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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시절, 동문회에서 의대에 다니던 한 기수 위 고등학교 선배와 무척 친해졌다. 그 선배가 역사학을 무척 좋아한 것 외에, 우리 둘 다 고전음악을 좋아하고 취미로 피아노를 친다는 사실이 둘 사이를 가깝게 만들었던 것 같다. 당시 동문회는 군기가 좀 센 편이라 동문회 공식 모임은 불편하기 짝이 없었는데, 희한하게 그 선배와는 평소에도 자주 어울려다니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는 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라고 즐거워했다. 뭐였냐 하면... 역사학 연구가 추리소설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는 것이었다. 추리소설에서 탐정은 남겨진 물증을 가지고 사건을 재구성해들어간다. 역사학자는 남겨진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을 가지고 당시의 시대상을 추적한다. 지능적인 범인이 일부러 증거물을 흩뜨려놓으면, 유능한 탐정은 그 부분까지 고려하여 숙고해야 한다. 역사기록도 마찬가지로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의적으로 왜곡, 삭제, 축소, 은유적으로 표현된 부분이 있고, 훌륭한 역사학자는 그 부분까지 고려해서 시대상을 재구성해야 한다. 중국인들이 남겨놓은 한문사료에서 주변민족에 대한 편향적 시각을 한꺼풀 벗기면 놀라운 사실들이 드러나듯 말이다.

평소 문학과는 거리가 먼 편이라 생각해왔지만, 최근에 나의 독서 패턴을 가만히 살펴보면 추리나 판타지 등의 소위 장르문학, 혹은 비주류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작품들은 제법 찾아 읽은 편이었다. 역시 역사학에 대한 관심과 추리소설에 대한 관심이 통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일까?

<다빈치 코드>가 뜨는 현상, 그리고 대중역사서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 이 두 가지가 서로 연관이 있을 듯하다는 느낌이 문득 머리를 스치기에 정리한 생각 한 토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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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은 과연 존재하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요즘은 동양은 어떻고 서양은 어떻고 하면 곧 낡은 생각인 것처럼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동양과 서양의 지적 전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므로, 두 세계를 비교해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비교는 여전히 상대적인 선에서 끝나야 하며, 본질적인 차이로 끌어가려 한다면 제국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양이 물질적 성취를 강하게 추구해온 반면, 동양은 정신적 성숙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문명을 따라잡지 못한 서양인들은 이제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나머지 동양의 유산에서 안식처를 구하려 들고, 옛 전통에 안주해왔던 동양인들은 과감하게 기술문명과 산업발전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이러한 현상이 마치 동양 정신문명의 우위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이해하지만, 내 생각으론 서양 물질문명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동양 스스로는 자신들의 정신문명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아이덴티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동양의 정신문명은 확실히 풍요로운 광맥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자만심에 빠진다면 기술만 믿고 설쳐대다 세계대전으로 치달은 20세기 서양문명의 잔혹사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양도 진지하게 반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룬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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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나는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가 Britanica Atlas를 보고 한눈에 반해버렸다.

이미 그때부터 역사와 지리에 동갑내기들보다 유난히 관심이 많았던 터라, 유럽 민족분포, 1차 세계대전 이후 국경선 변화도, 당시 사회과부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와 남태평양 상세 지도 등을 입이 떡 벌어져 바라보기만 했던 것이다.

너무나 갖고 싶은 책... 그러나 물어물어 종로에 있는 브리태니커 본사(뿌리깊은 나무)를 찾아간 중학생에게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1980년대에 64000원! 고민이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뿌리깊은 나무가 아니라 오르지 못할 나무였다. 그러나... 친구에게 맨날 책가방보다 큰 지도책을 빌려와서 보고만 있는 자식이 안스러우셨는지, 어머님께서 어느날 나를 데리고 브리태니커 본사로 가셨다.  지도 외에도 영어 교재를 두세 종을 더 사시더니(돌이켜보면 그건 어머님의 배려였다. '지도'만 사러 온 게 아니란 듯이...) 10만원이 넘는 액수를 그 자리에서 지불하셨다...

그런데, 내가 그때 왜 그랬는지... 한국 페이지를 넘겨서 독도 부분을 확인했다. 지금처럼 국민적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어딘가에서 독도가 국제 지도엔 일본 땅으로 되어 있대... 뭐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친구 것도 마찬가지. 그러나 친구 것은 오래 전 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동해는 SEA OF JAPAN, 독도는 Takesima로 되어 었었다. 나는 순진하게 직원에게 "아저씨, 여기요, 여기, 독도가 다케시마로 되어 있네요." 라고 말했다. 당황한 뿌리깊은 나무 직원들... 구입액도 많고 무거우니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해서 우리는 홀가분하게 돌아왔다.

그런데... 집으로 배달된 브리태니커 아틀라스, SEA OF JAPAN과 Takesima만을 검은색 매직펜으로 쑥쑥 지워놓은 것이었다! 아니,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지금이라면 이렇게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다. 에이, 씨, 이게 뭐야... 비싼 책에... 그리고 반품은 물론이고 항의조차 안 한 채 세월은 흘러가고... 그때 바로 종로로 달려가 멱살을 잡고 한판 붙었어야 했구나... 싶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러나 조금 더 시간이 흐르자, 그 페이지를 들여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 거친 먹칠이, 바로 1980년대를 살았던 대한민국 어른들, 윗세대 역사인식의 산 증인이라고.  중국의 동북공정 이야기를 듣고는 거품을 물지만 막상 고구려사 책 한 권을 사보기 싫어하는, 독도는 당연히 우리땅이라고 큰소리를 치면서도 한국이나 일본 근대사 책 한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길 귀찮아하는, 나날의 생활에서는 일본제품만 쓰면 귀족이 된 줄 알면서 과거사 이야기만 나오면 왜놈들 왜놈들 하던, 허세로만 가득 찼던 윗세대의 초라한 자화상이라고.

역사는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기억이 곧 힘이 되는 것이 역사다. 기억하려는 노력 없이 힘만을 바라는 자들을 역사는 용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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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아 2004-07-14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지 못한 숙제들이 하나 둘이 아닙니다. 과거는 그저 과거인 채로 남아있지 않고 우리보다 먼저 달려가 미래의 자리에 앉습니다. 그것을 잘 아는 우리 주변의 나라들은 엄청난 투자로 과거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우리 윗세대의 초라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되는데...이런 방면에서 일종의 위태로움을 느낍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지식들 가운데는 당장 사람들을 유용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가 하면, 쉽게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역할을 다하는 것들이 있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나온 지 오래 되었다. 인문대학 대학원에는 지원자가 점점 줄어들고, 몇 년 전엔가는 호서대에서 철학과를 폐과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문학, 사학, 철학... 이런 지식들은 이제 용도 폐기되어야 할 운명의 학문 분야일까?

사람의 몸에 비유하자면, 법학이나 경제학, 의학이나 컴퓨터공학이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과 같은 역할을 하는 반면 인문학이나 예술은 비타민이나 무기질과 같다고 하겠다. 비타민만으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섭취하는 식품에 비타민이 부족하면 피부가 꺼칠해지고 신진대사가 상쾌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마련이다.

단순한 생존 이상, 풍요롭고 윤기나는 삶이 되려면 실용 학문과 인문학의 균형 잡힌 섭취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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