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은 과연 존재하는가?

'오리엔탈리즘'을 비판하는 의식이 널리 퍼지면서 요즘은 동양은 어떻고 서양은 어떻고 하면 곧 낡은 생각인 것처럼 보는 시선이 많아졌다. 그러나 나는 동양과 서양의 지적 전통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왔으므로, 두 세계를 비교해보는 것은 여전히 유효한 담론이라 생각한다. 물론 그 비교는 여전히 상대적인 선에서 끝나야 하며, 본질적인 차이로 끌어가려 한다면 제국주의적 시각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양이 물질적 성취를 강하게 추구해온 반면, 동양은 정신적 성숙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눈부신 속도로 발전하는 기술문명을 따라잡지 못한 서양인들은 이제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나머지 동양의 유산에서 안식처를 구하려 들고, 옛 전통에 안주해왔던 동양인들은 과감하게 기술문명과 산업발전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다. 일부 한국인들은 이러한 현상이 마치 동양 정신문명의 우위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이해하지만, 내 생각으론 서양 물질문명의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동양 스스로는 자신들의 정신문명의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아이덴티티를 선명하게 부각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동양의 정신문명은 확실히 풍요로운 광맥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자만심에 빠진다면 기술만 믿고 설쳐대다 세계대전으로 치달은 20세기 서양문명의 잔혹사를 되풀이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동양도 진지하게 반성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룬 건강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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