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가 블로그를 닫고 트위터를 닫았다. 마지막으로 남긴 글에는 하나만 더, 언급하겠다며 "고은이는 굶어죽은 게 아니다, 병으로 죽었다" 라는 발언을 남겼고, 그 발언은 오늘 하루종일 기사로, 트위터로 회자되었다. 고은이는 굶어죽은 게 아니다, 라는 새삼스러운 발언도 놀라웠지만, 그 발언이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그렇게 많이 기사화되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아. 나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가! 그 사실을 특종인 양 다룬 기자들은 최고은이 '굶어서만' 죽었다고 생각했던 거고, 기사에 본인이 버젓이 함께 쓴 언급되던 지병은 잊었던 것인가?

갑상선 기능 항진증은 매우 까다로운 병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병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사람은 본 일이 없다. 호르몬 조절이 잘 안되어 신진대사가 다른 사람보다 좀 과도하게 활발해서 쉽게 피로감과 무력감을 느끼는 병이다. 당연히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고, 약도 먹어야 하고, 음식도 잘 챙겨먹어야 하는 병이다. 내 동생이 그 병을 앓았었고, 어렸을 때 삐쩍 말라서 음식은 누나가 다 뺏어먹었느냐는 설움도 많이 당했었다. 병을 다 고친 지금은, 애가 점점 불고있다 ;;;; 앗 이것은 슬픈 여담이고 ㅜㅜ 그녀가 아프리카 기아처럼 굶어 죽었기 때문에 우리가 슬퍼했던건가?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었던 한 예술가가 지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꾸준히 영양을 공급하지 못해 결국 그 병으로 죽었다, 라고 이야기하면 상황이 달라지는가. 굳이 그 말을 남기며 떠나니 그의 대척점에는 마치 '최고은은 무능한 작가'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듯 한 묘한 기분이 든다. 적어도 내가 읽었던 글에서는 그 누구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자들은 김영하가 트위터와 블로그를 접었다. 그리고 최고은은 굶어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는 두가지 사실만 가지고 기사를 쓴다. 두 사실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게다가 그는,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삶의 희망을 이미 놓았던 것 같다는 이야기를 (게다가 후자는 추측에 근거한 것이다) 무책임하게 날린다. 이것이야말로 고인에게 정말 무례한 말이 아닌가. 설령 사실이라 한들 발화될 필요가 있었는가. 누구도 여기에 대해 문제삼지 않는다는 점이 너무 의아했다. 내가 이상한건가 ;;

경험상, 언제나 끝판왕은 떠나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남아서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고? 아니다. 논쟁을 묘한 상처배틀로 만들고, 내가 제일 상처 많이 받았음, 끝끝끝, 하면서 떠나는 사람이 이기는 경우를 훨씬 많이 봤다. 그 경우라면 떠난 사람은 상처받은 피해자, 떠나게 한 사람은 상처입힌 가해자가 되고야 많다. 게다가 한 쪽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면?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게임 오버다. 사람들은 시간이 많지 않다. 어렵고 긴 글을 몇 개씩 읽어가며 내막을 구태여 알려 들지도 않는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상처의 경중은 까보지 않고, 좋아하던 누군가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워 상대를 비난한다. 꿋꿋이 버티고 앉아 견뎌내면 오히려 바보가 된다. 지금 트위터에서 수없이 RT되고 있는 고재열의 글이 이를 반증한다.

그나저나... 타블로도 떠나고... 김영하도 떠나고... 그래서 속이 시원할까요? 쓸쓸하네요. 왜 사람들은 자신들의 준거에 사람들을 맞추려고 할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도, 마지막까지 비아냥거리는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을 보며, 자신을 비난하는 자들을 죄책감을 투사하는 자들로 몰아붙이는 모습을 보며 (이 사태에 대해 정말로 발언해야할 사람들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처세라는 것을 배운다. 당장은 보고 즐기시라. 자기 죄책감을 투사할 대상을 찾아 헤매는 대중들의 카니발을.) 그냥 말을 말자, 싶었다. 그런데, 자꾸만 화가 나고,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좋을까. 그를 향해 진지한 문제제기를 하던 사람들은 카니발을 즐기는 대중이 되어 버렸다. 나도 지금 카니발에 동참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는 걸까? 그러기엔 난 기운도 없고, 논리적인 인간도 아니고, 논쟁을 즐기지도 않는데...

대학시절, 내 선생님은 선생님이 하는 것과 같은 공부를 하겠다고 제자들이 찾아가면 붙들고 말리셨었다. 그 길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어떤 것들을 각오해야 하는지, 본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가감없이 말해주었다. 자신의 꿈을 찾았다고 희망을 갖고 잔뜩 용기를 얻으러 간 아이들은 힘을 잃고 절망을 맛보며 돌아와야만 했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찾아가는 친구들에게는 이런 저런 조언도 해주셨지만, 내가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존경했던 이유 중 하나는, 그 곳에에 팽배하던 긍정주의와 희망고문에 반하는, 그곳답지 않은 분이셨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젊은 예술가들에게 작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자신의 긍지, 라고 작가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끊임없이 정진하라고 이야기한다. 그의 낭만주의에 반기를 든 조영일의 글은 김영하의 글만큼 세련되지 못하지만, 한사람의 입장을 지지하라면 내 입장은 조영일 쪽에 가까웠다. 예술의 예술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그의 말은 희망 고문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 말을 김영하가 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듣보잡 작가가 했더라면? 글 속의 팩트를 그대로 둔 채 글쓴이만 바뀌었더라면, 다시 말해 김영하의 후광이 없었더라면,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힘을 얻고, 용기를 얻었을까.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누구나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는 말이다. 태어나 다이어트에 한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내가 스무살 친구에게 "힘을 내, 넌 정말 날씬해질 수 있어, 네 자신을 바꾸렴" 이라고 한다면 누가 힘을 얻겠는가. (이제 자학까지 돋는다 ㅜㅜ) 물론 힘을 주고 용기를 주는 일이 사회 지도층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 응당 할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그건 그가 가지고 있는 조건들에 기반했던 것이 아니었던가. 재능이든, 운이든. 어디 의지와 마인드컨트롤만을 가지고 되는 일이 있던가.

그는 그가 가진 것들에  기반해 그에게 주어진 현실을 모든 사람에게 일반화하려는 위험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게다가 그것을 낭만주의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포장까지 했다. 너무 그럴듯하다. 그게 그럴듯한 이유는 (블로거 당고님의 표현을 빌자면) 그가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물론 당장의 희망이라도 필요한 사람에게 그 말은 눈물나게 고마울런지도 모르겠지만, 만나본 적이 없는 불특정 다수에게 그렇게 희망을 날리는 일은 무책임한 일일 것이다. 어쩌면 그 말에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어 누군가는 작가로 성공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은 좌절을 맛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조선일보에 새벽에 실린 이 글은, 김영하의 글과 다른가? 그는 본인이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 것인지를 정말 모르는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14/2011021401957.html

모두가 잘될 거라는 말을 한다고 해도 그건 말일 뿐이지 그렇지 않니?
라며, 무책임한 이 사회의 언어들을 탓하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노래가 갑자기 듣고 싶어진다.



그리고, 한가지 더 이야기하자면, 나도 역시 구조주의적 비관론자이기 때문에, 세상이 쉽게 변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기기 위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작가들보다는, 구조와 자신을 대척점에 놓고, 끊임없이 분투하며, 그것을 자신의 글 속에 나타낼 줄 아는 작가가 개인적으로는 좋은 작가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가 장렬히 전사할지언정, 질 것을 알고 덤볐을지언정, 의미가 없는 싸움은 아닐 것이다. 물론 그에게 세상과 싸워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미안한건지, 다행한건지, 나는 한순간도 그것을 그에게서 기대한 적이 없다. 다만 그의 예술에 대한 관점을, 자신이 성공한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일반화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는 것이다.

이 논쟁을 접하며 가장 좋았던 글은 작가 김사과의 글이었다.
http://sooosleepy.wordpress.com/



ps. 김영하와 조영일의 글을 미리 읽지 않았다면 뭔 생뚱돋는 얘기야?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한가지 이해를 구하는 건, 댓글에 답글은 달지 않을 생각입니다. 너무 신경이 쓰일 것 같기도하고 ;; 그럴만한 깜냥도 별로 없어서 ;;; 게다가 신경이 과도하게 쓰이면 확 비공개로 돌려질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늦게 자니, 얼른 잠들어 내일은 불끈불끈 내일의 태양을 즐겨야죠! 그러니 부디 무례하다고는 생각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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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죠 2011-02-15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라 모르겠다 한없이 깊고 쓸쓸하고 우울한데 추천이나 해야겠다...

순오기 2011-02-15 06:56   좋아요 0 | URL
나도~~~~~~ 오즈마님에게 묻어서 추천 합니다.

turnleft 2011-02-15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이 너무 많은 시대에 살고 있는거겠죠. 온라인이란게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무슨 말이든 꺼내야 정체성이 유지가 되니. 저도 추천 하나 추가하고 갑니다.

Kitty 2011-02-15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국소설이라고는 다섯 손가락도 남을 정도로 거의 안읽은 제가 그나마 읽어봤던 작가인데 이렇게 또 마음속에서 지워버리게 되네요 ㅡㅡ;;

사과나무 2011-02-15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까지만 알고 더 이상 알려 하지 않는 언론?을 향해 그는
나는 둘까지 알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던 걸까요?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나는 여러 의견이 모여 만들어 내는 스펙트럼을 이야기하기보다는
대립구도를 짜야 자기 말이 좀 더 잘 전달이 될 거라 여겼던 걸까요?

일단은 어떤 프레임이든 그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이
고인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제대로 짚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늘빵 2011-02-1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음, 비평고원의 소조라는 분과 김영하가 글을 주고 받았더라고요. 전 읽어보진 않았는데, 논쟁의 끝엔 이상하게도 항상 누군가가 떠나는다는 것. 이 공간에서도 여러번 반복해서 봤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어도 일단 떠나면 대개는 상처받은 자로 간주되어 지지자를 늘리게 되죠. 타블로 같은 경우엔 일방적으로 다구리 당하는 바람에 그랬고, 김영하 같은 경우엔 다구리는 아니고 둘이 주고받다 개인이 떠났다고 봐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