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
홍윤기 지음 / 효형출판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선정적인 제목과는 달리, 내용은 제법 쓸만하다. 저자의 본래 전공이 영문학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꼼꼼한 고증과 추론 실력을 보여주는 서술도 많은 편.

주장의 핵심은 특히 7세기의 일본 천황들이 백제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는 것. 그러나 이건 사실 1980연대 최인호의 <잃어버린 왕국>이래 큰 줄기는 알려져 왔던 부분이다. 백제의 중신이던 목협만치가 일본으로 망명하여 소가(蘇我)씨가 된 것, 백제가 멸망했을 때, 일본에서 국력을 기울여 원군을 파견하고, 죠메이 천황이 모국을 잃어버린 것처럼 비통해한 사실은 다른 연구자들이 충분히 밝힌 부분이다.

저자가 새로 발굴해낸 것이라면 593년 나라 아스카 사 법요식에서 천황과 백관들이 모두 백제 옷을 입었다는 것과 백제인 아직기가 일본 최초의 와카(和歌)를 지었다는 것 정도. 그외에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역사학계가 일선동조론(日鮮同祖論)과 한반도기원론 사이에서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를 깊이 파고든 것도 흥미롭긴 하다. 또 저자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각지를 돌아다니며 찍거나 수집한 풍부한 자료 사진은 볼 만하다.  예를 들자면 닌토쿠 천황릉에서 나온 백제검과 무령왕릉 출토 환두대도를 사진으로 비교한 것(233페이지)은 굳이 여러 말 할 것 없이 사진 한 장으로 두 나라 사이의 문화적 동질성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어 '마츠리'(祭)가 한국어 '맞으리'(신을 맞아들이리)에서 나왔다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3대 축제 중 하나인 기온마츠리에서 일본인 자신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오래 전부터 '왔쇼이 왔쇼이'(신이 왔소) 라 해왔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저자의 본래 전공이 언어학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나 7세기까지 일본 천황가가 자신들을 '백제인'이라 느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그때 얘기다. 그들은 통일신라가 들어서고 백제가 사라진 후 '일본'이란 기치 아래 새로운 출발을 한 것이다. 칸무 천황의 고대 역사서 분서 사건도 그 때문이 아닌지... 따라서 '일본 천황가는 백제에서 나왔다.'라면 몰라도 '일본 천황은 한국인이다.'는 주장은 심한 오바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청나라 황제는 한국인이다.'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전반적으로 글쓰기가 너무 산만하다. 왜 그런 교수님 있잖은가. 아는 것 많고 실력도 훌륭한데 막상 강의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경우. 이 얘기 하다가 저리 새고, 저 얘기 하다가 이리 새고... 그런 케이스다.

고대 한일관계사에 관한 다른 책들을 읽어 줄기가 좀 잡힌 후라면 참고도서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어를 처음 배우던 시절 얼핏 보기에는 긴 문장이, 막상 요지를 메모하면서 읽다 보니 별것 아닌 내용이어서 긴장이 탁 풀렸던 기억이 난다. 일본어는 그렇게 말을 배배 꼬아서 늘여놓는 표현이 좀 발달한 편이다. 예를 들어보면

必ず行かなければならない (반드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순수한 우리말에 이런 표현은 없다. 우리말의 같은 상황에서라면 '꼭 가야 해' 정도의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우리말 4음절로 전달할 수 있는 표현이 일본어에서는 무려 14음절로 늘어난 것이다.

한동안 생각을 해봤다. 일본어는 대체 왜 이렇게 복잡한 이중부정 표현법이 발달한 것일까? 내가 찾아낸 답은,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강한 민족성의 영향이라는 것이었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A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B이다. 그러나 '난 B야' 라든가 'A는 안돼'라고 내뱉는 것은 무례한(丁寧ではない)표현이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어를 지배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원하는 것, 즉 'B가 아니라면...'이라 뜸을 들인 후(중간에 여러 가지 사정들이 생략되어)... 안된다, 곤란하다'라고 한 호흡을 늦추는 말버릇이 생긴 것이리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참 그야말로 일본어다운 표현이지만 솔직담백한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다. 앞으로 일본어로 말하거나 쓸 때 이 표현을 어떻게 칼질을 해주면 좋을까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꼬마요정님의 "[퍼온글] 아디다스 CF - impossible is noting"

이 광고, 저도 감명 깊게 봤습니다. 카피를 메모해놓았는데...(영어 원문은 아직 못 찾았습니다. 없는 게 아니라 어딘가 있을 텐데 미처...)

불가능, 그것은 나약한 사람들의 핑계에 불과하다.
불가능,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 하나의 의견일 뿐이다.
불가능,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도전할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불가능, 그것은 사람들을 용기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IMPOSSIBLE IS NOTHING.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철도원
아사다 지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까지 찾아 읽던 아사다 지로의 작품들은 대개 가벼운 터치의 것들이었기에,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약간은 가벼운 시각(코믹터치)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뭔가 좀 달랐다.

20여 년 전, <오싱>이란 일본 문학작품이 한국을 뒤흔든 적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좀 쥐어짜내는 듯한 감동이라는 느낌에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본 문학작품이 어떤 면에서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지는 대충 감을 잡았다. <철도원>은 그 계보를 잇는다.

아사다 지로는 정식으로 글쓰기를 배운 사람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문장은 단조롭다. 이 정도 필력과 스토리라인으로 어떻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을까 싶은 구석도 있다. 그 비밀을 곰곰히 생각해 보니...

바로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는 점에 있는 것 같다. 아사다 지로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하나도 잘나가는 인간이 없다. 남편이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아이들은 일찍 죽어버리던가 가출하고, 직장 상사는 몰인정하게 달달 볶아대고, 능력있는 후배한테 쫒기고... 그 못난 인간 군상들이 어느 순간에 작은 희망과 사랑을 발견하게 만든다는 데에서 카타스시스가 오는 듯하다. 즉 그의 작품이 갖는 매력은 평범하다못해 나른해진 일상 속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사랑을 발견 혹은 회복하는 대비 효과(극적 contrast)에 있다는 생각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철도원>보다 <오리온 좌에서 온 초대장>(처음에는 SF인줄 알았다.^^)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 영화 <시네마천국>을 연상시키기도 했지만, 토토와 엘레나가 조역으로 물러앉고 장인정신의 냄새가 물씬한 일본의 알프레도 아저씨(센바)가 주연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더 인상적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아는 사람들과의 작별이나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이 세상의 풍경이 괴로운 건 아니다. 문제는 지난 마흔여섯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흔적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 죽음은 현세의 종말이기는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그런 사실만 마음에 새기고 있으면 현세를 되돌아볼 필요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 자기주장은 권리이지만 자기표현은 의무예요.(쓰바키아먀의 내연녀 도모코)

- 기정사실이라고 해서 결코 정의는 아니니까.(쓰마키야마의 아들 요스케)

- 진짜 프로는 자신에게 허용된 시간 안에서 항상 똑같은 결과를 내는 사람이야!(쓰마키야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