 내려놓을 때의 손동작과 표정, 힘주어 연기할 때보다, 힘을 뺄때 오히려 빛나는 배우구나, 한참, 한참을 감탄했다.

다락방 2011-02-27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페이퍼로 쓰든가 리뷰 쓰든가 하지 40자평 댓글로 이게 뭡니까!!

웽스북스 2011-02-27 01:41   좋아요 0 | URL
쓰고나서 더 쓰고싶어져서 쓰다보니 길어졌어요. 전 40자평의 여왕이잖아요. 우하하하하하

치니 2011-02-27 1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화끈한 웬디양 님, 별 5개! ㅎㅎ

웽스북스 2011-02-27 13:56   좋아요 0 | URL
거 별 아껴서 뭐하겠습니까 좋으면 걍 주는거제용 ㅋㅋ

... 2011-02-27 23:18   좋아요 0 | URL
듣고 보니 ㅋㅋㅋ 그러게요, 별은 아낄 필요가 전혀 없는 거로군요!

알라딘이 완전 만추의 물결...

마노아 2011-02-27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0자평보다 댓글에 추천이요!ㅎㅎ '처연하다'라는 표현이 딱인 것 같아요. 탕웨이, 완소 배우가 되어버렸어요.^^

웽스북스 2011-02-27 18:06   좋아요 0 | URL
저도요. 처연만 한 게 아니라, 그 안에서 보이는 어떤 안간힘 같은 거요. 아. 그게 너무 안잊혀지네요.

레와 2011-03-02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웅.. 탕웨이 만나보고 싶어요!!!
내가 밥도 사주고 고기도 사줄수 있는데..

웽스북스 2011-03-03 00:01   좋아요 0 | URL
난 그럼 탕웨이 옆에서 고기랑 밥 같이 얻어먹어야지. ㅋㅋ

그런데요 쩌어기 올림픽공원있는데 다락웨이라고 사시는데
그분이랑 가면 안될까요? 응?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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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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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의 시를 계속 읽고 있다.
죽을 것 같은 무료함에 살고 있는 겨울, 아니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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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을의 빛   _허수경


개들은 불안한 고독의 날개를 가진 나비를 쫓아다녔다
저수지에 고인 물의 살 속으로 깊이 침입하던 바람은
수초를 기슭으로 자꾸 보냈고
하여 저수지 기슭에는 붉은 물풀들이 행려거지처럼 누워 있었다

고추가 마르던 집 앞에서 빛은 고독한 매운내를 풍기며 앉아 있었다
가지가 마르던 마당에 보랏빛으로 고여들던 어둠은
할머니가 피우는 담배 연기 속으로 들어가 해맑은 죽음의 빛으로 살아났다

병아리가 종종거리는
맨드라미가 붉은 손을 자꾸 흔드는
그 마당에 가만히 앉아서 김칫거리를 다듬던 새댁의 눈 안에 고인 눈물 빛

벙어리 소녀는 낡은 거울 앞에서
낡은 결혼예복을 입어보았다
결혼예복 속에는 원앙 두 마리가 낡은 금빛 자수에 안겨 있었다
날아가는 빛을 보면서 말을 할 줄 모르는 소녀가 수음을 했다

우물에 기대어 먼 빛만 바라보았다
묵직한 우울함이 우물에 가라앉은 빛이 될 때

먼 산 숲에 핀 버섯이 가만가만 공기 속으로 돋아났고
흙은 아렸다

얼마나 무료한 나날들이 빛 속에 있는가
그날 죽을 것 같은 무료함이 우리를 살게 했지, 아주 어린 짐승의 눈빛 같은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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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1-02-23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빌어먹을, 읽으면 읽을수록 자꾸 혀가 아려요. 단어 하나하나가 혀를 그냥 넘어가지 않네...

웽스북스 2011-02-23 20:15   좋아요 0 | URL
빌어먹을, 아린 혀.. 네요.
단어 하나 하나 읽으면 읽을 수록 좋죠.

... 2011-02-24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시집 바로 위의 특별판으로 가지고 있구요, 서점에서 일반판도 봤는데 둘 다 크기가 좀 애매하지 않나요? 저는 저 특별판 받고나서 난감했어요. 스케치북처럼 위로 넘겨보며 눈에 띄는 부분을 골라 읽어요.

무료함속에서 빛을 찾으려니...팍팍해욧, 흑.

웽스북스 2011-02-24 21:59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 특별판 가지고 계시군요. 저도요.
특별판은 아무래도 침대용인 것 같아요.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책도 옆으로 세우면, 그렇게 잘보일 수가 없어요.

제 침대에는 아직도 이 책이 있답니다. ㅎㅎ

흰그늘 2011-02-24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는이..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옛 가을의 빛' 을 떠올려보게도 하는것 같군요

우물에 기대어 먼 빛만 바라보았다. 눈 안에 고인 눈물 빛

가만히 눈을 감고 있노라면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닌 새로움의 하늘이 보였던 그 날이
그리워지게도 하는.. 그런.. '시' 네요..

웽스북스 2011-02-24 22:00   좋아요 0 | URL
흰 그늘길님의 옛 가을의 빛은 어땠을까, 문득 궁금해져요.
그러고보니 흰그늘길, 이라는 닉네임의 이유도 궁금해지고요.

뜬금없죠? ㅎㅎ

다락방 2011-02-24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님 서재에 올려진 시 보고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오늘 뺐는데 다시 장바구니에 넣어야겠어요. 아 어쩌지?그냥 가끔 알라디너들이 올려주면 읽으면서 살까..무료한 봄밤이에요.추천을 보니 무료함을 느끼며 공감하는 분들이 제법 많은듯ㅠㅠ 나도 봄밤에 대한 시 올리고 싶지만 지금은 졸리므로 자야겠어요.미친봄밤이에요ㅠㅠ

웽스북스 2011-02-24 22:01   좋아요 0 | URL
가을 시를 올렸는데, 다들 봄을 이야기하네요. 미친봄밤. ㅋㅋ
다락방님은 늘 다락방님과 어울리는 언어를 꼭꼭 잘 찾아내는 것 같아요. ㅋㅋ

다락방님. 봄밤에 대한 시, 찾아서 올려주지 마시고요.
지어주세요. 나 완전 기대되. ㅎㅎ

turnleft 2011-02-24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시를 잘 안 읽어서 그런지, 마지막 연을 제외하곤 왜 이리 언어가 과잉되게 느껴질까요.
절제된, 효율적인 언어라기보단 왠지 너무 작정하고 시어들을 짜내는 느낌이랄까..

치니 2011-02-24 19:35   좋아요 0 | URL
(남의 집에서 댓글질 ㅋㅋ 웬디양 님은 용서해줄 거죠?)
턴레프트 님은 전체 시집을 다 읽지 않고도 문제점(이라고 하면 참 삭막하지만)을 잘 짚어내시네요. 이 시가 굳이 그렇다기보다, 저도 몇 몇 시는 그렇게 느꼈어요.
그런데 시집을 덮고 생각했죠, 이런 '서정시' 읽은지가 대체 얼마만인가, 이런 시의 명맥이 이어지기나 했었나, 누군들 담백하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시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감상이라는 것이 이런 시집을 통해 이어지는데 의미가 있지 않나, 뭐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 허수경 시인이 용감했다고 생각합니다아. :)

웽스북스 2011-02-24 22:07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시를 다 이해하겠다, 거나, 작가가 느낀 만큼 내가 느껴야겠다,
뭐 이런 욕심 같은 걸 버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내가 느끼고 이해하고, 또 공감한 만큼이 그냥 제게는 그 시, 랄까요.
턴님에게 마지막 연이 와닿았다면 (아니라고 하면 말고. ㅎㅎ) 그냥 마지막 연으로 이 시를 기억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ㅎㅎ 모든 시가 막 다 내 이야기같고, 막 다 와닿는 삶은 얼마나 괴로울까, 막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 그래서 가끔은 이해되지 않는 시 앞에서도 훗, 하고 좋아하기도 한답니다. 변태죠 ㅋㅋ

저도 이 시는 마지막 연이 제일 좋았어요. 내 감정의 흐름에 비해 좀 더 과잉으로 흐르는 부분이 있다면, 그게 그 때의 시인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모두에게 같은 걸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 전 그냥 그때그때 마음에 따라 다른 시집을 읽어요. ㅋㅋ 시인이 내게 맞춰 시를 쓸 수 없으니, 내가 시인에 맞추는거죠. ㅋㅋㅋ

turnleft 2011-02-25 04:40   좋아요 0 | URL
앞서 말했듯, 제가 시를 잘 안 읽어서..;;
그러니까, 제가 시랑 좀 안 맞는 사람인건 사실인 것 같아요. 항상 강조하듯 저는 표현보다 서사에 집중하는 타입인지라 서사를 압도하는 표현력(?)에 좀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듯 해요 ㅋ

레와 2011-02-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나고 보니 그 무료한 나날들이 나를 키웠단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건 지.나.고.보.니.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가지고 싶어요!

웽스북스 2011-02-24 22:08   좋아요 0 | URL
하하하 지나고보니. 가 중요하니.
오늘의 지나고보니, 라고 생각하며 느낀 지점들도
또 내일의 레와님을 키워주지 않을까 싶어요

무럭무럭 자라보아요 우리 ㅋㅋㅋㅋㅋㅋ

굿바이 2011-02-24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흘러내린 모래시계를 뒤집어 놓는 오후, 봄은 오고 있는지...

風流男兒 2011-02-24 15:57   좋아요 0 | URL
오늘날씨로는 봄이 온듯, 바람은 다르지만, 이렇게 겨울이 순순히 가지는 않을테니, 악! 퇴근하고파요 ㅋㅋ

웽스북스 2011-02-24 22:08   좋아요 0 | URL
전 오늘
겨울이 갑자기 좀 불쌍했어요 ㅜㅜ
그렇게 괴롭히더니

아. 아무래도 나 변태 맞나봐요

따라쟁이 2011-02-26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가는 먼집... 저는 예전에 나온 허수경시인의 책을 읽고 있어요. 그것도 작가의 말 보니까 봄쯔음. 아니면 봄이 가는 쯔음 엮은것 같더라구요. 그 시집도 읽으면서 단어들이 아파서 책장이 잘 안넘어 간다.. 하고 있었는데..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도 그렇군요.

웽스북스 2011-02-26 23:39   좋아요 0 | URL
앗, 따라쟁이님 안녕하세효!! :)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도, 빌어먹을, 그래요 ㅜㅜ
 



김영하가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닫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는 하나만 더, 언급하겠다며 "고은이는 굶어죽은 게 아니다, 병으로 죽었다" 라는 발언을 남겼고, 그 발언은 오늘 하루종일 기사로, 트위터로 회자되었다. 고은이는 굶어죽은 게 아니다, 라는 새삼스러운 발언도 놀라웠지만, 그 발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그렇게 많이 기사화되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 사실을 특종인 양 다룬 기자들은 최고은이 '굶어서만' 죽었다고 생각했던 거고, 기사에 본인이 버젓이 함께 쓴 언급되던 지병은 잊었던 것인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매우 까다로운 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호르몬 조절이 잘 안되어 신진대사가 다른 사람보다 좀 과도하게 활발해서 쉽게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병이다. 당연히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고, 약도 먹어야 하고, 음식도 잘 챙겨먹어야 하는 병이다. 내 동생이 그 병을 앓았었고, 어렸을 때 삐쩍 말라서 음식은 누나가 다 뺏어먹었느냐는 설움도 많이 당했었다. 병을 다 고친 지금은, 애가 점점 불고있다 ;;;; 앗 이것은 슬픈 여담이고 ㅜㅜ 그녀가 아프리카 기아처럼 굶어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슬퍼했던건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한 예술가가 지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꾸준히 영양을 공급하지 못해 결국 그 병으로 죽었다, 라고 이야기하면 상황이 달라지는가. 굳이 그 말을 남기며 떠나니 그의 대척점에는 마치 '최고은은 무능한 작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듯 한 묘한 기분이 든다. 적어도 내가 읽었던 글에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자들은 김영하가 트위터와 블로그를 접었다. 그리고 최고은은 굶어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는 두가지 사실만 가지고 기사를 쓴다. 두 사실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삶의 희망을 이미 놓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게다가 후자는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무책임하게 날린다. 이것이야말로 고인에게 정말 무례한 말이 아닌가. 설령 사실이라 한들 발화될 필요가 있었는가. 누구도 여기에 대해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의아했다. 내가 이상한건가 ;;

경험상, 언제나 끝판왕은 떠나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남아서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아니다. 논쟁을 묘한 상처배틀로 만들고, 내가 제일 상처 많이 받았음, 끝끝끝, 하면서 떠나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를 훨씬 많이 봤다. 그 경우라면 떠난 사람은 상처받은 피해자, 떠나게 한 사람은 상처입힌 가해자가 되고야 많다. 게다가 한 쪽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게임 오버다. 사람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 어렵고 긴 글을 몇 개씩 읽어가며 내막을 구태여 알려 들지도 않는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처의 경중은 까보지 않고, 좋아하던 누군가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워 상대를 비난한다. 꿋꿋이 버티고 앉아 견뎌내면 오히려 바보가 된다. 지금 트위터에서 수없이 RT되고 있는 고재열의 글이 이를 반증한다.

그나저나... 타블로도 떠나고... 김영하도 떠나고... 그래서 속이 시원할까요? 쓸쓸하네요.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준거에 사람들을 맞추려고 할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도, 마지막까지 비아냥거리는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며,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죄책감을 투사하는 자들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이 사태에 대해 정말로 발언해야할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처세라는 것을 배운다. 당장은 보고 즐기시라. 자기 죄책감을 투사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대중들의 카니발을.) 그냥 말을 말자,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화가 나고,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좋을까. 그를 향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던 사람들은 카니발을 즐기는 대중이 되어 버렸다. 나도 지금 카니발에 동참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걸까? 그러기엔 난 기운도 없고, 논리적인 인간도 아니고, 논쟁을 즐기지도 않는데...

대학시절, 내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는 것과 같은 공부를 하겠다고 제자들이 찾아가면 붙들고 말리셨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어떤 것들을 각오해야 하는지,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가감없이 말해주었다.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희망을 갖고 잔뜩 용기를 얻으러 간 아이들은 힘을 잃고 절망을 맛보며 돌아와야만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가는 친구들에게는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셨지만, 내가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존경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곳에에 팽배하던 긍정주의와 희망고문에 반하는, 그곳답지 않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긍지, 라고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낭만주의에 반기를 든 조영일의 글은 김영하의 글만큼 세련되지 못하지만, 한사람의 입장을 지지하라면 내 입장은 조영일 쪽에 가까웠다. 예술의 예술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은 희망 고문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말을 김영하가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듣보잡 작가가 했더라면? 글 속의 팩트를 그대로 둔 채 글쓴이만 바뀌었더라면, 다시 말해 김영하의 후광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는 말이다. 태어나 다이어트에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내가 스무살 친구에게 "힘을 내, 넌 정말 날씬해질 수 있어, 네 자신을 바꾸렴" 이라고 한다면 누가 힘을 얻겠는가. (이제 자학까지 돋는다 ㅜㅜ) 물론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일이 사회 지도층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응당 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그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에 기반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재능이든, 운이든. 어디 의지와 마인드컨트롤만을 가지고 되는 일이 있던가.

그는 그가 가진 것들에  기반해 그에게 주어진 현실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려는 위험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을 낭만주의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까지 했다. 너무 그럴듯하다. 그게 그럴듯한 이유는 (블로거 당고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가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의 희망이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그 말은 눈물나게 고마울런지도 모르겠지만, 만나본 적이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희망을 날리는 일은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그 말에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어 누군가는 작가로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은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에 새벽에 실린 이 글은, 김영하의 글과 다른가? 그는 본인이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를 정말 모르는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14/2011021401957.html

모두가 잘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라며, 무책임한 이 사회의 언어들을 탓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나도 역시 구조주의적 비관론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쉽게 변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기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작가들보다는, 구조와 자신을 대척점에 놓고, 끊임없이 분투하며, 그것을 자신의 글 속에 나타낼 줄 아는 작가가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가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질 것을 알고 덤볐을지언정, 의미가 없는 싸움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에게 세상과 싸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미안한건지, 다행한건지, 나는 한순간도 그것을 그에게서 기대한 적이 없다. 다만 그의 예술에 대한 관점을, 자신이 성공한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일반화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을 접하며 가장 좋았던 글은 작가 김사과의 글이었다.
http://sooosleepy.wordpress.com/



ps. 김영하와 조영일의 글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뭔 생뚱돋는 얘기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한가지 이해를 구하는 건, 댓글에 답글은 달지 않을 생각입니다. 너무 신경이 쓰일 것 같기도하고 ;; 그럴만한 깜냥도 별로 없어서 ;;; 게다가 신경이 과도하게 쓰이면 확 비공개로 돌려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자니, 얼른 잠들어 내일은 불끈불끈 내일의 태양을 즐겨야죠! 그러니 부디 무례하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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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11-02-1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라 모르겠다 한없이 깊고 쓸쓸하고 우울한데 추천이나 해야겠다...

순오기 2011-02-15 06:56   좋아요 0 | URL
나도~~~~~~ 오즈마님에게 묻어서 추천 합니다.

turnleft 2011-02-15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거겠죠. 온라인이란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무슨 말이든 꺼내야 정체성이 유지가 되니. 저도 추천 하나 추가하고 갑니다.

Kitty 2011-02-15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국소설이라고는 다섯 손가락도 남을 정도로 거의 안읽은 제가 그나마 읽어봤던 작가인데 이렇게 또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게 되네요 ㅡㅡ;;

사과나무 2011-02-1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까지만 알고 더 이상 알려 하지 않는 언론?을 향해 그는
나는 둘까지 알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걸까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나는 여러 의견이 모여 만들어 내는 스펙트럼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대립구도를 짜야 자기 말이 좀 더 잘 전달이 될 거라 여겼던 걸까요?

일단은 어떤 프레임이든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짚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늘빵 2011-02-1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비평고원의 소조라는 분과 김영하가 글을 주고 받았더라고요. 전 읽어보진 않았는데, 논쟁의 끝엔 이상하게도 항상 누군가가 떠나는다는 것. 이 공간에서도 여러번 반복해서 봤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일단 떠나면 대개는 상처받은 자로 간주되어 지지자를 늘리게 되죠. 타블로 같은 경우엔 일방적으로 다구리 당하는 바람에 그랬고, 김영하 같은 경우엔 다구리는 아니고 둘이 주고받다 개인이 떠났다고 봐야 할 거 같아요.
 
천변살롱 O.S.T.
박준면 외 노래 / 미러볼뮤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괜시리 마음이 울적한 날이면, 천변살롱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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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1-02-12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나 지금 반짝반짝 빛나는 이라는 드라마 보는데 거기 김현주를 보니까 웬디양님이 생각나넹..

웽스북스 2011-02-15 03:0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저도 보면서 저 생각 났어요 ㅋㅋㅋㅋㅋ 렌즈 빠지는 장면은 정말 대박이던데요 ㅋㅋㅋㅋㅋ 하지만 그녀는 너무 예뻐서 그렇게 말하고 다닐 수가 없어요. 전 아무래도 건어물녀가 맞는듯 ㅜㅜ

무해한모리군 2011-02-15 10:36   좋아요 0 | URL
제가 인정했으니까 말하고 다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